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7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77)화(17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77)
‘사제님!’
‘괜찮아. 저 청년의 발걸음이나 기세를 보게. 어디를 보더라도 위협적인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신의 사도들을 공손히 대하고자 하는 신실한 청년일 뿐이니 괜히 과민 반응하지 말고 약속한 대로 행동하게.’
샌슨이 건과일 주머니를 가지고 다가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월베니 일행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말이 오갔고.
“이리도 넉넉한 마음을 보여 주시다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는요. 부디 맛있게 드시길 바라겠습니다.”
월베니 일행의 가장 좌측에 서 있던 수행자 ‘길핀’이 한 발 앞으로 나서서 과일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가장 무거운 짐을 든 채 이곳까지 왔지? 쌓인 피곤의 무게 또한 자네가 가장 막중할 터이니 먼저 맛을 보게나.”
“감사합니다, 사제님.”
월베니는 사전에 ‘약속’된 대로 길핀에게 먼저 시식할 것을 권했고 길핀 또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나무 가락지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사실 길핀이 끼고 있는 반지에는 독극물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감지 능력이 깃들어 있었기에 그가 가장 먼저 음식물에 손을 대야만 했던 것이다.
‘…감지 반지에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섭취해도 안전한 식품입니다.’
잠시 후 길핀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고.
와사삭.
“음, 샌슨 군이 말한 것처럼 아주 달콤하구만. 아주 피곤이 싹 달아나는 맛이야.”
그제야 월베니를 포함한 일행은 과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제님, 출입 허가가 나왔습니다. 안쪽으로 이동하시지요.”
건과일 주머니가 바닥을 보일 무렵 출입 허가가 떨어졌고 월베니는 주근깨 소녀와 인사를 나눈 후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헤… 저 사제님 정말 인상 좋으시다. 같이 있는 수행자분들은 아직 긴장한 티가 팍팍 나는데 사제님은 하는 행동이며 말씀에 여유가 넘치시네. 저런 게 경험자의 여유라는 건가?”
월베니 일행이 사라진 후 다시 덩그러니 남아 버린 앤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월베니 사제를 만난 소감을 밝혔다.
“흐흐, 아직 마을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입구에서부터 이런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다니. 어쩌면 이런 게 여행의 맛이라는 걸지도. 앗,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해 보니까 난 여행을 떠나온 게 아니잖아.”
“….”
“샌슨 오라버니, 오라버니께서는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지요?”
자신의 말에 아무런 호응을 보여 주지 않는 게 서운했던 걸까?
앤은 ‘위장용 각막’이 붙어 있는 눈을 깜빡여 가며 샌슨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고.
“낯설고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여행의 맛이라고 했지?”
샌슨은 참으로 평소의 그다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면 이게 여행의 참맛이 맞겠지. 조금 전의 그 사제님 확실히 아주아주 재미있는 사람처럼 보였거든.”
* * *
“후아, 배불러. 그나저나 샌슨 오라버니, 이래서 세상은 넓지만 좁다고 하는 건가 봐요. 어제 만났던 그 사제님 일행을 식료품 가게에서 또 만날 줄이야. 슬쩍 보니까 그 사제님도 건조 식량을 대량으로 구입하시던데. 혹시 저분들이 간다던 순례지가 깊은 산 속에 틀어박혀 있기라도 한 걸까?”
“글쎄, 건조 식량을 많이 샀다고 해서 꼭 순례지를 향한다고 볼 수는 없지. 우리만 해도 상당한 양의 식량을 구입했지만 순례지를 가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기는 한데… 아무튼 그 사제님과 수행자분들의 여정에도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마을에 들어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
중심에 있는 식당에서 하고 온 아침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카밀라는 연신 방긋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워 냈다.
‘…그래, 두 번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지. 이 마을은 제법 넓지만, 그 정도로 다양한 건조 식량을 구비해 놓은 식료품 가게는 조금 전의 그곳뿐이고 건조 식량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꿀꺽꿀꺽.
좌라라락.
임무 첫날 아침의 각오를 다지기 위함인 걸까?
카밀라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차가운 커피 병을 단숨에 비워낸 후.
어제저녁에 미리 구입해 놓은 이 근방 지역의 전도를 펼쳐 들었다.
“에헴! 그럼 시작해 볼까, 페이건 군. 지금부터 이 누님, 아니 현장 지휘관께서 우리의 작전 개요를 설명해 드릴 테니 경청하도록 하세요.”
옆방에서 밤늦도록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뭘 하나 했더니 이걸 준비했던 거였나?
카밀라는 여러 장의 전도를 교대로 펼쳐 가며 열정적인 작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일단은 목표 지점 인근의 산 중턱까지 올라갈 생각이야. 어쨌거나 우리는 길을 봉쇄한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숲에 들어가야 하는 입장이고 성공적인 잠입을 위해서는 지형 정찰이 필수적이니까. 목표로 하는 산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숲에서 움직이는 경비병들의 동선을 관찰하기에는 충분한 높이라고 생각해.”
“응, 내 생각도 그래. 일단은 정찰이 중요하지.”
“그리고 산 중턱까지 갈 때는 이 숙소 뒤쪽으로 뻗은 큰 길이 아니라 우회로를 이용할 예정이야. 경비병들이 그 길목까지 확인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게 있으니까.”
“좋은 생각. 일이 중차대한 만큼 다소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시선을 피하는 게 좋지.”
자고로 열정이 뜨거울수록 그 열정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는 법.
어느덧 브리핑이 시작된 지 20여 분이 흘렀건만 카밀라는 조금도 지치는 기색 없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출발 시각은 지금으로부터 10분 정도 이후를 생각하고 있어. 사실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을 이용해 산을 오를까 생각도 했는데 그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 너랑 나는 구성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개성적인데 괜히 새벽 시간대에 산을 향하는 게 마을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했다가는 너무 강한 인상을 줄 수도 있으니까.”
“그래, 나무는 숲에 숨기라는 말도 있잖아. 어차피 중턱까지 가는 길에는 별다를 것도 없으니까 아예 낮 시간을 이용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리고 가다가 으슥한 지점이 나오거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밉살스러운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뺨을 찰싹하고 한 대 때려 줄 예정이야.”
“응? 미안하지만 그건 동의 못 하겠는데.”
그런데 카밀라의 열정적인 브리핑에 열중하고 있자니 그 중간에 도저히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한마디가 카밀라의 입에서 덩그러니 튀어나왔다.
“…너 할 마음은 있는 거야?”
“할 마음도 있고 의욕도 있고 준비도 되어 있어. 애초에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오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근데 할 마음이 있다면서 왜 아까부터 ‘응, 응.’만 하고 있는 건데! 사람이 옆에서 떠들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의견 정도는 개진할 수도 있는 거잖아.”
“너의 오더를 경청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네가 수립한 계획이 워낙에 좋은 터라 딱히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의견 개진을 하라는 거야?”
“아하, 그러니까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인 게 아니라 내 의견이 워낙에 좋아서 열심히 동의를 표하는 중이셨다. 이 말이지?”
“혹시 내 반응이 너무 약했나? 그래서 그러는 거라면 앞으로는 동의가 필요할 때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카밀라 대장님!’을 삼창하면서 박수도 쳐 줄 수 있는데. 그렇게 좀 해 줄까?”
“그거 절대로 하지 마. 네가 내 눈앞에서 그러고 있는 걸 보게 되거든 진짜 화날 것 같으니까.”
내가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자신의 계획을 수용한 걸 의욕 부진의 결과라고 판단한 걸까?
카밀라는 심통 난 표정을 지은 채 팔짱을 껴 버렸는데 나로서는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아니, 카밀라가 세운 계획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별다른 말을 안 했던 건데 왜 이걸 서운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별다른 말 없이 네 의견을 수용한 건 그게 전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내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그냥 못 넘기는 성격이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진즉에 말을 했겠지.”
“음, 그건 그래. 페이건 네가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기는 하지.”
“그리고 내가 말수를 줄인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이번 여정의 최종 결정권은 전적으로 너에게 있기 때문이야. 어디까지나 보조자의 역할에 머물러야 할 내가 초반부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면 너의 판단이 흐려질 수 있거든.”
“그치만 나는 신이 나서 떠드는데 네가 아무런 말도 없으니까 불안했단 말이야. 이론 교육은 열심히 받았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여정을 나선 건 처음이니까.”
설명이 효과가 있었는지 기분은 어느 정도 풀린 듯했지만, 카밀라의 눈동자는 평소와 다른 기색을 머금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스스로의 출중함에 대해서는 충분한 확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불안해할 줄이야. 역시 조금은 격려를 해 줬어야 했나?’
사실 폴리다고스를 떠나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 내내 카밀라가 품고 있는 초행(初行)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감지되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에 당차고 똑똑한 아이인 터라 이 정도 부담감은 스스로 이겨 낼 줄 알았는데 심통을 부림으로써 불안감을 표출하다니.
혹시 내 판단이 잘못되었던 걸까?
―역시 페이건 클라디우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드는 데는 뭐가 있다니까. 키킥!
‘어이, 최근 두 달 들어 체지방이 무려 1%씩이나 증가하신 북슬이 씨, 구겨진 롤빵이 되고 싶지 않거든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거야.’
―페이건,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이번만큼은 나도 벨제키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감해. 여정이 끝나는 그 날까지는 카밀라를 조금 더 자주 격려해 주는 게 어떨까? 아무래도 카밀라는 이런 식의 여정을 겪어 본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거거든.
‘어… 딱히 토를 달겠다, 이런 건 아닌데요. 어쨌거나 저도 이런 식의 경험이 아주 많은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만 페이건 넌 조금 특별하잖아. 후훗! 페이건, 충고 하나만 더 하자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마음이 단단하기만 한 건 아니란다. 사람들, 특히 네 또래의 아이들을 상대할 때는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게 좋을 거야.
라무테 님도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접근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고.
난 평소에는 좀처럼 입에 담지 않던 말을 꺼내 들었다.
“넌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 네 판단에 확신을 더 가질수록 상황이 긍정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 내가 장담할 수 있으니까.”
“…진짜? 그럼 나 초보자치고는 잘하고 있는 거야?”
“굳이 초보자라는 거추장스러운 딱지를 붙이지 않은 기준으로 봐도 아주 훌륭해. 그리고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지금 네 옆에는 나라는 아주 훌륭한 보험이 있잖아. 만에 하나 네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다면 안전장치인 내가 바로바로 얘기를 해 줄 테니까 조금 더 자신을 가져.”
“…고마워, 흐흐. 페이건 너한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너랑 같이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샘솟네.”
“공짜로 일하는 게 아니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나도 밥값은 해야지.”
“응, 좋아! 아주 훌륭한 각오야. 좋아 그럼, 이 기세를 몰아 바로 출발해 볼까! 나는 준비 다 끝났는데 페이건, 넌 어때?”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흔한 격려라 생각했는데 그 효과는 내가 예상했던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왔다.
카밀라는 확연히 달라진 표정으로 떨쳐 일어났고.
“잠깐만, 출발하기 전에 보고할 말이 있어.”
난 내가 조금 전에 언급 한 바 있는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그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어제 이 마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한 번. 그리고 조금 전 장을 보면서 시장에서 또 한 번. 우리랑 도합 두 번을 마주쳤던 순례자 무리 기억하지?”
“응, 그 웃음소리가 참 듣기 좋았던 아저씨가 이끄는 순례자분들 말하는 거 맞지?”
“혹시라도 말이야. 이후 그들과 한 번 더 마주친다면 그때는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왜?”
“그 사람들 평범한 순례자가 아니거든.”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카밀라가 보여 준 작전 수립 능력이나 진입로를 결정하는 판단은 아주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밀라가 제아무리 나이에 걸맞지 않은 뛰어난 식견을 보여 준다 하여 스치듯 지나간 만남이 전부인 이방인 무리가 흘리고 간 단서까지 포착해 내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
나는 여전히 카밀라의 소맷자락을 붙잡은 채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설명에 들어갔다.
“아직 그 정체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어. 하지만 본래의 정체를 숨긴 채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을 타지에서 유난히 자주 맞닥뜨린다면 주의하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니까 혹시 또 마주치거든 그때는 일정한 거리를 두도록 하자.”
“…!”
카밀라의 눈동자가 좌우로 크게 확장되고 도톰하던 입술이 위아래로 벌어졌다.
본인의 머릿속에서는 마냥 순박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만 기억되던 순례객들이었는데.
갑자기 그들을 주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왜 그 사람들이 평범한 순례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데?”
“평범한 루난의 순례객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리에 앉지 않거든. 사실 어제 대기소에서 그 사람들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랑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들이 어떤 대형을 취하고 있었는지 기억해?”
“음… 딱히 대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질서정연한 모습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제님은 대기석에 앉아 계시고, 그 사제님의 인도를 받는 젊은 수행자들은 주변에 적당히 서 있지 않았었나?”
“그래, 잘 기억하고 있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중년 사제만이 자리에 앉아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서 있었다는 점이야. 카밀라, 혹시 ‘루난교(敎)’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카밀라는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 대답을 줬고.
난 카밀라가 그 광경 속에서 놓쳐 버린 것들을 하나하나 집어 주는 과정에 들어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잘은 몰라. 루난교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거라고는 서쪽 극단의 페시아 군도(群島) 일대에 뿌리를 내린 소수 토착 종교라는 점과 그 신도들이 순례를 자주 나온다는 점. 이 두 가지가 전부야.”
“그 정도면 잘 알고 있네. 그런데 루난교도 사이에서는 ‘수라레’라는 고유 풍습이 있거든.”
“수라레? 처음 듣는 단어인데 혹시 루난교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교어(敎語)인 거야?”
“교어라고 생각해도 되고 페시아 군도에서만 전해지는 토착어로 간주해도 큰 문제는 없어. 어차피 중요한 건 어원이 아니라 그 단어가 담고 있는 뜻이니까. 수라레를 대륙어로 바꾸면… 아주 똑 맞아떨어지는 단어는 없다만 그래도 공평 혹은 평등으로 번역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음… 그런 뜻의 교어가 따로 있는 거 보면 루난교도들은 평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네?”
“잘 봤어. 루난교도들은 평시에도 평등을 중시하지만, 그들이 순례를 나섰을 경우 수라레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져. 거룩한 발자취를 좇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만큼은 순례객 전원이 완벽하게 평등한 처지가 되어 모두 같은 짐을 나눠야 한다는 게 순례를 떠난 루난교도들의 가장 중요한 철칙이거든.”
“잠깐만, 사제님 일행의 대형… 그리고 완전한… 평등… 아!”
돌연 카밀라의 입에서 경쾌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영민한 그녀답게 내 설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에도 답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상에!”
와락, 감격을 이기지 못한 뻗어 나온 손이 내 손등을 감쌌고 카밀라는 손바닥의 온기보다 한층 더 뜨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대기실에서 중년 사제님 ‘혼자만’ 짐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어. 그런데 페이건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수라레에 완전히 어긋나는 거잖아?”
“그래, 맞아. 수라레는 루난교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교령(敎令) 중에 하나지만 루난교 자체가 워낙에 세가 약한 종교이다 보니 거의 알려져 있지가 않아. 하지만 연극이라는 건 대부분의 경우 이런 식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꼬투리가 잡히기 마련이거든.”
분명히 말해서 이토록 열정적인 눈빛을 한 채 내 설명을 들어 주는 건 참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을 계속 마주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기에 난 눈동자를 사선으로 돌린 채 추가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이후,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뭐였는지 기억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