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79)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79)화(179/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79)
―잠깐! 너 그 과일 주머니 그 사람들이랑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밀었잖아. 그럼 그때부터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설마. 내가 무슨 예언자도 아니고 그럴 리야 있겠어. 혹시 몰라 단서를 뿌려 놓은 것뿐이야. 알잖아? 내가 수상쩍은 건 그냥 못 보고 넘어가는 성격인 거.’
―그래, 네가 의심쟁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래도 그 잠깐 동안에 이런 수작을 부려 놓았을 줄이야. 지독해! 의심 많은 아이는 때찌때찌!
‘이왕이면 철저하다고 해 줘.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체내에 있던 오러가 흩어지는 걸로 아무 일 없이 끝났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덜컥 만나 버렸네.’
눈썹 근처에서 살랑이는 통통 꼬리를 검지에 둘둘 만 후 회전을 시작했다.
‘얼른 가 봐. 그곳에 가서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꼼꼼하게 엿듣고 온 다음 나한테 말해 주면 돼.’
적당한 지점에서 회전을 멈추자 대형 롤빵은 피잉 소리를 내며 솟구쳤고.
이내 그 포동포동한 실루엣은 드루이드 오러가 가리키는 방향 너머로 사라졌다.
“있잖아, 페이건. 네 생각은 어때? 앞서서 나가고 있는 그 사람들은 우리 존재를 알고 있을까?”
타이밍이 좋다고나 할까?
북슬이의 출발 시기에 맞춰 검식 작업을 마친 카밀라가 내 의견을 물어 왔다.
“아니,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고 생각해.”
“왜?”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경계선을 뚫고 나아가는 솜씨에 비해 뒤처리해 놓은 게 너무 어설프거든. 이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건 어쨌거나 병사들의 경계선을 통과할 정도의 솜씨가 있다는 뜻이잖아?”
절반쯤 펴지다가 만 풀과 어설프게 오므려진 덤불.
뿌려 놓은 시약 위로 선명하게 번져 나가는 각양각색의 색깔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은폐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고는 간주할 수 없는 단서’들이 흘러넘쳤다.
“그 정도의 솜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추적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면 조금 더 확실하게 뒷정리를 하면서 움직였겠지.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경로를 노출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뒷정리를 해 놓은 걸 보면 최소한의 정리만 겨우겨우 처리하고 나아갔다는 생각이 들거든.”
“음… 설마 자신들 말고 다른 존재가 경계선을 돌파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던 걸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뒷정리를 허술하게 해 놓고서라도 바쁘게 달려가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지.”
“…중요한 일. 앗! 혹시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떡하지? 물론 나도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놨다만… 으으, 아무래도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흔적을 더 꼼꼼하게 지워 놔야 할까?”
“흔적을 지우는 건 내가 하고 있으니까 너는 굳이 거기까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 언제?”
“숲에 들어선 이후로 줄곧.”
나는 손가락을 들어 우리가 조금 전 지나왔던 숲길을 가리켰는데 그곳에는 ‘통과의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양’으로 오므려진 덤불이 보였다.
“네가 경로 파악을 위해 잠깐씩 멈춰 설 때마다 나도 나름 바쁘게 움직이면서 흔적을 지워 왔지.”
“우와! 난 쟤가 또 왜 저렇게 꼼지락거리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미안, 너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몰라봤네. 흐흐.”
“말했잖아, 솜씨 좋은 안전장치라고.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려면 이 정도 기능은 발휘해야지. 우리의 흔적을 지우는 김에 앞선 사람들의 것도 지웠으니까 설령 우리 뒤를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흔적을 찾아내지는 못할 거야.”
“음, 훌륭해. 따로 지시한 적도 없는, 이리도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다니. 클라디우스 군의 훌륭한 모습에 이 아저씨는 감동했다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앞으로도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을 테니 두둑한 성과급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허허! 나만 믿게나. 내가 또 쓸 때는 아주 잘 쓰는 사람 아닌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농담을 끝으로 카밀라는 몸을 돌렸고 그녀와 나는 다시금 숲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피잉.
―페이건, 이것 봐! 마즈다에서 빛이.
‘북슬이가 그들을 거의 따라잡았다는 신호입니다. 그들은 구불구불한 길을 나아가야 하는 데 비해 북슬이는 최단 거리로 날아갈 수 있으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빨리 따라잡을 수 있었나 보네요.’
평소에는 마냥 철부지 같지만 페스티라카 유적에서 보여 준 솜씨를 보면 정찰병으로서 북슬이의 기량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아마 어렵지 않게 선행객들의 빈틈을 파악할 수 있을 터.
북슬이가 그 통통한 뺨따귀 가득 채워 올 정보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맛이 다셔졌다.
‘마을에서야 보는 눈이 많으니 입들이 무거우셨겠지만 보는 이 없는 숲속에서까지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겠지. 어디 한번 맘껏 떠들어 보시지. 그래야 나도 이 답답한 속이 조금은 풀릴 것 같으니까.’
* * *
“각하, 이상합니다. 아무리 봐도 남겨진 잔해와 뼈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 너무나도 큽니다.”
오후의 햇살도 스며들지 못하는 깊은 숲속.
커튼처럼 드리워진 잔해들을 배경 삼아 감식 작업에 열중하던 기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간적 간극이라니?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게.”
“여기 이 짐승의 뼈를 보십시오. 살점이나 핏기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완전한 백골입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포식을 통해서는 이 정도로 깔끔한 뼛조각이 도출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그 뼈를 삭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 근방에 있는 가죽을 보십시오. 뼈의 구조나 형태를 봐서는 이 가죽과 뼈는 동일한 짐승에게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한데 완전하게 삭아 있는 뼈와 달리 가죽은 제법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사옵니다. 가죽에 붙은 핏자국의 상태로 보건대 박피(剝皮)가 발생한 건 일주일 이내일 가능성이 크옵니다.”
“흐음… 그렇다면 이 짐승을 포획한 괴물이 짐승의 속살을 통째로 녹여 먹은 후 그 껍데기와 뼛조각만 토해 냈다는 말인가?”
“믿기 어려운 결과이지만 현재로서는 그 안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라고 사료되옵니다. 먹이를 통째로 삼킨 채 외피 안쪽의 살점만 빨아 먹은 후 잔해를 토해 내는 괴물이 숲에 머무르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 괴이하기 짝이 없는 현장도 어떻게든 설명은 가능하옵니다.”
“허허… 날짐승을 통째로 흡수하는 괴물이라니… 이래서야 이곳에 오기 전 들었던 그 괴소문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결국 보고를 듣던 월베니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믿지 못할 괴소문을 듣고 이곳을 향하기는 했다만 사실 ‘짐승을 씹어 먹는 덤불’이라는 괴담이 사실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월베니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는 외무부 소속 정예 병사들이 자아내는 수상한 움직임의 내막을 파악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괴담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발견되다니.
월베니가 저런 허망한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각하, 지금이라도 대공 관저에 연락하시는 게 어떨는지요. 각하와 긴밀하게 지내시는 대신분들의 협조를 얻는다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도….”
“글세, 물론 나와 긴밀히 지내는 대신들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그 친구들이 내가 하는 말만 믿고 행동에 나서 주겠나? 여기서 내 편을 든다는 건, 곧 안피노 공작을 적대시하는 일이 될 텐데 말일세.”
“비록 아직까지 확보된 것이 정황증거 뿐이기는 합니다만, 전하의 친동생이신 대공께서 사력을 다해 의견을 개진하신다면….”
“전하께서도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으실 걸세. 공작에 대한 전하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월베니의 입가에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최근 들어 월베니는 국왕을 대할 때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벽을 느껴 왔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형제였던 두 사람이었건만 언제부터인가 둘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국왕의 심장에는 루드비히 안피노라는 이름이 새겨지게 되었다.
아소토 국왕이 안피노 공작을 향해 보여 주는, 때때로 맹신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신임을 보고 있노라면 월베니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듯했다.
안피노 공작의 급격한 세력 확장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정치 일선을 떠나 있는 한량 왕족 따위가 흠집을 잡기에는 루드비히가 보여 준 공적이 너무나도 막대했기에.
월베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점점 더 굳건해져만 가는 공작의 입지를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일단은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을 해 보세나. 혹시 아나? 이 안쪽에 조금 더 어마어마한 증거가 숨어 있을지 말일세.”
가슴을 가득 메운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월베니는 짐짓 밝은 웃음으로 기사들을 독려했고 대공과 그를 따르는 기사들은 숲의 어둠 속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푸드득.
월베니 일행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들릴 리 없는 유독 통통한 날갯짓 소리가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퍼져 나갔다.
* * *
“…등등. 정리하자면 인근 주민들이 목격한 바 있다는 ‘괴식물’은 실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결론이야.”
그날 저녁, 마주 앉은 카밀라의 입에서 오후에 들었던 것과 비슷한 결론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비슷한 단서가 남겨진, 거의 유사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니 다다른 결론 또한 거의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네 생각은 어때?”
“달리 생각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냥 네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하면 될 걸 꼭 배배 꽈서 대답을 한다니까.”
볼멘소리를 내뱉으며 툴툴거리는 입과 달리 카밀라의 표정은 제법 만족스러워 보였는데.
고심 끝에 도달한 결론이 나로부터 부정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꽤나 흡족한 듯했다.
―야, 페이건. 아무래도 카밀라는 너한테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인색하게 굴지 말고 좋은 소리 좀 팍팍 해 줘.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빡빡하게 구냐.
‘네가 그런 말 하지 않아도 오늘 하루 동안 카밀라가 보여 준 판단력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월베니 대공 일행 모두가 머리를 맞댄 끝에 도달한 결론을 카밀라는 혼자서 도출해 낸 거잖아. 얘 나이를 생각하면 대단한 게 맞아.’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왜 표현은 안 해?
‘뭐랄까… 이런 생각을 매번 입 밖으로 내는 것도 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에휴, 너도 참.
대공과 대공을 모시는 수행 기사들이 월베니라는 이름을 직접 입에 담은 적은 없다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각하’라는 호칭과 ‘전하의 친동생’이라는 말이 나온 게 확인된 이상 사제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으하함! 그럼 합의된 대로 일단 내가 먼저 잘 게. 4시간 있다가 깨워, 알겠지?”
오늘의 성과를 확인하는 작업이 끝나자마자 카밀라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 채비에 들어갔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숲속에서 두 사람 모두 잠을 청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기에 우리 둘은 교대로 불침번을 서기로 했고 내가 오늘 밤 전반부의 불침번으로 낙점된 바 있었다.
“이 페이스로 나아가다 보면 내일쯤에는 그 괴소문의 주인공을 직접 만나 볼 수도 있겠지?”
“목격자들의 증언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내일 정도에는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지.”
“흐음… 그럼 내일도 고된 하루가 되겠네. 저기… 있잖아.”
“있으니까 말해.”
“내가 이런 말 하면 네가 괜히 뿌듯해 할 것 같아 웬만해서는 싫었는데 오늘 저녁이 예상보다 맛있었던 걸 기념해 특별히 말해 주는 거니까 귀 쫑긋 세우고 새겨들어. 알겠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서두가 거창하실까?”
온몸에 침낭을 둘둘 감은 카밀라가 숙면을 위해 파헤쳐진 구덩이에서 꼼지락거리자 꼭 그림책 속의 번데기 고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그래도 동행이 있으니까 참 좋다. 만약 나 혼자 왔더라면 이곳까지는 오지도 못하고 아까 전에 마을로 돌아가야만 했을 거야. 등을 맞댈 사람도 없이 혼자 숲에서 밤을 지내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니까. 같이 와 줘서 고마워.”
나한테 등을 보인 채 한참을 꼼지락거리던 번데기 씨는 들릴락 말락 하는 목소리의 전언을 끝으로 본격적인 수면 모드에 들어갔고.
새액새액.
잠시 후 번데기 씨의 동글동글한 등 너머로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한번 볼까? 음… 좋아. 페이건, 잠들었어. 아주 확실하게 잠들었으니까 네가 깨우지 않으면 중간에 일어날 일은 없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럼 라무테 님, 전 잠시 다녀올 테니 그동안 카밀라를 잘 부탁드립니다. 주변 500m 안팎으로 이상한 조짐이 느껴진다면 저에게 말씀을 해 주시고 그 조짐과 카밀라 간의 거리가 200m 이하로 줄어든다면 카밀라를 깨우세요. 만약 그런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저 또한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피잉피잉.
잠든 카밀라를 중심으로 오러의 실이 자아내는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방어막을 설치해 놓았으니 설령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 해도 내가 복귀하는 순간까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을 터.
‘북슬이 너도 내가 다녀올 때까지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겠지?’
―알았어, 쥐 죽은 듯이 얌전히 있을 테니까 너도 케이크 다섯 개 약속한 거 잊지 마.
오러의 실과 라무테 님, 여기에 북슬이로 구성된 방어막을 완성시켜 놓은 후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표는 깊고 깊은 어둠이 꿈틀거리는 숲 안쪽.
카밀라가 깨기 전에 다녀오려면 조금 서둘러야만 할 것 같았다.
괴담 속의 식물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한 건 꽤나 가치 있는 수확임이 분명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등장인물이 나와 카밀라가 전부라면 이 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었겠지만, ‘아소토 국왕의 친동생’이라는 거물이 판에 뛰어들었다는 게 확인된 이상 오늘 밤 내에 판을 조금 더 키워 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거물의 난입이라니, 예상치 못한 결과지만 나쁘지 않아. 어쨌거나 판이 소란스러워질수록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또한 넓어질 테니.’
풀어 놓았던 로브를 두르고 한쪽에 치워 놨던 단검 벨트를 착용하는 모습을 빤히 보고 있던 라무테 님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페이건, 꼭 이렇게 늦은 밤에 그것도 혼자서 안쪽에 가야만 하는 거니? 그러지 말고 내일 우리랑 같이 가면 안 되는 거야?
‘내일 가도 안 될 건 없지만 오늘 밤 안에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카밀라 곁에 머물러 달라는 내 부탁을 받아들여 주시기는 했지만, 역시 나를 홀로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라무테 님은 애잔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루난의 사제님, 아니 아소토의 대공이 난입해 준 게 여러모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무테 님, 오늘 밤의 숲처럼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 사람이 많아질 경우 가장 즐거운 점이 뭔지 아세요?’
―글쎄, 외롭지 않다는 거?
난 라무테 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내가 오래전에 깨달은 바 있는 진리를 꺼내 들었다.
‘내가 저지른 짓을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