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화(2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
“피닉스, 클라디우스의 시조를 수호하셨던 불사조가 다시 이 땅에 도래하시다니….”
아브라힘의 뒤를 이어 티베리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든 기록에 남은 이름을 지웠다 하여 그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라무테는 가문의 모든 공식 기록에 남아 있던 자신의 존재를 지웠지만 형태를 가진 기록이 아닌, 아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오래된 기억’마저도 완전히 말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기록상에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에스페타라의 아이들은 클라디우스의 시초가 건립되는 데 막대한 기여를 한 불사조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기나긴 시간이 흐르며 비록 그 이름은 잊히고, 라무테가 이뤄 낸 혁혁한 업적들은 흐릿해졌지만, 대를 이어 전해지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클라디우스를 수호하는 불사조의 존재가 남아 있었고.
“수호조시여… 클라디우스의 영광이시여!”
티베리는 어릴 적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들었던 불사조의 존재를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기억 속에서만 살아 숨 쉬던 전설의 영수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아득한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재림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억누를 수 없는 감동이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도, 도련님이… 우리 도련님이!”
“엄마, 엄마! 저기 오빠 좀 보세요!”
“발간 새 브아아!”
아브라힘에서 시작되어 티베리를 거친 감동은 곧 회의실 전체로 퍼져 나갔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때? 내가 말한 그대로 됐지? 이렇게 한번 짜잔 하고 쇼를 해 주면 좋아 죽을 거라 그랬잖아!
‘네. 정말 좋아 죽네요.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로 감동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주군을 기다리는 무사와도 같은 자세로 도열한 영수들과 영롱한 빛을 내뿜으며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는 라무테.
꿈처럼 눈부신 이 광경을 준비한 연출자는 라무테였다.
어젯밤 깜짝쇼의 각본을 들은 페이건은 조금 과한 게 아니냐며 망설였지만 라무테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페이건을 설득한 바 있었다.
―저 사람들이 그만큼 페이건을 아낀다는 방증이야. 너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다면 저 정도로 진실된 감동을 느낄 수는 없는 거니까. 음, 좋아 좋아. 페이건 군이 생각해도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마무리 같지?
‘아… 네. 일이 번거로워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만….’
―무슨 소리야? 어차피 깜짝쇼를 할 거라면 할 때는 최대한 화려하게 해야 하는 법이야. 그리고 이런 멋진 공연을 한번 해 놓으면 가문 내 페이건의 입지도 탄탄해질 테니, 좀 좋아? 호호호!
평소의 라무테답지 않은 발랄한 웃음소리.
좌중의 시선을 끌어모은 불사조는 붉은빛을 흩뿌리는 날개를 절반쯤 접은 후 페이건의 머리 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클라디우스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힐 만큼 장엄했던 깜짝쇼를 끝낼 때가 다가온 것이다.
호로롱.
영롱한 울음소리.
마침내 피닉스가 페이건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모든 영수들이 한층 더 경건한 자세로 고개를 조아렸다.
영수들의 경배(敬拜)를 받으며 피닉스를 오른팔에 얹은 페이건의 모습은 최초로 불을 수확해낸 전설상의 용사와 닮아 있었고.
“페이건! 클라디우스!”
“페이건! 클라디우스!”
그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었건만 사람들은 어느새 한쪽 팔을 불끈 들어 올린 채 페이건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도대체 지난 3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경천동지한 변화가 발생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아직 이유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눈앞의 광경은 감동적이었다.
“공자님 만세!”
“클라디우스에게 무한한 영광 있을지니!”
“우아아앙! 오라부니, 너무 멋지세요! 우와앙.”
“아부아 흉아! 아부아 따따따따!”
북받치는 감동을 이기지 못한 라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누나의 눈물에 덩달아 흥분한 에밀은 짧은 팔다리를 흔들어 가며 소리를 내질렀다.
“페이건, 정말 장하구나. 그래 역시 이래야 오르페우스님의 피를 이은 클라디우스고 내 아들이지.”
피닉스가 페이건의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 강철 같기만 할 줄 알았던 티베리의 눈가 역시 촉촉해져 있었고.
“어머! 당신 아들이라뇨? 후, 훌쩍. 당신과 내 아들이죠. 기껏 저렇게 멋쟁이로 낳아 줬더니 당신 혼자 키잉! 생색내기예요?”
“아, 맞아. 당신이 낳은 아들이고 멜리사와 티베리의 아들이지. 하하! 하하하!”
멜리사의 뺨은 이미 한참 전부터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페이건을 둘러싼 빛무리가 짙어질수록 사람들의 흥분 또한 드높아졌고,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환호는 언제까지고 에스페타라 전역을 울릴 것만 같았다.
* * *
5년 후.
삐그더덕.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지 오랜 시각.
클라디우스 저택 외곽에 외치한 간이용 출입문이 좌우로 벌어지고 있었다.
“도련님, 또 이 시간에 어디를 가시려고 문을 열어 달라 하시는 겁니까?”
오늘 밤 야간 경비를 담당하게 된 클라디우스 가문의 중년 기사 ‘멜페르토’는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출입문의 개방을 지시했다.
제아무리 치안이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에스페타라의 본질은 섬.
그리고 섬의 밤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위험을 내포하기 마련이었다.
저 깊은 바닷속에는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고, 본시 어둠이란 밤이 되면 한층 더 난폭해지는 법이었으니까.
“밤 산책을 조금 나가 볼까 해서요. 저녁 먹은 게 소화가 잘 안 되네요.”
“하하! 도련님처럼 강인하신 분이 소화불량이라니, 농담치고는 별로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위태로운 밤에 간이 출입문을 개방하라는 명을 내리는 사람치고는 멜페르토의 표정은 퍽이나 밝아 보였다.
멜페르토 정도의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 어둠의 위험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정체 모를 어둠에 대한 경계심보다는 소년에 대한 신뢰가 훨씬 더 두터웠던 덕분이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도련님, 도련님이 정문을 개방하라고 했으면 저와 부하들이 많이 번거로울 뻔했는데 간이 출입문 개방으로 만족해 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정문을 열었다가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까요. 그럼 아무래도 아저씨를 비롯한 경비병들의 신상에도 피곤한 일이 발생하겠죠.”
“글쎄요. 쇤네의 생각으로는 저는 별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만. 막말로 저와 부하들이야 ‘마즈다의 주인’이 정문을 열라는 명을 내리셨기에 그 명을 수행했다 그러면 별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역시, 베테랑은 다르군요. 하하! 그렇지요. 불똥이 떨어지는 건 여러분이 아니라 저 혼자가 될 가능성이 크지요.”
멜페르토는 소년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가리키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소년은 웃음을 터뜨렸다.
가문의 소가주와 가신 간의 대화라기보다는 삼촌과 조카 사이를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대화.
이것만으로도 경비병들이 소년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삐그덕 쿵.
마침내 간이 출입문이 활짝 열렸고, 멜페르토는 밖을 가리키며 고개를 넙죽 숙여 보였다.
“자, 도련님 그럼 편히 다녀오십시오. 쇤네는 이곳에서 도련님이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요.”
“그럼 다녀올게요.”
저택을 나선 소년의 모습은 금새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만 소년이 걸고 있던 목걸이, ‘마즈다’가 흩뿌린 빛이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대장! 근래 들어 도련님의 밤 나들이가 부쩍 잦아진 것 같지 않습니까? 뭐 우리 도련님이야 웬만한 허깨비가 나타나도 코웃음 한 번으로 떨쳐버릴 수 있을 만치 출중하신 분이라 별걱정은 되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말입니다. 혹시 저쪽에 도련님의 흥미를 끌 만한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소년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던 경비병들이 곁에 다가와 질문을 던졌으나 멜페르토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자네들이 신경 쓸 것 없네. 다른 사람도 아닌 도련님인데 우리가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어?”
소년의 성장을 지켜봐 온 경비대장은 확신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제 섬을 떠나실 날이 얼마 안 남지 않았나? 이것저것 생각이 많으시겠지.”
* * *
―역시 정식 후계자라는 배경이 좋기는 좋구나. 다른 사람이 이 시간에 문을 열라고 했다면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을 텐데 ‘소가주’님이 산책을 간다고 하니까 그냥 열어 주네 흐흐.
“배경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들여 형성된 신뢰 관계 덕분이야.”
―혹시 나도 이거랑 비슷한 걸 하나 만들어서 목에다 걸고 다니면 너처럼 떠받들어 줄까?
통통한 앞발을 뻗어 마즈다를 톡톡 건드리며 복슬이는 키득거렸다.
“웃기시네. 네가 그러고 다녀봐야 털 뭉치에 목걸이지. 퍽이나 문을 열어 주겠다. ‘어! 뭐야 이 날아다니는 롤빵은!’하고 화덕에 던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너 자꾸 그러면 자고 있을 때 확 뺏어 가 버린다!“
통통통.
빵처럼 동글동글하고 쿠션처럼 말랑말랑한 북슬이의 머리통이 마즈다의 표면을 강타했지만 ‘클라디우스 가문의 소가주’를 상징하는 신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버텨온 마즈다의 표면이나, 클라디우스 내에서의 내 입지나 금강석처럼 단단하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소가주라는 호칭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난 클라디우스의 정식 후계자 자리에 등극하였다.
아직 어린 동생들이 있었기에 벌써 가주 후계자 자리를 정하는 건 성급한 일일 수 있다는 지적도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아버지는 그 위험성을 무릅쓰고 나를 후계자로 조기 지명한 것이다.
뭐 아버지 말씀으로는 동생들의 성장치를 끝까지 보지 않고 결정을 내린다는 아쉬움보다는 내가 후계자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중심을 지키는 데서 오는 이점이 훨씬 더 크다나?
물론 말했던 것처럼 조금 더 시간을 가지자는 의견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수석 장로인 아브라힘 영감이 그 뒤를 받치니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나 또한 입을 다물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난 아버지를 찾아가 결정을 내리기 전 동생들의 의견을 한 번만 들어 보자는 청을 드렸고, 아버지는 동생들을 찾아가 의견을 경청하셨다.
그리고 의견 청취의 결과.
“에에? 으앙! 오라버니가 후계자가 아닌 클라디우스는 싫어요! 그런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는 거예요! 으으… 아버님 나빠!”
“라나야! 그게 아니라 아빠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니? 후계자를 정하기 전 너의 의견을 듣자고 한 건 내가 아니라 페이건 그 녀석이라고….”
“으윽… 싫어. 오라버니가 후계자가 아닌 클라디우스는 나빠! 아버님도 나빠요!”
“아니 라나야! 묻자고 한 건 네 오빠인데 왜 이 자꾸 아빠보고 나쁘다고 하는 거니? 자, 그러지 말고 뚝, 일단 이 아빠의 말을 들어 보렴. 나쁜 건 내가 아니라 오빠란다.”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나쁘지 않아요! 전부 다 아버님이 나빠요! 으아아앙! 오라버니! 아버님이 소녀를 괴롭혀요! 우와앙!”
“페이거어언! 네 이노옴! 네 녀석이 괜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이 애비가….”
아버지의 가슴에는 큼지막한 상처가 생겨나고 말았다.
아직 어린 라나는 아버지가 그 강철같은 생김새와는 달리, 딸자식의 모진 소리 한 번에 상처를 받는 예민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형아! 에밀은 형아가 좋아요! 형아가 목걸이 했으면 좋겠어!”
다행히 에밀은 꺄꺄거리기만 할 뿐 아버님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고 그 결과 나는 14세의 나이로 클라디우스 가문의 정식 후계자 자리에 등극하게 되었다.
“라무테 님, 지아니에게서 추가로 온 소식은 없을까요?”
―응. 목표는 조금 전 보고를 했을 때와 비슷한 속도로 섬을 향해 접근하고 있다고 해. 지아니는 범고래 편대와 함께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녀석의 뒤를 쫓는 중이고.
“그나저나 재미있는 일이군요. 크라켄은 본시 깊은 심해에 틀어박혀 사는 마수. 그런데 비록 혼종의 아성체라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심해 마수의 피를 이어받은 놈이 이곳까지 접근해 오다니.”
―원래대로라면 이 근처까지 접근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지아니가 그 괴물을 발견하기 전 ‘에페누’가 녀석을 퇴치했을 테니까.
에페누는 에스페타라 인근의 심해를 지켜 주는 거대한 ‘시 서펜트’였는데 지아니보다는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영감님이었다.
―에페누가 녀석을 그대로 얼려 버리려는 걸 지아니가 말렸대. 우리 주인님께서 크라켄을 구경하고 싶어하니까 일단 통과시키라고. 그런데 페이건, 그 보기 흉한 괴물을 굳이 보고 싶다고 말한 이유가 뭐야?
“크라켄은 맹독으로 유명한 마수잖아요? 그렇다면 놈의 피가 섞인 혼종 아성체 역시 독을 가지고 있겠죠?”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물론 크라켄의 그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뻗어 손잡이 끝 고리에 검지를 걸었다.
스르릉.
약간의 힘을 주자 부드럽게 뽑혀 나오는 흑검.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티아매트의 광채를 두 눈에 똑똑히 새기며 물음에 답했다.
“폴리다고스에 가기 전 독을 가진 마수를 한 번쯤은 상대해 보고 싶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