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86)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6)화(186/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86)
지금으로부터 약 170여 년 전.
대륙 동남부에 위치한 베가락 사막에는 인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초대형 마수가 서식하고 있었다.
모래를 삼키고 불을 토해 내는 것을 주특기로 삼는 이 몬스터는 거대한 도마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고약한 성질머리의 괴물 때문에 인근 부족 사람들은 하루하루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결국 괴물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부족 사람들이 용맹한 전사들을 한데 모아 몇 번이고 토벌에 나섰으나 기세 좋게 출발했던 토벌군은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엄청난 덩치와 단단한 비늘에 날카로운 이빨까지 가진 괴물을 상대하는 게 애초에 쉬울 리 만무했지만, 토벌을 번번이 실패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괴물 도마뱀에게는 중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사막의 전사들이 제아무리 용맹하다 한들 가만히 있어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막에서 이토록 엄청난 초능력을 가진 괴물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괴물 도마뱀이 토벌대를 삼켜 버리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놈의 악명은 점점 더 드높아졌고 일곱 번째 토벌대마저 전멸해 버린 이후로 결국 사막의 사람들은 놈을 사냥하는 걸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모든 토벌대를 격퇴한 괴물은 그 후로도 영원히 사막의 왕으로 군림할 것만 같았다.
‘또 모르지, 그놈이 그 타이밍에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사막의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을지도.’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놈의 폭거는 ‘잠입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어떤 청년 암살자’가 베가락 사막에 도착하는 순간을 기해 종언을 고했다.
‘생각해 보면 전생의 나도 그때만큼은 참 운이 좋았어. 안 그래도 잠입을 용이하게 해 줄 아이템 제작 재료를 찾고 있었는데 중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심장을 가진 괴물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 줬으니 말이야.’
도마뱀은 제 딴에는 사막의 폭군으로서의 관록을 보여 준다며 깝죽댔지만 이미 상당한 경험을 쌓은 내 단검을 당해 낼 수는 없었고 전투가 시작된 지 7시간이 경과한 시점에 난 놈의 모가지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놈의 숨이 끊어지는 걸 확인한 직후 난 놈의 배때기를 가른 후 중력을 다스리는 권능이 스며들어 있는 심장을 적출해 냈다.
괴물의 심장이 웬만한 사람 몸통만큼 커다랬던 터라 그 처리 과정이 다소 버겁기는 했지만 결국 난 놈의 권능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심장의 내피(內皮)를 뜯어낼 수 있었다.
이후 그 가죽을 들고나와 오래전부터 협업해 왔던 장비 제작 장인을 찾아갔고 마침내 그와 나의 협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중력 제어 장갑이었다.
난 완성된 장갑에게 바람의 신과 관련된 전설에서 따온 「엑셀」이라는 이름을 선사했고 「엑셀」과 함께한 이래로 지형의 고저 차를 무시한 이동 능력을 구사하게 됐다.
그리고 나와 「엑셀」의 친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나를 따라다니는 악명의 수위 또한 급속도로 높아져만 갔다.
‘「엑셀」의 도움 없이도 고저 차의 극복이 가능해진 건 아르카 6단계에 들어선 이후. 이번 생의 내가 3단계의 문턱에서 장기간 정체를 겪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이 녀석과 꽤나 오랫동안 붙어 다녀야겠네.’
물론 예전처럼 「엑셀」을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어쨌거나 전생의 친구와 재회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럼 국장님,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그런데 페이건 군은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좀 의외네요. 그 선물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요?”
“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손발이 차서….”
“알았어요, 알았어. 자세한 건 묻지 않을 테니까 그 페이건 클라디우스식 농담은 그만해도 돼요. 아무튼, 조심해서 들어가고 고생을 한 만큼 당분간은 푹 쉬어요.”
“감사합니다. 국장님께서 베푸신 은혜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페이건 군 본인이 이뤄 낸 성과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줬을 뿐인데 은혜라고 할 게 뭐가 있겠어요? 후후, 난 기쁜 마음으로 페이건 군에게 다음번 선물을 줄 수 있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우리 다음에 꼭 다시 만나요. 알겠죠?”
전생의 내가 해 놓은 봉인 덕분에 유물국장은 「엑셀」이 가진 진정한 힘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고 난 그 사실에 안도하며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럼 잠깐 시험이나 한번 해 볼까?’
유물국장의 개인 집무실에서 기숙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으슥한 숲길이 자리 잡고 있었고 숲길 초입부에 들어선 난 북슬이를 겨냥한 채 손을 뻗었다.
―케이크! 케이크! 내일은 맛있는 딸기 케이크랑 치즈 케이크를 잔뜩 먹을 거야아아, 어어!
두 쌍의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가던 북슬이가 손발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고 둥실둥실 허공을 떠다니던 동글동글 몸통 또한 곤두박질쳤다.
―어어, 왜 이렇지!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어!
북슬이는 안간힘을 쓰며 날개를 파닥거렸지만, 갑작스레 생성된 중력 감옥은 녀석을 놓아주지 않았고.
―으갸아, 떨어진다아아! 어, 뭐였지?
녀석의 펑퍼짐한 엉덩이가 바닥에 닿기 직전에서야 중력 감옥에서 벗어난 북슬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허겁지겁 날아올랐다.
―뭐였지? 라무테야, 지금 갑자기 내 몸이 무거워졌거든. 넌 멀쩡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 근데 왜 나만… 페이건, 너 혹시 뭐 느낀 게… 잠깐! 너 왜 그렇게 음흉하게 웃고 있어? 이이… 너지! 네가 그랬지, 이 나쁜 놈!
주위를 살핀 후에야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북슬이는 그대로 내 가슴팍에 몸통 박치기를 날려 댔다.
―나쁜 놈! 나쁜 놈! 하늘 같은 스승님의 옥체에 그런 못된 장난을 하다니! 너 내가 오늘은 절대로 가만 안 놔둘 거야.
‘미안, 장난이었어.’
―장난? 감히 스승님한테 장난이라니! 그리고 이 세상에는 해도 되는 장난과 안되는 장난이….
‘케이크 두 개, 아니 세 개 더 사 줄게. 그럼 됐지?’
―…있는 법이지만 이 스승님은 마음이 넓은 분이시니까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도록 하겠어, 흠흠.
「엑셀」을 스승님에게 맡긴 지 백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예전의 기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옛친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런데 있잖아,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갑자기 내 몸이 슈웅 하고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는데. 응? 어떻게 한 건지 말해 봐, 얼른!
‘슈웅? 그러니까 이런 걸 말하는 거지?’
장갑을 낀 채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에는 녀석의 몸이 그대로 솟구쳐 올랐다.
―우와! 이제는 몸이 또 엄청 가벼워졌어. 우하하!
속도 좋다고나 할까?
케이크 세 개에 모든 화를 풀어 버린 북슬이는 역중력이 선사하는 즐거움에 취한 채 꺅꺅 소리를 내지르기에 바빴다.
―장갑이지! 캬캬, 너 그 장갑을 낀 덕분에 이런 걸 할 수 있게 된 거지? 어떻게 한 거야? 아니 그보다 그 장갑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책에서 읽었어. 너는 내가 책만 보면 따분한 짓 그만하고 나가 놀자며 난리를 피우지만, 책이 괜히 지식의 보고라 불리는 게 아니야. 이번에도 봐, 책을 안 읽었으면 이런 좋은 게 파묻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엉뚱한 물건을 고를 뻔했잖아.’
―우하하, 거짓말! 네가 보는 책 어디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야!
‘믿지도 않을 거면 애초에 왜 물어봤냐?’
난 그 후로도 한동안 북슬이를 대상으로 「엑셀」이 가진 힘을 실험했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어느 정도까지 중력을 조절할 수 있는지 제법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애초에 만들 때부터 아르카의 영향이 있었던 탓인지 결국 「엑셀」의 중력 제어는 아르카의 단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가 한계로군.’
실험을 끝낸 나는 중력 제어를 거둬들였고 그제야 「엑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북슬이는 가쁜 숨을 내쉬며 내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헥헥, 지금 그거 재미있기는 한데 오래 하니까 힘들다. 위아래로 휙휙거리니까 어지러워.
‘아이고 영감님, 나이도 있으신 분이 운동은 안 하고 매일 같이 과자만 먹어 대니까 몸이 그렇게 삐거덕거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시끄러! 감히 누구보고 영감이래! 그래서 내일은 뭐 할 건데?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나 케이크부터 사 준 다음, 그다음부터는 뭐 할 거야?
‘일단 보급 창고에 들러 열매의 성장을 확인한 후, 그와 관련된 일로 누구를 좀 만나러 갈 생각이야.’
―열매? 아! 지난번에 열매 가공 관련해서 동업을 제안한 그 연금술사 드라콘을 만나러 갈 생각이구나. 페이건, 그 제안 받아들일 생각인 거니?
키에르고의 제안 이야기가 나오자 라무테 님은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였고 난 지금쯤 내 답변을 기다리느라 몸이 달아 있을 동업자(예비) 양반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일 한 번 더 만나 보고 결정하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생각을 해 보고 싶기는 한데 나이 드신 분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좀 그래서요.’
* * *
“흐흐흥♪.”
길게 뻗은 복도를 사뿐사뿐 내딛는 크리스틴의 발걸음이 유독 가벼워 보였다.
페이건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한껏 달아오른 고양감을 다스리기 위해 예정에 없던 산책까지 하고 왔지만 들뜬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더 의지가 된다고 말했어. 하긴 서로를 알아 온 시간도 내가 훨씬 더 길고 나는 5학년 선배라는 포지션을 점하고 있으니 나한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재회한 이래로 꾸준히 기울여 온 노력이(페이건은 그녀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드디어 빛을 발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한없이 부풀렸던 것이다.
‘좋아, 일단 페이건에게 믿음직한 선배가 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니까 이다음부터는 페이건을 휘말리게 하지 않는 선에서 차근차근… 응?’
그런데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던 크리스틴의 표정이 문 손잡이를 잡은 순간 돌변했다.
‘어휴, 내가 주인 없는 방에 막 들어오는 건 참아 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이 바보는 하여간….’
손잡이 너머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인기척.
크리스틴은 한숨을 살짝 내쉰 후 문을 열었고 오늘도 기운차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그녀를 반겨 줬다.
“자기야!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한참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와?”
현관과 주방을 지나 침실로 들어서는 모퉁이를 돌아서자 침대에 벌렁 누워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바보의 모습이 보였다.
아그작아그작.
눈동자를 커다랗게 한 채 과자까지 야무지게 씹어 먹고 있는 약혼자를 보고 있자니 갑작스러운 두통이 느껴져 크리스틴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움켜잡고 말았다.
“저기… 우리가 오늘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가?”
“아니. 그런데 우리가 꼭 약속이 있어야지 만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잖아? 나는 자기의 달링이고 자기는 나의 피앙세. 달링이 피앙세를 만나러 가는데 약속이 뭐가 필요해?”
반동을 이용해 몸을 일으킨 유리안은 단숨에 크리스틴의 후방을 점한 후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었다.
“흐음… 좋은 냄새, 자기 정원 갔다 오는 길이구나. 머리카락에 자기 얼굴만큼이나 예쁜 내음이 잔뜩 배어 있는 거 있지.”
“…과자 먹은 손으로 머리카락 만지지 마.”
“아니야, 과자는 왼손으로만 먹었어! 봐? 자기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는 건 오른손. 왼손은 이렇게 자기 뺨에 닿아 있잖아.”
마음 같아서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뺨도, 아니 과자 먹은 손을 씻기 전에는 내 몸 어디에도 손대지 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이런 일을 가지고 일일이 목소리를 높이기에는 그간 두 사람이 자아낸 인연의 실이 너무나도 굳건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 진짜 어디 갔다 오는 건데? 나 여기서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렸단 말이야.”
“약속도 없이 막 찾아오니까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는 거잖아! 하아… 됐다, 됐어.”
“우우웅! 자기야! 어어디이가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유리안은 마음 편히 응석을 부려 왔고 결국 크리스틴은 이번에도 그 어리광을 받아 줄 수밖에 없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만나고 오는 길이야. 지난번에 말했잖아, 다음 학기에 예정된 학생회 일정이며 대표 업무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기로 했다고. 오늘 그 아이를 만나서 전체적인 강의 일정에 대한 합의를 보고 오는 길이야.”
“어, 페이건 군은 카밀라랑 어디 갔다면서! 돌아온 거야?”
“응, 오늘 오후에.”
“그럼 카밀라도 복귀했겠네?”
“그렇겠지. 같이… 떠났으니까 같이 돌아오지 않았겠어?”
“그런데 자기는 그걸 어떻게 빨리 알았어? 나는 자기가 말해 주기 전까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몰라.”
동원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1학년 남자 기숙사의 동향을 살폈다고 대답할 수 없었기에 크리스틴은 짐짓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흐음… 이거, 이거 수상한데!”
하지만 쓸데없는 일에만 빠릿빠릿한 유리안답게 그녀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추궁할 채비를 갖췄고.
“그래서 오늘 회의는 어땠어? 아일리 바스티아가 자기 의견을 통과시키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크리스틴은 자칭 달링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어그로가 확실한 주제를 대뜸 꺼내 들었다.
“오늘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 줘. 아일리 바스티아, 그 미친년은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