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8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1)화(18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1)
“길핀과 토드, 조지는 그대로 대형을 유지하고 이삭과 베티나는 나를 따르도록. 이삭이 좌, 베티나가 우를 엄호한다.”
습격이라는 한마디에 상황을 파악한 월베니는 기민한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연막탄으로 가려진 숲 속으로 뛰어들 채비에 들어갔다.
“각… 사제님! 적진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데 적진의 한복판으로 뛰어드시겠다니요. 너무 위험합니다!”
“적진으로 뛰어드나 여기서 날아오는 표창 세례에 난타당하거나 위험한 건 매한가지야. 어차피 위험한 상황이라면 망할 놈들의 얼굴이라도 봐야지. 운이 좋아 예봉을 끊을 수만 있다면 이 지랄 같은 표창 세례도 조금은 덜해질 걸세.”
“사제님, 정 그렇다면 제가 안쪽으로 진입할 테니 사제님께서 여기서 대형을 지휘해 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사제님께서 직접….”
“자네 검이 나보다 날카롭다면 그리하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은 이상 내가 가는 게 옳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네는 다른 친구들의 지휘에나 집중하게.”
길핀의 충정 어린 발언을 일언지하에 일축해 버린 월베니는 곧바로 표창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쇄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월베니를 가리켜 ‘술 좋아하고 나들이 좋아하는 한량’ 정도로 치부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아소토의 대공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출중한 사람이었다.
팅팅팅.
접근을 인지한 암살자 무리가 월베니를 향해 집중적으로 포화를 퍼부었지만, 월베니는 스스로의 출중함을 증명하는 듯한 검술로 비처럼 쏟아지는 표창들을 전부 튕겨 냈다.
“어떤 빌어먹을 놈들이길래 감히 루난의 종들이 안식을 취하는 자리에 훼방을 놓는 것이냐!”
마침내 적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 월베니는 특유의 걸걸한 음성을 내지르며 힘껏 검을 휘둘렀다.
채앵.
아직도 자욱하기만 한 연막 사이로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퍼졌고 송충이처럼 굵직한 월베니의 눈썹이 위아래도 크게 요동쳤다.
‘장검?’
자신의 습격을 막아 낸 암살자가 꺼내 든 무기는 당연히 단검일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월베니의 예상과는 달리 암살자의 손에는 장검, 그것도 무척이나 매혹적인 빛을 발하는 흑빛 장검이 들려 있었다.
‘기민한 움직임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활동하는 암살자 놈들은 단검이나 숏소드 계열의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저렇게 기다란 장검을 들고 있다고?’
월베니의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일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채앵.
암살자는 신묘한 움직임으로 검을 튕겨 냈고 이제는 적의 반격이 있을 타이밍이었기에 월베니는 무의식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타닷.
“앙?”
하지만 그 순간 암살자는 그대로 등을 돌린 채 줄행랑을 쳐 버렸고 그 행동이 너무나도 예상외였기에 월베니는 섣불리 암살자를 쫓지도 못한 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쉽게 등을 보인다고? 부상은커녕 아직 생채기조차 난 인원이 없는데?’
두 사람이 검을 맞댄 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그 잠깐의 대치만으로도 암살자가 범상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초일류급 실력의 암살자가 이토록 빨리 등을 보인다니, 좀처럼 믿기 힘든 일이었다.
‘아직 연막은 쌩쌩하고 수행 기사들은 완벽한 방어진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야.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암살자라면 안쪽으로 파고들어 약한 고리를 두드려 본다는 생각을 하고도 남을 텐데.’
혹시 도망치는 척 빈틈을 유발하는 작전인가 싶어 검을 쥔 손에 힘을 줘 봤으나 한번 등을 보인 암살자는 그대로 멀어져만 갈 뿐이었다.
“사제님, 엎드리십시오!”
후방에서 분대 원거리 공격을 담당하는 베티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월베니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피융.
허겁지겁 자세를 낮춘 월베니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기세를 머금은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달칵.
“쳇!”
베티나의 입에서 짜증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등판을 노리고 날렸던 화살이 암살자의 측면을 스쳐 가는 데 그쳤던 것이다.
옆구리 인근에 타격을 받은 암살자는 잠시 비틀거리는 듯했으나 곧바로 균형을 되찾았고 이내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들 몸들은 괜찮나?”
“전원 이상 없습니다, 사제님.”
“길핀, 조금 전의 연막탄에 독 기운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니 동지들의 몸 상태를 꼼꼼히 살피게.”
예상치 못한 습격이 있었지만, 기사들의 몸 상태는 멀쩡해 보였고 월베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제님, 이쪽으로 잠시만 와 주시겠습니까! 사제님께서 확인하셔야 할 물건이 있습니다.”
“뭔데 그런가?”
“조금 전 제 화살에 스쳐 맞은 암살자가 떨어뜨리고 간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 보호대 안쪽에 덧대어진 안감을 보십시오. 외무부 소속 특수 장교들이 사용하는 강화 섬유입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화살을 회수하러 이동했던 베티나가 암살자가 남기고 간 잔해를 챙겨 왔는데 그 잔해에 남겨진 흔적이 도무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각하! 예사로이 넘겨서는 안 될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애초에 각하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안피노 공작이 지휘하는 외무부 소속 병사들이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문 때문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감히 각하를 습격한 암살자의 갑옷에서 이런 흔적이 나왔다는 건….”
잔해가 의미하는 사실 때문에 지나치게 흥분하기라도 한 걸까?
베티나는 어느새 월베니를 사제님이 아닌 각하라 부르고 있었다.
“그만, 지금은 거기까지만 하게. 아직 발견된 거라고 해 봤자 신원불명의 암살자가 떨어뜨리고 간 보호대 조각이 전부야. 그런 사소한 단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의심을 키울 필요는 없네. 그리고 이런 식의 부분적인 단서를 이용해 아군을 교란시키는 건 암살자 놈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 아니던가?”
“하오나 각하! 각하께서도 이곳에 오는 내내 관찰하셨잖습니까? 외무부에서 파견된 병사들이 요충지를 지키며….”
“어허! 자네도 그 수상쩍은 잔해를 보지 않았나? 우리보다 먼저 괴식물의 존재를 감지한 공작이 이곳에 병사들을 파견하여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지만….”
“자네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는 바이나 이 문제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세. 우리가 이곳에 온 건 괴소문의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함이라는 걸 잊지 말게. 이런 상황에서 괜히 의심의 범위를 넓혔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야.”
“알겠사옵니다, 각하.”
아직 의심의 앙금은 남아 있었지만 월베니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토를 달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베티나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
그런데 베티나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월베니의 표정이 180도 돌변했다.
쓸데없이 수행 기사들을 동요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을 뿐 사실 안피노 공작이 의심스러운 건 월베니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저 강화 섬유는 외무부 소속의 고위 장교들에게만 허락된 특수 장비여서 당분간 외무부 바깥으로의 유출을 금할 것이라고 다른 분도 아닌 전하께서 직접 하신 바 있으시다. 그런데 그 섬유로 만들어진 보호구를 암살자 놈이 사용하고 있었다고?’
꽈아악.
솥뚜껑처럼 커다란 월베니의 주먹이 거세게 흔들렸다.
루드비히 안피노.
혜성처럼 나타나 전하의 총애를 독차지해 버린 희대의 권신(權臣).
벌컥벌컥.
돌연 갈증을 느낀 월베니는 물주머니 가득 들어 있는 냉수를 입안 가득 들이켰다.
하지만 바짝 마른 목젖을 제아무리 적셔 봐도 어느새 가슴을 가득 채워 버린 의심의 불길은 도무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월베니 놈이 숲에 들어와 있다고?”
―그렇사옵니다, 주군. 인근 마을 사람들을 통해 확인된 정보 그리고 숲 안쪽에서 발견된 단서들을 종합해서 판단했을 시 대공이 수하 기사들을 이끌고 숲 내부로 진입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옵니다.
“하아, 우리 팔자 좋은 대공 각하께서 뭣 하러 그런 촌구석까지 가셨을꼬?”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기만 한 루드비히의 미간 사이로 굵직한 주름이 피어났다.
숲에서 관측된 보고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건 월베니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공이 최초로 숲 내부에 들어온 건 언제쯤인데?”
―진입로를 막고 있는 경비병들이 대공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 터라 정확한 시간까지는 알 수 없사옵니다. 다만 숲 내부를 순찰 돌던 ‘커그스’ 단원의 보고에 의하면 적어도 오늘 석양이 지기 이전에 진입을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고… 죄송합니다. 주군께서 경계에 소홀한 죄를 물으신다면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됐어, 월베니 놈이 잠입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경비병들이 감지해 내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니 너무 마음 쓸 것 없네. 오히려 뒤늦게나마 커그스가 놈들의 흔적을 찾아냈다는 점에 고마워해야지.”
같은 일족에 한해서는 한없이 자비로운 평소의 그답다고나 할까?
루드비히는 뱀파이어 지휘관을 책망하는 대신 격려와 위로를 보내는 걸 택했다.
“쥐새끼 같은 월베니 놈의 흔적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자취를 발견해 내다니. 커그스 놈들, 지난 10년간 꾸준히 돈을 쏟아부었다고 이제야 밥값을 하는 모양이야.”
커그스.
자신이 지난 10년간 키워 낸 암살자 조직의 이름을 읊조리는 루드비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만약 일족의 누군가가 루드비히를 찾아와 ‘당신이 직접 창설한 바 있는 커그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루드비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모품’이라 답해 줄 자신이 있었다.
열등한 인간들 사이에서 ‘대업’을 도모하다 보면 더럽고 무가치한 일에 손을 대야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는 했는데 그런 때를 위해 만들어진 비밀조직이 바로 커그스였기에….
인간 암살자들로 구성된 커그스는 그간 루드비히의 주도하에 발생한 온갖 더러운 일들의 뒤처리를 맡아왔고 이번 구니파스 실험에서도 자연스레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리고 월베니 대공은… 일단은 가만 냅 둬. 괜히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하오나 주군, 그러다 자칫 대공이 구니파스의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알아차리면 뭐 어때서? 상관없어. 어차피 정치 일선에서 소외된 지 오래인 외톨이 왕족 나부랭이일 뿐이야. 제깟 놈이 눈치를 챈다고 달라질 일이 뭐가 있겠어?”
현장에 파견되어 있는 지휘관 뱀파이어는 월베니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루드비히는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폴리다고스의 간부급 교수 놈들이 구니파스의 존재를 목격한다면 아주 조금은 신경이 쓰이겠지. 하지만 월베니 그놈은 폴리다고스와 연결된 끈 하나도 가지지 못한 외톨이. 그놈이 뭔가 수상한 걸 눈치채고 떠들고 다닌다 해도 그 의견에 귀를 기울여 줄 만큼 한가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루드비히의 대답에서는 아소토 왕국의 실권을 사실상 장악한 자만이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어차피 이번 실험의 주요 목적은 구니파스가 폴리다고스의 영역 내로 침투할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함과 은밀함을 갖추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있었고.
이 실험 무대에 월베니라는 불청객이 찾아든다 해서 아쉬울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월베니와 그 부하들의 동선은 잘 따고 있나?”
―물론입니다, 주군. 커그스 정예 인원 세 명을 붙여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려 놓았습니다.
“혹시 월베니 말고 추가적인 불청객이 더 있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숲에 무단으로 들어온 건 대공과 그 수행 기사들이 유일하옵니다.
“그럼 됐어. 적당히 구경할 만큼 구경하다가 그대로 꺼지라고 해. 월베니 놈이 뭘 보든 간에 걱정할 일은 없으니 철저한 감시만 유지하도록 하게. 어쨌거나 국왕의 친동생 아닌가? 혹시라도 놈의 신상에 문제가 생겨 국왕의….”
국왕의 시선이 집중되기라도 한다면 그거야말로 짜증나는 일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루드비히는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쾅쾅쾅.
수정구 너머 뱀파이어 지휘관이 있는 막사의 입구가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흔들렸던 것이다.
“긴급한 보고가 들어온 모양이니 가 보게.”
루드비히는 이번에도 아량을 베풀었고 뱀파이어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후 수정구를 가렸다.
그리고 잠시 후, 보고를 득한 뒤 다시 얼굴을 비친 뱀파이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주군, 급보이옵니다! 조금 전 숲 곳곳에 흩어져 있던 커그스 단원 7인의 사망이 확인되었사온데 개중에는 대공을 감시하고 있던 자들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하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방금 자네 입으로 대공 일행을 제외한 다른 놈들이 숲에 들어와 있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커그스가 당했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이야?”
―주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옵건대 숲 안쪽에 다른 인원이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이옵니다. 대공의 침투가 확인된 이후로 파견된 모든 커그스 단원을 동원하여 숲 전역을 이 잡듯이 뒤졌사오나 그 어느 곳에서도 다른 침입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사옵니다.
분명히 말해 뱀파이어 지휘관은 상당히 유능한 자였고 커그스의 수색 능력 또한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의 유능함이나 경지와는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경력을 보유한 전문가가 숲에 침투해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크나큰 비극이었다.
페이건의 입장에서 보자면 커그스의 수색 기술 따위는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했고.
이들의 추적을 교란하는 것쯤은 숨쉬기보다 수월한 일이었기에 죽었다 깨어나도 페이건과 카밀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던 지휘관은 자신의 판단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눈동자를 한 채 루드비히를 마주했고.
“그럼… 월베니 놈이 자신을 미행하는 커그스의 존재를 알아채고 외려 반격에 나섰다는 말이야?”
차마 그 눈동자를 의심할 수 없었던 루드비히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잘못된 결론을 도출해 내고야 말았다.
숲에 추가적으로 들어온 인원은 없는데 커그스가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그 범인은 월베니 일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잠깐! 대공을 미행하던 놈들만 시체로 발견된 게 아니라 그랬잖나? 그럼 뭐야, 월베니 놈이 부하들을 데리고 커그스를 사냥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
좀처럼 일족 앞에서 짜증을 내지 않는 루드비히였건만 이번만큼은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월베니를 곱게 내보내 준다는 계획은 놈이 숲 안쪽에서는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수립된 것이었다.
이 계획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라고 해 봤자 월베니가 구니파스의 존재를 마주하는 것 정도인데 이미 대부분의 구니파스는 2차 변이까지 마친 터라 그것 또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하필 이 타이밍에 월베니가 커그스를 공격하다니.
천하의 루드비히도 이런 상황은 예측하지 못했기에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명령을 하달하지 못했다.
‘월베니 놈이 커그스의 존재를 알아챌 정도로 암살자들의 생리에 조예가 깊었었나? 그런데 왜 자신을 미행한 자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커그스까지….’
현재까지 발생한 단원들의 피해는 모두 일곱 명.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참아 줄 법했으나 이 이상으로 피해가 확산된다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됐다.
비록 소모품이라고 하나 커그스 또한 루드비히가 준비한 카드 중에 하나.
대업을 위해 준비한 카드가 이토록 허망하게 소비되는 건 루드비히에게도 제법 큰 타격일 터.
‘더 피해가 커지기 전에 커그스에게 척살령을… 아니야. 혹시라도 대공의 행방이 이곳에서 끊겼다는 사실이 추후에 밝혀진다면 그때는 일이 필요 이상으로 커질 수 있어. 그럴 바엔 지금 당장 철수를… 하지만 번식 중인 구니파스를 옮기기 위해서는 상당수의 커그스를 동원해야 하는데 그랬다가 월베니 놈이 커그스를 습격이라도 하면….’
예측할 수 없는 월베니의 행동에서 비롯된 혼돈.
월베니가 어떻게 암살자들의 존재를 알아챘으며 왜 그들을 사냥하고 다니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기에 대응책을 마련할 수도 없는 일.
결국 루드비히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표정을 한 채 다음과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월베니, 이 덜떨어진 놈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 * *
“카밀라, 카밀라!”
“으응… 5분만 아니, 10분만 더….”
“그래, 그럼 그렇게 해. 30분 있다 다시 깨울 테니까….”
“하는 척하다가 번쩍 기상! 우하하, 속았지!”
이런 식으로 페이건을 놀라게 해 주겠다고 작정이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잠에 취한 척 짐짓 연기하던 카밀라는 돌연 상체를 번쩍 일으키며 두 눈을 번쩍 떴고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친구의 행동을 마주한 페이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너는 참… 이럴 때에도 기운이 넘치는구나.”
“누구 씨께서 든든하게 불침번을 서 준 덕분에 잠을 푹 잤거든. 자, 이제는 내가 페이건 군의 밤을 지켜줄 차례. 자, 이 누나가 잠자리를 봐 줄 테니까 푹 주무세용!”
순식간에 번데기 고치에서 탈피하는 데 성공한 카밀라는 페이건의 침낭이며 담요까지 펼쳐 준 후(침낭의 주인인 본인이 직접 하겠다며 만류했으나 반 억지로) 본격적인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와, 그런데 페이건 너도 참 어지간하다. 어떻게 움직인 흔적이 하나도 없지? 불침번을 설 때는 서더라도 요 근방 정도는 돌아다녀도 되는 거 아냐.”
“…그냥, 내가 원래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좋아하잖아.”
도무지 이동한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침번의 현장을 목격한 카밀라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표했으나 페이건은 평소 그대로의 표정을 한 채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 갈 뿐이었고.
“그럼 잘 자, 좋은 꿈 꾸고.”
“그래, 네 덕분에 무척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평온과 고요 속에 파묻힌 첫째 날 밤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