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69)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9)화(169/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9)
“파편이라는 명명(命名)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설명을 하셨다는 건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이것과 비슷한 물건을 여러 번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겠군요?”
“저나 에페누 또한 오르페우스 님을 직접 만나 뵌 건 아닌지라 확답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은 원체 여행을 좋아하셨고 새로운 것을 만나고 탐구하는 걸 즐기셨다고 하니까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
마사 할멈은 눈을 감은 채 바람을 닮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매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오르페우스 님은 영수들에게 여행 중에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들려주는 걸 즐기셨다고 합니다. ‘고왕국의 파편’ 또한 그분께는 무척이나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럼 두 분께 이야기를 전해 준 선조 영수들 또한 파편이라는 걸 직접 보지는 못한 셈이군요. 그런데 두 분의 선조들께서는 직접 보지도 못한 물건들의 느낌을 어떻게 그리도 생생하게 후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걸까요?”
“원본은 직접 못 봤지만, 오르페우스 님이 모조품을 만들어 주신 덕분에 파편이라는 게 어떤 느낌을 주고 어떤 향을 풍기며 어떤 감각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와 에페누는 선조들께서 모조품을 통해 느낀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전수받아 왔죠.”
“…모조품이라니, 그럼 오르페우스 님께서 고대왕국의 유물을 재현해 내셨다는 겁니까?”
“네, 모조품을 만들어서 선조들에게 보여 준 뒤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이런 느낌이야. 기억하고 있으면 나중에 비슷한 걸 만나도 알아채지 못하는 일은 없을걸? 하하하!’라며 웃음을 터뜨리셨다고 하더군요.”
“….”
“참으로 오르페우스 님다운 일화죠?”
“네, 확실히 그분답기는 하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건 간단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마사 할멈이 알고 있는 사실들과 모르고 있는 사실들이 뒤섞여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장담컨대 마사 할멈은 오르페우스가 한 일이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고대왕국의 모조품을 만들어 낸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고 있다면 지금처럼 손자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평온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지는 못하겠지.’
물론 그렇다 하여 마사 할멈의 무지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대왕국과 드루이드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도 그 대부분이 베일에 휩싸인 상태였고 애초에 나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고대왕국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오르페우스에 대한 정보를 아무래도 수정할 필요가 있겠군. 어렵지 않게 모조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였다니… 오르페우스가 이룩한 드루이드로서의 경지는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드높았던 모양이야.’
그 실체에 다가갈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 아주 대단하다 못해 위대하시기까지 한 나의 선조님.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할멈의 주름진 입술 사이로 오르페우스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고 왕국의 유산들이니만큼 파편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겉을 감싸고 있는 탁기(濁氣)가 워낙에 짙은 터라 본연의 가치를 발휘하는 건 쉽지 않을 거야.’라는 것 또한 오르페우스 님께서 선조들에게 남기신 말씀입니다.”
오르페우스의 말마따나 엄청난 가치의 씨앗이 어떤 경로를 거쳐 유물국장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사 할멈의 말이 사실이라면 장갑 교환권의 성장 속도가 더딘 점은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씨앗 겉 부분의 혼탁한 기운 때문에 드루이드 오러가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는 건가?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싹을 틔운 것만으로도 도련님께서는 이미 엄청난 성과를 이뤄 내신 겁니다. 역시 오르페우스 님의 후손, 이 늙은이는 도련님이 정말로 자랑스러울 따름이랍니다.”
진심이 묻어 나오는 할멈의 찬사는 고마웠으나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건 따스한 칭찬이 아니라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성과였으니까.
“할멈, 할아범. 물론 전 두 분의 말씀을 완전히 신뢰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있자니 두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기는군요.”
하지만 즉각적인 돌파구를 찾기 전, 꼭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기에 난 마사 할멈의 말을 멈추고 질문을 던졌다.
“첫째, 아버님을 비롯한 선대 가주분들께서는 오르페우스 님께서 ‘자유자재로 고대왕국의 모조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고대의 비술에 탁월하셨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계시는 걸까요? 만약 아버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계셨다면 가문의 후계자인 저 또한 어느 정도의 언질을 받았을 터. 하지만 저는 교육과정을 거치는 내내 고왕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두 분을 비롯한 영수들이 그간 오르페우스 님의 이야기를 말씀하지 않은 이유는 뭡니까?”
“그건 저희들보다는 오히려 도련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마사 할멈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되치기를 시도했다.
“오르페우스 님께서 저희 선조들께 직접 당부하신 바 있습니다. 본인의 후손이 먼저 단서를 가져오거나 관련된 질문을 주도적으로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자신이 들려준 고왕국 이야기는 클라디우스의 아이들에게 비밀로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후손이 나타난다면 그 아이가 먼저 인연의 끈을 제시할 것이니 너희들은 그 인연에 응하되 먼저 나서서 클라디우스의 아이들을 내 기억 속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한동안 말이 없었던 에페누 할아범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들은 오르페우스 님의 당부에 충실히 응했고 그렇다 보니 다른 가주님들께는 이야기를 전해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아… 그랬군요.”
역시 이번에도 오르페우스의 안배였다.
‘폴리다고스까지 와서 자신의 발자취를 따를 정도라면 당연히 고왕국에 대한 비밀에도 다가가고 있을 터이니 진짜 이야기는 그 확인이 끝난 다음부터 들려주겠다, 이건가? 단서는 여기저기 흩뿌려 놓았지만, 자격이 없는 자는 도저히 접근이 불가하게 만들어 놨어. 정말이지 빈틈이 없으시군.’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후손이 섣불리 고대왕국에 대한 기록에 접근했다가 감당키 어려운 진실의 무게에 짓눌릴까 봐 걱정되었던 걸까?
오르페우스가 해 놓은 꼼꼼한 안배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르페우스 님이 숨겨 놓은 비밀이 무엇인지 그리고 도련님께서 어떤 과정을 거쳐 비밀에 접근하고 계시는지, 저희는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도련님께서 파편을 보여 주시고 저희의 입에서 나온 고대왕국이라는 말에도 전혀 놀라지 않으실 때는 정말이지 기뻤습니다.”
“이는 도련님께서 합당한 자격을 획득하셨다는 것이고 저와 에페누는 오르페우스 님께서 남겨 놓은 지식을 도련님께 전해드릴 수 있는 영광을 손에 넣었다는 뜻이니까요.”
―흑흑, 정말 감동적이야.
어느새 둘의 눈매는 촉촉하게 젖어 들었고 그 분위기에 휩쓸린 북슬이 역시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여기서 두 번째 질문입니다. 할멈과 할아범은 이처럼 많은 사실을 알고 계시는 데 두 분보다 더 오래 살았고 심지어 오르페우스 님과 같은 시간을 보낸 적도 있는 얘는 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겁니까?”
―엑! 아무것도 모르다니! 나, 난 이래 봬도 페이건 너의 스승으로서….
하지만 감격의 도가니에 휘말릴 생각이 없었던 나는 손가락을 뻗어 북슬이를 가리켰고 녀석은 깜짝 놀라며 꼬리를 빳빳이 세웠다.
“딱히 너를 탓하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그냥 나는 궁금할 뿐이야. 어쨌거나 위계나 살아온 시간으로 따지면 너랑 라무테 님이 할멈보다는 더 위잖아. 그런데 왜 두 분이 알고 있는 사실을 너는 모르고 있는 걸까?”
어쩌다 보니 북슬이가 발끈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건 라무테 님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였다.
그간의 일들로 파악건대 오르페우스가 가장 신뢰하고 아꼈던 영수(할멈과 할아범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들은 각각 내 머리와 어깨를 차지한 이 둘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그런데 오르페우스는 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은 걸까?
“사실 저희의 선조들께서도 방금 전 도련님께서 하신 것과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르페우스 님께서 전해 주신 진귀한 이야기들을 두 분과도 나누고 싶다고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오르페우스 님은 고개를 내 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벨제키엘과 라무테는 적어도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선 안 돼. 그릇의 크기라는 건 정해져 있는 법. 제아무리 그릇의 깊이가 깊고 폭이 넓다 하여 그 안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하면 그릇은 깨지는 법이야.”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할멈과 할아범은 질서 정연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나는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벨제키엘과 라무테가 클라디우스의 아이를 지켜 주고 이끌어 줘야 해. 그 둘은 이미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해. 둘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내가 다다랐던 길의 끝까지 클라디우스의 아이가 도달하는 날이 온다면 라무테와 벨제키엘이 그 자그마한 몸속에 얼마나 큰 잠재력을 품고 있는지 너희들도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그 아이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아. 특히 벨제키엘은 안 그래도 배가 통통한데 너무 많은 걸 알려 줬다가는 풍선처럼 빵하고 터질지도 모르잖아. 하하하!”
에페누 할아범이 오르페우스의 웃음을 따라 하는 것으로 궁금한 점에 대한 답변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아마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잡스러운 건 저희들에게 맡기고 두 분께는 정말로 중요한 걸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셨던 게 아닐까요?”
―드, 들었지? 그러니까 이 몸께서는 에페누나 마사가 할 수 없는 더 크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계신다는 말이지.
“…과연 그럴까요? 알겠습니다. 두 분이 그렇게 전해 들었다니까 일단은 그렇게 믿는 걸로 하죠, 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황하고 있던 주제에 금세 배를 내민 채 득의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는 대형 롤빵.
저 빵실빵실하기만 한 볼때기를 보고 있자면 이 녀석의 북슬북슬한 털 안쪽에 엄청난 게 숨겨져 있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이번에는 믿기로 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오르페우스의 말이 빗나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럼 두 분께 다시 묻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이 나무를 자라게 만들어야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씨앗을 감싸고 있는 탁한 기운을 제거해야 합니다. 혹시 오르페우스 님께서 그 탁기를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씀 남겨 놓으신 바가 없을까요?”
“있습니다. 오르페우스 님께서 파편을 물들인 탁기를 씻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자연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는 정수(精髓)로 파편을 씻어 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어, 잠깐 할멈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정수로 씻어 내야 한다니…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정수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 정도로 순수한 정수를 얻을 수 있는 장소는 자연의 성소뿐이라는 말씀 또한 남기신 바 있습니다.”
있다는 말을 듣고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내 가슴이 ‘자연의 성소’라는 말에 순식간에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러니까 파편인지 뭔지 하는 씨앗의 성장 속도를 높이려면 자연의 성소에 가서 그곳이 머금고 있는 정수를 훔쳐 와야 한다 이거지?
‘…가장 근거리에 있는 자연의 성소라 하면… 대(大)북극단이잖아? 지금 나보고 거기를 가라고?’
답을 알았는데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흔치 않은 상황.
―페이건, 표정이 왜 그래? 자연의 성소라는 곳에 가는 길이 험난하기라도 한 거야?
내 표정을 보고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걸 직감한 라무테 님이 질문을 던져 왔고.
“험난하다는 말로 설명이 가능한 수준이 아닙니다. 자연의 성소가 어떤 곳이냐면요… 얼마 전에 우리가 다녀온 ‘아스라의 숲’ 있죠?”
―응, 내가 투시 능력을 얻은 그 장소.
“그곳의 위험도를 2 정도로 잡는다면 ‘자연의 성소’의 위험도는 적게 잡아도 8. 상황에 따라 9, 10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난 내가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변을 건넸다.
물론 유물국장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서 씨앗을 맡긴 건 아니겠지만, 유물국장의 해사한 미소와는 달리 씨앗을 둘러싼 상황은 점점 격해져만 갈 뿐이었다.
‘지금 당장은 무리더라도 한번 다녀오기는 해야 돼. 장갑도 장갑이지만 결국 이 씨앗은 오르페우스가 공언한 고대왕국의 보물. 물론 몸은 괴롭겠지만 그 정도 고생을 할 가치는 충분하니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해, 자연의 성소에 빠르고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봤다.
‘이렇게 되면 한동안 고민을 해 보는 수밖에. 아, 그렇지만 멀어도 너무 먼데. 거기를 또 언제 다녀오지?’
하지만 갈 곳 잃은 한숨만이 보급 창고 위로 내려앉을 뿐.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 * *
향기가 머무는 곳.
유물국 직원들이 아리안느 플레뵐라의 개인 서재 겸, 집무실 겸, 박물관 겸, 비밀 기지 역할을 맡고 있는 거목의 줄기 사이를 부르는 별칭이었다.
물론 국장의 집무실을 부르는 정식 명칭은 따로 있었지만 그럼에도 직원들은 저 산뜻한 별칭을 사용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어머! 문제의 흔적이 보이는 접경 지역에 카밀라를 보내실 예정이라구요? 아, 그래요. 타국의 영토, 그것도 사전에 허가를 얻을 수도 없는 일에 천공의 눈 소속 정예 인원들을 보낼 수 없는 일이기는 하죠. 자칫 일이 시끄러워졌다가는 아소토 왕국 쪽에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는 일이니.”
아리안느의 집무실은 그 별칭에 걸맞은 향긋한 내음으로 가득했고 유물국 직원 일동은 그 향기를 더없이 사랑했기에 아름다운 별칭을 도무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일단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행동이 자유로운 카밀라를 보내 조사를 하고 싶은데 그 아이가 걱정된다 이거군요. 아, 그러니까 카밀라의 능력에 대해서는 하나도 걱정이 안 되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그 부분이 염려된다. 이 말인 거죠?”
평소에도 향기가 넘쳐흘렀던 아리안느의 집무실은 오늘따라 한층 더 진한 향기가 넘실거렸다.
집무실의 주인은 수정구 너머를 바라보며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가 미소를 지을 때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화사함이 가득 피어올라 방안을 그득그득 채워 놓고 있었다.
“호호, 그나저나 다른 사람도 아닌 빙하의 여제(女帝)께서 이런 말씀을 다 하시다니. 귀여운 제자 앞에서는 결국 모두 걱정 많은 할머니의 마음이 되고 만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요. 어머! 알았어요. 놀리는 건 이쯤 할 테니 화내지 말아요.”
오랜 친구와의 교신이 즐거웠는지 소리 높여 웃음을 터뜨리던 아리안느는 이내 손가락을 꼽아 가며 수정구 너머의 상대가 요구해 온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역시 유리안 군은 불가능하겠죠. 그 아이는 올해로 스무 살이 된 데다 너무 눈에 띄니까. 흐음, 거친 여정 속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카밀라를 보호해 줄 유능한 경호원이라… 누가 좋을까?”
스무 살 이하일 것.
아직 바깥세상 경험이 부족한 카밀라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고 눈치가 빠를 것.
그리고 만에 하나 긴급 상황이 발생할 시 ‘천공의 눈 막내 공주님’을 지켜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까지.
까다롭기 그지없는 조건을 하나하나 헤아려 가며 고민에 잠긴 아리안느.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고 잠시 후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수정구 너머의 친구를 향해 말했다.
“있네요! 다행히도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적임자가 딱 한 명 있어요. 사실 안 그래도 이 학생한테 선물을 하나 챙겨 주고 싶었는데 마땅한 핑계가 없어 망설이던 차였거든요. 잘됐네요, 겸사겸사 이 일을 부탁하며 선물까지… 딱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