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98)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8)화(198/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98)
“아, 그렇지만 선배님의 수호구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는 말은 100% 진심입니다. 그리고 완파 직전까지 간 바닥 상태를 보건대 적어도 이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이는군요. 아무튼, 저 또한 선배님께서 방학 중에 이뤄 내신 성취를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조금 전 자신의 입으로 말한 바 있는 ‘재미없고 지루해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지 뭐야?’라는 감상평이 지나치게 솔직했다고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페이건은 굳이 말을 더해 가며 게오르그의 성취를 치켜세웠다.
으드득.
하지만 페이건의 뒤늦은 첨언은 아무런 효과도 없는 모양인지 면전에서 모욕을 당한(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느낀 듯했다) 게오르그는 다시금 어금니를 갈아야만 했다.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된 구체적인 이유를 듣고 싶은데.”
“수호구가 머금고 있는 강맹한 기운에 비해 그 움직임이나 회전 패턴이 다소 단조롭게 보였습니다. 원래 반복이란 사람을 지루하게 만드는 법이지요. 뭐,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대화를 주고받는 건 무스카와 페이건인데 그 문답의 여파는 고스란히 게오르그에게 가해지는 참으로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이야… 벨타지온 선배님이 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페이건 클라디우스 쟤도 진짜 어지간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 1학년밖에 되지 않은 꼬마가 7학년 선배님, 그것도 로덴토 가문의 후계자를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저 정도면 기가 세거나 당차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고 그냥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또 한 번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페이건이 이런 식으로 게오르그를 긁어 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여러 사람 앞에서 게오르그의 기세가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직후에 도발 펀치를 날리는 건 처음이었던지라 관객들이 어이없는 탄성을 내뱉고야 만 것이다.
“게오르그 선배님 표정 좀 봐. 당장에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시는데? 뭐, 선배님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위력적이니 뭐니 한 것도 전부 다 억지 칭찬이고 결국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하고 싶었던 말은 선배님의 솜씨가 단조롭다는 거잖아. 무스카 선배야 이뤄 낸 게 워낙에 많으니까 게오르그 선배님 앞에서 저럴 수 있다고 쳐도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대체 무슨 배짱인 거야?”
학생들의 말마따나 무스카가 게오르그를 적대시하는 것과 페이건이 게오르그를 상대로 날을 세우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일단 무스카는 게오르그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6학년이었고 그에게는 수년간 폴리다고스의 2인자로 군림해 왔다는 위상이 있었다.
더군다나 무스카가 속한 서리 발톱 부족 역시 로덴토의 그것에 비하면 다소간 손색이 있다고는 하나 웬만한 국가 수준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초거대 연맹체였다.
그에 반해 페이건은 비록 테시온 쟁탈전에서 맹활약했다고는 하나 아직은 경험이 일천한 1학년이었고 클라디우스 역시 그 전통성이나 명성과는 별개로 ‘위세’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대단할 것이 없었다.
한데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페이건의 목은 이토록 빳빳하기만 하니 지켜보는 이들이 벙찐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있잖아, 페이건. 나는 페이건의 그런 솔직한 모습도 아주 좋아해. 그래도 조금 전 그 발언은 너무 과하게 ‘솔직’했던 거 아닐까?”
그런데 바로 그때, 안 그래도 불편하기 그지없던 게오르그의 심기를 한층 더 뒤집히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배님을 마냥 칭찬만 하는 게 부끄러워서 네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건 알고 있지만, 이번 건 좀 심했어. 다음부터는 안 그럴 거지?”
“부끄러움이라… 바스티아 선배님이 보시기에는 제가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까?”
“응, 난 항상 페이건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 어휴, 이 부끄럼쟁이. 물론 난 너의 그런 귀여운 모습도 참 좋아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 돼, 알겠지?”
아일리 바스티아가 어느새 페이건 옆에 착 하니 달라붙어 웃음을 흩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험악해진 분위기를 중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과 말투.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질투심으로 한껏 달아올라 있는 게오르그의 심장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을 뿐 분위기를 손톱만큼도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페이건, 오늘 입은 그 셔츠 참 예쁘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페이건은 파란색이 참 잘 어울려.”
“감사합니다. 미적 감각이 탁월한 선배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참 뿌듯하네요.”
“어머! 탁월하기는… 그냥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예뻐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야.”
페이건은 평소와는 달리 나름 살가운 태도로 아일리의 애교를 받아넘겼다.
피차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이용해 게오르그를 도발해 보겠다는 속내가 있었던 터라 친밀한 모습을 연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각자의 필요로 의해 만들어진 즉흥극’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게오르그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뇌가 하얗게 익어 버리는 듯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일리… 지금부터 차를 마시러 갈 생각인데 너도 같이 가는 게 어때?”
“차요? 으음… 지금부터?”
“그래, 폴리다고스로 오늘 길에 아주 좋은 가루차를 입수했거든. 네가 수모르 지방에서 나는 차를 좋아하던 게 생각나서 구해 왔단다.”
“어머! 자상하기도 하셔라.”
이 타이밍에 차를 마시자는 제안마저 거부당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졌겠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준 덕분에 약간의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저 아름다운(그리고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관능적인) 미소가 ‘초원의 촌뜨기’나 ‘잡종 회색분자’에게도 향한다는 사실이 더없이 애석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참아 내야만 했다.
아일리 바스티아의 미소와 얼굴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 숨이 멎게 하는 저 육신은 결국 자신만의 것이 되고 말 테니까.
“그럼 무스카도 같이 데려가도 될까요?”
“…!”
“후훗, 농담이에요. 무스카, 오빠가 하는 말 들었지? 난 지금부터 오빠랑 같이 가 봐야 하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안녕.”
아일리는 무스카를 향해 한차례 손을 내저어 보인 후,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게오르그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페이건 군도 조심해서 들어가. 아! 그리고 다음번 학회 일정 잡히는 대로 연락 줄 테니까 그때도 잘 부탁해!”
물론 그사이에 페이건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는 걸 잊지 않은 채 말이다.
“가요, 오빠. 오빠의 정성이 얼마나 향긋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걸요.”
“아주 상등품의 차니까 기대해도 좋을 거야. 거기 너희들, 뭐 하고 있나! 빨리 가서 하녀들에게 다과를 준비하라는 명을 내리지 않고.”
게오르그와 아일리는 나란히 선 채 훈련장을 떠났고 남겨진 두 명의 남자를 보며 관객들은 저마다의 관전평을 내뱉었다.
“무스카 선배님… 불쌍해.”
“그러게, 조금 전 게오르그 선배님을 몰아붙일 때만 해도 기세가 좋았는데 결국 아일리 선배님은 다른 사람이랑 가 버린 거잖아. 어우, 아일리 선배님도 너무하네. 아… 나라도 좋다면 무스카 선배님 위로해 드리고 싶다.”
“그나저나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뭐야? 쟤는 여자고 뭐고 아무런 관심도 없는 목석 아니었어? 그런데 아일리 선배님이랑 시시덕거리는 거 보면 그것도 아닌가 보네?”
“당연하지. 야, 쟤도 남잔데 아일리 선배 같은 여자를 보고 안 흔들린다는 게 말이나 되냐? 목석이니 뭐니 해도 이 세상 모든 남자는 결국 아일리 선배님 정도 미인 앞에서는 흔들리기 마련이야.”
“그런데 페이건 쟤는 평소에도 엄청 예쁜 여자애랑 꼭 붙어 다니잖아. 그 유리안 선배님의 직계 후배라는 녹색 눈동자의 편입생 말이야. 걔랑 있을 때는 온통 담백하기만 하지 저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또 모르지, 사람 많을 때는 관심 없는 척하다가 둘만 있을 때는 돌변할지도… 흐흐.”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찧고 까부는 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페이건 앞에 다가선 무스카는 살얼음이 낀 호수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온통 지루하기만 한 시간의 연속이었는데. 그래도 네가 와 준 덕분에 마지막은 조금이나마 재미있었어.”
“별말씀을.”
페이건은 가벼이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으로 폴리다고스 No.2가 보여 주는 겸허에 응답했다.
물론 그 마음속에는 ‘나를 향해 극렬한 살의를 품고 있는 자에게 감사 인사를 받다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라는 생각이 한가득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속의 정경.
“그럼 나도 이만. 다음에는 이런 지루하기만 한 자리가 아닌 조금 의미 있는 장소에서 얼굴을 봤으면 좋겠구나.”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선배님.”
서로 다른 정경을 마음속에 품은 채 두 사람은 멀어져 갔고 사건의 한복판을 벗어난 페이건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훈련장 지하에 위치한 화장실이었다.
―페이건! 있자나, 있자나! 내가 틀림없이 냄새를 맡았다니까! 그 게오르그라는 건방진 놈한테서….
‘잠깐만, 일단 그 꼴 보기 싫은 여자의 손이 닿은 곳부터 좀 닦아 내고.’
화장실 칸막이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벨제키엘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려 가며 자신이 알아낸 새로운 사실을 전하기에 바빴지만.
페이건은 털 뭉치의 수다를 뒤로 밀어낸 후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뺨을 닦아 내기에 바빴다.
조금 전, 독거미가 팔짱까지 껴 가며 찰싹 붙어 지분거리는 와중에 그 불쾌한 손등이 몇 번이고 뺨을 스쳤던 것이다.
‘찝찝해. 팩셰르의 담배 연기를 정통으로 얻어맞을 때도 이 정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몇 번이고 뺨을 닦아 낸 후에야 페이건은 북슬이의 증언을 경청할 준비가 되었고 잔뜩 흥분한 털 뭉치와 시선을 맞춘 채 물었다.
‘그러니까 게오르그 로덴토의 몸에서 방학 전까지는 일절 나지 않았던 비린내가 난다는 말이지?’
―응, 그것도 내가 지금껏 맡아 본 모든 비린내 중에 가장 심해. 우웩, 계속 쳐다보고 있으려니 아주 코가 썩을 것 같아서 정말 힘들었어.
‘페르디난드 가문의 집사와 비교한다면?’
―그 수상한 집사 영감은 댈 것도 아냐! 말했잖아, 코가 아주 썩어 버리는 줄 알았다고!
‘라무테 님도 북슬이의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응! 벨제키엘처럼 유난을 떨고 싶지는 않지만, 그 남자애의 몸에서 끔찍한 냄새가 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방학 전에… 그러니까 페이건 네가 기말고사를 막 치르고 나왔을 때도 그 남자애를 봤지만, 그때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거든. 도대체 방학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페이건은 대답을 잠시 미룬 채 생각에 잠겼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차마 믿지 못했을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 낸 게오르그.
페스티라카 유적과 그 인근 광산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이미 한껏 수상해진 바 있는 로덴토 가문.
갑작스러운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 게오르그 로덴토의 육신.
과거, 타샤드 제국의 광기가 절정을 이룰 무렵 황제 갈브레이드 3세에게 일어난 수상한 기적.
그리고… 키에르고의 비밀 일기장에서 확인된 모켈레의 흔적.
‘갈브레이드 3세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일이 게오르그 놈에게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이번에도 낙사라의 모켈레인 건가?’
이델타에서 만났던 라이칸슬로프와 사실상 페르디난드를 장악해 버린 에지세크 교단.
이미 명시적으로 존재가 확인된 바 있는 두 개의 기둥에 이어 또 하나의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후끈하니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확인된 게 세 놈이니 이제 나머지 세 놈 남은 셈인가? 아니, 어쩌면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놈들은 한참 전에 잠에서 깨어나 암약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
에지세크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 확실시되는 독거미와 그 독거미 옆을 지키는 청발의 전사.
거기에 괴식물을 둘러싼 일련의 행동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아소토의 외무대신까지.
이놈의 폴리다고스는 배움의 성소가 아닌 대륙 제일의 복마전(伏魔殿)이기라도 한 걸까?
미친놈들이 쉬지 않고 이곳으로 몰려든다는 생각을 하며 페이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게오르그 로덴토에 관한 일은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라무테 님, 앞으로 그놈을 마주치거든 최우선적으로 살펴 주세요. 욕심은 많은데 주의력이 그에 따르지 못하는 놈이니만큼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냄새를 제외한 다른 단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응, 앞으로 두 눈 부릅뜨고 살필 테니까 나만 믿어!
‘감사합니다. 라무테 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의지가 되네요.’
―그래서 지금 당장 그 게오르그 로덴토라는 놈의 뒤를 캐러 갈 거야? 와, 재밌겠다! 나 미행 좋아해.
‘아니, 놈이 신경 쓰이기는 하는데 일단은 당장 우리가 할 일을 해야지. 말해 줬잖아. 이번 일은 다름 아닌 북슬이 너랑 관련된 일이니만큼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라고.’
화장실을 빠져나온 페이건은 폴리다고스 외곽을 향해 한참을 걸어갔고.
“클라디우스 공자, 여기 맡겨 놓으신 짐을 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너머에 있는 영역부터는 특히 주의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공자께서 학년 대표가 아니었다면 이 너머를 혼자 출입하는 것이 허락되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잔뜩 챙겨 가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저도 말은 그렇게 해 놨지만 말씀하시는 공자님의 모습을 보니 절로 가슴이 든든해지는군요. 그럼 공자님, 즐거운 야영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외곽 검문소에 미리 맡겨 놓은 커다란 짐가방을 받아 든 후 그대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저벅저벅.
게오르그의 일로 예상치 못한 시간 지연이 있었던 터라 오솔길 초입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새카만 어둠이 내려 있었음에도 숲길을 내딛는 페이건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꼬박 두 시간에 걸친 도보 이동을 통해 목적지에 다다른 페이건은 자신의 상반신만 한 크기의 가방을 내려놓은 채 주변 탐색에 들어갔다.
“서쪽으로는 도둑고양이 바위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애솔큰 낙엽송 군락 지대 그리고 머리 위로는 일곱 번째 북십자성(北十字星). 맞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아.”
제아무리 폴리다고스에 사람이 많다 한들 그 광활한 전역을 모두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폴리다고스 교내 곳곳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장소가 있기 마련이었다.
페이건이 도착한 장소인 ‘웜의 눈물’ 또한 그런 장소 중 하나였기에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도무지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 그럼 본격적인 야간 조업(魡業)에 돌입하기 전 우리의 목표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할까?”
그리고 그 사실에 적잖은 안도감을 느낀 페이건은 품속으로 손을 넣어 ‘녹색 빛을 발하는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사흘 전, 한동안 조용하던 오르페우스의 일기장이 빛을 발하며 다음 과업이 도래했음을 알렸고 그 순간부로 페이건의 야영 또한 결정된 바 있었다.
―히히! 페이건, 얼른 그 페이지 펼쳐 봐. 나 또 보고 싶단 말이야!
이미 몇 번이나 내용을 읽은 터라 무슨 내용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과업을 살피고 싶었는지 벨제키엘은 날개를 붕붕거리며 일기장 주변을 맴돌았다.
“그렇게 좋냐?”
―당연히 좋지!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지난번에는 라무테만 신기한 능력을 받은 게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그런데 이번에는 내 차례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잖아?
당장에라도 일기장에 얼굴을 파묻을 듯한 벨제키엘의 기세를 이기지 못한 페이건은 일기장을 개방했고 펼쳐 든 페이지 안쪽에는 정갈한 글씨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지상의 호수에서 빛의 호수로.
너의 과거가 현재를 인도할지니.
약속된 장소, 쌍두 도마뱀의 영역에서 커다란 뱀을 힘차게 낚아 올리도록!
빛의 길이 너와 함께 하기를….
추신 :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내 포동포동 친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