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화(2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
―잠깐 그 전에 내 선물부터!
한창 재미있어지려는 찰나 북슬이가 이야기를 막아섰다.
“선물?”
―응. 그래도 이번 일에서 너의 제법 만족스러운 행동을 기념하는 의미로 내가 주는 선물. 아 물론 받기 전에 머리를 조아리는 절차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팔을 뻗어 털 뭉치의 뺨을 움켜잡았고 토실토실한 녀석의 뺨따귀는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났다.
“그 선물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다만 이왕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바로바로 주는 게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기분이 좋지 않을까?”
―느어 드고바아.
투덜거리는 입과 달리 녀석의 꼬리는 민첩하게 움직였고 곧 벨제키엘과 나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어머! 벨제키엘, 벌써 그걸 꺼내 주는 거야?
―이 꼬마도 본격적인 치료술사로서의 길을 밟으려면 제대로 된 도구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오르페우스가 이걸 맡길 때 그랬어. 후계자를 찾거든 적당한 시기에 알아서 건네주라고.
공간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 건 한 자루의 단검이었다. 밤바다처럼 새카만 손잡이와 그것보다 조금 더 검은 빛의 검신(劍身).
―이 녀석의 이름은 티아매트. 오르페우스가 치료술의 도구로 사용하던 물건이야. 그럭저럭 쓸만한 물건이니까 도움이 될 거야. 에헴!
“…이걸 치료할 때 사용하셨다고?”
―응. 외상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칼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 오르페우스는 피부를 절개하거나 상처를 째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티아매트를 애용하고는 했어.
―벨제키엘, 기억나? 오르페우스가 그랬잖아. 티아매트는 워낙에 특수한 광석으로 만들어진 터라 세균이 침범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응응. 분명히 녀석이 그랬지. 티아매트는 따로 소독할 필요가 없어서 참 좋다고.
“그러니까 이걸 절개용으로 사용하셨다는 말이지? 전투용이 아니라.”
―전투용?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오르페우스가 싸우는 모습은 제법 많이 봤지만 티아매트를 전투용으로 쓰는 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라무테 너도 그렇지?
―응.
라무테와 벨제키엘은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처럼 태연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 흑검을 마주한 그 순간 암살가로서의 직감이 속삭였던 것이다.
이 녀석은 ‘쓸만한’이라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특급 명검이라고.
‘이런 명검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다니. 우리 가문의 시조 어르신이 어떤 분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오르페우스의 도검 취향은 논외로 치고. 어쨌거나 이 정도로 뛰어난 명검이 수중에 들어왔다는 건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었다.
외상을 입은 부위를 절제하는 것이나 심장을 후벼 파는 것이나 결국 타겟의 살갗을 가르는 선행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점은 매한가지.
치료술사로서의 나와 암살자로서의 나,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될 동반자를 얻고 나니 아닌 밤중에 횡재를 한 기분이었고.
―그럼 벨제키엘의 선물 수여식도 끝났으니 다시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티아매트를 소중히 갈무리하는 걸 본 라무테가 다시 이야기의 방향을 본론으로 틀었다.
―음… 역시 말로 하는 설명보다는 보여 주는 편이 더 이해가 빠르겠지?
우우웅.
북슬이가 잠들어 있던 티아매트를 꺼내 올 때처럼 공간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물결치는 공간 사이로 보이는 건 병장기가 아닌 선명한 영상이었다.
광활한 벌판을 한참이나 지나 우두커니 솟아난 깎아지른 형태의 절벽.
절벽 위에 자리를 잡은 웅장한 건물들과 절벽 주변을 빼곡하게 감싼 수림.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오시(傲視)하는 듯이 창공에 훌쩍 떠 있는 공중의 고성(古城)까지.
익숙하되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뭐랄까? 저 영상이 가리키는 장소 자체는 낯익되 작금의 상황에서 저 장소가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한없이 낯설기만 한 그런 느낌이랄까?
―어때? 어딘지 알겠니?
“생각나는 장소가 한 군데 있기는 합니다. 대륙에 발을 붙이고 사는 마나 능력자 가문의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광경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올바른 답을 내린 건지는 도무지 확신이 들지 않는군요.”
―그래? 그럼 이것까지 보면 조금 더 확실하지 않을까?
라무테가 고개를 까닥이자 영상을 손으로 당겨 확대하기라도 한 것처럼, 초점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영상의 초점이 향한 곳은 공중 고성 정 중앙에 위치한 뾰족 첨탑.
그 첨탑의 끝에는 다섯 개의 깃발이 상승기류를 타고 펄럭이고 있었는데, 각각의 깃발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한 그 순간, 난 최초의 짐작이 들어맞았음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 폴리다고스.”
―응, 정답!
100년 전, 암살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유명한 농담이 있었다.
‘일국의 국왕과 폴리다고스의 학장, 한 명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면 둘 중 누구를 암살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까?’
실력이 탁월한 암살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질문.
만약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아마도 난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국왕을 암살하는 편이 훨씬 더 쉬워. 왕국은 아무래도 각국 간 국력차가 있기 마련이고 그 수도 많지. 하지만 폴리다고스의 학장은 단 한 명뿐이잖아? 혹시 당신이 둘 중 한 가지 의뢰를 꼭 받아야 한다면 국왕을 선택하도록 해. 타샤드 제국의 황제나 베리오스 교국 교황의 목을 따와야 하는 게 아니라면 국왕 쪽이 폴리다고스의 학장보다 훨씬 더 수월할 테니까.”
제법 뛰어난 정보력을 갖춘 내가 이 정도로 단언을 할 정도로 ‘아카테미 폴리다고스’의 위상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기관들 중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눈부신 곳.
전생의 내가 한창 현역으로 활동할 때에도 폴리다고스는 가장 강력한 요새였다.
못 죽이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전생의 나도 폴리다고스 내에서는 암살을 실행한 적은 없었다.
굳이 저곳에 들어가는 위험을 무릅쓰느니 목표를 아카데미 바깥으로 꼬여내는 게 훨씬 편했으니까.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최강, 최고(最古)의 교육기관 폴리다고스.
그런데 오르페우스의 꿈과 유산이 저곳에 남아 있다고?
침착함이라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폴리다고스에 가야 한다는 거죠?”
―응. 페이건 군이 오르페우스의 꿈을 본격적으로 좇아볼 생각이라면.
―우헤헤! 표정 좀 봐! 크큭, 너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구나. 우헤헤.
“시끄러워. 초대형 롤빵.”
까르르거리며 날아다니는 롤빵을 붙잡아 조물조물해 봤지만 한번 복잡해진 심경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한데 오르페우스 님은 왜 저곳으로 가셨던 걸까요?”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오르페우스의 유산이 저곳에 남아 있다는 점이지. 여행을 다녀온 오르페우스는 우리 둘을 불러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어.
―잠깐! 라무테, 그건 내가 할래!
힘찬 날갯짓으로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북슬이는 에헴! 하고 목청을 다듬은 후 오르페우스를 흉내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라무테, 벨제키엘. 언젠가 자질이 있는 클라디우스를 만나게 되거든 그 녀석에게 폴리다고스로 가라고 말해줘. 그 녀석이 정말로 자격이 있다면 그곳에 가져다 놓기만 해도 알아서 재주껏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놈을 아카데미까지 안내하기만 하면 돼. 어려울 것 없지, 와하하!
“남기신 말씀은 그게 다야?”
―응 이게 다야. 오르페우스는 확신하고 있었거든. 우리 둘의 시험을 통과한 클라디우스라면 자신이 폴리다고스에 남겨둔 길을 알아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페이건, 표정이 왜 그래? 혹시 깜짝 놀랐니? 네가 예상했던 오르페우스와는 좀 많이 다르지?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북슬이가 흉내 낸 웃음소리도 그렇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도 그렇고 가문의 기록에 남겨진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머릿속을 채우는 오만가지 생각.
모데나스와 성녀님이라는 한고비를 이제 막 넘어섰는데 조금 더 높은 산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래도 별수 있나. 한번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산이고 협곡이고 넘어가는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건 오르페우스에게 다가설수록 그가 남긴 ‘유산’이 ‘다가올 환란’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짙어진다는 점이었다.
“알겠습니다. 가야지요. 그게 시조님의 뜻이라면 까짓거 폴리다고스가 문제겠습니까? 응당 가야 마땅한 일이라면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그래야 내 페이건이지. 라무테 뭐 하고 있어! 너도 얼른 박수 쳐!
―응, 알았어. 짝짝짝, 페이건 만세!
“하지만 지금 당장은 갈 수 없습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정리해야 할 일도 한가득이니까요.”
―정리할 일?
“영원의 숲이 아직 열려 있잖아. 벌써 3개월이나 지났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팔자 좋게도 3개월간 꼬박 밤 나들이를 다녔지만 지금쯤 가문의 연구원들은 머리가 터질 지경일 것이다.
영원의 숲 입구가 3개월씩이나 열려 있다는 전대미문의,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한 초유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테니.
일단 폴리다고스에 입학할 방법보다는 영원의 숲을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페이건, 그 문제라면 내가 생각해 둔 게 있거든. 네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제법 그럴싸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잠깐 귀 좀 줘볼래?
평소의 라무테답지 않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
나는 잠자코 귀를 기울여 라무테의 비책을 들었고, 모든 설명을 끝낸 피닉스는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했다.
―어때? 괜찮을 것 같지?
* * *
다음 날.
“공자님이 다시 한번 영원의 숲에 들어가신다는 게 사실인가?”
“그래. 오늘 새벽 공자님께서 가주님을 찾아가 다시 한 번 도전하시겠다는 의사를 밝히셨다더군.”
“흐음… 공자님께서 영수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충격에서 빠져나오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회복이 빠른 것 같아 참 다행이네 그려.”
“그러게 말일세. 한데 공자님께서 기력을 되찾으신 건 다행이지만 혹시 오늘 한 번 더 충격을 받는 건 아니실지 걱정되는구먼.”
“그래도 우리는 공자님의 도전을 응원해 줘야지. 그리고 게이트에서는 쭉 전언이 나오지 않았나? 공자님께서도 뭔가 느끼신 바가 있으니 재도전을 하신다 한 거겠지.”
이른 아침부터 클라디우스의 대회의실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3개월 전 이해할 수 없는 실패로 마무리된 페이건이 다시 한 번 영원의 숲에 도전한다는 소문이 가문 내에 전파된 것이다.
페이건의 가족들과 가신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대회의실을 가득 메웠고, 마침내 페이건이 다시 한 번 입구에 선 그 순간, 그들의 긴장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이 아비는 너를 믿고 있을 터이니 이번에도 잘 다녀오너라.”
“페이건, 엄마가 우리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
“오라버니, 라나도, 라나도 오라버니를 사랑하고 존경해요.”
“흉아아, 아부아… 사릉!”
가족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페이건은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고, 남겨진 자들이 자리한 대회의실에서는 연신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가주님! 저기를 좀 보십시오! 이번에도 심상치 않습니다!”
첫 번째 탄성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전원입니다. 영지에 있는 영수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도련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주님, 영수들이 마치 왕을 맞이하는 듯한 자세로 도열해 있지 않습니까? 영수들은 도련님이 영원의 숲에 발을 들이실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물론 페이건의 1차 도전 때도 에스페타라의 모든 영수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 전력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그때와는 또 상황이 달랐다.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모든 영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페이건을 맞이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공손하기 이를 데 없는 자세를 유지한 채 말이다.
“어머나! 여보. 저기 벨도루시도 있네요? 혹시 뭐 이야기 들은 게 있어요?”
“아니. 나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소. 허허, 못된 녀석 같으니라고. 이런 일을 꾸밀 생각이었다면 다른 영수들은 몰라도 벨도루시 너는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 줬어야지.”
평생의 파트너인 흑곰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티베리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오늘 자신의 맏아들에게 아주아주 긍정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아주아주 강력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로롱.
그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가신들의 귓가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는 울창한 숲 너머로 보이는 창공.
저 하늘 끝에서 ‘태양만큼이나 선명한 빛을 뿜어내는 붉은 점’이 빠른 속도로 페이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 저게, 저게 뭐지? 자네 저렇게 생긴 영수를 본 적 있나?”
“아니. 본 적 없네. 에스페타라에 저런 생김새를 한 영수가 있었던가?”
타오르는 듯한 붉은 날개와 전신을 감싼 영롱한 빛.
그리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지는 눈동자.
기존의 영수들과는 격이 다른 품격이 느껴지는 적조(赤鳥)의 등장에 가신들의 입은 떡하니 벌어질 수밖에 없었고.
“츄르릅… 오라버니… 너무 멋지세요.”
“후웅아! 아브아!”
어린 동생들은 몽롱한 눈을 한 채 존경하는 오라버니, 형을 향해 열띤 성원을 보냈다.
“피닉스…! 가주님! 피닉스입니다!”
모두가 당황한 그때 가신들 중 최고의 연륜을 자랑하는 아브라힘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초대 가주님에게만 그 모습을 보였다던 피닉스입니다! 아무런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탓에 그저 전설인 줄 알았던 피닉스가 우리 도련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