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68)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8)화(168/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8)
♬♪♫.
곱게 다듬어진 활 털이 바이올린의 현과 맞닿을 때마다 감미로운 음계의 꽃이 사방에서 피어났다.
통유리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과 그 달빛에 온몸을 흠뻑 적신 채 현악기를 켜고 있는 미남자.
“후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던 연주를 마무리한 남자는 본인의 머리 빛깔보다 조금 더 짙은 색의 와인을 머금었다.
“…재미가 없군. 통 재미가 없어.”
연주도, 와인도, 달빛도.
모두 다 한 점의 부족함도 없이 절정을 치닫고 있었음에도 남자의 표정은 시큰둥할 뿐이었다.
뱀파이어는 그 드높은 자존감만큼이나 탁월한 음악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조금 전 연주의 완성도가 부족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토록 완벽한 연주를 해냈음에도 루드비히의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탁월한 연주 따위로 삭여 내기에는 그의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의문이 너무나도 컸으니까.
‘그 창녀 같은 계집이 깐깐하게 나올 거라는 건 예상했다만 털 뭉치 쥐새끼까지도 이토록 깍쟁이같이 굴 줄이야. 도대체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그 꼬맹이가 뭘 품고 있길래 폴리다고스의 연놈들이 이토록 신경질적으로 구는 거지?’
결국, 아소토 왕국의 외무대신 루드비히 안피노의 미간 사이에 가는 실금이 피어나고 말았다.
페스티라카 인근 광산에서 실패를 맛본 지 어느덧 수개월.
그 기간 동안 루드비히는 자신에게 실패를 안겨 준 건방진 꼬맹이 옆에 자석을 붙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그 모든 시도는 하나같이 수포로 돌아갔다.
섭정의 총애 아래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는 계집년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기숙사의 시종을 포섭하려는 모든 실패가 번번이 실패했던 것이다.
‘원체 욕심이 많은 계집이니 페이건 클라디우스와 관련된 공적을 독차지하겠다며 설치는 건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그 옆에 있는 털 쥐새끼는 왜 이리도 신경질적으로 구는 거지?’
털 쥐.
무스카가 들었다면 당장이라도 칼을 빼 들었을 모욕적인 발언이 루드비히의 머릿속에서 요동치며 돌아다녔다.
‘이델타에서의 그 일 때문인가? 아니야, 털 쥐새끼들이 집착하는 건 결국 적의 모가지. 결국 무스카 놈은 그 꼬맹이의 모가지만 가질 수 있으면 과정은 뭐가 됐든 만족할 가능성이 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목을 베고 싶다면 나한테 협조를 하는 편이 더 좋다는 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을 텐데 도대체 왜….’
벌써 며칠째 고민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에지세크의 인형을 꺾은 것 때문에 무스카 놈이 집착하기 시작한 건가? 아니야! 물론 열등한 인간이 이벨다를 꺾은 건 제법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상대한 건 물려받은 힘을 개방하지 않은 상태의 이벨다에 불과해. 털 쥐새끼가 고작 그 정도에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일 리 없는데?’
정말이지 까다로운 문제였다.
결국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페이건 클라디우스, 그놈의 동태를 조금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폴리다고스에서 활동할 권리(주제넘게도)를 인정받은 두 연놈들이 워낙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직할 정보망을 뻗기에도 난감한 상황.
‘그래, 어디 계속 그렇게 해 봐. 더러운 포주 년이 멍청한 털 쥐를 품에 안은 채 옹졸하게 나오겠다면 나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피잉.
루드비히의 매끈한 손가락이 움직이자 탁자 아래에 숨어 있던 수정구가 둥실 떠올랐고.
―무슨 일이지? 내가 항상 말했잖아. 교신을 하고 싶으면 최소 두 시간 전에는 미리 신호를 보내라고. 나 같은 구도자(求道者)에게 있어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호출이 부담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아, 아. 미안, 미안. 사실은 조금 울적한 일이 있어서 술 한잔하는 중이었거든. 그런데 살짝 취기가 오르니까 또 우리 친구 생각이 나서.”
수정구를 감싼 불길한 자색 빛 너머로 도무지 성별을 짐작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어때? ‘늪 밑바닥’은 요즘도 좀 지낼 만하신가? 얼마 전에 그 근방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들었어. 혹시 우리 친구의 어여쁜 ‘흑빛 날개’가 빗물에 흠뻑 적셔지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통 걱정이 돼서 도무지 술맛이 나지 않더라고.”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루드비히, 너의 농담은 정말 처절한 수준이야.
“이런, 지금 그 말은 조금 섭섭한걸. 이래 봬도 아소토 왕국의 레이디들 사이에서는 유쾌한 루드비히 공작 각하로 통하는 몸이거든.”
―너의 저열한 유머를 듣고 깔깔거린다는 게 그들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셈이야. 그리고 그런 열등한 것들로부터….
“열등한 인간들로부터 농락당하고 있는 생명의 질서를 구원하기 위해서 너 같은 ‘총명한 구도자’들이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있다는 거잖아. 알아, 안다고. 너희 ‘모켈레’의 열정도, 의지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입 아프게 떠들 필요 없어.”
낙사라의 모켈레.
검은 날개의 사냥꾼과 담소를 나누는 루드비히의 얼굴은 제법 즐거워 보였다.
라이칸슬로프를 멍멍이로, 뱀파이어를 모기라 부르며 백안시(白眼視)하는 아일리가 에지세크의 교단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루드비히에게도 살갑게 이야기를 나눌 기둥 한 명쯤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짜는 어떤데?”
―바빠, 조금 있으면 로덴토의 얼간이가 시술을 받거든. 워낙에 중요한 일이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
“그래, 그 얼간이의 피를 뽑아내는 거라면 중차대한 일인 게 맞지. 부디 잘해야 할 텐데. 버크 로덴토가 더럽게 멍청한 놈이기는 하다만 자기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짜거든.”
별다른 설명이 없었음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제법 잘 통했다.
애초에 게오르그 로덴토가 받을 예정인 이 시술은 ‘피를 다루는 뱀파이어의 비술’과 ‘신체 개조에 특화된 모켈레의 마도 과학력’이 결합되어 탄생한 결과이기에 서로 이해가 빠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혹시 게오르그 로덴토의 육신이나 정신에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가 발생한다면 의심을 살 수도 있어.”
―우리의 마도 과학력을 우습게 보지 마. 구더기 같은 인간 놈들이 황제라고 떠받들었던 놈의 몸뚱이도 자유자재로 다룬 게 우리야. 버크 로덴토의 눈을 속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장담하지, 앞으로 수년에 걸쳐 시행될 모든 시술이 마무리되는 그 순간까지 버크 로덴토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해. 그리고 마지막 시술이 끝나는 그 날이 바로….
“로덴토는 우리의 입으로 날름. 브라보, 아주 멋져. 우리 둘이 만든 계획이지만 아주 훌륭한 계획이야. 그리고 우리 총명한 구도자 양반의 탁월한 솜씨가 없었다면 이 계획은 절대 실행될 수 없었을 거야.”
루드비히는 짐짓 과장스러운 동작과 표정으로 친구의 공적을 치하했다.
이다음부터 이어질 오늘의 본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정구 너머 친구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일단은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뭔데?
“뭐라니?”
―네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만이잖아. 그러니까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고 뭐가 필요한지 말해 보라는 말이야. 섭정께 허가를 얻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하지.
“역시 눈치가 빨라. 이래서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거라니까.”
미녀의 그것처럼 고운 루드비히의 눈매가 곱게 이지러졌다.
폴리다고스 내부는 아일리 바스티아의 영역인지라 어쩔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 하여 폴리다고스 밖에서 놈들을 흔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폴리다고스와 최인접한 신흥 강국의 실세.
혼란을 야기하고 흔드는 데 최적의 재능을 가진 친구의 도움만 있다면 일을 꾸미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네가 3년 전부터 공들이고 있다는 그 시약, 얼마 전에 완성했다고 들었어.”
―흥! 뭔가 했더니 역시 노리는 게 있었구나. 이래서 눈이 보배라니까.
“게오르그 로덴토 일로 제아무리 바쁘다 해도 공들여 온 시약의 효과를 시험해 볼 여유 정도는 있겠지? 우리 모켈레 친구들은 구도(求道)의 산물을 만드는 것 자체도 즐기지만, 그 효능을 실험하는 건 더 좋아하잖아?”
―어디 한번 계속해 봐. 들어 줄 테니까.
그 소문이 자자한 시약을 가져다가 폴리다고스와 아소토 왕국 접경 지역에 뿌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히죽.
감출 수 없는 즐거움이 뚝뚝 넘쳐흐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루드비히는 늪지 바닥의 진흙처럼 끈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효능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장소의 제공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때? 우리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조금 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할까?”
* * *
“마사 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어머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 아이가 맞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마사 님의 선조들께서도 비슷한 당부를 남긴 적이 있으신지요?”
“이것과 정확하게는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내용을 들은 기억은 있달까? 내가 나의 어머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이니 어머님께서는 또 그분의 어머님에게 전해 들었겠지. 그리고 이걸 계속 거슬러 흘러가다 보면 결국에는 오르페우스 님이 나오실 게야.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의 근원은 그분께서 전해 주신 거니까.”
에페누 영감과 마사 할멈 간의 대화에서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내용이 나왔고 난 에스페타라 영수들 간의 이야기를 조금 더 집중해서 경청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엉? 오르페우스가 이런 얘기도 해 줬다고? 언제?
“야, 비켜 봐.”
―그런데 나는 왜 들은 기억이 없지? 이상해!
“알았으니까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잠깐 비켜 보라고!”
―분명히 너희 둘보다는 내가 훨씬 더 오래 살았는데 왜 나는 아야! 야, 뭐 하는 짓이야?
“그러니까 비키라고 했을 때 비켜야지.”
결국 난 내 진로를 막아선 채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북슬이의 토실토실 볼기짝을 꼬집었고 녀석은 짤막한 팔로 엉덩이를 감싼 채 펄쩍 뛰어올랐다.
“그래서 이 녀석, 장갑 교환권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는 겁니까?”
“장갑 교환권?”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유난히도 더디게 자라는 말썽쟁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가족들이 폴리다고스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
난 마샤 할멈과 에페누 할아범을 동반한 채 내 보급 창고에 와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살며 세상 곳곳을 누벼온 이 두 사람, 아니 마린가?
아무튼 이 둘이라면 늑장을 부리는 장갑 교환권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도련님, 저희도 이 아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식물이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바가 있을 뿐 직접 목격을 한 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 소문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보시죠.”
물론 오래 산 걸로 따지면 유물국장 역시 이 둘에 뒤지지 않았으나 아리안느 플레뵐라는 생애 대부분을 하이엘프의 숲과 폴리다고스 이 두 곳에서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클라디우스의 가주들을 모시며 대륙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바 있으니 지식의 깊이가 아닌 ‘견문의 폭’으로만 비교하면 할멈, 할아범 쪽이 더 넓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도 이 아이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이 느낌, 이 자그마한 아이를 앞에 두고 저와 마사 님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에 대해서 전해 들은 바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외형이나 고유 생질이 아닌 느낌으로 기억을 떠올리시다니…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에스페타라의 영수들은 절반쯤은 대자연 그 자체인 존재들.
그리고 그 영수들 중에서도 거의 최고위급 영수인, 이 둘이 자연의 느낌만으로 감별을 해냈다면 이 나무 또한 대자연의 본질에 가까울 가능성이 아주아주 컸다.
“도련님, 과거 고대왕국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연력의 기운이 충만했던 건 알고 계시지요?”
“물론입니다. 고대왕국 시절이 생명력이 넘치던 시절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자연력의 마술사인 드루이드들이 활동할 수도 없었겠죠.”
마사 할멈의 입에서 나온 고대왕국이라는 단어.
혹시 모를 동요를 감추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 봤지만, 호기심이 솟구쳐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이 녀석이 정말로 고대왕국의 물건이라서 아리안느 플레뵐라가 싹을 틔워 내지 못한 거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드루이드 오러에 반응이 더딘 건 또 뭔데?
장갑 교환권이 정말 고대왕국의 물건이라면 고향의 기운이나 다름없는 드루이드 왕국의 오러에 가장 맹렬하게 반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과거, 고대왕국이 극렬하게 몰락하던 시기. 그 추락이 너무나도 가팔랐던 탓에 왕국 곳곳에 숨어있던 귀물(貴物)과 청명한 기운들은 왕국 바깥으로 터져 나왔고 그 과정에서 지상의 탁기와 뒤섞이고 말았다고 합니다.”
내 궁금증을 풀어 줄 추가적인 설명이 마사 할멈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그 내면에는 고대왕국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되 지상의 탁기에 휩싸인 탓에 그 본연의 기운을 잃어 가고 있는 귀물들.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이 혼재된 것들을 가리켜 ‘고(古)왕국의 파편’이라 칭하고는 하셨다는 걸 저의 어머님께서 말씀해 주신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