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09)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9)화(209/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09)
“그런데 페이건 학생 몸은 좀 괜찮아요? 듣자 하니 야영을 즐기는 중이었다면서요? 갑자기 복귀하느라 잠을 설쳤을 텐데. 어떻게, 정신이 몽롱하지는 않나요?”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초저녁에 잠을 자고 자정부터는 별을 볼 생각이었거든요. 어차피 깨어 있을 예정이었던 시각에 일이 터진지라 저는 이상 없습니다.”
“그럼 유일한 외출자였던 페이건 군도 별일 없는 게 확인되었으니 1학년 전원은 아무 이상 없는 거네요. 다행이에요.”
한쪽 뺨에 손을 가져다 댄 채 함박미소를 짓는 유물국장님.
소녀와도 같은 그 표정에서는 햇살 같은 따스함만이 느껴질 뿐.
로덴토의 후계자를 몰아붙이던 위엄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페이건 군이 무사 복귀한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추후 조사 절차는 밟아야 할 거예요. 물론 사전에 허가를 받은 외출이기는 하다만 우리 학사 당국 입장에서는 비상 상황에서 학년 대표가 기숙사를 비운 이유가 뭔지 확실히 파악해 둘 필요가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일정이 잡히는 대로 통보해 주신다면 조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막 몰아세우기 위한 조사는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는 말아요. 호호!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조사이니만큼 페이건 군이 솔직하게 말한다면 어려울 건 없을 거랍니다.”
“그것참 다행인 일이군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못 하는 일 중 하나가 거짓말이거든요.”
글쎄요, 국장님.
전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할 생각은 없다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유물국장님 눈을 피해 ‘네가 거짓말을 못 한다고 웃겨 정말!’이라는 표정을 짓는 카밀라가 살짝 걸리기는 했지만.
난 별다른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일 수 있었다.
“그래요, 그럼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어요. 아, 질문 하나만. 중단하기 전까지 야영은 즐거웠나요?”
“네, 국장님께서 걱정해 주신 덕분에.”
“흐응… 서쪽 하늘의 빛이 워낙에 강했을 텐데 눈이 부시거나 하지는 않았고?”
“네, 제가 사용하는 천막이 꽤 두껍거든요.”
“사실은요… 내가 워낙 나이가 많다 보니 이곳저곳에 친구가 제법 많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쩍 성장한 친구 한 명이 있는데 조만간 그 아이를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요.”
이런, 기껏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잘 끄덕여 놓고 ‘최근 들어 성장한 친구’라는 한마디에 동요할 뻔했다.
“그런데 그 아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지내고 있더라구요. 워낙에 데리고 있는 식구가 많고 최근에 큰 성장을 겪은 터라 걱정이 많았는데. 혹시 그 아이들에게 나 말고도 다른 좋은 친구가 있어 준 덕분에 혼란의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걸까요?”
“글쎄요. 제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서 뭐라 답을 드리기가 힘든 문제군요.”
“후훗, 어머 내 정신 좀 봐! 들어가서 쉬라고 말했으면서 피곤한 사람을 붙잡고 쓸데없는 말이 너무 길었네요. 그럼 정말 들어가요, 좋은 꿈꾸고.”
“네, 국장님도 좋은 새벽 보내시길.”
봄볕처럼 부드러운 주제에 송곳 같은 날카로움까지 겸비한 유물국장님을 뒤로한 채 난 서둘러 기숙사 계단을 올랐다.
호수를 출발하기 전 마스코트들에게 공언한 바대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후 맛있는 비스킷을 우걱우걱 씹어 먹은 뒤 곧바로 푹신한 침대에 누울 생각이었다.
또각또각.
“…저기 물론 지금이 좀 어수선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 시각에 네가 남자 기숙사에 들어오는 건 학칙 위반이거든.”
“저기 있잖아, 네가 생각해도 나 참 잘했지?”
그러니까 마치 당연한 권리를 누린다는 듯한 표정을 한 채 내 뒤를 졸졸 쫓아오는 녀석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뜻이었다.
“게오르그를 보자마자 내가 후다닥 달려가서 국장님을 모셔 오지 않았다면 넌 그 피곤한 몸으로 그 아미새랑 티격태격을 해야 했을걸?”
“아미새? 아아, 아가씨에 미친… 그래, 넌 게오르그를 그렇게 부른다고 그랬지?”
“이것도 참 잘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사실 오늘 밤 내가 잘한 건 이게 전부가 아니야. ”
가슴팍 앞으로 불쑥 내밀린 카밀라의 손에는 야무진 솜씨로 작성된 기숙사 인원 현황표가 들려 있었다.
“비상 상황이 터지고 교관님들이 다급한 얼굴로 너를 찾자마자 내가 파팟! 하고 나타나서 너의 짐을 덜어 줬다는 말이지. 내가 이 정도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너의 빈자리가 엄청 크게 느껴졌을 거야.”
“그래, 고마워. 네 덕분에 고비를 넘겼어.”
“진짜 고마운 거 맞지?”
“…왜 그래, 또?”
땡글땡글하니 커다란 눈동자가.
그리고 그 눈동자며 눈, 코, 입이 오밀조밀하게 엉겨 붙어 있는 얼굴이 확 하니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젊은이, 나에게만 솔직히 말해 보라우. 오늘 밤 숲에서 대체 뭘 한 거야?”
“너 이런 말투는 도대체 어디서 배워 오냐? 옷장 안에 아저씨를 숨겨 두고 아저씨 말투 과외라도 받는 거야?”
“그러지 말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이 누나한테는 솔직히 말해 봐. 너 오늘 밤! 뭐 했어?”
“야영하고 왔다니까… 내가 여러 번 말 했잖아. 난 어릴 때부터 노숙을 워낙에 많이 한 터라 주기적으로 야영을 해 줘야지 좀이 쑤시지 않는다고.”
“…흐으응.”
방학 이래로 부쩍 자주 듣게 되는 저 흐으응 하는 소리.
심상찮은 빛을 내며 반짝이는 카밀라의 눈동자를 무시한 채.
난 지금껏 고수해 온 입장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초저녁, 잠을 자고 일어나서 별을 보다가 출출해서 뭐라도 만들어 먹을까 하던 차에 하늘이 난리가 났길래 허겁지겁 복귀한 게 다야.”
“진짜? 그게 전부야?”
“응, 네가 원한다면 야참 메뉴도 공개할 용의는 있어.”
“어휴! 얘가 또 뻔한 거짓말로 사람 서운하게 만드네. 그래! 너도 사정이 있을 테니까 내가 이번에도 큰맘 먹고 이해해 줄게.”
잠시간 미간을 찌푸리는 듯했던 카밀라는 이내 팔짱을 낀 채 다시 한 번 자비를 베풀 것을(내가 왜 자비를 얻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천명(闡明)했다.
“대신 바람의 숨결에서 케이크 10개랑 커피. 이번 달이 가기 전에 전부 다 사 줘야 해.”
“…그렇게 했다가는 난 이번 달 내내 하루 세끼를 국수로만 때워야 하는데?”
“괜찮아.”
“아니, 그걸 네가 괜찮으면 안 되지.”
“네 지갑 사정이 한계치에 다다르면 그때는 내가 영양 만점 도시락이든 뭐든 싸 줄 테니까.”
“….”
“뭐야, 그 표정은? 너 야외 수업 때 내 솜씨를 보고서도….”
“아냐아냐, 그래. 이번 달 가기 전에 바람의 숨결에서 케이크 10개랑 커피. 그걸로 하자.”
“흥! 진즉에 그럴 것이지. 너 조금만 더 망설였으면 15개로 올리려고 그랬어.”
삼시 세끼 내내 국수가 되었건 아니면 카밀라의 손맛이 담겨 있는 도시락이 되었건 간에.
일단은 샤워가 너무 하고 싶었기에 절반쯤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간다! 흐흐흥♫.”
도출해 낸 협상 결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카밀라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멀어져 갔고.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난 아직도 카밀라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웅? 케이크?
쿨쿨 자고 있는 와중에도 케이크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북슬이.
난 녀석의 뺨을 한차례 쿡 하고 찔러 준 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쟤가 케이크를 이 정도로 좋아하는 줄은 또 몰랐네. 북슬이는 좋겠다. 단 거 좋아하는 친구 생겨서.”
* * *
물뱀 낚시로부터 한 달.
난 그럭저럭 평탄한 아카데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물뱀 사건의 여파로 인해 사람들이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일도 있었지만.
원래 소문이라는 건 당사자가 당당하면 금세 수그러들기 마련.
난 늘 그렇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아카데미를 누비고 다녔고 사람들의 시선 또한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사람들이 널 수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냐! 그저 ‘아 쟤는 원래 수상함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뭐.’ 하고 체념한 거라고! 아시겠어요? 친구한테도 말 못 할 비밀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수상한 사람 씨!”
카밀라는 위와 같은 의견을 주장하며 토라진 표정을 지었지만.
그 진실이 뭐가 되었든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기에 난 평소대로 시간을 보냈다.
조사 위원회에 출석해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진술하고.
학년 대표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푸른 달의 야외 학회 활동을 경호한다는 명목하에 아일리 바스티아의 동정(動靜)을 살피고(아카이드와 함께).
중간중간 크리스틴 선배가 주최하는 ‘슬기로운 학년 대표 생활을 위한 특별 강습’에 참석하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넉넉한 웃음(물론 이게 100% 진심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을 지어 보이는 키에르고를 만나 사업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어디 이번 주에는 쓸 만한 물건이 좀 올라왔으려나?’
그리고 마스카 경매에 올라온 물건 목록을 주기적으로 살피기까지.
우웅.
팩셰르를 통해 전달받은 수정구 표면을 건드리자 빛이 쏟아져 나왔고.
방 한쪽을 가득 채운 빛무리는 경매에 등록된 물건과 그 진행 현황을 표시해 주는 영상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흐음… 이것저것 많이는 올라왔는데 나한테 당장 필요한 건 없네.’
그 악명이 자자한 마스카 경매답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은 수두룩했고 당장이라도 사 봄 직한 것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언제 올라올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지금은 군자금을 비축해 둬야만 했고.
경매 현황 및 경매가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려는 찰나.
‘어? 이놈들 아직도 이 방법을 이용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건가?’
시선을 잡아끄는 은밀한 문구들이 포착되었다.
마스카 수정구가 가지고 있는 기능은 꽤나 다양했고 단순한 경매가 확인뿐만이 아니라 물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줄다리기 현장이나 질의응답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건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질문과 답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단순한 문답처럼 보일 뿐이겠지만.
‘질문의 형태로 몸을 숨긴 채 서로의 뜻을 주고받는 음흉하고도 위험한 의사소통 방식’이 내 두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등록해 주신 물건 잘 봤습니다. 이렇게 보기에는 상태가 괜찮아 보이지만 육안으로만 확인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제 의뢰인께서 별도의 보증 절차를 원하십니다. 초원의 동굴에서 발행하는 보증서가 있다면 50개까지 한 번에 구매할 용의가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보증서 발행 가능합니다. 다만 보증서를 준비하는 데에는 별도 비용이 소모되는 만큼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가능하다면 봄펠 반도 인근에 위치한 데릭서에서 직접 배송받고자 합니다. 응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금액에 관한 질문일 경우에는 들여쓰기 세 칸.
배송지 합의를 위한 질문일 경우에는 들여쓰기 두 칸.
첫 번째 문의일 경우에는 글자 간격 3.
일곱 개의 단어마다 줄 바꿈 엄수.
거래가 성립되었을 경우에는 세 번째 줄부터 다섯 번째 줄까지 네 번째 빈칸이 정확하게 같은 위치에 오도록 문장을 구성할 것.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은밀한 의사소통 방식.
120년 전에 살았던 전생의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방식이 그대로 행해지는 걸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놈들 아직도 이 방식을 통해 중계업을 하는 모양이군. 마스카 경매장이 구축한 연락망을 이용함으로써 자신들의 흔적을 최대한 지워 보겠다는 심산이겠지? 교활한 놈들 같으니라고.’
아타카크 중계소.
이들은 대륙의 모든 정보 판매 기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암흑길드였고 살인 청부, 폭행 교사, 납치 등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안 하는 일이 없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 기둥뿌리를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녀석들이 입수해 오는 더러운 정보는 꽤나 쓸 만했기에 전생의 나는 어쩔 수 없이 놈들을 살려 둔 바 있었다.
놈들이 사용하고 있는 의사 전달 방식 및 암구호 체계는 전생의 나에게 완전히 간파된 상태였기에(물론 놈들은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지만).
난 놈들이 수집한 정보 대부분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 정보를 이용해 수많은 사냥을 성공해 냈다.
‘보증서가 필요하다는 건 경력이 입증된 숙련 인원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초원의 동굴은 베리단 숲에서 양성한 인원을 원한다는 뜻. 숙련된 암살자가 50명이나 필요한 일이라면… 이 새끼들 뭔가 또 심상찮은 일을 꾸미고 있는 모양인데 장소는 어디지?’
지금 당장은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난 놈들이 남긴 글들을 빠짐없이 훑어 내렸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단서를 통해 놈들이 일을 꾸미고자 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또한 파악할 수 있었고.
난 이내 지도를 펼친 후 놈들이 집결하는 장소에 붉은색 원으로 표시를 했다.
‘여기랑… 여기랑, 여기. 아타카크 중계소에서 벌이는 동시다발적인 사건이라… 심상치가 않아.’
마음 같아서는 암살자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이놈들을 쫓아가 그대로 목을 따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아카데미에 메인 몸이라 그럴 수 없었다.
‘치안국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요하임 벤제르센에게 언질을 주다 보면 내가 이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또한 밝혀야 해… 이래저래 까다롭군.’
난 아타카크 중계소 놈들에 관한 일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새벽 늦게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어젯밤부터 이어지는 고민으로 인해 답답해진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맑게 만들기 위해 진한 커피를 끓이고 있을 무렵.
똑똑똑.
“클라디우스 공자님, 기침하셨는지요? 실험국에서 발송된 공문을 가지고 온 참이니 일어나셨다면 문을 열어 주시겠습니까?”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호출령이 들려왔고.
“네, 지금 문 엽니다.”
문을 열자 멋쩍은 표정을 한 실험국 직원이 있었다.
‘이런 식의 이른 아침 방문이 실례인 건 잘 알지만, 국장님의 명인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디 양해해 주시기를.’이라는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표정을 한 채 직원은 말했다.
“클라디우스 공자님, 실험국장님의 전언입니다.”
별도의 대답을 하는 대신 나 또한 ‘그래요, 내 다 이해합니다.’라는 표정으로 직원의 멋쩍은 표정에 응해 준 후 괴물이 보내온 전언을 펴 들었다.
괴물의 상징과도 같은 담배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편지 봉투.
실험국장의 직인이 선명히 찍혀 있는 문서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할 말이 있으니 이 전언을 받아보는 즉시 연구실로 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