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9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3)화(19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3)
―페이건! 저기 좀 봐. 아주 무더기로 오고 있어. 너한테 할 말이 아주 많은가 봐.
‘알아, 다 알고도 이러고 있는 거니까 너도 호들갑 떨 필요 없어.’
도합 26개의 눈동자가 내 뒤통수를 향해 쏟아져 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열매들을 매만지는 일에 열중했다.
“저게 페이건 클라디우스구나. 가까이서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네.”
“저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건지도 몰라. 그런데 참 신기하다. 저렇게 늘씬한 팔다리로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걸까?”
“어머! 혹시 선배님들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거예요?”
“응, 해글러 나이투와의 결투를 가까이에서 보기는 했는데 이렇게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저 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되게 긴장돼요. 저러고 있다가 갑자기 휙 돌아서서 ‘뭐야, 꺼져!’라고 말해 버리면 어떡하죠! 꺄아!”
두서없이 들리는 말소리들.
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닮게 되는 걸까?
나를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은 채 오고 가는 목소리들에서는 학회장의 그것을 닮은 호들갑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저어… 페이건 군, 우리 제법 오랜만이지? 왜, 그 이벨다가 처음 방문했을 때 보고 그다음부터는 본 적이 없으니까 한 달도 훨씬 더 된 것 같은데.”
“네, 그러네요.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선배. 그리고 지난 학기에 최우수 학회로 선정된 것 또한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어머! 다른 사람도 아닌 페이건한테 축하 인사를 다 듣고, 우리 아이들을 줄줄이 데리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네.”
봄바람처럼 살랑거리고 벌꿀처럼 달콤한 목소리.
언제까지고 등을 보인 채 대화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난 이제야 등을 돌려 그녀를 마주했고.
“아, 다행이다! 페이건 정도의 감각이라면 우리가 왔다는 건 한참 전에 알았을 텐데 돌아설 생각을 통 안 하길래 계속 뒷모습만 보여 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마침내 돌아서 준 내가 그리도 반가웠는지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은 채 뼈있는 한마디를 날렸다.
“죄송합니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선배님께서 이곳까지 찾아 주신 이유를 여쭐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좀 답답한 데가 있어서 한번 손댄 일은 좀처럼 손을 떼지 못하거든요.”
“어머! 반가운 마음에 농담 한번 해 본 거니까 그런 진지한 표정 지을 거 없어.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여기에 온 것도 페이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인데 고작 얼굴 좀 늦게 보여 준다고 토라지거나 할 리 없잖아.”
아일리 바스티아가 상반신을 배배 꼬며 웃음을 터뜨리자 드레스 자락 사이로 훤히 드러난 등판이 설핏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저 여자애 말이야. 이런 숲속에 오면서 저렇게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어도 돼? 저런 민망한 옷차림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을 정도면 애초에 네 경호고 뭐고 필요 없는 거 아냐?
역시 북슬이는 이런 면에서 날카로웠고 난 미세한 눈짓으로 녀석의 의견에 동의를 표한 후 다시금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보아하니 뒤에 계시는 다른 선배님들도 전원 푸른 달 소속인 것 같은데… 이리도 한꺼번에 저를 찾아 주신 걸 보면 방문 이유는 묻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아! 요청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머, 정말! 역시 날카롭다니까. 얘들아, 봐! 내가 뭐랬니?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을 거라 그랬지? 내가 이래서 상냥하고 똑똑한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너희들도 이 언니의 현명한 선택을 잘 보고 배우렴.”
한껏 파인 등이 내 시야에 정면으로 들어오게끔 몸을 반쯤 돌린 후 웃음을 터뜨리는 독거미.
그녀가 굳이 ‘좋아하는’을 강조하며 한마디를 내던지자 이곳저곳에서 꺅꺅하는 새 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제가 선배님들을 지원하러 가야 하는 장소와 시간은 정확히 언제입니까?”
“사흘 뒤 정오, 제4 남서 구획 좌측에 위치한 고목나무의 무덤. 매년 이맘때 그 근방에서는 꽤나 좋은 쌍버들 뿌리를 채취할 수 있거든. 괜찮다면 페이건 군이 그곳에 와서 우리를 지켜 줬으면 해.”
같잖은 수작이 묻어나는 꺅꺅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기에 난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고 아일리 바스티아는 설탕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행선지를 밝혔다.
“알겠습니다. 사흘 뒤 정오, 고목나무의 무덤에서 뵙는 걸로 하죠.”
“어머나! 이렇게나 시원시원한 대답이라니. 정말이지 좋아할 수밖에 없는 후배라니까.”
“…그나저나 아직 개학도 하지 않았는데 본격적인 활동이라니. 선배님도 그렇고 뒤에 계시는 다른 회원분들도 참 부지런도 하시군요.”
“응!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가 우리 푸른 달의 좌우명이거든. 그리고 부지런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과를 만들어 내야지 다음 학기에도 믿음직한 경호원이 우리를 지켜 줄 거 아니야. 그치 얘들아?”
“맞아요, 선배님!”
“선배님, 우리 이번 학기에도 열심히 하면 다음 학기에도… 흠흠, 또 경호를 받을 수 있는 거죠?”
펄럭.
아일리 바스티아가 후배들에게 호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등을 돌린 순간 타이밍 좋게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흔들었고 그 바람에 그녀의 늘씬하지만, 탄력이 넘치는 종아리며 장딴지가 훤히 드러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미학적인 시각에서만 보자면 아름다운 모양으로 발달한 게 분명한, 매혹적이기 그지없는 다리인데 왜 내 눈에는 절지 생물의 외골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
“아 참 선배님, 이벨다 페르디난드 양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습니까?”
이 상태로 저 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가는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낼 것만 같아 난 줄곧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비록 정당한 시합 중에 벌어진 일이었고 부상자의 태도 또한 드세고 잔혹했다 한들 어쨌거나 그래도 여자인데… 한쪽 팔을 그 꼴로 만든 건 조금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떻게, 상처는 좀 나았다고 하던가요?”
“…이벨다의 근황이라면 나보다는 아스트라 군에게 묻는 게 낫지 않아?”
“아스트라한테는 이벨다 페르디난드에 관한 건 묻고 싶지가 않아서요.”
미세하게 흔들리는 독거미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이 질문을 던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피어올랐다.
“아주,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상처는 모두 나았고 지금은 다시금 수련에 정진하는 중이니 페이건이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군요. 그리 말씀을 해 주신 덕분에 저도 한시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페이건, 너 그렇게 안 보였는데 패배자를 염려해 주는 따스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구나. 얘들아, 잘 봐! 잘생겼고 똑똑한데 따스하기까지 해. 이런 걸 보고 좋은 남자라고 하는 거야, 알겠지?”
마녀의 유혹처럼 관능적이고 여신의 자비처럼 달콤한 눈웃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선배의 얼굴에서 저 보기 거북한 눈웃음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럼 계속 방해하면 미안하니까, 이만 갈게. 우리의 약속은 사흘 뒤 정오니까 잊으면 안 돼.”
내 어깨 위로 그녀의 하얀 손이 닿았다가 멀어지는 걸 끝으로 우리의 접견은 끝이 났고 독거미는 자신의 추종자(개중에는 나를 향해 윙크며 손 키스를 날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를 데리고 보급 창고를 떠났다.
―어, 페이건! 그 피리는 왜 꺼내 들어? 혹시 너 걔 데리고 가려고….
‘응, 저 사람들만 경호가 필요한 건 아니거든.’
그리고 거북한 뒷모습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자마자 난 친구를 부를 채비에 들어갔다.
‘나한테 경호를 맡기겠다고? 그래 까짓거 원한다면 해 주지. 그것도 당신들이 감히 기대하지 못했던 최고 수준의 경호를 말이야.’
* * *
사르륵.
마침내 찾아온 약속의 그날.
아일리 바스티아는 평소 이상으로 정성을 들여 화장을 다듬었다.
제비의 꽁지깃처럼 매끄러운 눈썹을 다듬고 거미의 실처럼 하늘하늘한 속눈썹을 붙이고.
쪼옥.
안 그래도 치명적일 정도로 관능적인 입술에 색채를 더하고.
“흐음… 역시 틀어 올리는 게 낫겠지? 올려 묶는 편이 야외 활동에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꼬맹이는 이쪽이 취향일 것 같으니까.”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틀어 올린 후 흑진주를 세공해 만든 비녀로 고정시키는 것으로 머리 손질과 화장은 끝.
“흐흐흥♪♫.”
등 뒤로 손을 뻗어 끈을 풀어헤치자 실내복 대용으로 입고 있던 캐미솔 원피스가 스르륵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그 바람에 전라에 가까운 그녀의 나신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전신 거울을 마주한 아일리의 자신감이 흐트러지는 일은 없었다.
오베라토의 마녀에게 있어 ‘미학의 정점에 다다른 육신’은 그 자체가 가장 눈부신 훈장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알몸을 앞에 둔 아일리의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완벽해.”
결코 과장되었거나 자의식 과잉으로 볼 수 없는 한마디가 툭 하니 터져 나왔다.
날씬하지만 탄력을 잃지 않은 양팔을 허리 위에 가져다 대자 안 그래도 잘록하기 그지없는 허리가 한층 더 강조되었다.
명공(名工)이 빚어낸 조각상처럼 매끈한 다리와 그 매끈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볼륨감을 품은 흉부와 둔부까지.
오늘부터 그 꼬맹이를 겨냥해 마음껏 사용할 예정인 ‘결전 병기’의 자태를 다시금 확인한 아일리는 파란색 드레스를 병기 위에 가져다 댔다.
변변치 못한 얼간이들을 사냥할 예정이었다면 몸의 윤곽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드레스를 착용했을 터.
하지만 오늘부터 맞닥뜨려야 하는 건 자제심이 보통이 아닌 ‘아주아주 콧대 높은 사냥감’이었기에 아일리는 관능을 포기하고 품격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클라디우스의 꼬맹이는… 강렬한 것보다는 은은하게 스며드는 편을 더 좋아할 거야.’
지금까지는 간을 보는 작업들이 이어졌을 뿐 생각해 보면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본격적으로 요리하는 건 오늘이 처음.
그 영예로운 첫날을 기억하기 위한 특제 향수를 꺼내 들며 아일리는 다시금 오늘의 목표를 되새겼다.
‘오늘은 손등을 살짝살짝 터치하는 정도로 만족할까? 후훗,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할짝.
입술만큼이나 관능적인 빛을 머금은 혓바닥이 지나간 자리를 매만지자 사탕처럼 달콤한 향이 묻어 나왔고 유혹을 잔뜩 머금은 향기보다 매혹적인 목소리로 마녀는 속삭였다.
“꼬맹아, 어떻게… 녹아내릴 준비는 다 끝냈니?”
* * *
카아아악.
“꺄악, 선배 저 좀 도와줘요! 얘가, 얘 부리가 내 치마를 찢어 버렸어요. 꺄아악!”
“어마마! 페이건 군, 얘 좀 어떻게 해 봐! 아야, 밟혔어! 얘 발톱에 발등이 눌렸다고!”
세상 모든 남자를 당장에라도 녹여 버릴 듯이 야심 찼던 출사표.
한데 약속된 시간인 정오가 지나도 한참 지났건만, 마녀의 타깃이었던 흑발 소년은 조금도 녹아내리지 않은 채 평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화 좀 내지 마,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화내지 말란 말이야!”
“물러날게, 물러나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만 쫓아와!”
지금 이 시각 약속된 장소에서 비참하게 녹아내리고 있는 건 페이건이 아니라 푸른 달 소속 마법사들이었다.
멋모르고 페이건 주위에 다가와 친한 척을 하려 드는 푸른 달 마법사들을 혼쭐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아카이드였다.
등 위에 페이건을 태운 채 모습을 드러낸 검은 빛의 그리폰.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반한 학회원들은 페이건에게 접근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아카이드를 향해 몰려들었고.
“꺄아악!”
감히 그리폰을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뭐야, 쟤! 페이건 군이 타고 다니는 그리폰은 엄청 얌전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며! 그런데 이건 소문이랑 완전히 다르잖아!”
함부로 아카이드의 깃털을 만지려 들었다가 그 예리한 부리 놀림에 혼비백산한 학회원들은 비명에 가까운 불평을 내질렀지만, 아카이드는 이들의 항변을 무시한 채 부리를 딱딱거릴 뿐이었다.
“아아, 아무래도 제 친구가 선배님들의 접근을 무례하다고 간주한 모양이군요. 어쩌죠? 얘가 좀 까다로운 데가 있어서 기분이 풀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날개를 활짝 편 채 페이건의 앞을 막아선 아카이드의 부리 놀림에서는 ‘당신들이 내 친구에게 접근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라는 기백이 느껴졌고.
‘저… 건방진 짐승 새끼가!’
제아무리 아일리 바스티아의 솜씨가 뛰어나다 한들 그리폰이 이 난리를 피우는 마당에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녹여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 내로 페이건의 손등을 함락시켜 보이겠다는 장대한 계획이 좌초되었다는 사실에 아일리는 격분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카이드의 깃을 쓰다듬는 페이건의 손길에는 애정이 가득했고.
―저기, 페이건 님. 그런데 전 언제까지 이렇게 적대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나요? 히잉, 저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아닌 페이건 님의 친구들한테 버릇없이 굴고 싶지 않은데.
아일리의 반응을 살피기 바쁜 페이건의 귓가로 잔뜩 침울해진 아카이드의 목소리가 파고들어 왔다.
‘아니야, 괜찮아. 넌 버릇없는 게 아니니까 그런 생각할 필요 없어.’
흥분한 녀석을 진정시키는 척 그 굵직한 목을 감싸 안으며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아카이드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 화가 난 척하고 있어야 해. 네가 지금처럼 나를 지켜 줘야 내가 낯간지러운 꼴을 보지 않을 수 있거든. 그러니까 부탁할게,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