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8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3)화(18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3)
피잉.
앙상하게 뻗은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은 순간, 아주 미세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
혹시나 놈들이 움직임을 감지한 게 아닐까 싶어 시선을 아래로 돌렸으나 놈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라고나 할까?
내 움직임을 감지해 내기에는 이놈들의 감각이 너무나도 무뎠다.
계획대로 놈들의 머리 위를 점거하는 데 성공한 나는 소매 안쪽에 숨겨 놨던 은사를 풀어헤쳤다.
‘왼쪽, 오른쪽… 다시 또 왼쪽.’
서로 등을 맞댄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2인조 중에 왼쪽 놈을 우선 목표로 정한 나는 은폐 공정(工程)이 끝난 은사를 놈의 목덜미 인근까지 흘려보내는 데 성공했고.
“크륵.”
손가락 끝에 힘을 줘 은사를 팽팽하게 당긴 그 순간, 왼쪽 놈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으… 읍!”
“…!”
왼쪽 놈의 목구멍에서는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듯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고 동료의 목덜미를 휘어 감은 은사를 목격한 오른쪽 놈은 곧바로 손가락에 힘을 주려 했다.
경각의 위기에 처한 동료의 목숨도 도외시한 채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각오는 높이 사 줄 만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른쪽 놈의 손가락은 끝내 경보 장치에 닿지 못했다.
피잉.
은사를 당기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내 소매에서 빠져나간 바늘이 놈의 목젖을 관통해 버렸기 때문이다.
“끄르륵….”
오른쪽 놈은 관통된 구멍 사이로 피 분수를 뿜어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고 고장 난 마리오네트처럼 꿈틀거리던 왼쪽 놈의 발악도 오래지 않아 잦아들었다.
‘이걸로 그 괴식물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는 진입로는 확보한 셈인가?’
삽시간에 유명을 달리한 암살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쓰레기들을 위해 흘려 줄 눈물 따위는 가져 본 적이 없기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처리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거걱.
시체에 남겨진 내 흔적을 지우고 월베니 일행이 남긴 듯한 자상을 새긴 후 은밀한 곳에 송장을 처박아 두는 것으로 뒤처리 작업도 끝.
워낙에 수월했던 살인이었기에 그 뒤처리 역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월베니 경, 당분간은 긴장을 좀 하셔야 할 겁니다. 이 암살자들을 고용한 놈은 며칠 전부터 발생한 모든 살인극의 주인공이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물론 여차하면 내가 도와드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당분간은 몸조심하시길.’
물론 이 숲을 배회하고 있는 다른 이들은 ‘내가 저지른 살인’으로 인해 상당한 어지러움을 겪고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고통일 뿐.
내 일은 아니었기에 난 태연한 표정을 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갈색 피부의 소녀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그래서 어때? 앞쪽의 풍경은?”
“별거 없어. 딱히 위험해 보이는 건 없으니까 이대로 쭉 나아가면 될 것 같아.”
지금으로부터 15분 전, 나는 카밀라를 이곳에 남겨 두고 혼자 길을 나섰다.
카밀라에게는 ‘혹시 모를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니.’라는 핑계를 대고 길을 나섰지만 사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출발하기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숲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암살자 놈들이 이번 여정의 메인 디시인 괴식물로 향하는 길을 순순히 열어 줄 리 만무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정찰을 핑계로 카밀라의 곁을 떠나 길을 막고 있는 쓰레기들을 청소했고.
“그래, 다행이다. 그럼 이제 숲 최심부에 거의 다 온 거니까 오늘 내로 그 소문의 괴식물을 확인할 수 있겠네!”
그 덕분에 카밀라는 더러운 놈들을 마주하는 일 없이 괴식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잠깐만!”
그런데 식물을 향해 나아가던 카밀라가 돌연 손을 들어 올리며 나를 멈춰 세웠다.
“흐음….”
심상찮은 기운이라도 감지한 걸까?
코를 찡긋거리며 주위를 살피던 카밀라는 가방에서 꾸러미 하나를 꺼내 든 후 그 안에 보관하고 있던 약병을 내밀었다.
“이거 마셔, 체내로 스며든 오염된 기운을 배출해 주는 정화 포션이야. 주변 공기가 급격하게 탁해진 걸 보니까 정말 근처까지 온 거 같아.”
내가 포션 병을 비우는 걸 확인한 카밀라는 그녀의 애병 「서리 나루」로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렸고 곧 그녀와 나를 중심으로 냉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서리의 갑옷이라면 숲에 들어왔을 때부터 쭉 시전한 상태였잖아? 그런데 굳이 강화까지 해 주는 거야?”
“역시 알고 있었구나. 혹시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몰래 시전해 두려고 했었는데.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숲에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부터 시전해 둔 바 있는 보호 마법을 한 단계 강화시킨 카밀라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정면을 주시했다.
“내 임무는 괴소문의 확인과 채집이니까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하지만 그래도 준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페이건,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장설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네가 나보다 쎄다는 건 잘 알아. 하지만 네가 몇 번이고 말했던 것처럼 이건 기본적으로 내 임무잖아? 그러니까 최소한 여기서만큼은 내가 앞장을 서는 게 맞아.”
평소의 ‘장난꾸러기 아가씨’ 모드일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표정과 말투.
천공의 눈이 파견한 사자로서의 기백을 한 차례 다진 후, 카밀라는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숲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점점 진해지는 탁기(濁氣)가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사르르르륵.
“우와, 진짜 못생겼다! 무슨 식물이 저래?”
이미 나와는 며칠 전 마주한 바 있는 ‘괴소문의 주인공’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페이건, 제아무리 아는 게 많은 너라도 저렇게 괴상한 식물은 처음 보지?”
“응. 그런데 말이야, 이걸 식물이라고 불러도 될까? 이건 그냥 풀덤불의 외향을 뒤집어쓴 괴물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표현 같은데.”
“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흉측하기 짝이 없는 괴물을 마주한 충격이 어지간히도 컸는지 한 번 찌푸려진 카밀라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페이건, 지금부터 견본을 채취해야 하니까 잠깐 후방 경계 좀 부탁할게.”
하지만 잔뜩 찡그려진 채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는 미간과 달리 그녀의 양손은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눈앞의 괴물이 보기 역겨운 것과는 별개로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카밀라는 꼼꼼하고도 기민한 손동작으로 표본 채취를 완료했고 이곳에 도착한 1차 목표를 달성한 그녀의 입에서는 커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푸하, 다 했다! 어후, 국장님이 이걸 보시고 소리라도 내지르시면 어떡하지? 그분은 하이엘프니까 나보다 훨씬 더 강한 거부감을 느낄 텐데.”
“그런데 그렇게 채취만 하면 끝이야? 네가 하달받았다는 임무 중에 이 부정한 괴물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라거나 그런 건 없었어?”
“부정한 식물? 확신을 가지고 말하네. 혹시 클라디우스 공자님께서는 따로 짐작 가는 점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짐작은 무슨, 그냥 워낙에 보기 흉한 놈이니까 이참에 깡그리 태워 버리는 건 어떤가 싶어서 말해 본 것뿐이야.”
“흠… 나도 기분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그랬다가는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게 노출될 수 있거든. 우리의 방문이 노출되면 불손한 무리들을 괜스레 자극할 수도 있으니 일단은 지금 채취한 견본을 이용해 이 괴물을 효과적으로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먼저야.”
카밀라의 단호한 대답 속에는 흘려 넘길 수 없는 단서들이 숨어 있었고 난 짐짓 무관심한 표정을 가장한 채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불손한 무리에게 노출된다라… 이런 괴물을 만들어서 못된 짓을 꾸미려 드는 놈들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
“….”
“미안, 지금 건 조금 주제넘은 질문이었나?”
“아니, 전혀 주제넘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네 짐작에 대해서 이것저것 답변해 주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깝네.”
“왜?”
“그랬다가는 너한테 너무 많이 의존하게 돼 버리니까. 사실 이번 일만 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을 받았어. 그런데 여기서 더 이상 너한테 짐을 지울 수는 없지.”
주먹을 쥔 채 고개를 내젓는 카밀라의 모습은 제법 귀여웠지만, 그녀의 앙다문 입술에서는 귀엽다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기백이 맺혀 있었다.
“물론 네가 우리랑 같은 길을 걸어 준다면 나야 너무나도 반갑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당장은 안 돼. 너한테 너무 미안한 일이 될 거야.”
“그래, 뭐 말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됐어. 모르는 편이 더 좋은 일이라면 구태여 알 필요는 없는 법이니까.”
카밀라가 말한 ‘그녀의 길’에 대해서는 나름 짐작 가는 게 있었지만, 그 생각을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괜히 입을 더 놀려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나 나름대로 집중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터라 괜히 신경을 분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저것 섞여 있기는 하다만 기본적인 바탕은 식물. 건조제를 동원해 싹 말려 버린 후 발화탄을 이용해 연소(燃燒)시킨다면 전량을 소각하는데…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겠군.’
괴식물이 이룩한 군락 지대를 내 눈으로 직접 살피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 터라 필요한 물건의 종류와 그 총량을 계산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월베니 경의 이동속도를 고려하면 늦어도 오후가 저물기 전까지는 이곳에 도착할 것이고 그럼 그 양반들도 이 꼬라지를 오늘 중으로 관측할 수 있겠지?’
이 인근에서 체류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컸기에 오늘 밤의 계획을 빈틈없이 세워야 했고 월베니 일행의 이동 경로를 포함한 계획의 청사진이 완성될 무렵.
“페이건,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서둘러 돌아가면 오늘 중으로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마을로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뜨거운 물로 샤워도 하면서 노고를 푸는 거 어때? 생각만 해도 즐겁겠지?”
카밀라 대장님의 보들보들한 손이 내 어깨 위로 올라왔고 난 쉼 없이 꿈틀거리는 괴식물을 시야에 담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돌아가자. 그리고 이 보기 싫은 놈들을 다시 보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으면 좋겠네.”
* * *
대앵대앵.
창문을 타고 여관 지붕 위로 올라서자 마을 중앙에 위치한 시계탑이 내지르는 종소리가 보다 선명하게 들려왔다.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각은 새벽 2시.
숲도, 마을도, 사람들도 모두 잠이 들었을 무렵이 돼서야 외출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이 수상하게 보였던 걸까?
굴뚝에 걸터앉은 채 꼬리를 살랑이던 북슬이가 뚱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구태여 그 깊은 숲속까지 들어가서 죄다 불살라 버리고 오겠다니, 이럴 때 보면 너도 참 부지런하단 말이야.
‘너도 그 흉측한 몰골을 봤잖아. 난 말이지, 체질적으로 아주 깔끔한 사람이라 그런 불결한 광경을 그냥 두고 나오면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거든.’
―그래도 카밀라가 지금은 그냥 놔 두는 게 더 좋다고 그랬잖아. 네가 마음대로 설치고 다녔다가 괜히 일만 망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카밀라야 숲의 정황을 정확하게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한 거고. 그런데 그 숲에 누가 있고 또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까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잖아.’
시선을 돌리자 숨을 쉬듯이 꿈틀거리고 있는 숲의 외곽선이 눈에 들어왔다.
숲 안쪽에 우리를 제외한 다른 불청객이 있다는 사실 정도까지만 인지하고 있는 카밀라와 달리 나는 저 안쪽에 뭐가 있는지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지금쯤 저 안에서는 괴식물들과 괴식물들을 지키는 찌꺼기들과 길 잃은 월베니 대공이 각자의 밤을 지새우고 있겠지.
‘지금부터 내가 저지를 예정인 모든 행동의 결과는 그분들께서 알아서 떠맡아 주실 테니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러니 북슬아, 너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카밀라 곁만 잘 지키면 돼. 여기서 마무리를 잘 지어야지 돌아가서 맛있는 케이크도 잔뜩 먹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이걸로 북슬이는 설득 끝.
‘그리고 말입니다, 그런 불온하고 불경한 것들이 숲을 더럽히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그냥 물러서 버린다면. 그것 또한 클라디우스로서 직무 유기 아니겠습니까, 라무테 님?’
―우웅, 그렇기는 해도 페이건 혼자 덜컥 보내는 건 걱정이 되는데….
‘지난 며칠간 이미 쏘다니고 다닐 만큼 쏘다닌 장소입니다. 오늘 하루 더 간다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요?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은 접어 두셔도 됩니다.’
이걸로 라무테 님 설득도 끝.
곤히 잠든 카밀라를 지켜 줄 보모들과의 협상도 끝났으니 이제는 정말 출발해야 할 때.
허리를 굽혀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그리고 손질이 끝난 은사를 손가락에 휘어 감으며 다시 한 번 출사표를 밝혔다.
‘숲에 뿌리를 내린 부정한 것들도, 그 부정한 것들을 자라게 한 놈들도 깡그리 쓸어버리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그래야지 폴리다고스로 돌아가서도 편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 * *
“…흐음.”
나뭇등걸에 기대앉아 잠을 청하던 월베니 입에서 결국 한숨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사제님, 저희가 경계를 빈틈없이 설 터이니 편안한 자세로 수면을 취하시지요. 그렇게 불편한 모습으로 잠을 청하시다 혹여 건강에….”
“허허, 잠자리의 불편함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니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네.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지 통 잠이 오지를 않는구만.”
수행 기사가 자리에 누울 것을 권유했으나 월베니는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불편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말은 배려나 사양 같은 게 아닌 100% 진심이었다.
고작 이따위 불편함에 고통을 호소하기에 월베니의 육신은 너무나도 견고하고도 튼튼할 따름이니까.
‘…그토록 흉측한 모습을 한 괴식물이라니. 외무부의 병사들은 이 안쪽에 그런 괴물들이 있다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통제를 시행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밤바다 우리를 습격해 온 그 암살자 놈은 정체가 뭐지? 혹시 그 괴식물과 연관이 있기라도 한 걸까?’
대공을 잠 못 이루게 만드는 건 딱딱한 나뭇등걸이 아니라 꼬리를 물고 피어오르는 의문이었고 결국 월베니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해 내고야 말았다.
“…말해 보게. 자네들도 아까 그 괴식물을 봤던 때의 충격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들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사옵니다. 일전에 발견된 잔해를 통해 범상치 않은 외형의 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사오나 그리도 끔찍한 놈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제님께서는 일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의심을 품어서는 아니 된다, 하셨사오나 전 안피노 공작이 의심스럽사옵니다. 공작이 이 일에 관여한 게 아니라면 그의 병사들이 이 외진 곳까지 나와 통제선을 구축했을 이유가 없지 않사옵니까?”
월베니가 대화의 운을 떼자마자 여기저기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 오후 괴식물을 목격한 이래로 생각이 많아진 건 대공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에 목격한 일을 간단히 생각하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잠깐!”
수행 기사들이 토해 내는 성토의 열기가 한창 뜨거워질 무렵, 월베니가 돌연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잠시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게. 뭔가가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그리고 이 매캐한 냄새는….”
어느새 몸을 일으킨 월베니는 검 손잡이를 움켜잡은 채 주위를 경계했다.
이들의 열기가 제법 뜨겁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질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비유적인 의미의 열기일 뿐.
그런데 지금 코와 귀를 통해 느껴지는 이 기운은 무형의 열기 따위가 아닌, 실존하는 화재의 흔적이었고 그 사실이 월베니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챙.
채앵.
주인보다 한 템포 늦게 징조를 파악한 기사들은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
하지만 그들이 경계 태세를 취한 지 수 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습격(최근 들어 매일 밤 이어지던)은 없었다.
그제야 오늘 밤의 상황이 어제와는 조금 다르다는 걸 눈치챈 기사들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잠시 후 기사들 중 가장 시력이 좋은 베티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각하, 북쪽입니다! 북쪽을 보십시오! 저희가 오후에 목격한 그 괴식물이 군집하고 있던 방향에서 화재가 발생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