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9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4)화(19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4)
마고니아에 오를 자격과 직결되는 ‘학년 대표 고과평가’ 때문에라도 푸른 달(혹은 아일리 바스티아 개인)의 협조 요청은 거절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일리 바스티아를 통해 에지세크 놈들의 연결고리를 파악해야 하는 나로서는 이 독버섯 같은 선배가 어떤 식으로 학회를 이끄는지를 파악해 둘 필요 또한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 자리에 나갔다가는 독을 잔뜩 머금은 거미의 솜털이 내 전신을 휘어 감는 듯한 불쾌한 감정을 느껴야만 할 터.
협조 요청을 둘러싼 상황 파악이 끝난 이후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딜레마였다.
요청을 받아들여 약속된 장소에는 모습을 드러내되 저 찝찝한 여자가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걸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
나는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살폈고 그 치밀한 검토 끝에 선택한 방법이 바로 아카이드의 난동이었다.
비록 아카이드가 내 앞에서는 애교 많은 강아지처럼 군다지만 어쨌거나 녀석은 강대한 힘을 가진 초고위 마수.
더군다나 그리폰은 자존심이 높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 마수였기에 녀석이 여기에서 난장을 튼다 해도 그 행동에 내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낮았다.
‘물론 선배들을 지원하기 위해 왔다는 놈이 통제가 되지 않는 위험한 마수를 동반하는 게 말이 되냐?’라는 식의 항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푸른 달이 나를 부른 이유가 ‘경호’라는 점 덕분에 아카이드의 난입은 용인받을 수 있었다.
“저기, 페이건 군. 난 푸른 달의 부학회장을 맡고 있는 샤론이라고 하거든.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하지만, 그 아이 화가 너무 많이 난 것 같은데… 오늘은 이쯤에서 돌려보내면 안 될까?”
“얘를 돌려보내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요? 지금 다소 흥분한 탓에 소란을 피우기는 했지만 아카이드는 그리폰입니다. 얘가 여기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잡몬스터들은 이 근방에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할 텐데요.”
“아! …그, 그렇기는 한데… 그치만, 그래도 우리 애들이 너무 무서워하니까….”
“그 문제라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 보아하니 아카이드를 흥분하게 만드는 건 선배님들의 접근인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아카이드가 조금 전처럼 날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그럼 계속 이렇게 거리를 둔 상태로 있자고? 말도 안 돼. 모처럼 페이건 군과의 시간이라고 기대를….”
“보세요, 이런 깊은 숲속에서 이 정도 소란을 피웠으면 온갖 괴물들이 머리를 들이밀어야 정상인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잖아요. 아카이드가 무서워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폰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몬스터를 굴복시킬 수 있는 존재.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닌 보호를 이유로 나와의 동행을 청한 이들이 이토록 든든한 경호원을 떠나보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는 제가 확실하게 통제할 테니 선배님들이 필요 이상으로 저한테 접근하는 일만 없다면 이 녀석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럴… 까?”
“네, 그렇습니다.”
아카이드가 주변의 몬스터를 쫓아낸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한 이 사람들은 아카이드를 보내는 것도 아카이드의 방어를 뚫고 날 번거롭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럼 하시던 학회 활동 계속하시지요? 전 여기서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그치만 그래서는 페이건 군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선배님들과의 소통 기회가 사라지는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되는 건 여러분들의 경호이니 말입니다.”
“알았어, 그럼 회장한테도 그렇게 전할게. 뭐야… 좋다 말았네.”
샤론 선배는 툴툴거리며 무리로 돌아갔고 난 아카이드의 등 위에 비스듬하게 누운 채 나머지 학회원들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걸 지켜봤다.
―우하하! 결국 이번에도 네 뜻대로 됐네. 그런데 너도 참 특이하다. 보통 네 나이대 남자애들은 저렇게 예쁜 여자들이 무리 지어 있으면 그것만으로 좋아서 죽을라 그럴 텐데. 이런 수작까지 부려 가면서 거리를 두다니. 하여간 애늙은이라니까.
‘이것도 전부 다 우리 아카이드가 위엄이 넘쳐흐르는 덕분이지. 참 신기해, 살아온 세월로만 따지면 누구누구 씨의 몇백 분의 일밖에 되지 않을 텐데 점점 포동포동해지기만 누구 씨와는 달리 어쩜 이렇게 똑똑하고 쓸데가 많은지.’
―맞아, 맞아! 이 커다란 제자랑 비교하면 살아온 시간 만큼은 내가 어마어마하게 길지만, 쓸모로 따지면…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맘 같아서는 북슬이와 농담 따먹기를 조금 더 하고 싶었지만 찌릿한 시선이 느껴지는 터라 그럴 수 없었고 심상찮은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는 독거미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목소리에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진한 진심을 담아 말했다.
“바스티아 선배님, 오늘은 무척 아리따운 의상을 입고 오셨군요.”
“…고마워.”
“오늘은 모처럼 날을 잡아 선배님과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신기하기도 하지.
짜증을 억누르기 위해 애를 쓰는 타인의 표정을 지켜보는 건 왜 이리도 즐거운 걸까?
* * *
내가 아카이드의 등에 자리를 잡은 채 관찰 모드에 들어간 지도 한 시간이 흘렀다.
푸른 달 인원들은 처음에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듯싶더니 시간이 지나자 우수 학회에 선발된 게 운이 아니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샤론, 조이랑 같이 쌍버들을 채취해. 마리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뿌리가 뽑히자마자 바로바로 배합액 뿌리는 거 빼먹지 말고. 쌍버들은 대기 중에 노출되는 즉시 부패가 진행된다는 건 알고 있지? 중요한 건 속도라는 걸 잊지 마.”
“네! 명심할게요, 언니.”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채취조의 활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숙달된 일 처리 솜씨.
학회원 개개인의 역량도 상당히 우수했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건 아일리 바스티아의 지휘력과 용인술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내 앞에서 보여 준 모습이라고는 ‘웃음’과 ‘외모’를 무기 삼아 얼간이들을 함락시키는 미인계가 전부였기에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능력을 조금은 경시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고목나무의 무덤에서의 아일리 바스티아는 왜 자신이 폴리다고스의 모든 재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유능한 마법사 겸 연금술사’로 손꼽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페이건, 아무래도 저 아이를 조금은 다시 봐야겠는걸. 남자를 무기로 휘두르려는 여자들은 남자들을 노예로 만드는 재주를 제외한 다른 능력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저 아이는 마냥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금 전 학회원들의 실수로 구속구에서 풀려난 참나무 투구벌레를 아무런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주문 봉인하는 거 보셨죠? 참나무 투구벌레를 비롯한 고위험도의 독충과 관련된 생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저런 발 빠른 조치를 해낼 수 없어요.’
―맞아. 그리고 투구벌레의 가시에 쓸린 아이의 피부에 바를 연고를 즉석에서 금방 만들어 내는 것도 인상적이었어. 흐음… 아일리 바스티아가 6학년의 실력자로 꼽힌다는 그 소문, 과장이 아닐까 했는데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나 봐.
―뭐야? 뭔데? 너네 둘끼리만 얘기하지 말고 나한테도 설명해 줘! 도망치려다가 주문 사슬에 묶여 버린 그 팔뚝만 한 딱정벌레가 그렇게 대단한 거야?
―에휴,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일리 바스티아가 마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실력도 탁월하다는 말을 하던 중이었어.
―오홍! 그러니까 옷만 화끈하게 입는 게 아니라 실력도 화끈하다, 이 말이구만. 흐흐!
―뭐라는 거야? 이 변태 솜뭉치가!
어김없이 부부 만담을 늘어놓는 두 마스코트 간의 분쟁을 뒤로한 채 팔을 뻗어 아카이드의 목덜미를 어루만져 줬다.
‘오해를 풀지 못한 게 아직도 서운하니?’
―페이건 님이 말씀하신 거니까 서운하지는 않은데요. 보고 있으면 조금 답답하기는 해요. 페이건 님, 저기 좀 봐요! 저 인간 누나, 나무 안쪽에서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잖아요. 하아아아, 저런 나무쯤은 내가 머리로 툭 하고 밀어 주면 금방 부러질 텐데.
‘그래, 사람들을 돕고 싶은 네 마음은 알아. 하지만 당분간은 좀 참자. 네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머지않아 반드시 있을 테니까. 이번에는 참을 수 있지?’
―네에! 솔직히 말하면 조금 근질근질하기는 하지만 페이건 님의 부탁이니까 착하게 참고 있을게요.
아카이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 가닥으로 갈라진 꼬리가 하늘 위로 솟구치며 춤을 췄다.
“어머! 저 그리폰 왜 저래?”
“우리가 소리를 내니까 또 흥분한 건가?”
“조금 무서운데… 그래도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잘 누르고 있으니까 별일은 없겠지?”
아카이드가 보인 기운찬 반응에 푸른 달 학회원들은 잔뜩 겁먹었지만 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대형견 같아지는 아카이드의 덜미를 실컷 쓰다듬어 준 후 숲을 누비며 채집 작업에 여념이 없는 학회원들의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렇게 다시 또 한 시간이 흘렀고.
“뭐야, 쟤? 처음에는 관심 없는 척하더니 아까부터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잖아?”
“풋, 그럼 그렇지. 지도 남자인데 우리 같은 미인들을 앞에 둔 상태에서 언제까지고 무관심한 척할 수 있을 리 없잖아?”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내 다리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은데. 나, 스커트 조금 접어 볼까? 어때?”
“훨씬 예뻐. 그럼 잠깐만, 나도 머리 좀 다시 만지고 올게.”
내 시선에 담긴 의미를 두고 학회원들 저마다의 의견이 한창 분주해질 무렵.
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학회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혹시 아일리 바스티아가 제약을 걸고 있기라도 한 걸까?’
푸른 달 학회원들 개개인의 실력이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보인다는 아까 전의 견해 자체는 아직도 유효했다.
하지만 그 우수함이 무색하게도 학회원들의 행동에서는 좀처럼 자율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크게 중요치 않은, 그러니까 자신들의 판단으로 충분히 처리 가능한 일조차도 아일리 바스티아의 허가를 얻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진달까?
“선배, 잠깐 여기 좀 봐 주세요. 선배가 명령하신 대로 수액 채취를 성공했어요. 제 생각에는 이걸 냉각제와 혼합한 후 냉방 처리가 된 유리병에 보관했으면 하는데 선배 의견은 어떠세요?”
“응, 좋은 판단이야. 이제 우리 내니 실력도 상당해 졌는걸? 호호.”
“학회장 언니! 어떡하죠? 광모 버섯과 섞어 끓인 쌍버들에서 보라색 연기가 너무 진해요. 그늘솔가루 송진을 뿌리면 연기가 좀 잦아들 것도 같은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그래, 그렇게 하렴. 그늘솔가루 송진에 완화 성분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니, 장하네!”
대답을 하는 아일리 바스티아의 태도가 워낙에 자상하고 그 표정이 밝은지라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뿐.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는 가면을 들춰내고 보면 이런 장면들은 확실히 수상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의 깊이에 비해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야. 보통 무의식적인 제약이 걸려 있는 경우에 저런 반응이 자주 나오는데….’
그저 구성원 개개인의 의존성이 과할 뿐인 화기애애한 학회를 두고 너무 과한 생각이 아니냐는 지적을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이런 식의 단편적인 행동만을 보고 암시와 세뇌를 떠올린다는 건 너무 과민한 것 아니냐는 의견에는 나도 다소간 동의하는 바였으니까.
하지만 과거 ‘혼돈의 기둥’들과 사투를 벌일 당시 놈들이 이것보다 더한 방법들을 사용하는 꼬락서니를 자주 목격한 바 있는 나로서는 이런 식의 광경이 심상찮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정신 제약 주문을 이용한 세뇌. 하지만 우수한 마법사들과 감지 장치가 즐비한 폴리다고스의 경내에서 마법 주문을 함부로 사용하지는 못할 텐데….’
설령 아일리 바스티아가 에지세크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들 교내에서 정신 지배 주문을 대놓고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
주문을 통한 세뇌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남은 방법은 약물과 암시를 이용한 정신 제약.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은 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주문과 비교하면 이쪽이 발각될 가능성은 훨씬 더 낮기는 해.’
아일리 바스티아는 정말로 뭔가 교묘한 방법을 이용해 학회원들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든 걸까?
그게 아니면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기로 앞에 놓인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선택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단서가 내 앞에 떡하니 놓였다.
“페이건 군, 이거 받아. 학회장 언니가 직접 준비한 간식이야.”
샤론이라 했던가?
아카이드의 움직임을 한껏 경계하며 내 앞에 다가온 여선배의 손에는 곱게 포장된 과자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언니는 우리가 야외 활동을 할 때마다 간식을 준비해 주고는 하셨는데, 이번에는 페이건 군 네 것까지 준비하셨대.”
아일리 바스티아가 직접 준비한 간식이라니.
꾸러미를 받기도 전에 먼저 눈으로 살폈으나 딱히 개개인별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학회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과자를 삼키고 있는 아일리 바스티아.
그녀는 간식을 준비하기만 했을 뿐 꾸러미를 구체적으로 배분하는 건 그녀의 관할이 아닌 듯했다.
‘즉… 딱히 나를 노리고 만들었거나 특정인을 지목해서 만든 간식이 아니라는 건데… 정말 습관처럼 간식을 즐기던 것뿐이었나?’
활짝 펼쳐 본 꾸러미 안에는 노릇한 표면 위로 색색의 초콜릿이 박힌 초코 쿠키가 한 아름 담겨 있었다.
바사삭.
혓바닥 위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녹아내릴 듯한 달콤함.
그리고 제작자의 목소리만큼이나 달콤한 첫맛 뒤로 느껴지는 건.
‘…입술 안쪽에서 마지막으로 피 맛을 느껴 본 게 언제였지?’
비릿한 피 맛이었다.
독거미가 구워 온 쿠키를 삼킨 순간 목젖 아래쪽에서 격렬한 소용돌이가 느껴졌고.
이내 그 소용돌이는 진득한 핏물이 되어 입안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