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1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3)화(21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3)
“영감님, 듣고만 계시지 마시고 뭐라고 말씀 좀 해 보십쇼. 영감님께서는 그 17연승 여검사의 활약상을 직접 보셨다면서요?”
“암, 보다마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었지! 허허허.”
신이 나서 떠들던 사내는 같은 상단의 나이 노인에게 말을 넘겼고.
허연 터번을 머리에 두른 노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목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싸움 구경하는 걸 워낙에 좋아하는 터라 소싯적부터 안 가 본 결투장이 없거든. 그런데 지금껏 내가 봐온 모든 투사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무조건 그 복면 여검사라고 대답할 걸세.”
“아니, 영감님께서는 타샤드의 수도에서 운영되는 사설 결투장에도 여러 번 다녀오셨잖습니까? 제국의 결투장에는 내로라하는 용병들도 수두룩할 텐데, 24년 전의 여검사가 그 정도였습니까?”
“당연하지. 물론 제국의 투기장에도 훌륭한 전사들이 많이 있기야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최고는 그 복면 여검사야. 이건 아주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에이, 이 영감님 또 허풍 치시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 여검사가 타샤드 투기장 전사들보다 더 대단합니까? 타샤드 사설 투기장에 걸려 있는 상금이 얼마고 또 그곳에 도전하는 용병들의 수가 몇인데. 영감님께서 워낙 오래전에 본 일이다 보니 과장되게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과장이라니! 어허, 이 친구 이거 쥐뿔도 모르면서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는 버릇은 여전하구먼. 내 모든 걸 걸고 장담할 수 있는데 최고는 그 여검사야!”
여검사와 관련된 자신의 기억이 폄하되는 게 그리도 억울했던 걸까?
노인은 벌컥 소리까지 질러 대며 핏대를 세웠다.
“그 여검사 솜씨가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알아!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유명한 용병들과 이름깨나 날린다는 방랑기사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고! 왜 자네들 30년쯤에 활동했던 ‘쿤파나’라는 격투가 알지?”
“쿤파나라면 그 ‘산악왕’이라는 이명으로 유명했던 용병 아닙니까?”
“그래, 그 쿤파나가 그 여검사를 상대로 5분을 버티지 못했어. 그리고 난 그 광경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고.”
“그럼 그 17연승의 제물 중에 쿤파나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그리고 쿤파나가 전부인 줄 알아! 여검사가 쓰러뜨린 강적은 쿤파나 말고도 수두룩하게 많아! 내가 괜히 그 여기사를 최고로 꼽는 게 아니라고.”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여검사가 최고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네요.”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최고가 맞다니까 그러네! 내리 17연승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 여검사가 승자 자리에서 등 떠밀려 내려온 게 아니라 자기가 알아서 물러났다는 점이야.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17연승의 여검사보다는 ‘불패의 여검사’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거지. 자네들 이곳 콜로세움에서 무패를 기록 중인 전사를 본 적 있어? 헹, 아마 나 죽기 전까지 그런 기록은 못 나올걸!”
노인은 그 후로도 한참은 더 떠들 수 있을 듯한 기세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난 목격담 청취를 이쯤에서 마친 후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과 상당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검사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클라디우스 가문의 비사(祕史) 추적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이곳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또 다른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난 구불구불 골목길을 벗어나 외곽으로 향했다.
질겅질겅.
‘높은 곳을 선호하는 쥐새끼들의 습성을 고려했을 시, 놈들의 임시 거처 또한 고층 건물이나 고지대에 위치해 있을 확률이 높아. 그럼 강 근처 저지대에 있는 1, 3, 4, 7, 9, 11구역은 일단 제외. 가장 유력한 건 확실한 고지대인 2구역과 10구역, 우선 이 두 곳을 먼저 살펴보도록 할까?’
통오징어 양념구이를 입에 문 채 고지대로 향하는 돌계단을 올랐다.
제깟 놈들 딴에는 ‘중계소’라는 명칭(도무지 어울리지 않는)까지 써 가며 스스로를 세탁하고 있지만 아타카크 놈들의 본질은 더러운 쥐새끼였다.
그리고 쥐새끼란 본질적으로 겁이 많은 족속인 터라 틈만 나면 주위를 살피는 버릇을 가지고 있기 마련.
가히 인간 쥐새끼라 할 만한 아타카크 놈들 또한 항시 주변을 살피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기에.
놈들은 항상 주위 정찰이 용이한 지역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는 했다.
‘불쑥 솟은 첨탑, 사각(死角) 없이 모든 방향을 향해 뻗어 있는 창문, 외부 정문에서 건물까지의 상당한 거리. 그리고 복잡한 구조로 얽혀 있는 실내 복도.’
쥐새끼들이 좋아할 만한 조건을 염두에 둔 채 주변을 살피자 놈들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건물들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키보도라 산기슭의 전갈, 베무탄 늪지의 독사 그리고 아베타 황무지의 독개미. 셋 중에 어떤 놈들을 데리고 왔으려나?’
아카타크 놈들의 주특기는 송곳처럼 생긴 표창을 날리는 ‘비검술’이었지만 독을 이용하는 약물 공작 또한 놈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리고 놈들이 독의 재료를 채취하기 위해 사육하는 독물(毒物) 종류는 전갈과 독사 그리고 개미.
‘놈들은 작전이 전개될 지역의 특성에 맞춰 독물들을 데리고 다니지. 바바루크가 사막도시인 점을 감안하면… 아베타의 독개미.’
놈들이 도사리고 있을 대략적인 위치며 도구를 파악한 이상 이제는 구체적인 감별 작업에 들어가야 할 때.
‘저기가 좋겠네.’
근처를 둘러보니 고급스러운 천막으로 만들어진 간이매점이 보였고 난 지체없이 그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찾는 물건이 있으실까요?”
“담배 가루 제일 작은 들이로 한 봉지. 그리고 파이프 담뱃대도 같이 주세요.”
“어머! 아직 한참 젊어 보이는 분이 파이프 담배의 흥취를 다 아시고! 아주 멋쟁이시네요. 호호! 담뱃대는 상아로 만든 것과 사슴의 뿔로 만든 게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상아로, 아! 그리고 혹시 여기 그림엽서도 파나요?”
“네, 당연히 준비되어 있답니다. 이 시기에 바바루크를 찾아 주시는 분들께서 엽서를 워낙에 많이 찾으시거든요. 열다섯 종류 준비되어 있는데 보시겠어요?”
“그럼 엽서도 종류별로 두 장씩 주세요.”
주변이 고급 주택가인 터라 간이매점에서 판매하는 물건들 역시 사치스러운 고급품투성이었다.
“금화 두 개랑 은화 다섯 개 주시면 됩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하지만 팩셰르가 워낙 풍족하게 여비를 준비해 준 덕분에 이 정도 금액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지출할 수 있었고.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담긴 물건을 받아 들고 잡화점을 나섰다.
팩셰르, 당신이 손이 넉넉해서 참 다행이야.
당신을 만난 이래로 처음으로 고맙네.
톡톡.
파이프 안에 담배 가루를 절반 정도 채워 넣은 후.
가방 안쪽에서 ‘미리 배합을 끝내 놓은 특제 정향 가루가 담긴 병’을 꺼내 들었다.
톡톡톡.
유백색으로 빛나는 파이프 안에서 담배 가루와 특제 정향은 조화롭게 어우러졌고.
혼합 작업이 마무리되자마자 난 곧바로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후우….”
적당히 매캐하고 알싸한 연기가 점막을 적시는 이 감각.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 보는 담배 맛을 만끽하며 난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담배가 꺼지기 전까지 방문해야 할 곳은 모두 일곱 군데.
안개와도 같은 연기를 흩뿌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언제나처럼 내 머리 위에 자리를 잡은 북슬이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야! 담배 피우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물고 있으면 어떡해! 이러면 주위에 민폐인 거 몰라?
‘괜찮아. 다른 지역에서는 담배가 기호 식품이겠지만. 이곳 바바루크에서는 준생필품 대접을 받고 있거든. 그래서 이곳에서는 흡연에 대한 규제가 아예 없어. 저기 좀 봐, 저기서 나란히 걷고 있는 아저씨랑 아줌마도 사이좋게 연기 뻑뻑거리면서 걸어 다니고 있잖아.’
―윽! 정말 그러네. 여기 사람들은 그냥 공공장소 안 가리고 마구 피워 대는구나. 그, 그래도 말이야! 너 사람을 치료한다는 녀석이 담배나 피우고. 티베리가 알면 슬퍼할 거야!
‘그것도 괜찮아. 아버지께서는 내가 담배를 피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계실 테고. 이번에 피우고 나면 나도 당분간은 담뱃대를 입에 물 생각은 없으니까.’
―치! 항상 모든 흡연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근데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 뭐! 그래서 그 당분간이 언제까지인데?
‘내가 담배 연기를 이용해서 누군가의 발자취를 뒤쫓아야만 하는 일이 다시금 생기기 전까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킁킁! 에퉤퉤, 콜록콜록! 매캐하기만 한데 이걸로 뭘 어떻게 추적해!
‘설명은 조금 이따가 해 줄 테니까 일단은 잠자코 지켜보기나 해.’
고지대에 올라 바바루크의 전경을 감상하는 여행객인 척하며 미리 점찍어 둔 건물 주위에 꼼꼼하게 담배 연기를 흩뿌렸다.
‘이 정도 묻혔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나오겠지. 30분 정도 기다리면 되려나?’
작업을 마친 나는 근처의 노천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막 특유의 독하디독한 커피를 마시며 30분 정도 시간을 보낸 뒤.
조금 전 연기를 흩뿌리며 걸었던 길을 역순으로 되짚어갔다.
그리고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저택을 지나 네 번째 주택의 측면 담벼락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찾았다.’
찾아 헤매던 ‘진홍빛 증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높게 솟은 담벼락 하단부를 견고하게 뒤덮은 모래.
그 모래의 한쪽, 그러니까 내가 조금 전 연기를 뿌렸던 부분이 선명한 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구나. 쥐새끼 놈들의 소굴이.’
치익.
주변을 살핀 다음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한 번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두 번째 파이프는 정향 없이 오로지 담배 가루로만 채워졌고.
후우.
잠시간 내 입안에 머물러 있던 순도 100%의 담배 연기가 덧씌워지자 모래 위에 남아 있던 진홍빛 얼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특제 정향을 이용해 독개미의 개미산(酸)을 감지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아는 놈들은 없겠지만 혹시 또 모르니 증거는 말소해야지. 쥐새끼란 놈들은 원체 조심성이 많은 법이니까.’
이걸로 오늘 수행해야 할 작업은 끝이 난 셈.
‘어머니의 과거 탐색’과 ‘아타카크 놈들의 추적’.
두 가지 일 모두 만족스러울 정도의 진척이 있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내 연락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선배님들을 위한 엽서를 작성하는 일.
가볍게 샤워를 마친 후 잉크가 촉촉하게 묻은 깃펜을 손에 쥔 채 의자에 앉았다.
―나 궁금해 죽겠으니까 빨리 말해! 아까 그 담배 뭐야? 대체 뭐길래 네가 연기를 후우 하고 내뿜자마자 모래 색깔이 촥촥 바뀌고 그런 거냐구?
‘이 대륙 아주 깊숙한 곳에 아타카크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못된 놈들이 있어. 이놈들은 돈이 된다고만 하면 도무지 물불을 안 가리는 아주 흉악한 놈들이야. 그런데 이놈들이 목적 달성을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독이거든. 그리고 놈들은 이 독을 자신들이 기르는 독개미의 몸에서 추출되는 개미산을 이용해 만들어 내지.’
마음 같아서는 오늘치 엽서부터 재빨리 해결해 버리고 싶었지만 북슬이의 아우성이 너무 심했기에 일단 못다 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개미산이 워낙에 독특해. 그래서 독개미들이 서식하는 장소 인근의 토양은 독개미들이 내뿜는 무색무취의 개미산으로 인해 물들게 돼. 즉, 개미산으로 물든 토양만 감지해 낼 수 있다면 아타카크 놈들이 머무르는 장소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어? 그런데 페이건 네가 방금 개미들의 산이 무색무취라 그랬잖아. 그런데 그 개미산을 어떻게 찾아? 아! 혹시 담배로 찾을 수 있는 거야?
‘아니, 바바루크 사람들이 아무 데서나 담배 연기를 뿜고 다니는 거 너도 봤잖아? 만약 단순한 담배 연기로 개미산 검출이 가능했다면 개나 소나 아타카크 놈들의 거처를 발견할 수 있게?’
―어! 그러네, 그럼 뭐지…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페이건, 너 파이프에 처음 불을 붙일 때 이상한 가루를 탔지. 담배 연기가 아니라 그 가루를 통해 감지해 낸 거구나?
눈을 땡그랗게 뜨기만 할 뿐 도무지 감을 못 잡고 있는 북슬이와 달리.
라무테 님은 정답에 근접한 것 같았고 난 그녀의 날개를 쓰다듬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건 제가 정향을 이용해 만든 특수 가루인데요. 그 가루를 태워서 연기를 내면 개미산 검출이 가능해요.’
―그럼 그 정향인지 뭔지만 태우면 됐지 왜 굳이 담배에 섞어서 태운 거야? 아! 혹시 대놓고 그 이상한 가루를 태우고 다니면 이상하게 보이니까 일부러 그런 거야?
‘절반만 정답. 괜히 주목받는 걸 피하기 위해 파이프를 이용한 것도 맞지만, 꼭 담배를 피워야만 했던 진짜 이유는 냄새 때문이야. 이 특제 정향이라는 게 향이 워낙 진하거든. 그런데 이 진한 냄새를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담배 가루에 섞어서 태우는 거라서 파이프를 이용해야만 했던 거야.’
만약 내가 담배 가루에 섞지 않고 정향 가루만을 태워서 놈들의 거처를 발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자리를 떠난 후에도 독특한 정향의 향취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을 것이고.
혹여 아타카크 일당 중에 특별하게 좋은 후각을 가진 놈이 있다면.
‘어? 왜 우리 거처에서 통 안 나던 냄새가 나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배로 정향 냄새를 지우고 잠시간 변색되었던 모래까지 원상 복구시킨 이상.
제아무리 개코를 지닌 놈이 있다 해도 내가 다녀갔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터.
―아항! 그래서 네가 아까 당분간은 담배를 피울 일이 없을 거라고 한 거구나! 여기 숨어 있는 나쁜 놈들의 거처는 이미 다 까발려 졌으니까.
‘그치.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나쁜 놈들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독개미를 부리는 악당을 또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어? 그러니까 내가 추후 다시 흡연할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거지.’
통통.
이제야 비로소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북슬이의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고무공이 튕기는 듯한 기분 좋은 진동음이 들려왔고.
난 그 진동음을 배경으로 엽서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코델리아나 선배님.
저는 오늘 오후를 기해 바바루크에 도착했습니다.
흐르는 모래를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드는데 선배가 계시는 폴리다고스의 전경은 또 어떻게 흐르고 있을지….
* * *
쿠우우웅퉁.
덜커덩덜커덩.
“이랴! 제가 먼저 말린 약초가 든 수레를 끌고 나갈 테니 형님은 천천히 뒤따라 오십시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고 낙타가 끄는 짐수레가 연이어 저택 밖으로 빠져나왔다.
얼핏 보기에도 규모가 상당해 보이는 짐수레들.
평소였다면 여러 사람의 눈길을 끌 법한, 제법 큼지막한 규모의 행렬이었지만 때가 때이다 보니 행렬을 향해 집중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지금은 바야흐로 사람과 돈이 바바루크로 몰려드는 대절정의 시기였기에 저 정도의 행렬에 구태여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것이다.
‘라무테 님, 잠시 후면 짐수레가 전부 빠져나갈 테고 그 뒤로 상단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제가 신호를 보낼 테니 그놈을 샅샅이 훑어 주세요.’
―응, 알았어. 나한테 맡겨!
하지만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나와 있던 나로서는 이 상황을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었고.
‘라무테 님, 저놈입니다. 하얀 낙타 위에 올라타 있는 수염 남자. 저놈을 살펴 주세요.’
상단의 주인(으로 위장한 아타카크의 조직원)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투시를 부탁했다.
―음… 그러니까 뭐가 보이냐면 일단 단검, 송곳, 채찍 그리고 저 각반처럼 보이는 헝겊 안쪽에는 손도끼가 들어가 있고… 그리고 또 아우! 아무튼, 엄청 많아!
상단의 주인이라는 놈이 휴대하고 다니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무기.
―음… 그리고 가슴 안쪽에는 붉은 수정으로 만든 명패 같은 게 들어가 있는 것 같아. 혹시 저것도 무기인가?
물론 라무테 님의 도움이 있기 전에도 내 추측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투시의 결과를 듣고 나니 자신감은 어느새 확신이 되어 있었다.
‘홍(紅) 수정 인식표, 아타카크의 조장 이상급 간부들은 상부에서 배부한 인식표를 가지고 있었지. 10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네놈들의 버릇은 그대로구나.’
쿠우우우웅퉁.
잠시 후, 철문이 닫혔고 한 줄로 나란히 선 수레들은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타악.
절반쯤 마시다 만 커피와 커피값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후, 나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과의 거리는 550보(步)에서 600보 정도.
나는 놈들을 무리 없이 관찰할 수 있지만, 놈들은 내 접근을 알아차리기 힘든.
가히 최적의 거리라 할 법한 간격이었다.
노천카페의 파라솔을 벗어나자 작열하기 시작한 뙤약볕이 본격적으로 내 이마를 내리눌러 왔고.
‘슬슬 가 볼까?’
나는 태양 볕에 녹아들어 가는 유사(流沙)와도 같은 은밀한 발걸음으로 수레를 뒤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