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08)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8)화(208/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8)
“오늘 밤에 벌어진 일, 아무래도 저 녀석이 꾸민 것 같지? 설령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주범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이 일과 연관은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당연하지. 하필 오늘 밤에 자리를 비운 거 우리 모두가 똑똑히 봤잖아? 너, 쟤가 지금껏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걸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어? 분명히 다 꿍꿍이가 있었을 거야.”
“그런데 정말로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꾸민 일이 맞다면… 어후, 진짜 장난 아니다. 오늘 일 때문에 주무시던 국장님들까지 튀어나오셔서 상황을 살폈잖아? 하여간 저 배짱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친 채 이어지는 수군거림.
만약 이들의 수군거림을 페이건이 들었다면.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나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라며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사실 페이건은 물뱀 사냥이 이토록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뱀이 제아무리 크다 해도 결국 놈을 목격할 수 있는 건 계승자인 자신뿐이었기에 비록 어느 정도의 소음이 발생한다 한들.
이 일로 기숙사가 시끄러워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늘을 가득 메운 풍뎅이들 덕분에 기숙사가 뒤집혔고.
결국, 페이건은 지금껏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성대한 마중 속에서 기숙사 복귀를 하게 되었다.
“…있잖아, 혹시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학사 당국의 명령을 받고 어떤 임무를 수행한 건 아닐까? 국장님들의 행동은 우리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트릭이고 말이야.”
“어!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네. 어쨌거나 쟤는 테시온 건으로 교수님들에게 눈도장을 단단히 찍은 바 있잖아. 더군다나 그 무서운 실험국장님께서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아예 대놓고 싸고돈다는 소문까지 파다한 마당에 그런 일이 있어도 안 될 건 없지 뭐.”
밤하늘을 물들이는 폭죽처럼 학생들의 가슴을 물들인 의문들.
형형색색 의문들의 대부분은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이번 일의 흑막이라는 걸로 결론 지어졌다.
그리고 덕분에 페이건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에 담겨 있던 경외감과 경계심은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이 위급한 시기에 자리를 비웠다고?”
그런데 안 그래도 터질 듯 달아올라 있던 분위기를 한층 후끈하게 만드는 인물이 등장했다.
“선배님께서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왜 여기까지 와야만 했는지 정녕 몰라서 묻는 거냐?”
“글쎄요, 7학년 기숙사 쪽에서도 살펴야 할 업무가 많을 텐데 굳이 이곳까지 와 주시고. 뭐 일단 저희를 염려해 주시는 그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게오르그의 등장.
그리고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스파크를 튀겨 대는 두 학년 대표 덕분에 관객들의 표정이 한층 더 달아올랐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려 여섯 학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지만.
페이건이 초지일관 ‘그게 내 알 바야?’라는 태도를 보여 왔기에 둘이 마주칠 때마다 아주 흥미로운 광경이 연출되고는 했던 것이다.
“물론 7학년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은 많지. 그런데 어떤 얼빠진 학년 대표 놈이 감히 이 시기에 기숙사를 비웠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지 뭐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무책임한 학년 대표를 둔 덕분에 불안감에 떨고 있을 후배들을 돌보기 위해서 말이지.”
졸업 학기를 맞이한 최고 학년들 대부분이 그렇듯 현재 폴리다고스의 8학년 대표는 추후 진로를 위한 파견을 나가 있는 상태.
그렇다 보니 게오르그 로덴토가 학년 대표들 중 사실상 최연장자이자 최고 학년 대접을 받고는 했다, 즉, 게오르그 로덴토는 자신이 학년 대표 좌장(座長)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생색 중이었던 것이다.
“애들 표정을 보니까 딱히 불안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뭐! 네놈 지금 뭐라고….”
“뭐 아무튼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선배님의 자상한 마음은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가셔서 업무를 보시지요. 제가 왔으니 선배님께서 이곳에 머무를 이유는 없잖아요?”
물론 페이건이 그 싸구려 생색 놀음에 어울려 줄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럴 수야 없지. 아예 오지 않았으면 모를까 여기까지 온 이상 선배로서 너의 태만한 업무처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지.”
“선배님께서 저한테 책임을 묻는다구요? 하!”
“말 돌리지 말고 묻는 말에 똑똑히 답하기나 해. 오늘 새벽, 석회 호수 인근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과 너 사이에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답을 드릴 의무는 없지만, 기왕 물어보셨으니 답은 드리겠습니다.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됐습니까?”
“…하필 네가 자리를 비운 밤에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데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시다?”
“네, 모릅니다. 전 사전에 제출한 허가에 따라 야영을 하던 중 심상찮은 일이 발생한 것 같아 허겁지겁 달려온 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제가 뭘 알 수 있을까요?”
대답하는 페이건의 표정이 너무나도 뻔뻔한 탓인지 게오르그의 윗입술이 씰룩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석회 호수 인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정 궁금하시다면 선배님께서 지금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 보면 되는 일 아닌가요? 물론 심상찮은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그 자리에 혼자서 달려갈 용기가 있을 경우에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네가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해? 학년 대표라는 건 공적인 자리야. 그런 자리를 꿰차고 앉은 네가 거짓된 증언을 하는 것 또한 중죄에 해당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글쎄요, 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드린 게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선배께서 저를 협박하다시피 추궁하는 것. 그리고 일개 학생 된 신분으로 사사로이 죄를 논하는 게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이 새끼가!”
결국, 게오르그는 페이건의 멱살을 움켜잡고 말았다.
“하아… 선배님께서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계신 듯하니 다시 한 번 설명드리겠습니다. 저의 오늘 밤 외출은 이미 사전에 허가된 바였고 그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교칙을 위반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선배님께서 도대체 무슨 권리로 중죄를 논하는 겁니까?”
“…너 진짜 죽고 싶어?”
“그리고 이 손 놓으시죠. 선배가 되어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후배 멱살이나 잡고 이게 뭐 하는 추태입니까?”
“…추태?”
대화가 길어질수록 게오르그를 붙들고 있는 이성의 끈은 점점 가늘어져만 갔고.
둥실.
어느새 두 사람 주위에는 게오르그의 분신과도 같은 수호구가 둥실하니 떠올랐다.
“어머… 어떡해! 로덴토 선배님이 진짜 화가 많이 나셨나 봐!”
“그럴 만도 하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까마득한 후배가 꼬박꼬박 말대꾸하는데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그런데 페이건 클라디우스도 어지간하다 진짜. 어떻게 로덴토 가문의 후계자를 앞에 두고도 한마디를 안 지지?”
“이렇게 떠들 게 아니라 누가 가서 빨리 교수님들 좀 모셔와 봐!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어.”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학생들의 수군거림은 게오르그의 분노를 돋우는 효력을 발휘했다.
“계속 잡고 계신다면 선후배가 아닌 다른 관계를 전제한 채 대화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이 새끼가 진짜!”
그리고 결국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게오르그가 주먹을 높이 치켜든 그 순간.
“그만! 게오르그 학생, 당장 그 손 떼요!”
게오르그의 분노 따위는 단숨에 진압할 수 있는 인물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장님… 그게… 아니라… 이놈이 먼저 저를 모욕….”
“그게 아닌지 뭔지는 내 알 바 아니에요. 하지만 비상 상황하에서의 허가되지 않은 무력행사가 어떤 처분 대상인지는 잘 알고 있겠죠?”
게오르그 로덴토는 늘 해 왔듯이 인과관계를 생략한 주장을 반복하며 일방적인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1학년 담당 국장에게는 그 생떼가 통하지 않았다.
“게오르그 학생, 당장 그 손 떼라고 한 내 말이 안 들리나요?”
“유물국장님!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추궁해야 합니다. 이놈은 뭔가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설령 페이건 학생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해도 게오르그 군에게는 그 사실을 추궁할 권리가 없어요. 당장 그 손 놓으라니까!”
로덴토의 위세가 제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폴리다고스의 학생이 감히 국장의 명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게오르그는 페이건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넌… 항상 운이 좋구나.”
솔직히 말하면 게오르그는 항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저 엘프 노파가 예전부터 부담스러웠다.
물론 요아힘이나 팩셰르 역시 맘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두 사람이 싫은 것과 아리안느가 껄끄러운 건 느낌이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게오르그의 능력 또한 쉬이 볼 건 아니지만 결국 게오르그를 지탱해 주는 건 로덴토 가문의 위세.
설령 상대방이 로덴토의 위세에 위축되는 일이 없다 한들.
어쨌거나 상대방이 귀족인 이상 어지럽게 얽혀 있는 혈연, 학연 등을 통해 어떻게든 유무형의 압박을 가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리안느 플레뵐라는 숲의 엘프.
제아무리 로덴토의 위세가 대단하다 한들 인간 세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삶을 관조(觀照)하는 하이엘프를 옭아맬 수는 없었다.
“학생은 그만 기숙사로 복귀하도록 해요.”
“국장님! 정황상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난 분명 기숙사로 복귀하라고 말했어요.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같은 말을 두세 번 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국장님! 제발 부탁입니다! 부디 제 말을….”
“학생, 내 인내심을 얼마나 더 시험할 생각이죠?”
즉, 아리안느 플레뵐라에게는 게오르그 로덴토 역시 평범한 학생에 불과하다는 뜻이었고.
결국, 로덴토 가문의 후계자는 하릴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국장님. 전 이만 물러날 테니 제가 저지른 무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발버둥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등을 돌린 후 게오르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조지지 못하고 물러서는 것도 물론 억울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신이 독점하다시피 해 왔던 학생들의 주목이 오늘 밤을 기해 저 역겨운 꼬맹이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점이 훨씬 더 분통 터졌다.
이대로 내일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과연 새벽에 어디 있었을까?’를 떠들기 바쁠 터.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게오르그 로덴토가 다룰 수 있는 수호구 개수가 7개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떠들어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어머! 게오르그 오라버니, 혹시 페이건 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나요?’
그 아이가 그 미치도록 관능적인 쇄골을 꿈틀대 가며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입에 담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제길!’
피가 나도록 입술을 굳게 깨문 채 길을 걸어가던 게오르그가 돌연 걸음을 멈춰 섰다.
유물국장의 옆자리를 지킨 채 서 있는 익숙한 얼굴.
한때는 자신이 탐냈던(지금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 녹색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회의실에 있을 아리안느를 이토록 빨리 현장에 모셔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던 것이다.
“엘리시온 양, 우리 오랜만이지. 넌 여전히 그대로구나. 널 처음 봤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
“네, 선배님도 하. 나. 도 달라진 것 없이 제가 알던 그대로네요.”
웃고 있음에도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대답.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지만, 이미 도를 넘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갖춘 소녀를 향해 게오르그는 독설 섞인 안부를 내뱉었다.
“그래, 네 나이 때는 아직 그렇게 천진난만한 꿈을 꾸는 것도 좋지.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만큼 슬슬 어떤 사람들과 같이 걸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네? 선배님,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못 알아듣겠는데요.”
“천년만년 폴리다고스에만 머물 것이 아닌 이상 10년, 20년 후에도 너의 옆에 머물 수 있는 격을 갖춘 사람이 누구일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천공의 눈에 머무시는 탑의 어르신들께서도 그리 생각하지 않을까?”
“풋!”
다소간의 분노와 독기가 서려 있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긴 조언이었다.
“네, 선배님께서 주신 그 말씀 그대로 유리안 오라버님께 전해 드린 후 합당한 조언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저 같은 왈가닥까지 굳이 다 신경 써 주셔서.”
예의는 갖추되 네가 하는 말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다는 의도가 명백하게 담긴 표현.
이 상황 앞에 게오르그는 좀처럼 겪어 보지 못한 굴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페이건, 괜찮아? 어휴, 소매 다 구겨졌네. 이리 와 봐. 내가 싹 펴 줄게.”
“됐어, 어차피 금방 방에 가서 다 벗을 거니까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얼른 이리 와.”
감히 자신을 냉대한.
그러나 그 모습조차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저따위 천박한 놈의 팔뚝을 붙든 채 시시덕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이지 뇌가 익어 버릴 정도의 분노가 몰려왔다.
‘…두고 보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네 놈은 내 손에 반드시 죽는다.’
나름의 각오를 새기며 물러섰지만, 게오르그의 뒷모습에서는 싸움에 패배한 사냥개의 비참함이 느껴질 뿐.
기세등등한 로덴토의 위세는 아주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