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1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0)화(21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0)
똑똑.
“국장님, 페이건 클라디우스입니다.”
몇 번의 방문을 통해 나와 팩셰르 사이에는 일종의 직통 라인이 형성되었기에 수행 비서들을 거치는 일 없이 곧바로 연구실 입구를 두드리는 게 가능했다.
“….”
“들어가겠습니다.”
안쪽에서 응답이 있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난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지난번인가 지지난번 방문에서 문을 두드린 후 답변을 기다렸더니.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뭐 하는 거지? 네깟 놈이 방문했다고 내가 일일이 환영 인사라도 해 줘야 한다는 것이냐?]라는 삭막한 대답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또각또각.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을 지나 오늘따라 유독 형형한 안광을 발하는 괴물 앞에 내가 걸음을 멈춰 선 그때.
“후우.”
내 미간 사이로 다시 한 번 짙은 담배 연기가 뿜어졌다.
“…찾으셨습니까?”
“내가 찾았으니 네놈이 여기까지 왔겠지. 나라면 학을 떼는 네놈이 내 부름 없이 이곳까지 올 리가 만무하지 않느냐?”
이죽거리는 영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사회성이 완벽하게 결여된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들어오라는 말을 할 정신은 없지만 내 얼굴에 뿜을 담배 연기를 모을 정신은 있다 이거지?
“그래, 듣자 하니 우리 페이건 클라디우스 공자께서는 요즘 아주아주 잘나가신다고?”
“아무런 설명 없이 대뜸 맥락 파악이 불가능한 말씀을 하시면 합당한 답변을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시치미 떼지 말거라. 네놈이 상당히 잘나가는 게 아니라면 나를 제외한 다른 국장들이 너의 그 시건방진 행동거지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지 않느냐.”
“아마 폴리다고스에 계시는 일곱 분의 국장님들 중에 저를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국장님은 실험국장님이 유일하실 겁니다.”
“호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다른 국장들 앞에서는 네놈의 되바라진 본성을 꼭꼭 숨긴 채 착한 아이를 연기한다는 말이지? 그것참, 서운한 말이로구나.”
글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지만 당신이 ‘담배 연기를 사람의 얼굴을 겨냥하고 뿜어서는 안 된다.’라는 기본적인 예법만 숙지한다면.
우리 사이 또한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래 봬도 너를 가장 아껴 준 건 나일 텐데. 내 앞에서는 잔뜩 구겨진 표정만 지어 보이는 놈이 다른 국장들 앞에서는 착한 아이를 연기한 채 아양을 떨기에 여념이 없다니… 참으로 배은망덕한 놈이로다.”
“…조금 전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드릴 말씀이 많사오나 일단은 제가 딱히 아양을 떤 적은 없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좋아. 수호국장이 요즘 들어 너에게 부쩍 관심이 늘어난 것 같기는 하다만, 일단 이 문제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하지만 네놈이 알아 둬야 할 것이 있으니 똑똑히 새겨듣거라.”
“말씀하시지요.”
“한 달 전쯤 석회 호수 인근에서 발생한 괴사건과 관련해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지? 만약 내가 조사위원들에게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 그만하고 본업에나 충실하게.’라는 불호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네놈이 그토록 수월하게 조사를 마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야.”
어쩐지 조사위원회가 구성된 것 치고는 너무 쉽게 넘어간다 싶더니 팩셰르의 입김이 있었던 건가?
그런데 어쩌지?
그래도 당신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데.
“나 또한 네놈의 구겨진 얼굴을 지켜보는 게 유쾌하지는 않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마. 이번 주말까지 ‘이곳’으로 가 있거라. 그리고 다음 주 시장이 열리거든 여기 목록에 있는 물건들을 구입해서 돌아오면 된다.”
팩셰르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벽에 붙어 있던 서랍장의 문이 열렸고.
안쪽에 있던 ‘둘둘 말린 지도’와 ‘꾸러미 2개’가 둥실하고 허공을 날아 내 앞에 놓였다.
“…그러니까 저에게 심부름을 시키시기 위해 찾으셨다는 말씀이시군요. 물론 심부름의 내용에 대해서는 저와 사전에 합의한 바가 없으시고 말입니다.”
“합의? 그런 게 왜 필요하지? 어차피 네놈은 나에게 빚을 지워 두는 편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고.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교활한 놈인데 말이야.”
샐쭉하니 벌어진 입 사이로 새어 나온 ‘빚’이라는 단어.
그러니까 이 심부름을 완수해 낸다면 ‘팩셰르 자유 이용권’을 또 한 장 받아 낼 수 있다, 이 말인가?
“어차피 심부름을 거부한다는 선택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주제에 당장 장소를 확인하지 않고 뭐 하는 거지?”
내 속내 따위는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듯 이죽거리기를 멈추지 않는 괴물.
저 미소를 수긍하는 건 무척이나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스카 경매 입장권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팩셰르 자유 이용권은 무척이나 ‘유용’했고.
한 번의 심부름을 통해 그 이용권을 얻는다는 건 커다란 이득임이 틀림없었으니 말이다.
난 군말 없이 지도를 펼쳐 들었고 지도에서 붉은 선으로 표시된 지명을 확인한 순간.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바바루크 대(大)장터로군요.”
“그래, 네놈도 넓게 보면 마법사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놈이니 바바루크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 알고 있었다.
바바루크 대장터.
대륙 서북부에 위치한 아인칼 지방에서 3년을 주기로 열리는 대륙 최대 규모의 마법용품 장터.
바바루크 대장터는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성을 지닌 마도구 거래소였고.
그 놀라운 명성만큼이나 다양하고 희귀한 물품이 구비되어 있는 걸로 유명했다.
일정 수준 이상에 다다른 마법 기반 세력은 바바루크에 참여하는 게 당연시되는 만큼 팩셰르가 이곳에 눈독을 들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행선지를 확인하자마자 머릿속에 곧바로 떠오르는 두 가지 의문.
“국장님께서 용무가 바빠 직접 바바루크에 행차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아닌 실험국 소속 인원을 우선 파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대외적인 공신력을 보나, 국장님을 모셔 온 세월로 보나 저보다는 그분들이 국장님을 대무(代務)하는 게 합리적인 처사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 조교수들은 워낙 중차대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라 다들 바빠. 뭐 대단한 용무가 있다면 그 아이들을 보내겠으나 결국 내가 명하는 물건을 사 오는 게 전부인 이런 시시한 잔심부름에 그런 고급 인력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느냐?”
그러니까 순전히 당신의 지랄 맞은 심술 때문이라 이거지.
좋아, 이걸로 첫 번째 의문은 해소.
“그리고 너는 이런 류의 작업을 수행하는 데 적격인 대형 짐수레도 있지 않느냐? 사 와야 할 물건이 제법 많기는 하다만, 이 정도의 짐을 실어 나르는 것쯤이야 그리폰에게는 일도 아니겠지.”
영감, 남의 소중한 친구를 짐수레 취급하는 건 관두시지.
“허튼소리는 그쯤에서 관두고 그 물건들이나 잘 챙겨 두거라.”
팩셰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가죽 주머니를 풀어헤쳤다.
좌르륵.
눈으로 확인을 끝낸 후에 손을 뻗어 주머니 안쪽을 휘젓자 서늘한 금화의 감촉이 손가락 끝에 분명히 느껴졌다.
팩셰르가 넘겨준 구매 희망 목록에 있는 마도구들은 어느 것 하나 초고가가 아닌 게 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 금화 주머니에서는 그 정도 가격을 감당해 내는 건 문제도 아닐 듯한 묵직함이 느껴졌기에 난 아무런 부담 없이 구매 목록을 주머니에 쑤셔 넣을 수 있었다.
“지금껏 감히 내 앞에서 돈 세는 소리를 낸 놈은 단 한 명도 없었거늘. 역시 네놈은 건방져.”
“첫 번째 주머니의 용도는 알겠고 두 번째 주머니는 뭡니까? 혹시 용도가 구분되어 있기라도 한 겁니까?”
첫 번째 것보다는 작았지만 두 번째 주머니 역시 묵직하기는 마찬가지였고 그 무게를 보건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 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비로 준비한 것이니 가는 길에 군것질을 하든지 아니면 바바루크에 머무르는 동안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사서 놀든 네놈 마음대로 하거라.”
“….”
“왜? 여비를 넉넉히 받았으니 훗날 빚 독촉을 확실히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라도 드는 것이냐?”
“역시 국장님의 통찰은 대단하십니다.”
“건방진 놈.”
“이 또한 대단하신 통찰의 일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바바루크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그곳의 물가가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설령 바바루크의 물가가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라 해도.
체류비로 받기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풍족한 금액이 두 번째 주머니에 그득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네놈이 받아 가는 여비와는 상관없이 내가 이번 일로 빚을 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니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워라.”
“감사합니다. 국장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새삼 마음이 놓이는군요.”
“감히 일구이언하는 소인배를 마주하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다니,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네놈에게 시킬 일이 있지만 않았어도 국장을 모욕한 죄를 물어 몽둥이찜질을 해 줄 수도 있었느니라.”
“정 하시고 싶으시다면 지금이라도 하셔도 됩니다. 제가 몽둥이찜질 좀 당한다고 못 걸어 다닐 정도의 약골은 아니니까요.”
“…허튼소리는 거기까지만 하고 더는 할 말 없으니 나가 보거라.”
“외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행정 처리는 어떻게….”
째릿.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팩셰르의 눈썹이 불쾌한 모양으로 꿈틀거렸고.
그 움직임 속에 ‘그런 일 따위야 내 진즉에 알아서 처리해 놓았으니 네놈은 일정에 맞춰 도착할 궁리나 하거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달은 나는 그 즉시 연구실을 나섰다.
―와, 여행이다! 흐흐, 나는 페이건 네가 바깥으로 나가는 게 제일 좋더라. 있잖아, 이번에는 너 혼자 가는 거니까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 없이 마음대로 간식 먹을 수 있는 거지?
―또, 또! 또, 먹는 생각만! 벨제키엘, 너 내가 철 좀 들라고 몇 번 말했지.
모처럼 만의 외부 나들이가 신났던 롤빵이는 팩셰르의 연구실을 빠져나오자마자 환호성을 질러댔지만.
생각할 게 남은 터라 녀석의 호들갑에 일일이 반응해 줄 수 없었다.
비교적 손쉽게 풀린 첫 번째 의문과는 달리 아직 두 번째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던 것이다.
팩셰르의 연구실에서 발생부터 해소까지를 모두 마친 첫 번째 의문과는 달리.
두 번째 질문의 기원은 어젯밤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타카크 중계소 놈들이 결집하기로 한 장소는 모두 세 군데. 한데 그 세 집결지 중에 바바루크 또한 포함되어 있어.’
이 시기의 바바루크는 워낙에 인구가 밀집되는 장소이니만큼.
온갖 종류의 떡고물을 노리는 아타카크 중계소 놈들이 이곳을 목표로 삼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아타카크 놈들의 출현이 예견된 장소에 팩셰르가 굳이 나를 보내려 한다는 점.
‘아타카크 놈들이 뭔가를 꾸민다는 걸 감지한 팩셰르가 그 대책의 일환으로 날 그곳에 보내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일치?’
단서가 워낙 부족한 탓에 지금으로서는 섣불리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
물론 팩셰르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간에 내가 바바루크에 간다는 건 이미 정해진 바 있었다.
괴물의 의도가 뭐가 되었든 간에.
아타카크 놈들이 무서워서 팩셰르 자유 이용권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리고 아타카크 놈들이 아니더라도 바바루크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지.’
솔직히 말하면 바바루크는 예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장소 중에 하나였고.
내가 그곳을 염두해 둔 이유는 클라디우스의 은밀한 가정사와 연관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들은 게 내가 일곱 살 때였던가, 아니면 여덟 살 때였던가?’
아직 에밀이 존재하지 않았고 라나가 한참 예쁜 짓을 하며 방을 기어 다닐 무렵.
우연히 부모님이 나누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흐음, 최근에 바바루크 인근에서 있었던 다르곤 3국 간의 의료 협정 말이오. 순조롭지가 않은 모양이더군.”
“어머! 잘 진행되어 가는 듯하더니 왜 또 그런대요? 그 협정이 잘 진행되어야 아직 채 진압되지 않은 전염병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텐데요.”
“뻔한 일 아니겠소. 다 누군가의 욕심 때문이지.”
초저녁, 나는 이른 잠이 들락 말락 하고 있었고 아버지께서는 라나를 품에 안은 채 어머니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두 분께서는 내가 완전히 잠들었다고 생각했는지 평소 내 앞에서는 좀처럼 꺼내지 않던 대륙 정세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고.
난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은 채 잠자코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허허!”
“어머, 당신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 말고 왜 갑자기 웃고 그래요?”
“아니, 대단한 건 아니고 바바루크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당신 현역 시절이 생각나서. 하하!”
“여보!”
“당신을 그때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하, 아마 믿을 수 없다며 깜짝 놀라겠지?”
자신의 과거가 대화 주제에 오르는 게 달갑지 않았는지 어머니께서는 만류하려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잠든(척을 하는)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가셨다.
“내가 ‘삭풍’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게 그 바바루크에서였지 아마? 하하! 그 왜 당신이 신기록을 세웠다는 그 투기장 말이야. 어떻게 아직도 잘 있는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