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02)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2)화(202/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2)
페케르만 덴허트.
‘무쇠 발굽 학파의 수장’이자 폴리다고스 ‘수호국장’ 자리를 역임하고 있는 장년과 노년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남자.
이 유쾌하고도 강맹(强猛)한 사내의 뒤를 따라다니는 이명(異名)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익살스럽고 유명한 별명을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벽한 대머리’를 꼽고는 했다.
‘경이로운 구체(球體)’, ‘수호국을 밝히는 광휘의 근원’, ‘반짝이는 진주’ 등등.
암암리에 따라다니는 숱한 별명이 말해 주듯 그는 완벽한 원형의 머리통을 가진 순도 100%의 대머리였다.
만약 페케르만이 허연 수염을 길렀다거나 혹은 모자를 애용했다면 원형(圓形)과 연관된 숱한 별명들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워낙에 유쾌한 성품이었던 데다 개성적인 자신의 모발 형태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페케르만은 그런 식의 비겁한 방법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고.
덕분에 수호국 건물의 광도(光度)는 오늘도 최고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외곽 야영지에 단신으로 들어간 학생이 있다고? 다른 때도 아닌 이 시기에?”
그런데 언제나 동글동글하기만 할 것 같던 페케르만의 머리통이 어쩐 일인지 오늘따라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평소처럼 허허거리는 웃음으로는 넘겨들을 수 없는 보고가 올라왔기에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되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출입을 관리하는 실무자 선에서 허가가 떨어졌으니 진입한 것일 텐데. 허허! 허가 업무를 맡는 그 친구들의 배짱도 대단하구만. 지금이 무슨 시기인 줄 뻔히 알 만한 친구들이 여기서 허가를 내줘?”
매해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야영지 일대의 숲은 대격변의 시기를 맞이한다.
기나긴 여름 내내 땅속에 묻혀 있다 겨우겨우 맞이한 수확의 시기를 자축하기 위해 하루 종일 울어 대는 마수들.
기나긴 겨울나기를 위한 양식을 보충하기 위해 혈안이 된 채 숲속을 누비고 다니는 짐승들.
여기에 변태(變態)의 시기를 맞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형 곤충들까지.
이 무렵의 숲은 그야말로 마경(魔境)이라 불리는 게 어울릴 법한 요지경 세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숲 내부의 혼란도가 높아짐에 따라 위험도 또한 수직 상승하는 건 당연지사였기에 대부분의 학사 당국은 이 시기에 학생들이 야영지 인근에 출입하는 걸 엄금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 문제적 계절에 혼자서 야영지의 경계선을 넘는 것을 허가받은 학생이 있다니, 페케르만의 동그란 머리가 기울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누구라든가? 요 타이밍에 발칙한 출사표를 빼 든 그 도발적인 학생은?”
“국장님께서도 잘 아시는 학생입니다. 왜 요전에 저를 비롯한 조교수들을 모아 놓고 말씀하신 바 있잖습니까? 기회가 온다면 저 친구를 가까이에 두고 여러 가지 반응을 관찰해 보고 싶은데 안 그래도 이목의 집중을 받고 있는 학생에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있는 것 같아 참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아! 그럼 그 맹랑한 친구가?”
“맞습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허허! 그래? 아아, 그래.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듣고 나니 실무진들이 출입 허가를 내준 것도 이해가 가는구먼그래. 혼자서 테시온을 지켜 낸 학년 대표라면 비록 이 시기라도 혼자서 숲에 들어갈 만도 하지. 하하하!”
기울어져 있던 머리통이 원래 모양으로 돌아갔고 페케르만의 입술 사이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난 말이지, 혹시 졸업을 앞둔 학생이 연구 성과에 치이다 보니 이 시기에 숲에 출입하는 강수를 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지 뭔가? 그런데 졸업반이 아니라 1학년이었군그래, 흐흐.”
“이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니 직접 보고를 해 올린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국장님이라면 이 소식을 듣고 즐거워하실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 즐겁지, 아주 즐겁고 말고. 그간 실험국장께서 그 친구를 워낙에 싸고도는 바람에 나는 통 말을 붙일 기회가 없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친구가 알아서 내 영역으로 쪼르르 달려와 준 셈이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지.”
조금 전의 것보다 조금 더 커다란 웃음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싸고돌아? 그 정신 나간 미치광이 괴물이 나를? 도대체 뭘 보고 그런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그런 허황된 말씀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불쾌하니까요!’
본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피를 토하며 항변을 했겠지만, 팩셰르의 비호(庇護)가 있었기에 페이건이 비교적 평탄한 학사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폴리다고스에서 보낸 6개월의 시간이 워낙 문제적이었던 탓에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이름은 징계위원회 회의록에 숱하게도 많이 등장해야만 했다.
페이건의 명성과 명망이 높아지는 만큼 그를 시기 질투하는 음험한 시선 또한 강해졌기에 페이건이 학년 대표로 사실상 취임한 이후에도 그를 노리는 수작과 공작은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 모든 수작과 공작은 실험국의 노괴물이 보여 주는 위엄 앞에서 초기 진압되기 마련이었고.
[그 일이라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자네들은 그 문제에 신경 끄게.]라는 팩셰르의 호언장담 덕분에 각종 개수작의 여파가 페이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전무했다.
만날 때마다 팩셰르가 내뱉는 비아냥과 담배 연기(굳이 미간 사이를 겨냥해 내뿜는)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팩셰르는 언제나 페이건을 지켜 주고 있었다.
한데 실험국의 괴물이 학생을 상대로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이게 처음인지라(심지어 그 유리안을 상대로도 이러지는 않았다)실험국장이 특정 학생을 편애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페케르만 역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편애’라고 몰아붙일 것까지는 없겠지만 페이건을 대하는 팩셰르의 태도가 다소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팩셰르가 명시적으로 페이건을 보호하겠다는 선언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실험국장의 표정이며 행동에서는 ‘이놈은 내 꺼야. 그러니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게 좋아.’라는 기세가 느껴졌고 덕분에 페케르만 역시 페이건에 대한 호기심을 눌러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숲에 있는 마수나 식물들 자체는 실험국장님의 관할이지만 그 영역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건 우리 수호국 소관이지. 자, 그 꼬마가 모처럼 우리 관할구역으로 들어와 줬으니 한번 관심을 기울여 볼까?”
그런데 페이건이 제 발로 팩셰르의 품을 벗어나 자신의 관할구역으로 와 줬으니 페케르만으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실무자들이 발급한 출입 허가증은 며칠짜리던가?”
“일단은 3일 허가가 나왔지만, 클라디우스 학생이 간단한 추가 신고를 할 경우 별도 승인 절차 없이 일주일까지 연장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가을이 지나기 전까지만 특별 감시 기간이 유지될 테니 당분간은 그 친구의 행방을 추적할 명분이 있는 셈이로군.”
수호국.
얼핏 보면 요아힘의 치안국과 업무가 겹치는 옥상옥(屋上屋)의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지만, 그 내실을 살펴보면 치안국과 수호국의 관할 영역은 완전히 달랐다.
치안국이 외부로부터 폴리다고스에 가해지는 위협을 적극적으로 배제해 나가는 무력, 조사 기관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수호국의 주요 임무는 폴리다고스 내부의 환경과 자연을 보존해 나가는 학술 기관적인 성격이 강했다.
때문에 까다로운 시기에 유독 위험해진 야영지를 들락날락거리는 학생의 행방을 추적할 명분은 차고도 넘쳤기에 페케르만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명령을 하달할 수 있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우리 관할 영역에 들어올 때마다 그 시기와 체류 기간을 정밀하게 기록하도록 하게. 그리고 매일 정오 이전까지 나에게 보고를 올리도록. 테시온의 승자께서 무슨 용건으로 이런 미묘한 시기에 야영지를 들락날락거리는지 내가 좀 알아야겠어.”
* * *
“크르륵.”
야영지와 숲의 경계 지점을 넘어 본격적인 녹음의 땅으로 들어선 지 30여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숲의 주민이 첫 번째로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륵.”
통나무처럼 굵은 다리와 벌판처럼 드넓은 가슴팍.
거기에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빨까지.
생김새는 늑대를 닮았으나 그 크기와 위세는 도무지 늑대로 보이지 않는 거대 몬스터 정글 하운드.
어쭙잖은 기 싸움 같은 건 하기 싫었던 걸까?
정글 하운드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치이익.
“깨갱!”
이럴 경우를 대비해 내가 만들어 둔 특제 배합액이 분사구를 통해 분출되자마자 꼬리를 말고 달아나 버렸다.
“끼잉끼잉.”
놈이 모습을 감춘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애처로운 울음소리.
이 울음소리로 판단컨대 마수들이 싫어하는 식물들의 진액을 짜내 만든 배합액의 효과는 탁월한 듯했다.
―우헤헤, 저놈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는 것 봐. 그런데 웬일이야? 너 같은 싸움닭이 이런 식의 평화적인 방법을 다 사용하고? 원래는 저런 멍청한 마수들은 보이자마자 엉덩이를 뻥뻥 걷어차 주는 게 네 스타일이잖아?
‘그치, 그렇기는 한데… 오늘은 피를 보고 싶지 않은 날이거든. 그렇다고 여기 있는 짐승들이 내 사정을 봐 줄 리도 없으니 나도 나름의 자구책을 찾는 수밖에.’
―헤헹! 피를 보고 싶지 않다니. 폴리다고스 제일가는 깡패, 페이건 클라디우스께서 언제부터 그렇게 착해지셨대?
‘딱히 심경의 변화가 있거나 한 건 아니고 지금부터 찾아가야 하는 친구들이 피 냄새를 싫어하거든. 다른 것도 아니고 부탁을 드리러 가는 길에 친구가 싫어하는 냄새를 풀풀 풍길 수는 없잖아.’
단단한 껍질과 그 안쪽에 숨겨진 억센 근육.
그리고 지휘자의 명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단결력까지.
누구보다도 용맹하게 싸울 수 있는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은 좀처럼 싸우려 들지 않았고 난 비폭력 방식을 고수한 채 숲을 걸어 나갔다.
………
“캬아아앙!”
치익.
“끼잉!”
……
“카앙캉!”
치이익.
“깨애앵!”
…
그 이후로도 주민들의 습격이 거듭 발생했지만, 마수의 종류별로 준비해 온 배합액 분사 장치 덕분에 난 어렵지 않게 목적지를 향할 수 있었다.
‘보자… 쿡 찌르기만 해도 단 꿀이 줄줄 흐를 것 같은 거목들이 즐비하고… 토양에도 자갈이 많지 않은 덕분에 굴을 파기에도 수월해. 주위에 큰 물줄기가 있으니 물장구치기에도 편할 거고. 이쯤이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쉬지 않고 걷기를 한 시간여.
‘친구’들이 서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고 난 근처에 있는 거목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아직 6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완연한 여왕이 되지는 못했더라도 지금쯤이면 철부지 공주님 티는 벗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제대로 된 여왕님을 모시는 무리는 부지런히 활동하기 마련. 조금 기다려 보면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지 답이 나오겠지.’
어느덧 여름의 끝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울창하기만 한 나뭇가지에 몸을 숨긴 채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고 몸을 숨긴 지 20여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두두두둑.
시륵시륵.
나무 그늘 아래 위치한, 유독 축축한 흙이 갈라지고 삐죽하니 솟은 깜장 뿔이 지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하게 뻗은 뿔과 튼튼한 각질 갑옷으로 감싸인 관절.
그리고 등판 각질 아래에서 부지런히도 떨어대며 찌륵찌륵 소리를 내는 날개들.
‘참 신기하지. 쟤네들도 어떻게 보면 커다란 곤충들인데, 이렇게 보고 있으면 징그럽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고 귀엽기만 하단 말이야. 저 동글동글한 유선형의 몸과 껍데기 위로 자르르 흐르는 윤기 덕분일까?’
꽤나 오랜만에 마주하는 내 친구들.
‘대왕 풍뎅이’는 여전히 정겨운 모습을 한 채 숲을 찾은 나를 반겨 줬다.
―잉, 뭐야? 물뱀 문제로 꼭 만나야 할 친구가 있다고 하길래 누군가 했더니 그게 저 풍뎅이들이었어? 야! 페이건, 너 뭐 잘못 생각한 거 아냐? 네가 낚아야 하는 뱀은 호수에 있고 풍뎅이들은 숲에 있는데 쟤들이 어떻게 네 낚시를 도와주냐?
이번 과업을 해결해 줄 열쇠로 대왕 풍뎅이 무리를 짚어 낸 내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북슬이는 머리 위에서 발버둥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만히 좀 있어. 내가 정말로 단서를 찾아낸 건지 아니면 네 말대로 헛다리를 짚은 건지의 여부를 파악하려면 일단 쟤네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봐야 한단 말이야.’
―단서? 우우웅… 낚시와 풍뎅이가 단서라니. 이상하다, 어제는 분명히 미끼가 관건이라 그랬는데. 아앗! 너 설마 쟤네들을 실로 대롱대롱 묶은 다음에 미끼로 써먹을 생각을 하는 거야?
‘….’
―안 돼! 그럼 못써! 풍뎅이들이 크기는 하지만 그 큰 물뱀의 미끼로 쓰려면 몇백 마리 가지고는 턱도 없을 텐데. 너 도대체 얼마나 많은 풍뎅이들을 죽이려고….
‘비록 불친절하고 추상적인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오르페우스 님의 단서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이건 너도 인정하지?’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풍뎅이들을 관찰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북슬이의 망상이 한도 끝도 없이 커질 것만 같아 결국 내가 도출해 낸 추론을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오르페우스 님께서 이번 과업과 관련해 남기신 단서를 보면 나의 과거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내가 여기 와서 제일 처음에 수행한 과업이 뭐였지?’
―우웅… 쟤네들의 공주님을 여왕으로 만들어 주는 거였지.
‘그래, 잘 기억하고 있네. 그럼 질문 하나 더. 그 용병단 출신 쓰레기들이 벌인 만행으로 화가 난 풍뎅이들이 잔뜩 떠올라 하늘을 가렸을 때 사람들이 쟤네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
―뭐라고 하기는, 깜장 구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꼭 풍뎅이들이 하늘 위에 검은색 바다를 만든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잠깐, 검은 바다?
내가 던진 질문을 따라오던 북슬이의 눈동자가 순간 커다랗게 변했고.
짜악.
이내 녀석의 토실토실 몸통만큼이나 커다란 날개가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녀석은 맛있는 간식을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눈동자를 한 채 외쳤다.
―그래! 하늘 위에 바다를 만들었으면 당연히 호수도 만들 수 있을 거야. 페이건! 너 쟤들을 그 호수 위에 띄워 올릴 생각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