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9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5)화(19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5)
피의 역류를 감지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체의 기능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입안에 맴도는 핏물이 신체 기능이 망가진 ‘결과’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신체가 손상되는 과정 중에 나타나는 ‘징조’인 것인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다행히도 아르카와 앙겔루스 모두 신체 기능을 점검하는 데 최적화된 마나 호흡법이었기에 식도를 통과한 쿠키가 위에 도달하기도 전에 몸 상태 확인을 끝낼 수 있었다.
‘아무런 이상도 없어. 그럼 이 피는 뭐지? 신체에 이상이 생긴 결과나 징조가 아닌 단순한 반응인 건가?’
확인이 끝난 이상 최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건, 이 거지 같은 쿠키를 내게 건넨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었기에.
난 태연한 표정으로 두 개째의 쿠키를 삼켰다.
불행 중 다행히도 워낙에 맛있게 구워진 쿠키였는지 입안이 혈향으로 가득했음에도 과자를 씹어 삼키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일리 바스티아, 이상 반응 감지되는 거 없고… 기타 인원들 역시 표정에는 이상 없어.’
혹시 날 노리기 위해 저격하고 건넨 간식인가 싶어 푸른 달의 반응을 살폈으나 그들은 저마다 깔깔거리기에 바쁠 뿐.
내 식도를 통과해 버린 쿠키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아일리 바스티아가 날 노리고 독극물을 주사한 거라면 그 반응이 뭐가 되었든 간에 적어도 지금의 저 표정보다는 훨씬 더 선명한 반응이 나와야 해. 더군다나 쿠키 꾸러미를 배분한 건, 아일리 바스티아가 아닌 부학회장. 날 저격한 게 아니라는 건가? 그럼 이 피는 뭐지?’
조금 더 선명한 결과를 얻고 싶어 쿠키 서너 개를 한 번에 집어 입에 털어 넣었고.
주륵.
증가해 버린 쿠키의 양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솟구치는 핏물의 기세 또한 한층 더 거세졌다.
‘라무테 님, 잠깐 눈을 감고 있을 예정이니 저 대신 저들의 감시를 부탁드립니다. 투시안의 능력을 모두 발휘해서라도 저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세히 살펴 주세요. 혹시 라무테 님의 시야를 벗어나려는 자가 있거든 바로 말씀해 주셔야 됩니다.’
―응? 아, 알았어! 조금 갑작스럽지만 페이건의 요청이니까 나 열심히 해 볼게.
‘북슬아, 너도 라무테 님을 도와.’
―응? 나두? 아, 알았어. 그러지 뭐.
‘아카이드, 들었지?’
―네! 들었어요. 히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와서 처음으로 할 일이 생겼네요. 페이건 님,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눈 꼭 감으세요. 전 이래 봬도 눈도 아주 좋거든요.
세 마리에게 감시를 맡긴 후, 양손을 머리 뒤에서 깍지 낀 채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카이드의 광활한 등판 위에 드러누워 낮잠 삼매경에 빠진 한가한 사람처럼 보이겠지.
‘후우!’
하지만 마냥 평온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내 체내의 마나 회로는 맹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번만큼은 앙겔루스와 아르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사용했다.
쿠키를 삼키자마자 한 확인이 긴급 비상 점검이었다면 이번 마나 회로의 작동은 일종의 정밀 작업에 가까웠다.
상황을 파악해 내라는 명을 받은 아르카와 앙겔루스는 혈관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까지 뒤져 가며 원인 규명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두 갈래의 기운이 도출해 낸 결론은 오래지 않아 전달되었다.
‘역시 반응이었군,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보호 반응. 반응을 일으킨 주체는… 앙겔루스.’
정밀 점검의 결과는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즉, 내가 삼켜야만 했던 피는 일종의 경고등이었다.
이 쿠키를 삼킴으로써 발생하는 폐해는 앙겔루스가 막아 줄 수 있지만 그래도 몸에 좋지 않은 게 들어오고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의 경고등 말이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건데. 내가 독극물을 삼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섬에 있을 때도 주기적으로 섭취해 왔고 하다못해 이델타에서 늑대인간 놈이 준비한 와인을 먹었을 때도 이런 반응은 나온 적이 없었어.’
무릇 치료술사(혹은 암살자)라면 독에 대한 기본 저항력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기에.
난 에스페타라에 머물 당시 소량의 독초를 섭취하는 방식(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으로 내성을 길러 온 바 있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종류의 독초를 섭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앙겔루스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앙겔루스는 중독 증상이 발현된 신체를 자가 치료하는 데에 탁월한 효능을 가진 호흡법이지만, 아직 체내에 흡수되지 않은 독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 그렇다는 건 쿠키에 포함된 게 통상적인 독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는 건데….’
주체성을 상실해 버린 듯한 정상적이지 않은 푸른 달 회원들의 행동.
매번 야외 활동이 있을 때마다 간식을 손수 준비해 오는 자상하기 그지없는 학회장.
그리고 쿠키 안에 들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통상의 독과는 다른 성질의 유해 물질들.
‘그래, 아일리 바스티아로부터 이런 수상한 간식을 주기적으로 받아서 일상적으로 먹고 마셨다면 당신들이 그녀 앞에서 이렇게 나사 빠진 태도를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
방긋.
시선을 학회원들을 향해 고정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아일리 바스티아와도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 과자의 목표는 내가 아니었구나. 난 이번에 운이 나빠 당신이 일으킨 악의(惡意)의 파도에 휩쓸렸을 뿐, 당신은 매일같이 이런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아일리 바스티아를 의심해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상황.
독거미가 지어 보이는 아리따운 미소를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렇다면 앙겔루스가 아닌 다른 마나 호흡법으로도 이 거지 같은 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걸까?’
아카이드의 푹신한 등 털에 몸을 누인 채 한동안 생각해 본 결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푸른 달에 소속된 다른 인원들도 나름 유명한 가문 출신의 인재들이니만큼 그들 또한 나름 유서 깊은 마나 호흡법을 익혔을 거야. 한데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이 아일리 바스티아에게 종속되어 있어.’
물론 저들이 저 꼴이 된 건 독거미의 화술이 대단한 탓도 있겠지만, 그들이 익힌 마나 호흡이 유해 물질로 인한 정신 지배를 막아 줬다면 저 모양이 되지는 않았을 터.
즉, 아일리 바스티아가 부리는 수작으로부터 완전한 보호가 가능한 호흡법은 앙겔루스가 유일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
‘그 기원이 비교적 명백하게 밝혀져 있는 다른 마나 호흡법과는 달리 앙겔루스는 발생 과정이 뚜렷하지 않아. 앙겔루스의 기원에 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해 봤자 오르페우스 님께서 젊은 시절에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말년에 창시해 낸 마나 호흡법이라는 설명이 전부.’
솔직히 말하면 오늘 이전까지만 해도 앙겔루스의 기원에 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어차피 내 주무기는 아르카고 앙겔루스는 치료술사로서의 활동에 도움을 줄 뿐인 일종의 보조 호흡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전생에 이어 이번 생애에서도 혼돈의 기둥을 맞상대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고.
놈들의 실체적인 위협이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광경을 목격한 이상 생각을 달리해야만 했다.
‘오르페우스 님이 드루이드의 후예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그분께서 젊은 시절에 얻은 깨달음이라는 건 결국 드루이드 오러였을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앙겔루스 또한 드루이드 오러에 기반을 둔 마나 호흡법이라고 보는 게 옳을 터. 그런데 드루이드 오러에서 연유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앙겔루스가 독거미의 수작질에 강력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입술 안쪽을 훑어 내자 채 삼키지 못한 핏물이 선명하게 묻어 나왔다.
독거미의 수작질과 드루이드 오러가 핏빛만큼이나 선명한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명백해진 상황.
‘에지세크 교단은 영혼을 이용한 저주와 속박에 특화되어 있지. 이런 식의 물질을 이용한 정신 조작은 놈들의 특기 분야가 아니었어. 어쩌면 독거미가 숨기고 있는 건 에지세크 놈들이 전부가 아닐지도.’
지금의 내 표정이 노출되어서는 안 되기에 난 아카이드의 털에 한층 더 깊이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날 이곳에 초대해 준 독거미에게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개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 루드비히 안피노뿐만이 아니었군. 아일리 바스티아, 기대하고 있어. 머지않아 당신의 가죽 또한 홀라당 벗겨 줄 테니까.’
* * *
쨍그랑.
벽과의 충동을 감당하지 못한 유리잔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나갔고.
“하아, 하아… 건방진 새끼.”
유리창을 내던진 여인의 입가에서는 유리 파편보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일 중요한 건 경호니까 의사소통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고? 결국은 내 인형이 될 꼬맹이 주제에 주둥이만 살아서.”
꿀꺽꿀꺽.
타는 듯한 갈증을 달래기 위해 잔을 가득 채운 술을 연거푸 들이마셨지만 타오르는 짜증의 불길은 도무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까드득.
꼬맹이를 떠올리며 이빨을 갈고 있자니 오늘 오후에 있었던 작별의 시간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야, 저 그리폰 다음번에도 데리고 올 거니?”
“네, 그럴 생각입니다.”
“어… 페이건 군만 있어도 경호는 충분할 것 같은데, 큰 문제가 없다면 저 아이는 그냥 두고 오는 게 어떨까? 물론 그리폰이 있으면 든든하기는 하지만 저 아이가 과민하게 구는 바람에 우리 오늘 하루 종일 변변한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잖아?”
“그 든든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쨌거나 저는 여러분들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라는 요청을 받아 이 자리에 온 사람이니 안전 유지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요. 오늘 오후 내내 숲속에 있었는데 몬스터는커녕 마수조차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죠? 이 사실 하나만으로 아카이드의 유능함이 완벽하게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치만….”
“저 또한 선배님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건 아쉽기는 합니다만 어쩔 수 없죠. 이게 최선이라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아일리 바스티아 양께서 다른 남자 앞에서는 좀처럼 보여 주지 않는 토끼 눈망울까지 한 채 사정을 했는데 그토록 매몰차게 거절해 버리다니.
경호를 위해 다음번에도 아카이드를 동반해야겠다는 페이건의 그 한마디에 아일리는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후우, 아니야. 침착하자… 그래, 침착해야지.”
그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속에 천불이 나지만 언제까지고 짜증만 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아일리는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 꼬맹이도 다른 바보들처럼 순순히 내 것이 되어 준다면 참 좋을 텐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쿠키가 안 먹히네.’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마녀의 비책이 담긴 초코 쿠키.
폴리다고스에 입교한 이래로 그녀는 이 비책을 이용하며 제법 많은 학생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 왔다.
감히 폴리다고스의 경내에서 정신 제약을 시도한다는 건 평소 그녀가 보여 주는 신중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아일리는 걱정이 없었다.
쿠키와 암시를 이용한 정신 제약은 ‘고대로부터 그 성능을 발휘해 온 마녀만의 고유 비전’이었기에 제아무리 폴리다고스에 눈썰미가 뛰어난 마법사가 다수 존재한다 한들 발각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물론 이 방법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다다른 자를 상대로는 성공률이 극히 낮아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일리 바스티아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확률이 낮다고 하여 포기하기에는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향한 그녀의 갈망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녀의 비책은,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완벽하게 실패해 버렸고 아일리는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만 했다.
‘어차피 다음 학기 내내 그 꼬마랑 부딪힐 기회는 많아. 이렇게 된 이상 될 때까지 계속해 보는 수밖에.’
설령 반복된 작전이 모두 실패한다 한들 자신에게 부담이 가거나 할 일은 없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제아무리 총명하다고 한들 그 쿠키를 통해 이상한 징조를 발견해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스승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비법은 고대왕국 때부터 전승되어 온 고유 주술. 마찬가지로 고대왕국 시절의 감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쿠키에서 주술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해.’
아일리를 비롯한 마녀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이게도 고대왕국의 감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현인(賢人)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
‘왕국이 몰락한 그 순간, 왕국을 지키는 드루이드들은 모두 힘을 잃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저주받은 권능 또한 꿈같은 일이 되었어. 그러니까 아일리 바스티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녀의 아이야… 부디 진정하렴. 쿠키를 통해 너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으드득.
반복되는 자기 암시로 겨우 안정을 찾은 듯하던 아일리의 호흡이 다시금 거칠어졌다.
조상들의 숙적이었던 드루이드들의 존재를 떠올리고 있자니 ‘저주받은 그 이름’이 불현듯 생각나 버렸던 것이다.
더 이상의 드루이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선조들의 믿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린 최후의 드루이드.
혼자서 일족, 아니 기둥 전체와 맞서 싸운 숙적 중의 숙적.
그리고 원의 성지인 ‘엘페도’를 훔쳐 내 끔찍한 족쇄로 가공한 천인공노할 악적.
수백의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완성한 대말살진(大抹殺陣)을 통해 겨우겨우 놈을 처단할 수 있었지만, 놈을 처치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너무나도 막대했던 탓에 완성 직전까지 다다랐던 꿈은 물거품처럼 흩어져 버렸다.
“후우….”
치밀어 오르는 회한을 이기지 못하고 아일리 바스티아는 큰 호흡을 내뱉어야만 했다.
그리고 차마 억누르지 못한 적의를 담아 악적의 이름을 내뱉었다.
“증오스런 그 이름, 오펜하이머… 영원히 저주받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