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8)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화(18/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
“…!”
안 그래도 격하게 떨리고 있던 에스텔의 어깨가 한층 더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어? 무녀님이랑 신관님들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는데….”
“그런 건 말 안 해줘도 다 아는 수가 있는 법이거든.”
고개를 돌리자 ‘에헴, 에헴!’ 하는 소리를 내며 붕붕 날아다니는 특제 롤빵이 보였다.
모데나스 전역을 누비는 이 투명 털 뭉치에게 에스텔의 생일을 알아내는 것쯤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밖에 볼 수 없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직접 해안 정원으로 가 달맞이꽃을 보고 만지고 그 향을 맡을 수 있을 거야.”
“…페이건 군은 나빠. 다시는 기대 같은 거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자꾸 기대를 하게 되잖아. 해안 정원을 걷거나 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목표가 생긴다는 건 참 좋은 일이거든. 일단 일차적인 목표는 ‘다시 그 정원을 걷자’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기한은 내년 이맘때까지로 하면 괜찮겠는 걸?”
“그게… 가능할까?”
“응. 가능해.”
“정말…?”
“당연하지.”
이제는 익숙해진 절망과 기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에스텔. 그녀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더 확실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그리고 한층 더 떨림이 격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시야에 담으며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이곳에 온 거니까.”
* * *
일주일 후.
“나… 어릴 때는 예뻤다.”
“응? 지금 뭐라고 했어?”
“나, 어릴 때는 꽤 아니 무척 예뻤다고 말했어. 물론 너는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울긋불긋하게 달아오른 피부에 연고를 바른 후 붕대를 감아 주는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특히 무녀 언니들이랑 신관 아저씨들이 나만 보면 몇 번이고 말씀하셨어. 눈이 예쁘다고.”
“아, 그랬어?”
“진짜야! 거짓말 아니야!”
딱히 거짓말이라고 말한 게 아닌데도 성녀는 양팔을 붕붕 휘두르며 방금 그 말이 진실임을 강조했다.
“진짠데… 정말로 진짜란 말이야.”
일종의 반발 심리겠지?
참으로 기특하게도 생각을 바꿔 치료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성녀의 마음속에는 외부인인 나에게 몸을 맡기는 데서 기인하는 수치심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치심이 그녀에게 있어 가장 부끄러운 순간인, 얼룩덜룩한 피부를 내게 내보여야만 하는 때에 자랑이라는 형태로 모습을 바꿔 발현된 것이다.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예뻐가 아닌 예‘뻤’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야속하지 않을까?
“음, 그런데 눈은 지금도 충분히 예쁜 것 같은데?”
“뭐, 뭐!”
“넌 항상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나야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지. 그런데 네가 말한 것처럼 눈은 정말로 예쁜 게 맞는 것 같아.”
눈동자, 내가 에스텔의 얼굴 중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신체 부위인 수정처럼 푸르고 깊은 눈동자가 격렬한 파동을 일으키며 떨려 오기 시작했다.
예쁘다는 말은 꽤 많이 들었다면서 내가 해 준 한마디가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걸까?
“음. 다시 봐도 확실해. 다른 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눈은 정말로 예뻐. 사제님들이랑 무녀님이 너한테 거짓말을 한 건 아닌 것 같아.”
“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래!”
순순히 치료를 받던 에스텔이 돌연 소리를 빽 하고 지르더니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어… 대략적인 과정은 다 끝났지만 아직 붕대 다 안 묶었는데. 금방 묶어줄 테니까 팔 좀 다시 줘 볼래?”
“붕대는 내가 묶든가 무녀님들한테 묶어 주든가 하라고 할게. 그러니까 넌 일단 오늘은 그냥 돌아가!”
“…어, 그래도 되나?”
“얼른!”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뭐.”
에스텔의 완강한 저항에 결국 난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떠나는 내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돌아누워 버리고 말았다.
“그럼 간다.”
난 언제나처럼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이번에도 날 돌아보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온통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귀만이 쫑긋거리며 날 배웅해 줄 뿐이었다.
* * *
보름 후.
“호흡도 안정적이고 마나의 흐름도 안정되어 있어. 어때? 너 스스로도 몸이 좋아진 게 느껴지지 않아? 응? 그런데 너 표정이 왜 그래?”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지.”
“너, 너 말이야. 요즘 들어 여기 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잖아!”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분명히 그랬어. 어제는 20분, 그제는 15분, 오늘은 27분이나 늦었잖아!”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어? 세상에 꼼꼼하기도 하셔라.”
한동안은 화를 내거나 하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의 성녀는 검지 손가락까지 바짝 세워 가며 내 게으름을 추궁하고 있었다.
“화,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치료술사가 자, 자기 마음대로 막 늦고 그래도 돼!”
“그게 말이야. 최근 가문에 일이 많아서 저녁 식사 시간이 좀 늦었거든. 저녁 식사가 늦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방을 빠져나오는 게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 뭐 따지자면 내 잘못이기는 한데 이 정도면 정상참작이 가능한 범위 아닌가?”
“그럼 오늘까지만 봐 줄게. 내일부터는 늦는 일 없도록 해.”
“네, 네. 그리하도록 하지요.”
잔뜩 토라진 목소리로 화를 낸 것 치고는 에스텔의 반응은 호의적이었고 덕분에 난 순조롭게 오늘의 치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럼 내일 다시 올 테니까 처방해 준 약은 빼놓지 말고 다 먹어야 돼. 그리고 가급적이면 밥은 두 그릇씩 먹고. 아무래도 효과가 강한 약을 쓰다 보면 약간은 무리가 갈 수 있는데 그걸 버티려면 너의 체력이 중요하거든.”
“잠깐만!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내가 일찍 오라고 했다고 대책 없이 일찍 와 놓고서는 ‘오늘은 일찍 왔으니까 일찍 간다!’ 이런 건 안 돼. 그런 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기껏 꺼낸 말이 이거라니.
뭐랄까, 최근 들어 에스텔은 엉뚱한 소리를 자주 하고는 했다.
‘혹시 치료가 진행됨에 따라 그 부작용으로 감정 기복이 심해진 건가? 뭐 어차피 몸이 균형을 완전히 찾으면 괜찮아질 문제니까 큰 문제가 아니기는 한데….’
그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활력이 부족했던 그녀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건 긍정적인 일이었기에 난 고개를 끄덕였고.
“그래. 가능한 한 노력할게.”
“그래 생각 잘했어. 뭐든지 노력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럼… 잘 가.”
에스텔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뒷모습을 한 채 시트 안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 * *
일주일 후.
“저기, 혹시 나중에 내가 깜짝 놀랄 만큼 예뻐져 있으면 넌 어떡할 거야?”
“응? 아, 맞다 너 지난번에 그랬지. 되게 예뻤다고.”
치료를 마친 후 도구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오늘도 엉뚱한 질문이 들어왔다.
“글쎄다. 나는 그쪽에 큰 관심이 없지만 뭐 어쨌거나 예뻐지면 좋은 거니까… 음 뭐, 좋은 거겠지.”
“그게… 다야?”
“그럼 뭐 이거 말고 다른 대답이 필요해? 좋은 거라고 말했잖아.”
“아니 그러니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넌 어떻게 할 거냐구!”
원하는 대답이 따로 있기라도 한 걸까?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빈도가 더욱 잦아진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치료가 진행되다 보니 일시적으로 몸의 균형이 무너진 탓에 정신상태가 다소 불안정해진 듯한데 나로서는 참 답답한 일이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몸을 치료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환자의 마음을 살피는 건 영 까다롭다는 말이야. 이쪽 공부에도 조금 더 시간을 쏟아야 하는 걸까?’
사춘기의 길목에 접어서는 여자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정도의 주변머리가 없는 나는 결국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떠한 반대급부 없이, 그러니까 대가 없이 예뻐질 수 있다는 건 너 개인적으로 참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해. 물론 너 같은 경우에 예뻐진다기보다는 예전의 미모를 되찾는 경우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아무튼 그 자세한 경위가 어찌 되었건 네가 말한 변화가 발생한다면 너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옳겠지.”
“….”
“그런데 냉정히 생각하면 그 변화는 파급력이 너 개인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큰, 아주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란 말이지.”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에스텔은 두 발을 땅에 내딛은 채 나를 위아래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에스텔 너에게는 큰 기쁨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변화의 영향을 내가 체감할 수 있다거나 내 삶의 지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이익!”
마냥 가늘고 앙상할 것만 같았던 에스텔의 장딴지가 순간적으로 부풀어 올랐고 푸른 가면 아래로 어금니를 꽉 깨무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닥칠 가능성이 농후한 일이 가져올 여파를 실질적으로 파악하고 싶다면 나보다는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을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편이….”
두다다.
꽤나 오랜만의 도약이었을 텐데도 순조롭게 도움닫기를 완료한 다리, 나풀거리는 취침용 드레스. 시야를 가린 하얀 발바닥.
퍼억.
그리고 복부에 느껴지는 둔중한 충격.
콰앙.
비참한 몰골이 되어 문밖으로 나뒹굴고만 나.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치료 도구들.
당장이라도 부서질 기세로 닫힌 문.
“이 바보야!”
짧지만 강한 울림을 남긴 에스텔의 목소리.
“아욱… 피할 걸 그랬나 보네. 역시 축복을 받은 신체라 이건가? 얼마 전까지 병상에 누워있던 애가 날린 발차기가 뭐 이리 묵직해.”
그 기세를 보건대 에스텔이 문을 열어줄 일은 없어 보였고 나는 욱신거리는 복부를 움켜잡은 채 도구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방안에서 얼추 정리를 끝낸 터라 복도에 널브러진 도구를 수습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맞아 보기를 잘 했네. 이걸로 조금 더 확실해졌어.’
정리가 끝난 후 복부에 가해진 충격이 선사한 정보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조금 전의 일격을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맞는 편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에스텔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취하는 움직임을 통해 그녀의 몸 상태를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에스텔의 발차기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날카로웠고 덕분에 난 그녀의 몸 상태가 거의 정상수준으로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회복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라. 역시 성녀의 축복받은 신체라 이건가.’
눈을 감고 머릿속에 그려 왔던 일정표를 수정하는 작업이 모두 끝난 후에 다시 눈을 떴다.
모데나스에 온 지 3개월.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일주일 후,
“예정된 모든 치료가 끝나 갑니다.”
치료의 당사자인 에스텔, 그리고 모데나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사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후, 난 치료의 종료가 임박했음을 선언했다.
“크, 클라디우스 공자님!”
치료가 완료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 생각한 걸까? 사제회의의 수장을 맡고 있는 수석 사제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물론 아직 성녀님의 환후는 완치가 되지 않았고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맡아서 해야만 하는 치료 과정은 어제부로 끝이 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여러분들이 성녀님을 도와주셔도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간 수십 번에 걸친 검증을 했으나 결과는 항상 같았다.
꼭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이걸로 끝.
후속 처방전과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응방법의 전수를 마지막으로 내가 이 섬을 방문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수석 사제님, 처방전과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인원을 선발해 주시겠습니까? 그리 복잡한 내용이 아니니 하루나 이틀 안으로 전달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저희는 아직 공자님께 은혜를 갚아 드릴 준비도 끝내지 못했는데….”
“공자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허허,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즉에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는 섬사람들.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에스텔이었다.
그녀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언제나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에서는 미세한 진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공자님, 혹여 가능하시다면 조금만 더 저희 곁에 머물러 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저희는 아직….”
물론 섬사람들 중에는 나를 붙잡으려 노력하는 이들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 부탁은 들어 드릴 수 없을 것 같군요.”
“공자님!”
하지만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부탁만큼은 들어줄 수 없음을 밝혔다.
“제가 여러분들 곁을 떠나고자 함은 이곳에서의 시간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이 섬에 머무는 것이 병의 박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녀님, 오르페우스 님께서 남긴 기록과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저는 성녀님을 괴롭히고 있는 그 병을 완전히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이곳을 오가며 도움을 줄 수 없는 이유, 그건 바로….
“하지만 그 방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제가 이 섬에 발을 내디뎌서는 안 됩니다. 발병요인을 완전히 제거하려면 당분간 모데나스가 파도부족을 제외한 모든 외부인들과 격리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올곧은 자세로 앉아 내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에스텔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바다를 닮아 있을 것 같은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 채 말했다.
“그 외부인에는 저 또한 포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