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1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5)화(21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5)
―안쪽에 있는 사람이 누군데 그래? 표정을 보니까 뭔가 중요한 사람인 것 같은데 혼자만 알지 말고 빨리 말해 줘!
나와 같은 방식으로 라무테 님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북슬이가 팔짝팔짝 뛰며 재촉을 해 왔다.
‘저 남자의 이름은 아라반. 이 근방 사막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중개 교역의 4할은 마라카비탄이라는 부족이 전담하고 있는데 아라반의 친형이 바로 마라카비탄의 현 대족장이야. 그러니까 아주 중요한 사람인 건 맞지.’
마라카비탄.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 흐르는 모래 위에 둥지를 꾸린 사막의 부족.
이들은 사막의 부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랫길을 찾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혜안(慧眼)을 통해 다른 이들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교역 루트를 개척해 내고는 했다.
중개 무역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사막 길에 관한 관심 또한 급속도로 높아졌지만, 그 누구도 마라카비탄의 아성을 넘보지는 못했다.
수없이 많은 상단들이 오늘도 ‘사막의 황금 왕’을 꿈꾸며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겼음에도.
마라카비탄은 자신들만의 고유 영역을 확고하게 고수한 채 그네들의 땅을 황금빛으로 물들여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라카비탄 족장의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들에게는 그들의 신분을 증빙할 수 있는 신표가 주어지고는 했는데.
남자의 손에 들린 녹수정 코브라가 바로 그것이었다.
녹수정 코브라는 소유자가 사망하거나 족장이 교체되는 경우 일괄 회수되는 방식으로 계승되어 왔으며.
저 장식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사막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귀족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녹수정 코브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중 저 연령대의 남성은 단 한 명뿐이었기에 나는 남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짜? 그럼 돈이 엄청 많은 족장의 동생인 거니까 저 아저씨도 엄청 부자겠네?
‘부자인 것도 맞지만 저 남자가 진짜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어. 대족장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은 채 사망할 경우 그 형제자매가 대족장 위(位)를 계승하는 게 사막의 율법이거든. 그런데 현 마라카비탄의 대족장과 그 부인 사이에는 아직까지도 후사(後嗣)가 없어.’
―지금 대족장은 몇 살인데?
‘올해로 아흔둘이던가 셋이던가….’
―엑! 진짜! 그럼 거의 100살이네. 그럼 그 대족장 할아버지가 꼴까닥 해 버리면 저 아저씨가 족장이 되는 거야?
‘그래, 상황이 이러니까 저 남자가 중요 인물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귀하신 분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행차를 하셨냐 이거지. 더군다나 아직 어려 보이는 딸까지 동반한 채로 말이야.’
침대에 누운 채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뱉는 소녀의 나이는 기껏해야 일고여덟 정도.
제아무리 막대한 양의 황금을 손에 쥔 거부(巨富)라 해도 아픈 딸아이의 숨소리 앞에서는 처연해질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아라반은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녹수정 코브라를 움켜잡았다 풀었다 반복했다.
―그런데 어쩌지? 저 아이 많이 아픈가 봐. 오후에 들어간 그 유리병들이 열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약재라 그랬지? 아휴, 그 약이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아이가 아픈 건 가슴 아픈 광경인 게 맞죠. 하지만 저 아이가 앓고 있는 질환이 평범한 병이라면 차라리 다행인 일일 겁니다. 문제는 저 열병이 누군가의 불온한 의도가 담긴, 악의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죠.’
―뭐? 누가, 아! 그 저택 주위로 수레를 굴리고 있다는 나쁜 놈들?
라무테 님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채 되물었고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졸이고 있는 아라반이나 열병을 앓고 있는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앓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에 품고 있었던 대부분의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아라반이라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생각하면 저 남자를 저격하려는 무리가 있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죠?’
―응, 원래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에는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니까.
‘만약 후계자를 처치함으로써 대족장 자리 계승에 변수를 발생시키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아라반의 이번 외출은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라반은 은밀하게 바깥나들이를 나섰고. 은밀한 행적을 보였다는 건 경호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니까요.’
―페이건 너, 이미 아라반을 향한 암살 시도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구나.
‘정황증거가 이 정도로 갖춰진 이상 뭔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죠.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라무테 님께서 둥지를 떠난 상태의 누군가를 몰래 처리하기 원한다면 가장 먼저 뭐부터 하고 싶으세요?’
―그, 글쎄… 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저라면 목표의 발부터 묶을 겁니다. 단적으로 생각해도 촐랑거리면서 이동하는 적을 노리는 것보다는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적을 사냥하는 편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니까요.’
라무테 님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 방 안 풍경에 한층 더 정신을 집중했고.
그 덕분에 딸의 이마 위에 손을 올린 아라반의 모습이 더욱더 확실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비의 발걸음을 멈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식을 아프게 만드는 거겠죠. 건강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아픔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길을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제아무리 씩씩한 사람이라도 자식의 아픔 앞에서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뭐! 그럼 그 나쁜 놈들이 저 아이가 열병을 앓게 만들었다는 거야?
‘아타카크 놈들이 가진 재주. 그리고 아라반의 이동 경로를 사전에 파악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제법 단련이 된 것처럼 보이는 아라반을 감염시키는 무척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어린아이를 아프게 하는 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으니까.’
―으으, 너무해!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꼬마한테 나쁜 짓을… 용서 못 해!
‘야, 화를 내는 건 좋은데 내 머리 위에서 너무 그렇게 방방 뛰지는 마. 네 뱃살이 출렁거릴 때마다 뇌가 울리는 것 같단 말이야. 라무테 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만 투시안은 거두셔도 됩니다.’
베일에 싸여 있던 저택 주인의 정체.
그리고 아타카크가 짜 놓은 시나리오의 얼개를 파악한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기에 난 미련 없이 저택을 빠져나왔다.
‘아타카크 놈들 입장에서는 모든 방향에서의 접근을 확인하고 싶겠지만 결국 놈들이 동원한 인원은 50명. 제아무리 놈들이 정예라 해도 그 정도의 인원 가지고 모든 흔적을 24시간 내내 감시하는 건 불가능해. 외곽 쪽으로 나서면 빈틈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렇게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사막의 밤을 누비기를 30여 분.
난 놈들이 파 놓은 수레길을 따라 한참을 이동했고 마침내 적당한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라무테 님, 혹시 모르니 주위를 한 번만 살펴 주시겠어요? 혹시 돼먹지 못한 놈들이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하지는 않나요?’
―아니, 없어. 응! 다시 봐도 없어. 아주 깨끗해!
서걱서걱.
라무테 님의 확답이 끝나자마자 난 놈들의 수레바퀴 자국 근처의 모래를 조심스레 파헤치기 시작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아타카크 놈들은 인화물(引火物)을 이용해 아라반의 저택을 전소(全燒)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을 터. 거기에 놈들이 데려온 독물이 독개미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 근처에 통로가 틀림없이 있을 거야.’
사각사각.
달빛을 받아 사금처럼 반짝이는 모래를 긁어내기를 10여 분.
찌익.
‘찾았다.’
내가 찾던 자그마한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찌익찍.
새카만 눈동자와 쫑긋하니 솟은 귀.
길게 뻗은 주둥이와 꼬리까지.
흔한 시궁쥐에 북슬북슬한 털을 붙인 후 이목구비를 오밀조밀 귀염성 있게 만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모래 밑바닥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사막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꾼 ‘모래 쥐’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고.
구불구불하게 뻗은 쥐 굴을 목격한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커다란 눈망울을 깜박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모래 쥐 무리와 이 친구들의 땅굴 어귀에 감도는 매캐한 향기까지.
‘이걸로 퍼즐 맞추기는 끝. 100년이 넘게 흘렀는데 이놈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고민을 끝내고 개운한 상태가 된 나와는 달리 우리 마스코트들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고.
난 모래쥐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어제 오후에 말씀드렸죠? 북슬이보다 조금 더 작지만 민첩하고 남들이 깔아 놓은 자국 위로 달리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바로 얘네들입니다.’
―…그럼 이 조그마한 애들이 그 나쁜 놈들이 꾸미는 음모의 도구라는 거니?
‘그렇기는 한데… 이 친구들의 의도하고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일일 거예요. 모래 쥐들은 특정 냄새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아타카크 놈들은 이런 소형 설치류들의 특성을 이용하는 데 도가 튼 놈들이거든요.’
이걸로 아타카크 놈들이 준비한 모든 패가 탁자 위에 까발려진 셈.
‘좋아!’
그에 따른 대응 계획을 수립한 나는 주먹을 맞부딪히며 각오를 다졌고.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한 북슬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건데? 그 나쁜 놈들 소굴에 쳐들어가서 박살을 내 줄 거야?
‘아니, 그래서야 수지가 안 맞지. 내가 이 머나먼 땅까지 와서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했는데 나도 뭐하나 얻어 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내가 뭔가를 얻어 가기 위해서는 상황이 조금 더 무르익을 필요가 있어.’
―그럼 아까 그 저택에 다시 가서 아라반이라는 왕자 아저씨한테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 라고 말해 주려고? 아까처럼 담을 훌쩍 넘어서 말이야.
‘대족장의 동생이니까 왕자는 아니지. 뭐, 비슷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것도 지금 당장은 아냐. 그리고 난 같은 담장을 두 번 넘을 생각이 없어.’
혹시 또 모르니 내가 파헤쳤던 모래를 다시금 깔끔하게 메워 뒀다.
이제 내가 여기를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나와 마스코트들.
그리고 모래 쥐 무리가 전부.
북극성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바바루크 한쪽 귀퉁이에 고성(古城)처럼 우뚝 솟은 저택이 눈에 들어왔고.
‘열병을 앓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다시금 되새기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대족장의 동생분께서 나를 찾게 만들어야지. 지금 상황에서 몸이 달아오른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니까.’
* * *
똑똑똑.
“나리! 하산입니다. 들어가도 되겠는지요?”
“쉿! 이제 막 잠들었으니 조용히 들어오게.”
아가씨의 방문 앞에 선 하산은 심각한 표정으로 방문을 두드렸고 안쪽에서는 진이 완전히 빠진 듯한 아라반의 답변이 들려왔다.
“나리, 아가씨의 환후는….”
“그대로야. 이 근방에서 가장 용하다는 치료술사를 불러 회복 주문도 써 보고 열병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약재상이 처방한 약도 모두 써 봤는데 도무지 나아지지를 않는군.”
“나리….”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좋을걸. 사막의 신께서도 무심하시지. 이 어린 것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렇게 중한 병을 내리신다는 말인가….”
지난 며칠 사이 창백해져 버린 딸아이를 내려다보는 아라반의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렸다.
현 상황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해 봤지만,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딸아이의 상태.
딸이 앓고 있는 병이 ‘열병의 모습으로 위장한 악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라반으로서는 속이 바짝바짝 마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아… 이 아이가 몇 날 며칠을 매달리며 같이 가고 싶다고 졸라 댔다 한들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모든 게 내 잘못일세.”
경호 책임자로서 아라반을 모신 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정도로 맥이 빠진 주군의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
“나리,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사실은 경호 대원 중 한 명이 오전에 장거리에 다녀왔는데 말입니다. 그곳에….”
정체를 숨기기 위해 ‘나리’라는 어색한 호칭으로 주군을 부른 하산은 두 주먹을 굳게 쥔 채 자신이 방문을 두드린 이유를 밝혔고.
“북쪽 골목가 근처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치료술사가 나타났다고?”
“그렇습니다, 나리. 그 치료술사의 나이는 많지 않아 보이나 그 솜씨는 아주 탁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히 열과 관련된 병에 아주 뛰어난 솜씨를 보인다고 하니 왕진을 요청해 보는 게 어떨는지요?”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젊은 치료술사에 관한 소문을 들은 아라반의 눈동자가 갈색 광채를 발하며 번뜩였다.
“그 젊은 치료술사가 열과 관련된 질환에 특히 탁월하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나리. 특별히 진귀한 약재를 사용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치료술사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하루 종일 끙끙 앓던 사람들이 언제 병을 앓았냐는 듯 금세 기운을 되찾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왕진을 요청해 볼까요?”
“흐음….”
아라반의 갈색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하면 낯선 이를 저택에 들이는 행위는 삼가는 게 당연히 좋았다.
“으으으… 아빠….”
하지만 몸져누운 와중에도 자신을 찾는 어린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마라카비탄 최고위 간부라는 이름으로는 억누를 수 없는 아빠로서의 본능이 고개를 쳐들었다.
한쪽 손을 딸의 이마 위에 얹은 채 아라반은 하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무척이나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산,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그 젊은 치료술사를 아주 정중히 모셔오도록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