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8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5)화(18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5)
“흐으응.”
“네, 며칠간 외부에 나갔다가 지금 막 돌아온 참입니다.”
언제까지고 흐응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난 수긍을 해 버리고 말았다.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페어가 외부 일정을 소화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코델리아나 선배와는 이와 비슷한 일을 한 차례 해 본 적이 있으니 세세한 설명 없이도 이해를 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흐으응.”
그런데 내 착각이었던 걸까?
선배는 여전히 뚱한 표정을 한 채 나를 훑어 내리기만 할 뿐이었다.
“역시 외부 일정이라는 건 참 쉽지가 않아요. 그리 오랜 일정을 소화하고 온 것도 아닌데 폴리다고스의 침대와 욕실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니까요. 사실 지금도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온 참입니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면 조금은 피곤이 가실 것 같아서요.”
“….”
어라, 이상하다.
난 분명히 지금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뜻을 완곡하게 밝힌 바 있고 선배 정도로 총명한 사람이라면 내 말에 담긴 의도는 이해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데 왜 ‘그래? 알았어. 그럼 급한 일은 아니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라는 말을 해 주는 대신에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서 있는 걸까?
“너한테 전해 줄 게 있는데 잠깐 들어가도 될까?”
“지금요?”
“응, 지난번에 말했잖아. 방학이 다 가기 전에 다음 학기 학생회 업무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싶은 게 많다고. 사실은 클라디우스 부인께서 돌아가신 그날 저녁 너를 찾아왔었어. 그런데 네가 없더라고. 네가 카밀라랑 떠났다는 사실을 나는 한. 참. 후. 에. 야 알게 되었지 뭐야.”
방금 전, 한참 어쩌고 할 때 선배의 눈썹이 심상찮은 모양으로 꿈틀거린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오늘은 첫날이고 하니 필요한 자료를 전달해 주는 선에서 끝낼 거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솔직히 말하면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너를 지도 편달하겠다는 약속을 한 입장에서는 약간의 조바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학년 대표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숙지해야 할 사안이 꽤나 많거든.”
“약속….”
“나는 너한테 가르쳐 주겠다고 했고 너는 클라디우스 부인께서 떠나시면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어. 보통 이런 걸 약속이라고 그러지 않니?”
솔직히 말하면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건 거의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데 그걸 이리도 꼼꼼하게 기억하고 계시다니.
선배님 학년 대표로서의 제가 그렇게도 미덥지 못한가요?
그래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돌보는 심정으로 저한테 이러시는 거 맞죠?
“그렇죠, 세간의 시선으로 보나 뭘로 보나 약속이 맞죠. 들어오세요, 저를 위해서 선배님의 시간을 할애해 주시겠다면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너도 참, ‘우리 사이’에 뭘 이런 걸 가지고 고맙다는 말을 다 하고 그러니.”
한 번 더 솔직해지자면 선배가 말하는 ‘우리 사이’가 뭘 의미하는지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라는 한마디 말이 떨어지자마자 가늘게 날이 서 있던 선배의 눈초리가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았고 그 사실이 만족스러웠던 나는 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편한 데에 앉아도 될까?”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애초에 방이 그렇게 넓지 않은 터라 선택지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따뜻한 물을 가득 품은 욕조야, 미안.
아무래도 너와의 재회는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
“흐음, 그럼 여기에 앉을까? 아니야 여기는 햇볕이 너무 직접적으로 들어와서 눈이 부시네. 그럼 이 소파 위에, 아니야 이러면 자료를 펼치기가 번거롭잖아. 그럼 저 의자를 끌고 와서….”
선배님, 어떤 선택을 내리시든지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만 정신이 사나워지려고 그러니 어디가 되었든 간에 슬슬 정착을 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자꾸 그렇게 왔다 갔다, 두리번두리번하시면 꼭 내 방 구석구석을 살피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이기 십상이거든요.
“으음, 역시 자료를 펼쳐 놓고 살피려면 탁자가 있는 편이 좋겠네. 난 여기로 할게. 그런데 넌 왜 그러고 서 있어? 네가 맞은편에 앉아야 나도 시작을 하지.”
결국 선배는 방 중앙에 위치한 탁자 옆으로 자리를 잡았고 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준비된 자료의 목차를 살폈다.
효율적으로 정리된 자료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그녀가 이 작업에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학년 대표가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이렇게 많았나?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 분량을 이 정도로 깔끔하게 간추리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선배가 방문 앞에서 그토록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긴 나라도 이 정도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으면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정도는 들었을 거야.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으면 미안할 뻔했는걸.’
온수 목욕을 잠시 미루고서라도 선배를 방에 들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을 무렵.
“그런데… 외부 일정 중에 밥은 잘 먹고 다닌 거지?”
“네, 타지다 보니 혹시나 식사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딱히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더라구요. 식사량은 평소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후식도 꼼꼼히 챙겨 먹었구요.”
“카밀라를 말하는 게 아니라 페이건, 너에 대해서 묻는 거야.”
선배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자리에 없던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래 봬도 클라디우스 부인께 너의 안위를 위탁받은 몸이야. 그럼 이 정도 질문은 할 수 있는 거잖아?”
“아…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도 하셨나요?”
“응,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콕 찝어서 몇 번이나 부탁하고 가셨어. 그리고 설령 부인의 말씀이 없었다 해도 흠, 흠… 너와 몇 날 며칠을 같이 보낸 경험이 있는 선배가 걱정을 좀 해 주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니?”
“아닙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죠. 아, 저는 밥 잘 먹었습니다. 저는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서요.”
“다행이네, 그럼 시작해 볼까? 첫 페이지에 그려 놓은 표 두 번째 칸을 봐 볼래? 2학기에 예정된 학교 공식 행사를 정리해 놓은 거거든. 학년 대표는 행사가 있기 2주 전부터….”
크리스틴 선배의 전달력은 무척이나 뛰어났기에 그녀가 준비한 내용은 술술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시작하기 전에 오늘은 길게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혹시 이다음 일정이 어떻게 되니?”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유물국장님을 뵈러 갈 생각입니다.”
“국장님을? 그것도 저녁 시간대에?”
“네, 오는 길에 행정실에 들렀는데 복귀하는 대로 집무실로 와 달라는 전언을 남겨 놓으셨더라구요. 국장님께서 시간대를 가리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찾아 달라는 말씀을 하셨으니 오늘 저녁에 바로 방문해 볼 생각입니다.”
“…넌 항상 바쁘구나. 그런데 표정은 왜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는 거야? 멋모르는 사람이 네 얼굴만 보면 세상 한가한 사람이라고 오해할 것 같아.”
“저도 그 점은 조금 불만이긴 한데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렇게 생겨난 걸.”
여전히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한 채 짐을 챙기는 선배를 보고 있자니 깜빡 잊고 있었던 말이 떠올랐다.
얼굴을 마주한 채 이런 말을 하는 건 낯 뜨거운 일이었지만 지금 말을 꺼내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난 큰맘 먹고 하지 못했던 한 마디를 건넸다.
“생각해 보니까 선배님께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아직 드리지 못했더군요. 인사드리는 게 너무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배려 덕분에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그,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그것도 한참 지난 일을 왜 가, 갑자기… 아무튼 부인께서 만족하셨다면 다행이네.”
“사실 어머니도 동생들도 제법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선배님 같은 유명 인사께서 그런 환영식을 준비해 주신 덕분에 어머니께서 안심하실 수 있었습니다.”
“유, 유명 인사라니 너 자꾸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할래?”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도 가족들 앞에서 어깨가 쫙 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부 선배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만하라니까!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됐어, 잘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해!”
또다시 튀어나온 우리 사이.
솔직히 말하면 ‘그 우리 사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 건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 수업은 내일모레 정도에 했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저야 괜찮지만 선배가….”
“네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
“…!”
“왜?”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럼 내일모레에 하는 걸로 하고 내가 오늘이랑 비슷한 시간대에 다시 방문할게. 그때는 오늘보다 조금 길어질 거야. 너한테 안내해 줘야 할 일이 꽤 많이 남았으니까.”
네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다니, 다른 사람도 아닌 크리스틴 코델리아나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럼 갈게.”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선배님.”
달칵.
당장에라도 문을 나설 것처럼 손잡이를 잡은 선배.
“가기 전에 딱 하나만 더 물어볼게.”
“말씀하시죠.”
하지만 그대로 걸음을 옮길 것만 같았던 선배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멈춰 섰다.
“…어땠어? 카밀라와 단둘이 보낸 시간은?”
“네?”
“다른 사람 동행 없이 둘만 다녀왔다며. 그럼 단둘이 시간을 보낸 게 맞잖아. 그 시간에 대한 소감을 묻고 있는 거야.”
안개처럼 가는 살얼음이 은밀하게 껴 있는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등을 보인 채 멈춰 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선배가 굳이 오늘 내 방을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배님, 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놈과 훌쩍 외부 일정을 떠나 버린 카밀라가 걱정돼서 잠을 이루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동생을 아끼는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만 그런 이유로 이곳에 온 거면 진즉에 말씀하시지… 그럼 시간 낭비할 일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대답을 해 줘야 여동생이 걱정되어 후다닥 달려온 언니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어땠니? 그렇게 예쁜 데다, 하는 행동도 사랑스러운 여행 파트너와 같이 시간을 보냈으니 당연히 즐거웠겠지?”
“글쎄요, 제 일이 아니라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즐겁고 어쩌고를 따질 정도로 한가한 여행이 아니었던 터라…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리기 힘들 것 같은데요.”
“어머! 카밀라로도 만족이 안 된다니, 너 안 그런 척하면서 눈이 되게 높구나. 역시 얼굴값 할 줄 알았어.”
얼굴값을 굳이 따진다면 다른 사람도 아닌 유리안 알렉세예브와 약혼을 한 선배를 따라갈 사람이 있을까요.
“클라디우스 부인을 다시 만나거든 말씀드려야겠네. 부인의 맏아들께서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저 그 기준이….”
“선배와 같이한 여정만큼 여유가 있었다면 즐거웠는지 아닌지를 그 자리에서 고민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카밀라한테 물어봐도 대답은 비슷할걸요.”
“…여기서 갑자기 내 얘기가 왜 나와?”
“그냥 둘이서 보낸 여정을 말씀하시니 선배님과 같이 보낸 시간이 생각나서요. 어느 쪽이 더 마음 편한 여정이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선배님 쪽인 것 같아요.”
“정말?”
“네, 여행이라는 게 물론 두근거리는 맛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는 법이잖아요?”
눈치가 빠른 분이니만큼 이 정도 말했으면 ‘저와 카밀라는 서로를 의지할 만큼 각별한 사이는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라는 내 의도를 이해했겠지.
선배님, 저와 카밀라는 선배님께서 염려할 법한 사이 근처에도 가 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무엇보다 카밀라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래, 카밀라가 사정없이 귀엽기는 하지만… 누가 더 의지가 되느냐를 묻는다면 내가 조금 더 낫지. 내가 키도 더 크고, 나이도 많고, 조금 더 어른스러운 데다… 머리카락도 내가 조금 더 결이 고우니까.”
응? 마지막에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마냥 눈만 높은 줄 알았더니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있구나.”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누그러진 목소리.
그래요, 충분히 안심이 되셨으면 이제 그대로 나가 주시면 됩니다.
“갈게, 그럼 내일모레 보자.”
달칵.
선배는 그 긴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나서 버렸고 그녀가 방을 떠나자마자 난 욕조로 달려가 차갑게 식어 버린 물을 비운 후 다시 뜨거운 물을 받았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 두 시간 반.
서둘러 반신욕을 한다면 그래도 두 시간 정도는 숙면을 취한 후 유물국장님을 뵈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요? 엘프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어색하지만, 이곳에 있는 물건들 중에는 그 장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금전적 가치를 가진 것들도 수두룩한데… 어차피 하나를 받을 거라면 다른 걸 고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이걸로 하고 싶습니다.”
“으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운데… 꼭 금전적 가치가 아니더라도 페이건 군한테는 제일 좋은 물건들 중에 하나를 주고 싶었단 말이에요. 저기에 있는 마력 증폭 탈리스만이나 보호 마법이 각인된 목걸이 등등 치료술사에게 훨씬 더 유용한 물건들이 차고 넘치는데….”
카밀라와의 동행에 대한 보수로 ‘가죽 장갑’을 고른 내 선택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는지 유물국장은 발까지 동동 굴러 가며 다른 선택을 할 것을 권유해 왔다.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손발이 차서 장갑이 없으면 겨울을 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짐을 싸면서 장갑을 깜빡했지 뭡니까? 그래서 손에 맞는 장갑을 찾던 중이었는데 마침 여기에 좋은 물건이 있네요. 전 이걸로 하겠습니다.”
“뭐에요? 방금 그 말은 페이건 클라디우스식 농담인가요? 호호, 뭐… 좋아요. 조금 서운하기는 하지만 본인이 좋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리고 어쨌거나 페이건 군은 또 다른 선물을 받을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저한테는 아직 한 번의 선택권이 더 남아 있지요.”
“맞아요. 그러니까 그 아이를 돌보는 것도 잊지 말고 신경 써 줘요. 나도 페이건 군이 성과를 내는 걸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게요.”
하지만 요지부동인 내 태도에 결국 유물국장님도 그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짝.
유물국장님이 손뼉을 치자 장갑이 담겨 있는 유리 상자가 내 앞으로 불쑥 날아왔고.
짝짝.
두 번의 박수를 연이어 치자 굳게 닫혀 있는 유리문이 열렸다.
“가져가요. 지금 이 순간부로 그 아이의 주인은 페이건 군이에요.”
“감사합니다.”
상자 안으로 손을 뻗어 장갑 표면에 손을 얹자 녀석 특유의 서늘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상태를 보아하니 각성은 초기화된 것 같은데. 이 차가운 감촉은 여전하구나. 짜식, 10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낯가리는 성미는 여전하네.’
스르륵.
지체 없이 장갑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헐렁했던 장갑이 내 손가락 크기에 딱 맞게 조여졌다.
―어머! 얘 좀 봐? 새 주인을 만났다고 바로 표정이 바뀌네.
―헤에, 페이건 네 손에 맞춰 알아서 크기가 바뀌는 장갑이라니… 신기하다.
스스로 새 주인을 맞이할 준비에 들어간 장갑이 신기했는지 마스코트들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벌써부터 놀라고 그러면 안 되는데. 이 녀석이 가진 진짜 능력은 크기 조절 따위가 아니거든.’
스스로 크기를 바꾸는 게 이 녀석이 가진 능력의 전부였다면 재회가 이토록 반갑지도 않았을 터.
난 유물국장님과 마스코트들의 눈을 피해 장갑에 아주 살짝 아르카의 기운을 불어넣었고.
파짓.
그 순간 오직 내 눈에만 보이는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좋아. 아직 각성이 덜 되어 당장의 그 위력은 떨어졌지만, 능력 자체는 멀쩡해.’
옛 친구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자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찬 감동이 밀려들어 왔다.
갈브레이드 3세를 처단하러 갈 무렵의 나는 이미 온전한 경지에 다다른 터라 이 녀석의 도움이 필요치 않았고 때문에 장갑을 스승님께 맡겼지만.
내 아르카가 6단계에 다다르기 전까지만 해도 난 이 녀석에게 정말이지 큰 도움을 받은 바 있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내가 중력을 다스리는 권능을 손에 넣지도 못했을 거고 그랬다면 전생의 난 훨씬 더 많은 난관에 맞닥뜨려야만 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