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6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3)화(16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3)
“…그런데 젊은 분이 재미있는 걸 많이 적어 가지고 다니시는구려.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한 이 부분도 얼핏 보아하니 상당히 심오한 내용 같은데. 본업이 치료술사라고 하셨나?”
“네, 그렇습니다. 사실은 제 취미가 고대 유적을 방문하거나 고서를 탐독하는 거라서요.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옛날 기록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중에서 제 능력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문장들을 모아 둔 겁니다.”
“고대 유적과 고서라니…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는군.”
“취미 겸 수행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치료술사라는 게 고리타분한 직업이다 보니 옛날 기록들을 읽어 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더라구요.”
서류를 살피는 척하며 틈틈이 날려 대는 탐색의 질문.
만약 내가 키에르고의 정체를 몰랐다면 깜박하고 속아 넘어갔을 법한 아주 괜찮은 연기였다.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정확한 해석을 하려면 고대의 문자표도 좀 참고해야 해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소이다. 혹시 기일이 정해져 있는 것들이오?”
“아니요. 급한 건 아니고 방학 내내 이곳에 머무를 예정이니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정확성이 생명인 작업이다 보니 어르신께서 꼼꼼히 살펴 주신다면야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그럼 이 서류 통째로 보관하고 있다가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거든 그때 돌려드려도 괜찮겠소?”
“네, 괜찮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사본이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출처를 묻고 싶었을 텐데 키에르고는 일단은 날 돌려보내는 걸 선택했고 난 그 장단에 적당히 맞춰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작업이 완료되거든 다니엘 영감님에게 연락 주세요. 그럼 그 소식이 전해지는 대로 어르신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구려. 내 완료되는 대로 연락 드리리다.”
어차피 나나 키에르고나 돈이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대금 협상은 어렵지 않게 마무리되었고 협상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키에르고의 과거가 궁금한 것처럼 이 노회한 드라콘 역시 내가 서류 곳곳에 어지러이 휘갈겨 놓은 문장들이 궁금해 미칠 지경일 테니까.
“그럼 가보겠습니다.”
작별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숲길을 1km쯤 지나, 뒤를 돌아보자 울창한 수풀 아래로 자리 잡은 오두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쯤 저 안에서는 완전무장을 한 드라콘이 두 눈을 부릅뜬 채.
‘페이건 클라디우스, 이자는 도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이 구절들을 접하게 된 거지?’라든가.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자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 어떤 방법이 좋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겠지.
지난 수십 년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고민을 하고 있을 드라콘의 분투를 기원하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어디 한번 실컷 고민해 보시지요. 혹시 또 압니까? 귀하께서 내 주위를 열심히 알짱거리다 보면 우리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생길지.’
* * *
“클라디우스 부인, 혹시 불편하신 점이나 분부하시고 싶은 건 없으신지요? 혹, 하고픈 말이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가능한 일이라면 즉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불편하기는요, 오히려 다들 너무 잘해 주셔서 부담스러울 지경인걸요. 도르만 경이 보여 주시는 배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하하! 부인께서 그리 생각해 주신다면 저야말로 기쁠 따름이지요. 그럼 마차 다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랴!”
다그닥다그닥.
잠시 후 마차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멜리사는 창밖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커튼을 쳤다.
뭐랄까… 이런 식의 사치스러운 여행을 하는 건 처음이다 보니 마차 창밖으로 보이는(사실 마차에 창문이 있다는 것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경호원들의 얼굴을 마주하기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어휴, 정말 잘난 아들을 둔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호사를 다 누리네.”
이델타에서 도르만을 만나 폴리다고스를 향해 출발한 지 오늘로 사흘째.
여정도 어느덧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도르만을 비롯한 경호원들의 시선은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했다.
경호 인력들이 자신들을 워낙 극진하게 대접하는 게 마음에 걸려 어제저녁에는 도르만을 붙잡고 몰래 물어보기도 했다.
“혹시 폴리다고스에 방문하는 학생 가족들은 전부 다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 건가요? 아니면 혹시 우리 아이가 학생 대표라서?”
“클라디우스 공자께서 1학년 대표직을 맡고 계시는 것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부인께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치안국 소속입니다. 즉, 클라디우스 공자의 가족분들께 제공되는 모든 편의에는 치안국장님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 셈이지요.”
일행이 이틀간 타고 달려온 으리으리한 마차가 치안국장 개인에게 할당된 세 대의 전용 마차 중 하나라는 사실도 그제야 알 수 있었고.
“대단한 분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폴리다고스의 치안국장님께서 이델타까지 전용 마차를 보내 주시다니… 할멈, 우리 큰아이는 도대체 폴리다고스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요?”
페이건이 엄마 품을 떠난 지 6개월 만에 폴리다고스 내에서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존재가 되었는지도 어렴풋이나마 짐작 가능했다.
“하여간 무심한 녀석이라니까. 그런 대단한 일을 했으면 진즉에 이 엄마한테 귀띔이라도 했어야지. 갑자기 저런 분들이 우르르 와서 ‘공자님의 어머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러니까 깜짝 놀랐잖아.”
“소녀는 처음부터 그리고 한시도 빠짐없이 오라버니를 믿고 있었사와요!”
멜리사가 중얼거린 한탄을 포착한 라나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항변을 했는데 그녀의 입에는 치안국에서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최고급 간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머님, 오라버니께서 어느 곳을 가시더라도 그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시어 입신양명하실 거라는 건 당연한 일이옵니다.”
“누나야, 닙신냥명이 뭐야?”
“오라버니의 뛰어난 실력과 탁월한 식견을 세상이 알게 되었다는 말이야. 알기 쉽게 말하자면 오라버니께서 6개월 만에 깜짝 놀랄 만한 출세를 하셨다는 뜻이지.”
“출세가 뭐야?”
마찬가지로 간식을 가득 문 에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신 질문을 던졌고.
라나는 포동포동한 동생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출세가 뭐냐면 오라버니가 엄청나게, 그것도 아주아주 엄청나게 대단해지셨다는 뜻이야!”
“진짜? 그럼 흉아가 최고야?”
“그러엄! 당연히 최고지. 최고니까 학년 대표를 역임하시는 거구. 정말 우리 오라버니는 너무너무 훌륭하셔!”
“와아! 흉아, 만세!”
한껏 흥이 오른 남매는 손을 맞잡은 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는데 마차가 워낙 웅장하다 보니 둘이 찧고 까부는 와중에도 승차감은 최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여튼 우리 맏이는 너무 과묵해서 탈이에요. 할아범도 그렇게 생각하죠?”
“허허, 큰 도련님께서 다소 무심하신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만 그게 다 도련님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남자애가 그렇게 무심해서야 어디 여자 친구라도 사귈 수 있겠어요? 어휴, 정말 기껏 잘생긴 얼굴로 낳아 주면 뭐 해! 하는 짓이 영락없는 곰인데.”
“그렇다면 마님께서 한번 부지런히 노력을 해 보시지요. 혹시 또 압니까? 도련님이 계시는 곳에 아주 좋은 인연이 숨어 있을지.”
푸념을 듣고 있던 노파가 합죽한 웃음을 지으며 등을 떠밀었으나 멜리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뿐이었다.
“내가 노력한다고 말을 들을 녀석이면 이렇게 걱정을 하지도 않죠. 두 분도 알잖아요? 페이건 걔 평소에는 참 온순하다가도 일단 자기 뜻이 한번 세워지면 황소고집인 거. 어휴, 내가 좋은 아이를 찾아서 등을 떠밀어 줘도 본인이 안 내키면 꿈쩍도 안 할 거예요.”
입으로는 무심하니 뭐니 툴툴거렸지만, 페이건의 이야기를 하는 멜리사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한가득 걸려 있었다.
이제 곧 아들을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왔지만, 멜리사는 짐짓 태연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내일이면 폴리다고스에 도착할 거라 그랬죠? 요 못된 녀석,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으렴. 엄마한테까지 쓸데없이 과묵하게 군 죗값을 아주 톡톡히 치러 줄 테니.”
* * *
“나, 사실 열 살 때까지는 내가 페르디난드의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
“엉?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페르디난드의 일원임을 알게 된 건 태어난 지 한참 지나서라구. 나… 줄곧 가문 밖에서 자랐거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려온 충격적인 고백.
다기(茶器)를 매만지던 손을 멈춘 채 아스트라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야심한 시각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 숙면에 도움이 될 법한 차를 한잔 따라 주려 했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차 따위에 신경을 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어머니가 가문의 하녀 출신인 건 알고 있지?”
“응.”
“페르디난드의 대공자와 하녀.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신분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가문이 둘을 갈라놓기 위해 갖은 수작을 벌였고 결국 두 사람은 페르디난드의 손길을 피해 사랑의 도피를 떠났다. 이게 네가 알고 있는 나의 탄생 비화가 맞지?”
“뭐, 대충은. 내가 그 일에 대해서 딱히 관심이 있거나 한 건 아니라서 아는 거라고 해 봤자 세간에 알려진 소문을 주워들은 게 전부거든.”
야밤에, 그것도 소피아 씨를 동반하지도 않은 채 내 방을 불쑥 찾아온 아스트라.
돌발 행동을 즐기지 않는 도련님께서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런 자리를 마련했나 했더니 이런 얘기를 하려고 그랬던 걸까?
아스트라가 무슨 생각으로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에지세크 교단 – 페르디난드’ 사이의 끈은 내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고.
베일에 싸여 있는 아스트라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가문과 교단 사이의 연결고리가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일 테니까.
“페이건처럼 날카로운 사람도 그 이야기를 믿고 있다니. 공작 각하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참 기뻐하시겠네.”
씁쓸한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내젓는 아스트라.
녀석의 표정도 그냥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신경 쓰이는 건 아스트라가 사용하는 호칭이었다.
공작 각하라니, 녀석이 아무리 예의에 민감한 타입이라 해도 보통 자신의 친조부를 칭할 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텐데?
“이쯤이면 눈치를 챘겠지만. 페이건, 네가 알고 있는 건 진실이 아니야. 공작 각하에 의해서 조작된 거짓. 네가 알고 있던 이야기 중 진실에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페르디난드의 대공자’와 어머니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다는 것뿐.”
흘려들을 수 없는 호칭이 또 한 번 튀어나왔다.
친조부를 각하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이상한데 이제는 친부를 ‘대공자’라는 호칭으로 칭한다고?
더군다나 친모는 멀쩡하게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이제 겨우 이야기의 초입에 한 발자국을 걸치고 있는 수준이지만 어쩌면 아스트라의 과거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불우한 기억들로 점철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건, 너만 허락한다면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네가 큰마음을 먹은 것 같으니까 솔직히 말할게. 나도 사람이야, 여기까지 들은 이상 그다음 부분 또한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혹시라도 네가 나한테 이상한 부채감 같은 걸 느끼고 있고 그 죄의식의 발현으로 이러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
“부채감 같은 게 아니야. 그냥 예전부터 쭉 생각해 왔어. 공작 각하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만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한테는 꼭 한번 털어놓고 싶다고. 그런데 며칠 전 네가 이벨다와 싸우는 걸 보고 확신했어. 저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면 내 이야기도 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그래? 그럼 어디 해 봐. 내가 아주 진지한 태도로 경청해 줄 테니까.”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기만 하는 분위기를 조금은 가볍게 해 볼 요량으로 난 일부러 다리를 꼰 채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스트라는 조금은 밝아진 표정을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는 페르디난드 소속의 무사였어. 무사라고 해도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그런 무사는 아니었고 신분을 숨긴 채 암약하는 비밀 병력 같은 거라고 할까?”
“그럼, 어머님이 하녀 출신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응, 작전에 따라서는 하녀로 위장해 가문 내에 잠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 소문이 그런 식으로 난 것 같아. 물론 공작(公爵) 각하께서 공작(工作)을 위해 그 소문을 의도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지만.”
하지만 표정이 밝아진 것도 잠시, 녀석은 다시금 심각해진 표정을 한 채 씹어 삼킬 듯한 어조로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내뱉기 시작했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생물학적 아버지 ‘케르스 페르디난드’는 어머니와의 사랑의 도피 끝에 정착한 지역에서 몹쓸 풍토병을 만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잖아?”
“공작 각하께서 그렇게 발표를 하셨으니까 그게 정설로 알려져 있지.”
“그거 사실이 아니야. 케르스 페르디난드는 살해당했어.”
“그럼 풍토병으로 사망했다는 공작 각하의 발표는….”
“거짓말이야, 그것도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 케르스 페르디난드는 단죄를 당한 거지 풍토병 같은 거에 희생된 게 아니야.”
도무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문제적 발언들.
단죄(斷罪)라니?
혹시 아스트라가 자신의 친부를 아버지라는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야만 하는 이유와 단죄라는 단어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기라도 한 걸까?
“케르스 페르디난드를 단죄한 장본인은 ‘자하드’ 페르디난드.”
잠깐, 자하드라면 현 페르디난드 공작의 이름이잖아?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뜬 채 녀석은 바라봤고 아스트라는 내 시선을 피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 할아버지, 그러니까 페르디난드 공작은 맏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참했어. 그게 케르스 페르디난드가 저지른 잘못을 조금이나마 참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