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7)화(1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7)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에스텔의 침실.
모데나스의 성녀님은 평소처럼 등을 돌린 채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고, 난 살짝 드러난 목덜미를 통해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후 언제나처럼 치료 준비에 들어갔다.
“새로 처방한 약이 조금 효과가 강한 터라 어지럽거나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 혹시 더 불편해지거나 한 데는 없었고?”
“…아니. 조금 어지럽기는 했지만 견딜 만해.”
“…엉?”
의료용 장갑을 끼고 치료 도구를 준비하는 와중 들려온 예상치 못한 소리.
“뭐, 뭘 그렇게 쳐다봐? 어지럽기는 하지만 견딜 만하다고!”
“아, 그랬어. 다행이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
원래대로라면 이쯤에서 확 하고 시트를 뒤집어쓰거나 탁자 위에 있는 물건을 바닥에 집어던지는 식으로 불만을 표출했어야 하는데 오늘의 성녀는 어쩐 일인지 협조적이었다.
“그럼 체온부터 먼저 재 볼까? 팔 좀 내밀어 볼래?”
“…여기.”
아무런 저항도 없이 스르륵 다가오는 팔.
“혹시… 뭐 잘못 먹었어? 이상하다. 무녀님들에게 식단 관리에 주의해 달라고 몇번이나 당부를 했는데.”
“시, 시끄러워! 빨리 체온이나 재. 그, 그리고 묻는 말에 대답해.”
확연히 달라진 성녀의 태도가 당황스럽기는 했다만 환자가 고분고분해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기에 난 그녀의 앙상한 팔목에 체온계를 가져다 대었고.
“구, 궁금한 게 있는데 바깥 사람들은 다 너처럼 그래?”
“나처럼이라니? 무슨 뜻이야?”
“섬 바깥 사람들은 저, 전부 다 너처럼 입이 무겁냐고!”
고분고분해진 태도, 죄책감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 그리고 적개심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떨리는 팔.
그제야 난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라무테 님이 얘기했구나. 말하지 말라니까. 왜 그러셨대?”
“헛소리 하지 말고 대답해. 왜… 나한테 말 안 한 거야?”
“그렇게 하는 편이 치료에 더 도움 된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치료술사라 해도 다들 그렇게 했을 거야.”
“말도 안 돼! 너 매번 말했잖아. 치료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으니….”
“네가 나한테 솔직해져야만 한다고 말했지. 내가 너에게 솔직해지겠다고는 한 적은 없어. 원래 치료술사는 환자의 증상을 가능한 상세히 알고 싶어 하지만 환자에게 자신의 정보를 모두 공개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왜 그런 거냐고?”
“그래야만 네가 나를 걱정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아?”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온 대답을 들은 성녀의 입에서는 바람이 빠지는 듯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치료술사란 항상 환자를 상대로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법이지만 반대로 그 자신이 연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돼. ‘치료술사가 환자를 상대로 득해야 하는 건 무한한 신뢰일 뿐, 결코 그 자신이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초보 치료술사를 위한 마음가짐 교본’ 54페이지에 나오는 말이라고.”
“그, 그래도….”
“전날 밤 밤새도록 부부싸움을 해서 당장에 속이 뒤집힐 것 같더라도 환자를 대할 때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게 치료술사야. 그래야 환자가 ‘아, 내가 치료술사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최선의 방법으로 치료를 받고 있구나’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을 테니까.”
“부부… 싸움?”
“아, 미안. 아직은 한참 이른 말이었네. 너한테도 그리고 나한테도.”
“그리고… 또?”
“또 라니?”
“라무테 님한테 이야기를 듣고 나도 생각을 많이 했어. 방금 말한 이유… 그게 전부는 아니지?”
성녀의 팔다리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지만 가면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는 비교적 굳건한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눈동자를 보건대 그녀는 내가 사실을 숨긴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으로 그 이유를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사실 내 사정을 숨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기는 해.”
내 입으로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물고 늘어질 것 같아,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네가 두려움에 빠지는 걸 막고 싶었어.”
“내가… 두려워한다고?”
“그렇잖아. 너 솔직히 말해서 은근히 기대는 하고 있었지? 비록 나이는 어리고 말하는 건 밉상이지만 그래도 오르페우스 님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저 꼬마가 어쩌면 만에 하나, 혹시라도 내 병을 낫게 해 줄 지도 모른다고?”
“그, 그건….”
“환자가 기대를 가지는 건 좋은 현상이니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치료라는 건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법이니까. 그런데 네가, 오랜 고통 때문에 포기에 익숙해진 네가 모처럼 기대를 품었는데 그 치료를 담당해야 할 치료술사가 매일 피를 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
“모르긴 몰라도 불안했겠지. 그리고 불안감이 커지다 보면 ‘어떡하지, 저 꼬마가 몸이 너무 아프다며 내 치료를 중간에 포기해 버리고 도망이라도 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 상황을 막고 싶었어”
“그럼… 이것도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랄까? 환자가 지나친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만큼 치료술사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없거든.”
또옥.
잘 버티고 있던 눈동자가 마침내 흔들렸고, 유달리 굵은 눈물방울이 가면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떻게… 이제 겨우 만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나를 위해….”
“너를 위해 노력하는 게 아냐. 나를 위해 노력한 거지. 물론 그 과정에서 너 나름의 구원을 얻겠다면 그것까지 말리지는 않겠지만.”
“혹시… 오늘도 피를 토했어?”
“조금.”
“….”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어. 인간의 몸이라는 건 결국 적응을 하기 마련이거든.”
고통에 적응을 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실 아직은 어린 이 육신이 고통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리다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독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답시고 꼬박 1년간 중독 증세에 시달린 적도 있는데,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지.’
험한 전생을 살아온 덕분에 고통을 견디는 능력 하나만큼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고통을 견디는 리미터가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 경우만큼은 유리하게 적용한 게 사실.
“우아앙!”
“…어?”
“미안, 정말 미안!”
고통을 견디는 능력치는 높았지만,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은 특출나지 못했기에 돌연 울음을 터뜨리는 성녀를 앞에 두고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나빴어. 난 아무것도 모르고 너한테 화만 내고… 미안. 용서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미안.”
스스로를 탓하며 사과를 하는 그녀를 위로해 줘야 하나, 라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던 것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그래.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괜찮은 걸로 할게.”
냉각 주문으로 피부에 핀 열꽃을 다스려 주고, 내장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약재를 처방하고.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한숨 푹 자. 자고 일어나면 몸이 좀 좋아져 있을 거야.”
울먹거리는 성녀를 눕힌 후 시트를 덮어 주는 것으로 오늘의 치료는 끝이 났다.
“그럼 내일 보자.”
“저기….”
문을 열고 침실을 나서려는 찰나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공자님… 고마워… 요….”
“얌전해진 건 참 좋은데 존댓말은 너랑 잘 안 어울리네.”
“미, 미안해요… 아니 미안.”
“사과받자고 한 말이 아니니까 됐고 잠이나 푹 자.”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한 그녀를 남겨 두고 침실을 나섰다.
앞으로의 치료가 조금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물씬 피어오르는 밤이었다.
* * *
일주일 후.
“궁금한 게 있으면 말해.”
“으, 응?”
불쑥 던진 한마디에 침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던 에스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게 겁먹은 토끼처럼 눈치만 보지 말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이게 궁금한 거지?”
“으… 응. 사실은 페이건 군이 보여 주는 그런 건…. 난생처음이라서….”
검지를 까닥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에스텔의 손목에 꽂혀 있던 바늘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춤을 추었다.
이틀 전부터 에스텔의 치료에 침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남다른 움직임과 광채를 보이는 이 바늘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듯했다.
“이게 그렇게 신기해?”
“응! 사실은 엄청 신기해. 그리고 예뻐! 그냥 평범한 바늘처럼 생긴 물건이 페이건 군의 손짓 한 번에 허공을 날아다니고 또 그렇게 예쁜 빛을 뿜는다는 게 정말 신기해.”
누군가 나에게 에스텔의 태도가 달라진 이후로 가장 좋아진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주저 않고 표출하게 된 사실’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에 대한 신뢰가 깊어진 덕분인지 그녀는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말해 줬고 덕분에 난 한결 더 쉽게 그녀의 몸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저기… 바깥세상 사람들은 전부 다 페이건 군처럼 그렇게 그 바늘을 휙휙하고 날리거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거야?”
“아니. 침을 치료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나같이 사용하는 경우는 없는 걸로 알고 있어.”
“페이건의 아버님도?”
“응. 아버지도 이런 건 못 하실 걸.”
“…그럼 페이건 군은 그런 걸 누구한테 배운 거야?”
“딱히 누구에게 배운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할 수 있게 됐어.”
“그, 그래. 그렇구나. 페이건 군은 워낙에 똑똑하니까 이런 것도 혼자서 배웠구나. 대단해!”
가면 너머로 보이는 에스텔의 눈동자는 좌우로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설명을 받아들여 줬다.
환자를 상대로는 가급적 솔직해야 하지만.
‘사실은 이게 내 전생의 유산인데, 내가 왕년에 더러운 귀족 놈들의 목을 수박처럼 따고 다니던 사람이거든. 그리고 이건 그때의 유산이지. 흐흐흐.’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재미있는 것 하나 보여줄까?”
“재미있는 거?”
준비한 걸 어떻게 꺼내 들어야 하나, 안 그래도 고민 중이었는데 에스텔이 침에 관심을 보여 주는 바람에 매끄럽게 공연을 펼쳐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르륵.
난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대용량 침통을 꺼내 들었고 수백 개에 달하는 바늘이 탁자 위로 쏟아졌다.
“…이게 뭐야?”
“치료할 때는 손에 익은 전용 도구만 사용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런 용도로는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장비도 사용할 수 있거든.”
“이런 용도?”
“그러니까 이런 용도.”
한 차례 숨을 가다듬었고 입술 사이로 빠져나온 호흡이 대기 중으로 흩어진 순간, 탁자 위로 흩뿌려 졌던 침 하나하나에 오러가 연결됐다.
“우, 우와아!”
오른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수백 개의 바늘이 허공을 가득 메우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형형색색으로 물든 침을 목격한 에스텔은 아이와도 같은 눈동자로 탄성을 내질렀다.
“이런 건 어떻게 하는 거야? 페이건 군은 마술사?”
“마술은 무슨. 본질은 내가 너에게 시전하는 침술과 같아. 오러를 이용한 연결과 조종. 반짝거리는 건 일종의 부수적인 효과인 셈이고.”
에스텔의 눈을 즐겁게 해줄 공연은 십여 분 정도 이어졌고 난 마지막 한 컷을 위해 준비된 동작을 실행에 옮겼다.
“와아!”
저마다 무리를 이룬 수백 개의 바늘은 떨어지는 유성이 되어 창밖으로 그 모습을 감췄다.
“…후, 후와….”
가면 너머로 보이는 에스텔의 눈동자는 몽롱한 빛에 잠겨 있었지만 준비한 공연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기에 창밖을 향해 손짓을 했다.
“창밖? 나, 저기로 가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주춤거리는 걸음으로 창가로 다가섰고.
“…!”
창밖에 펼쳐진 광경을 확인한 순간 에스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창가 너머의 하늘 위에는 이곳 모데나스의 해안가에서만 피어나는 자색 달맞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성의 형태를 하고 있던 바늘들은 어느새 하늘을 가득 메운 꽃송이가 되어 에스텔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알았어?
“신관님에게 들었어. 몸이 아파 자리에 눕기 전에는 달맞이꽃이 핀 정원을 산책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며? 그리고 몰래 알아낸 건 이게 전부가 아니지롱.”
슬슬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기에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벅차오르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떨리고 있는 에스텔의 가녀린 어깨를 향해 말했다.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