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0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4)화(20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4)
‘진흙 뒤로 가려진 벽화의 내용이 뭔지는 몰라. 하지만 저걸 만든 게 오르페우스 님이라는 건 분명해.’
고대왕국이 몰락한 이래로 유일하게 존재했던 드루이드가 남긴 유산은 지금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고.
쓱싹쓱싹.
찌륵찌륵.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풍뎅이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벽화(아마도 물뱀의 출현과 같은 시기에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를 빛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행동을 보아하니 벽화에 담겨 있는 의미를 알고 저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태양 날개 그리폰들이 숙명처럼 황금 나무를 지켜 왔듯이 풍뎅이들 또한 본능적으로 벽화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나도 모르게 벽화를 향해 다가서고 말았고 그 바람에 진흙을 긁어내기 위해 벽화에 매달려 있는 풍뎅이들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관찰할 수 있었다.
―저기, 이거 벽화라고 부르는 게 맞지?
‘응, 제대로 된 화구(畫具)를 갖춰서 그린 정식 벽화라기보다는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원시 벽화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기는 하다만 벽화라는 사실 자체는 틀림없지.’
―우우웅, 저 뒤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페이건 너도 잘 모르지?
‘그치, 나도 처음 보는 물건이니까. 다만 저 벽화의 내용을 가리고 있는 저 진흙을 모조리 벗겨 낼 수만 있다면 우리의 목적 달성도 수월해지리라는 예감이 아주 강하게 드네.’
펄럭하고 하늘을 날아 벽화 곳곳을 살피는 라무테 님.
하지만 풍뎅이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흙이 걷힌 데라고는 가장자리 극히 일부가 전부였기에 관찰 위치를 바꿔 본다 한들 뚜렷한 성과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어휴! 투시안까지 최대한 발휘해 봤는데 아무것도 안 보여. 페이건, 풍뎅이들이 매달리고 있는 이 진흙 제거 작업 과연 효과가 있을까?
‘아주 조금씩이지만 진흙이 떨어져 나가고는 있으니 계속 노력하다 보면 결국 좋아지기는 하겠죠. 음… 지금처럼 얘네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준다면 한 30년쯤 후에는 대충이나마 안쪽 내용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어마나! 나 그렇게는 오래 기다릴 자신이 없는데.
―나, 나도… 30년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 시간을 그대로 기다렸다가는 그 물뱀도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고 말 거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순전히 풍뎅이들에게만 맡겼을 경우 그렇게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너무 울상 짓지 마.’
―그, 그럼! 시간 줄일 수 있는 거지? 그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시간 단축 자체는 분명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오르페우스 님의 성향을 고려해 보면 그 구체적인 방법 또한 이곳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또 한 번의 관찰이 끝났으니 다시금 도래한 탐색의 시간.
벽화에서 시선을 돌려 구체적인 단서 탐색에 들어간 바로 그때.
쌔앵.
다소 기약 없어 보이는 수색 작업을 원활하게 해 줄 지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찌르륵.
“아! 너, 오랜만이다. 하하, 많이 컸네. 그런데 그 알록달록한 색은 여전하구나?”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여왕은 그대로 내 품에 안겨 왔고 총천연색 빛을 내뿜는 뿔을 내 팔뚝에 비벼 대며 반가움을 표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페이건 넌 동물이나 곤충들하고는 참 금방 친해지는 것 같아.
“그럼, 금방 친해지고말고. 그 증거로 롤빵이 너랑도 이렇게 친하게 지내고 있잖아. 말하는 롤빵이랑 매일같이 옥신각신하는 거에 비하면 귀염귀염한 풍뎅이랑 친해지는 건 일도 아니지.”
―뭐!
습관처럼 날린 도발에 울컥한 북슬이는 목소리를 높이려 했지만 난 녀석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쉿! 보아하니 여왕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으니 좀 조용히 해 봐.”
―거짓말하지 마! 아무리 여왕이라고 해도 풍뎅이가 어떻게 말을 하냐!
난 대답 대신 털 뭉치의 말랑말랑한 머리통을 여왕 풍뎅이의 뿔 근처로 가져다 댔고 이내 북슬이의 눈동자는 동그랗게 변했다.
여왕 풍뎅이가 전하고자 하는 울림이 녀석의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약속… 기다렸어….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는 바람에…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기다려 왔다는… 사실도 잊어버렸지만… 이제야 알았어… 우리가 당신을 기다려 왔다는 걸.
태양 날개 그리폰이나 에스페타라 영수들의 언어 구사력에 비하면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여왕 풍뎅이는 분명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우왕! 푸, 풍뎅이가 널 기다려 왔대?
“그래. 그리고 때마침 이 녀석도 반짝이기 시작했거든. 정황을 보건대 오르페우스 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황금목을 지켜 온 그리폰 부족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우우웅.
여왕 풍뎅이가 모습을 드러낸 시기를 기점으로 마즈다가 녹색 빛을 발하며 떨리기 시작했고 난 그제야 비로소 내가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날… 따라와… 보여 줄 게 있어.
내 품에서 벗어난 여왕 풍뎅이는 힘찬 날갯짓으로 우리를 인도했고 나와 두 마리의 마스코트는 여왕의 뒤를 따라 지하로 이어진 길을 내려갔다.
―우리가… 지켜 온… 약속의 증표!
우리가 다다른 길의 끝에는 조금 전의 광장만큼이나 커다란 밀실이 준비되어 있었고 밀실 정중앙에 위치한 제단에는 ‘물푸레나무 모양을 한 대형 물뿌리개’가 놓여 있었다.
“진흙으로 가려진 벽화에 여왕이 지켜온 약속. 그리고 비밀의 장소에 준비된 물뿌리개까지. 이제 완전히 명확해졌네. 오르페우스 님은 내가 저 물뿌리개를 가득 채운 후 벽화를 가리고 있는 진흙을 씻어 내기를 원하시는 거야.”
―그 진흙을 씻어 내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거기까지가 완료되면 비로소 호수의 물뱀을 낚아 올릴 준비가 끝나는 게 아닐까? 즉 저 물뿌리개를 채우지 않으면 물뱀을 낚아 올리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뜻이지.”
―어우! 머리 아파!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풍뎅이들의 집에 물뿌리개랑 벽화가 있으니 거기부터 처리한 다음에 호수로 가라고 그러면 될걸. 오르페우스 이 얄미운 놈은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을 꾸민 거야!
“내가 여기까지 당도하는 것 그 자체도 하나의 시험인 거겠지. 털 뭉치 네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오르페우스 님은 똑똑한 사람을 좋아했다고.”
관찰력, 판단력, 주의력, 추론 능력, 사고력, 기타 등등.
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지적 능력을 발휘해 이곳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부디 내 머리가 오르페우스 님의 기준을 만족시켰기를 바라며 물뿌리개를 집어 들었다.
우우웅.
내 손이 물뿌리개 손잡이에 닿은 순간 마즈다가 다시 한 번 공명음을 발했고 그 순간, 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생긴 건 물뿌리개인데 물만 채우라고 만든 물건은 아니네. 안쪽에 가득 채워야 하는 건 드루이드 오러… 하! 정말이지 꼼꼼하신 분이라니까. 도무지 시험이 끝날 줄을 모르네.”
―안에다 오러를 채워야 한다고? 그럼 얼른 채워! 너 지이잉 하고 그 녹색 빛 쏘는 거 되게 잘하잖아.
“그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든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여기 물뿌리개 밑에 촘촘한 구멍들이 뚫려 있거든. 생각 없이 채웠다가는 기껏 채운 오러가 그대로 새어 나갈 뿐이야.”
―엑! 그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해야 된다고?
“그렇다고 아예 밑 빠진 독은 아닌 것 같고. 조금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으니까 잠깐 있어 봐.”
난 아주 약간의 오러를 물뿌리개 안쪽으로 투사한 후, 주변의 흐름을 면밀히 살폈다.
안쪽에 머물던 오러가 바닥 구멍을 통해 조금씩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고 시간에 따라 흩어지는 오러의 양을 측정하니 대략적인 견적이 나왔다.
“보름. 물뿌리개가 오러를 보관할 수 있는 시간은 보름이 한계야. 이걸 이용해 벽화의 진흙을 씻어 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2주 안에 오러로 가득 채워 놔야 해.”
―만약 보름 안에 다 못 채우면 어떻게 되는데?
“그럼 안에 있던 오러가 다 새어 나와 버릴 테니 말짱 헛수고하는 거지.”
―엑! 그럼 그다음에도 열심히 채우다가 결국 보름 안에 또 못 채우면?
“말했잖아, 헛수고라고. 끝까지 채우지 못하는 이상 결국은 전부 다 헛수고일 뿐이야.”
―페이건, 지금부터 고생해야 하는 널 앞에 두고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그럼 결국 쳇바퀴일 뿐이잖니?
천하의 깍쟁이 같은 물뿌리개의 모습에 화가 나기라도 한 걸까?
라무테 님 또한 좀처럼 보여 주지 않는 표정을 한 채 불만을 토했다.
“할 말이 많은 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불평만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금부터 한번 열심히 채워 보려 합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마스코트들의 불평을 뒤로 한 채 난 정신을 집중했고 잠시 후 텅 비어 있던 물푸레나무 물뿌리개 안쪽이 녹색 물결로 채워져 갔다.
“후우!”
그렇게 난 최대한도의 집중을 발휘해 오러를 투사하는 작업을 마쳤고 고작 30여 분이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내 미간에는 땀이 흥건했다.
‘조금은 적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최대한도로 오러를 발산하는 건 쉽지 않아. 일단 오늘치 분량은 전부 쏟아부었으니 오러가 회복되려면 하루는 꼬박 기다려야겠는걸.’
잠시간 호흡을 가다듬은 후, 노고를 기울인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물뿌리개 안쪽을 꼼꼼히 살폈다.
확인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초조한 표정으로 내 반응을 살피던 북슬이가 곧바로 질문을 던져 왔다.
―어때, 보름 안에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보름까지는 안 걸릴 것 같고 빠르면 일주일 안쪽으로 다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일주일만에 다 채울 수 있다고? 그 심술궂은 오르페우스가 보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한 일인데?
“보름은 오르페우스 님께서 최소한으로 잡은 기준이잖아. 그리고 심술궂다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오르페우스 님께서 여기서까지 이런 장치를 마련해 놓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야.”
―이유? 무슨 이유.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일종의 경고나 안내 같은 거겠지. 이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면 최소한 이 물뿌리개 정도는 보름 안에 채울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그런 내용의 안내문.”
물론 나 역시 오르페우스 님의 꼼꼼한(때로는 과할 정도로) 일 처리에 짜증을 느낀 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너머에 숨겨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진실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기에 딱히 불평을 늘어놓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오르페우스 님께서 제시한 기준을 무려 일주일씩이나 초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기쁘기도 하고 말이야.’
부웅부웅.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감지했는지 여왕은 사방에 빛을 뿌려 대며 춤을 췄고.
난 그 광휘의 댄스를 배경 삼아 벗어 두었던 겉옷을 걸쳤다.
“그럼 이만 돌아가죠. 어차피 오늘치 드루이드 오러는 다 사용해 버렸으니 푹 쉬고 재충전이 끝난 상태에서 내일 다시 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찬성!
―나도 찬성!
이번에도 여왕의 안내를 받아 가며 지상을 향했고 벽화가 위치한 광장에 도착하자 공간을 가득 메운 풍뎅이들이 일제히 뿔을 흔들어 댔다.
―응? 쟤네들 왜 저래. 자리도 좁을 텐데 굳이 일어서서 뭐 하는 거지? 춤이라도 추는 건가.
“작별 인사가 아닐까? 저 아이들도 우리가 벽화의 비밀을 풀어 주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을 테니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거겠지.”
―호오! 참 예의 바른 풍뎅이들이네. 좋아, 아주 보기 좋아.
풍뎅이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통로를 만들어 준 덕분에 난 녀석들의 뿔이나 껍데기에 부딪히는 일 없이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고.
녀석들이 보여 주는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가벼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여왕 폐하 그리고 예하 풍뎅이 제군들, 부디 평온한 밤 보내시길. 이 사람은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 *
“대왕 풍뎅이들의 땅굴을 드나들고 있다고? 그것도 나흘 연속으로?”
“그렇사옵니다, 국장님.”
“내 자네들을 믿지 못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뭐 잘못 보고 그런 거 아닌가? 그 풍뎅이 놈들이 자기들 여왕을 얼마나 극진히 모시는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아? 그런데 그놈들이 인간의 출입을 허락했다고? 그것도 며칠 연속으로?”
동글동글하니 보기 좋은 페케르만의 머리통이 격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정수리 위에 맺혀 있던 태양 빛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저 또한 초기 보고서가 도무지 믿기 어려웠던 터라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교차 검증을 실시했습니다. 수호국에서 사역하는 일곱 종류의 관측용 마수를 현장에 투입해 정찰을 시켰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국장님,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대왕 풍뎅이 소굴에 들어간 게 맞습니다.”
“허허! 재미있군, 재미있어.”
페케르만은 수염 한 올 없이 매끌매끌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대왕 풍뎅이는 평소에 온순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자신들의 여왕과 관련된 일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해질 수도 있는 놈들이었다.
왜 당장 올해 초 야영장 인근에서 발생한 그 사건만 봐도 대왕 풍뎅이 놈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종자들인지는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풍뎅이 놈들이 여왕의 쉼터에 인간이 출입하는 걸 허락하다니.
‘페이건 클라디우스, 이 친구는 도대체 무슨 방법을 썼길래… 잠깐! 학기 초 사고? 그러고 보니….’
페이건과 풍뎅이 사이의 인연을 떠올린 페케르만의 눈동자가 반짝하며 빛을 뿜었다.
“그러고 보니 학기 초에 있었던 대왕 풍뎅이들의 발흥(發興) 사건을 진압한 것도 페이건 클라디우스라 그러지 않았나?”
“맞습니다, 국장님. 공식적인 보고서상으로는 야영지 인근에 있던 교관들의 도움도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상 페이건 클라디우스 혼자서 진압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그 사건을 통해 풍뎅이들과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건지도 모르겠군그래.”
“아직은 자료가 부족한 터라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대왕 풍뎅이들과 소통을 하는 치료술사라니… 정말이지 이만저만한 괴짜가 아니로군그래. 역시 그 친구를 밀착 관찰하라는 명을 내리기 잘한 것 같아.”
자신의 기대를 120% 충족시켜 주는 페이건의 행동이 어지간히도 흥미로웠는지 페케르만은 연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친구가 그 굴속에 들어가서 뭘 하는지 알고 싶은데… 어떻게 그 안쪽을 파고들 방법은 없겠나?”
“풍뎅이들이 워낙에 경비를 삼엄하게 하고 있는지라 현재로써는 뚜렷한 방법이 없는 걸로 사료되옵니다. 물론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다면 진입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굉장히 큰 소란이 발생할 것이옵고 그 과정에서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래, 하긴 애초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굴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놀라는 일도 없었겠지.”
반들거리는 머리 가죽이 살짝 일그러졌고 페케르만의 얼굴에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미소가 맺혔다.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실험국장이 왜 그리 필사적으로 이 꼬마를 감싸고 도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물론 테시온 쟁탈전 덕분에 여러모로 재주가 출중한 학생이라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뭐랄까,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가지고 있는 재능과 별개로 사람을 흥미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고.
미지의 대상이 주는 경이로움에 흠뻑 취한 수호국장은 은밀한 목소리로 추가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행방을 가능한 한 철저하게 추적하도록. 그리고 특이 사항이 발견되거든 곧바로 나에게 일러 주게. 요 당돌하고도 의뭉스러운 꼬마가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건지 내가 꼭 알아야겠거든.”
* * *
“그럼 시작한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내가 대왕 풍뎅이 굴의 거처에 첫발을 내디딘 지 일주일이 지났고 텅 비어 있던 물푸레나무 또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드디어 오르페우스 님께서 남기신 벽화의 비밀을 공개할 시간이 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물뿌리개를 채우는 데 급급해 다른 생각을 못 했지만, 이 상황이 되니까 궁금하네. 진흙 너머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 숨겨져 있는 걸까?’
머리 위에는 북슬이, 오른쪽 어깨에는 라무테 님, 왼쪽 옆구리에는 여왕을 끼운 채 벽화를 향해 다가섰다.
출렁출렁.
마침내 다가온 조우의 시간이 기뻤는지 물뿌리개 가득 담긴 드루이드 오러는 넘실거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찌륵찌륵.
한 마리도 빠짐없이 자리에 모인 풍뎅이 무리는 벽이고 바닥이고 천장이고 가릴 것 없이 땅굴 전체를 메운 채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쪼르륵.
「엑셀」을 이용해 허공에 둥실 떠오른 나무는 벽화 가장자리부터 드루이드 오러를 들이부었고 벽화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던 진흙들은 신기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찌르르륵!
자신들이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좀처럼 벗겨질 생각을 하지 않았던 진흙.
그랬던 진흙이 돌풍 앞의 안개처럼 걷혀 나가는 광경을 목격한 풍뎅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가며 감동의 기운을 토해 냈다.
파아아앗.
마침내 본 모습을 드러낸 벽화에서는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고 땅굴을 떠돌며 신비로운 춤을 추던 빛은 한 덩어리가 되어 눈앞에 맺혔다.
―어, 열매다! 지난번 그 박쥐를 사냥했을 때랑 똑같은 열매야!
―모양은 닮아 있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 흐음… 내가 보기에는 이번 열매가 색이 훨씬 더 진해 보이는걸?
―쳇! 어쨌거나 확실한 건 페이건의 몫이라는 거라는 거잖아. 뭐야, 이번에는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더니. 왜 페이건 게 먼저 나오는 거냐구.
북슬이의 볼멘소리가 아니더라도 눈앞에 있는 열매가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찌륵찌르륵.
분위기에 도취되기라도 한 건지 풍뎅이들은 일제히 뿔을 흔들며 열매를 삼킬 것을 권유했고 난 망설임 없이 열매를 집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입에 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였지만 이건 먹어도 되는, 아니 반드시 먹어야 하는 열매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일까.
와사삭.
세상에서 가장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입안에서 바스러져 간 열매는 이전에 황금목 앞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향긋한 내음을 남긴 채 몸 안에 스며들었고.
‘됐어! 드디어… 드디어 4단계 진입이다!’
그 순간, 정말이지 오랫동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아르카 3단계의 벽이 산산이 부서져 나가는 게 똑똑히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