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9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0)화(19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0)
“나 같은 경우에는 바다였어. 그런데 유리안한테 물어보니까 걔는 폭죽이 터지는 밤하늘이었다고 하더라고. 흐음, 이 결과로 예상컨대 페이건 군 너 같은 경우에는 하얀 눈이 자욱하게 쌓인 숲이 아닐까?”
마고니아의 첫걸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말고 대뜸 풍경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는 선배.
바다와 폭죽 그리고 설원이라니.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범주의 풍경들 사이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하나 찾자면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고성 내부’에서 목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광경이라는 점이었다.
“선배님께서는 마고니아에 첫걸음을 내디뎠을 당시에 바다를 목격하셨다는 건가요?”
“응. 그리고 유리안이 제일 처음 본 건 밤하늘이었고. 나는 경험이 두 번밖에 없는 터라 두 번 모두 바다였지만 유리안은 네 번째부터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대. 가장 최근에는 솜털로 만든 토끼가 뛰어노는 구름을 봤다는데 아무래도 이건 거짓말인 것 같아.”
현실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의 나열과 ‘감각과 이별’ 해야 한다는 조금 전의 발언.
이 두 가지 단서를 조합해 결론을 도출해 보자면….
“대규모의 환영 마법…?”
“…이었다면 나와 유리안 둘 중 한 명은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다 쳐도 유리안의 마법 감응 능력은 대부분의 교수님들을 훌쩍 상회하는 수준이거든. 그런데 마고니아를 열 번도 넘게 드나든 유리안은 확신을 가진 채 말하고 있어. 그때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은 절대로 환영 마법 따위가 아니라고 말이야.”
사람별로 그리고 방문하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라니.
발언자가 크리스틴 코델리아나가 아니었다면 좀처럼 믿기 힘들었을 발언이었다.
‘환영 마법이 아니라면 전송? 하지만 보내는 건 그렇다 쳐도 다시 불러와야 할 거 아냐. 폴리다고스의 상공처럼 극도로 안정된 마나 분포도를 가진 장소에서 그렇게 원활하게 전송 마법을 발동시키는 게 가능할까? 그것도 매번 행선지를 바꿔 가면서?’
마고니아의 첫인상에 대한 아주 약간의 단서를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지의 장소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더 커질 뿐이었다.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게 어려울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진입 방식부터 사람을 이토록 어지럽게 만들 줄이야.
역시 위대하신 선조님과 관련된 장소, 이번에도 이 부족한 후손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군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마고니아에서의 처음이 무척이나 어지럽고 당황스럽기만 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아. 페이건 네가 처음 맞이하는 풍경이 어떨지는 잘 몰라도 넌 그 장소에서 아주 깊은 편안함을 느끼게 될 거야. 내가 그랬고 유리안이 그랬으니까.”
“말씀해 주신 장소의 풍경을 생각하면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낯선 공간에 방치되는 셈인데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던가요?”
“전혀, 그런 생각이 들 여지는 아주 조금도 없어. 딱히 설명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마주한 바다가 꼭 이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거든.”
마고니아에서의 첫 순간을 떠올리는 선배의 입가에는 어느새 선명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우리는 지금부터 서로를 알아갈 예정이니까 그냥 마음 편히 이 공간에 모든 걸 맡기렴, 하고 말이야.”
“선배님처럼 신중한 분께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을 정도라면 그 공간에 어떤 종류의 암시 마법이 걸려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군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와 유리안은 그때 느낀 감정이 마법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리고 그렇게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우리를 맞아 줬던 풍경이 조금씩 흩어져 가고 마고니아의 주인들이 우리를 맞이하러 모습을 드러내는 거야.”
툭툭거리는 말투와 달리 마고니아에 관한 설명을 늘어놓는 선배의 눈동자는 제법 기뻐 보였고 그 사실에 용기를 얻은 나는 추가 질문을 던졌다.
“말씀하신 마고니아의 주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미안, 그건 좀 힘들 것 같아. 네가 최초의 장소에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주인’이 보여 주는 모습 또한 달라지는 걸로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설명을 해 준다 한들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야.”
“아, 그렇군요.”
“그리고 사실 마고니아에 관한 경험을 들려주는 것도, 그에 관한 질문을 물어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통용되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마고니아는 폴리다고스의 모든 재학생들에게 비경 같은 곳이니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거든.”
호수처럼 투명했던 크리스틴 선배의 눈동자가 반달 같은 모양으로 이지러졌고 그녀는 매끈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를 저질렀네요.”
“하지만 페이건 너한테라면 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해 줄 준비가 되어있었어.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향한 나만의 특별 서비스랄까?”
“….”
“왜 또 그런 표정이야? 우리 사이에.”
뭐랄까, 이 사람과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우리 사이’라는 단어의 미궁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음 호수 같은 표정.
그리고 그 표정과는 확연히 다른 적극적인 말투의 조합이라니.
카밀라와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날 대하는 선배의 태도가 달라진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내 착각인 걸까?
“감사합니다. 사실은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던 터라 고민 중이었는데 선배님의 조언 덕분에 생각이 명쾌해졌어요. 아, 그리고 괜찮다면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게 있는… 아닙니다.”
“뭔데! 왜 말을 하다 말아?”
“사실은 어떤 인물에 대해 묻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미 결정을 내린 마당에 굳이 선배님을 번거롭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혹시 그 인물이라는 게 아일리 바스티아를 말하는 거니?”
“….”
“대답을 못 하는 거 보니 맞구나.”
방금 전까지는 비교적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왜 또 표정이 이렇게 변하셨을까?
“뭐가 궁금했던 건데?”
“사실은 아일리 바스티아 선배가 저한테 유별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그분이 제가 아닌 다른 남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여쭙고 싶었습니다.”
“…!”
“물론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자의식 과잉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아무래도 바스티아 선배의 태도가 조금….”
“자의식 과잉 같은 거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닌 목석처럼 둔한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겠지.”
잔떨림을 자아내며 떨리는 선배의 속눈썹 움직임에서 강력한 적개심(유리안 선배가 품고 있는 것보다 훨씬 노골적인)이 느껴졌다.
“넌 어떨지 몰라도 난 그 여자를 잘 알아. 아일리 바스티아의 평소 버릇을 보건대 너 정도 되는 아이라면… 한참 전부터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을걸.”
아일리 바스티아.
‘선배’라는 존칭이 따라붙지 않는 그녀의 이름을 듣는 건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미 결정을 내린 일이라… 싫다, 아일리 바스티아가 좋아서 날뛰는 모습만큼은 정말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사실은 예전부터 마고니아에 대해서는 제법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배의 조언을 듣고 나니 더욱더 큰 관심이 생겨 버려서요.”
“그래, 마고니아에 빨리 오르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지. 나도 그 점에는 동의해.”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부리는 수작이 무서워 제가 도달하고 싶은 목표에서 멀어질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풋!”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붉게 달아오르던 선배의 얼굴이 조금씩 가라앉아 갔다.
내가 아일리 바스티아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 중에는 ‘에지세크 교단의 존재’ 또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걸 이 사람 앞에서 말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는 마고니아 핑계를 대는 수밖에.
“그래, 네 일이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하렴. 대신 내가 하는 강의도 꾸준히 참석하는 거 잊지 마. 알겠지?”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학생 대표로서 푸른 달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선배의 수업 참여가 나오는 게 맞아?’라는 의문이 든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만족한 표정으로 수업을 진행해 가는 선배를 괜히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에 질문을 참았고.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수업 또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음… 다음 수업은 언제로 잡는 게 좋을까?”
그리고 수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다음 일정을 잡는 선배를 향해 난 이전부터 줄곧 신경 쓰이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선배님, 혹시 제 태도나 말투 중에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신경 쓰이는 점이 있지는 않으실까요?”
“뭘까? 수업도 잘 마친 마당에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저랑 대화를 나누실 때의 선배님 모습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데?”
“저를 대하실 때의 선배님은 조금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배님, 혹시라도 제 행동 중에 선배님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점이 있다면 즉시 시정하도록 할 테니 말씀을….”
“없어.”
나름 고민 끝에 한 질문이었는데 선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내저어 버린 후 자신의 한쪽 뺨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말했다.
“네가 나를 그 정도로 세심히 살피고 있었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쓸데없는 생각이야. 그러니까 괜스레 태도를 시정하겠다며 무리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나 사실 꽤나 좋아하거든.”
“…!”
“내 알 바 아니야,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널 지켜보는걸….”
말의 선후가 바뀌는 바람에 굉장히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게 된 문장을 끝으로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게, 다음 수업은 이틀 뒤 주말이야. 정시에 방문할 테니 어디 가 있거나 그러면 안 돼. 알겠지?”
달칵.
선배가 여왕 같은 발걸음으로 방을 나서 버린 후 우리의 공방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북슬이가 정수리 위로 내려앉으며 감탄을 토해 냈다.
―우와아! 쟤 뭐야? 그렇게 안 봤는데 그 6학년 아일리 머시기인 여자애 뺨치도록 도발적인 면모가 있네. 그치? 페이건 너도 깜짝 놀랐지?
“그러게 말이야, 조금 전 그 표정이랑 말투는 조금… 아니 상당히 위험했어.”
―어! 라무테야, 너도 들었지? 방금 페이건이 위험하다 그랬어! 우와, 난 그동안 페이건이 목석같이 굴기만 해서 진짜 돌땡이가 아닌가 싶었는데. 헤에, 너도 남자는 남자구나.
“당연하지, 나도 남자고 사람이야. 저 정도로 예쁜 사람이 그런 분위기로 말하면 흔들리는 게 당연해.”
―어마나! 페이건 너 그럼….
“아니요, 라무테 님. 흔들릴 뻔했다는 거지. 흔들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 사람의 약혼자가 유리안 알렉세예브가 아니었다면 ‘어! 혹시 이 사람이 나한테 관심이 있나?’ 정도는 진지하게 고민했을지도 모르죠.”
고맙습니다, 유리안 선배님.
선배님께서 제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는 ‘완벽한 남자’이신 덕분에 제가 쓸데없는 착각에 시간을 낭비할 일이 없게 되었어요.
똑똑똑.
“페이건 클라디우스 공자님, 안에 계십니까?”
다음 날 오전, ‘푸른 달’ 이름으로 요청되고 교무 위원회가 승인한 경호 협조 요청서가 날아들어 왔고 난 승인 서명을 한 후 요청서를 돌려보냈다.
* * *
요청서에 승인을 한 그날 오후.
난 오랜만에 실험국장실을 방문했고 폴리다고스의 노괴물은 예의 그 썩은 미소로 나를 맞아 줬다.
“이야기는 들었지. 티베리 그놈은 다른 잔재주는 제법이어도 여자를 홀리는 재주는 없었는데, 네놈은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
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영감한테만큼은 이런 식으로 조롱을 당하고 싶지 않았는데.
“학년 대표로서의 명예를 손에 넣었고 예쁜 걸로 교내에서 소문이 자자한 여선배의 마음을 훔친 데다 연구 시설을 빙자해 얻어 낸 토지에서 수상쩍은 일까지 꾸며 대고 있다니. 아무래도 네놈에게는 이곳 폴리다고스가 대단한 기회의 땅이 된 모양이야. 하지만 몸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명예, 돈, 애정을 한꺼번에 손에 넣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
“평소의 네놈이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주둥이를 놀렸을 텐데, 오늘은 왜 이리 얌전한 거지?”
“긴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인내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어차피 하시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기 전에는 제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실 테니 말입니다.”
“말해, 가급적 간단하게.”
톡톡톡.
내뱉는 듯한 재촉을 토해 낸 팩셰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을 이용해 파이프에 담배를 재워 넣기 시작했고 난 그 능숙한 모습을 시야에 담은 채 오늘의 용건을 밝혔다.
“국장님, 저에게 빚을 진 바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하! 일개 학생 주제에 감히 국장을 상대로 빚을 운운하다니. 시간이 가도 네놈의 건방짐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구나. 학년 대표 자리를 꿰차고 앉더니 이제는 국장도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지?”
밉살스러운 입술은 독설을 토해 내기 바빴지만 팩셰르는 빚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역시 기억력이 비상한 노괴물답게 폴카산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 사실에 안도한 난 이곳을 찾아온 진짜 이유를 밝혔다.
“아직 국장님으로부터 받지 못한 심부름값을 지금 받고자 합니다. ‘마스카 경매’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싶사오니 제가 그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