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1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7)화(21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17)
아타카크 놈들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잠시 미뤄 뒀던 어머님의 흔적을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과거의 어머님이 남겨 놓은 향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바바루크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막의 공주님을 매료시킬 정도로)강렬했던 모양이다.
“오빠! 오빠도 이 그림에 있는 여검사님 이야기를 들었죠? 있잖아요, 저어기 보이는 콜로세움의 한쪽 벽에는 이 검사 언니가 세운 승리의 기록이 나란히 쓰여 있대요. 상상만 해도 멋지죠! 병이 다 나으면 아빠가 그 벽에 데려가 준다고 약속했는데. 나 그날이 너무너무 기대돼요!”
이마를 펄펄 끓어오르게 만드는 열병의 자취도 잊은 채 눈을 반짝이는 가넷.
“그래그래… 몇 번이고 데려가 줄 테니 얼른 낫기나 하거라, 이 녀석아. 여기 도착한 그 날 네가 자리에 누워 버리는 바람에 이 아비도 우리 공주님과의 약속을 못 지키고 있지 않느냐.”
나와 눈이 마주친 아라반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는데.
그 힘없는 미소 속에는 ‘애초에 이 녀석을 여기 데려온 이유도 그 여검사 때문이라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렇게 자상한 아빠랑 놀러 갈 약속도 다 하고. 우리 코라는 좋겠네. 그럼 아빠가 코라와의 약속을 얼른 지킬 수 있도록 지금부터 이 오빠가 힘 좀 써 볼까?”
“우, 우와!”
분명 방 한쪽에 놓여 있었을 터인 체온계와 약 봉투가 내 손짓 한 번에 허공을 날아 가넷의 침상 위를 빙빙 돌았고.
그 광경을 목격한 가넷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를 내질렀다.
“아빠! 지금 봤어요? 오빠가 손가락을 까닥하자마자… 체온계가 둥둥, 우와아!”
“그, 그래. 아빠도 똑똑히 봤단다. 마나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걸 보아하니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요즘 폴리다고스에서는 그런 신기한 재주도 가르쳐 주나 보구려.”
「엑셀」의 권능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대단할 게 하나도 없는 일이었지만.
두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는지 부녀는 닮은 눈동자를 한 채 나란히 입을 벌렸다.
“거기서 배운 건 아니구요.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익힌 잔재주의 일종입니다.”
“잔재주?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잔재주로는 보이지 않네만… 아무튼, 딸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아라반은 잔재주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굳이 이런 묘기를 선보인 건 나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함이었고 그 목적은 확실하게 달성한(아빠와 딸 양측 모두에게) 듯싶었으니 말이다.
“우리 예쁜 코라, 맥 한번 짚어 볼까?”
“맥이요? 그럼 오빠가 내 병을 낫게 해 주는 거예요?”
“응, 조금 전에 나를 처음 봤을 때 잘생긴 오빠라고 그랬잖아? 이제 며칠 지나면 코라는 나를 ‘콜로세움에 갈 수 있게 해 준 오빠’로 기억하게 될 거야.”
“정말요? 우와!”
희망을 북돋아 준 내 한마디에 가넷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그에 비례해 아라반의 눈동자에 깃든 기대감 역시 높아져만 갔다.
가넷의 방에 오기 전 아라반의 얼굴 앞에 들이민 바 있는 ‘대(大)폴리다고스 실험국장의 밀명을 받고 온 경이로운 신입생’이라는 명함이 그 효과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는 상황.
―저기, 너 진짜 자신 있는 거 맞지? 저 아저씨 표정, 장난 아니야. 네가 이 꼬마를 낫게 해 줄 거라고 완전히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네가 실패하면 실망이 정말 장난 아닐 거야.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어.’
―엑!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실패할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으니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깜짝 놀란 표정을 한 북슬이를 보는 건 언제나 유쾌한 일이었기에 일부러 짓궂은 농담을 던져 봤다.
‘대부분의 문제 풀이가 어려운 건 출제자의 의도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야. 그런데 나는 이 문제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출제했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는 상황이잖아? 이 상황에서 이런 열병 하나 못 고치면 클라디우스라는 성을 사용할 자격이 없지.’
가넷을 드러눕게 만든 병이 ‘열병’의 탈을 쓴 아타카크의 놈들의 수작이라는 걸 파악한 것만으로도 문제는 절반 이상 풀린 거나 마찬가지.
촤라랑.
“우와!”
소매 속에 숨겨져 있던 침이 허공으로 빠져나와 선인장 모양을 그렸고.
모처럼의 팬서비스에 흥분한 가넷은 또다시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 보니까 지금 이거랑 비슷한 팬서비스를 언젠가 한 번 한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더라?’
‘어린 소녀를 앞에 두고 바늘로 꽃을 피워 낸 기억’을 실마리 삼아 머릿속을 헤집어 봤지만 명확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고.
“하나도 안 아프게 해 줄 테니까 잠깐만 얌전히 있어 주렴. 괜찮지?”
“네, 오빠! 저 힘낼게요.”
결국 나는 기억을 떠올리는 걸 잠정적으로 포기한 채 가넷의 팔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손가락을 튕기자 선인장을 이루고 있던 바늘이 허공을 날아와 가넷의 팔목에 꽂혔고.
곧 6월의 얼음처럼 서늘한 기운이 소녀의 몸을 휘감았다.
* * *
“우우웅… 여기사님… 제가 왔어요. 음냐, 음냐!”
치료가 시작된 지 한 시간.
바늘이 선사하는 기분 좋은 서늘함을 감당하지 못한 가넷은 결국 잠이 들어 버렸다.
“오오! 정말 대단한 솜씨구려. 공자! 지난 보름간 이 근방에서 난다 긴다 하는 치료술사들은 전부 다녀갔지만, 그 누구도 딸아이의 몸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했는데 고작 한 시간 만에….”
그리고 기분 좋게 잠든 딸의 얼굴을 마주한 아라반의 입에서는 연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치료술에 별다른 조예가 없는 아라반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가넷의 몸 상태는 좋아져 있었고, “고맙소! 공자께서는 나의… 아니, 우리 가족 전체의 은인이라오! 이 감사함을 어찌 다 표현해야 할지….”
아라반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듯한 얼굴을 한 채 내 손을 부여잡았다.
“코라 양을 치료한 것에 대한 보상은 조금 전의 약속으로 이미 수령한 바 있으니 지부장님께 이 이상의 은혜를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 게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다마다! 말만 하시오. 내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리리다!”
“코라 양의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건 당분간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코라 양에게 복용시키기 위해 구매해 왔던 약재의 조달 또한 계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허! 재미있는 말씀이시구려. 이 근방의 어떤 치료술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시고도 그걸 비밀에 부쳐 달라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연회를 베풀어 공자의 은혜를 기리고 싶은데… 아!”
내 제안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라반을 향해 나는 팩셰르의 명패를 다시금 치켜들어 보였고.
아라반은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 당부 또한 그 ‘나름의 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이오?”
“맞습니다. 코라 양의 몸 상태가 좋아졌다는 사실을 숨기려면 병시중을 드는 사용인 관련해서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테고. 그 작업이 여러모로 번거로울 것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지부장님께 협조를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공자의 당부는 당연히 지킬 생각이오. 다른 사람도 아닌 은인의 부탁이니 당연히 들어드려야지. 다만 비밀을 지키다 보면 응당 공자께 전해져야 할 감사의 표시 전달이 지체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일의 보답은 저와의 약조를 충실히 지켜 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그렇지만….”
“저를 이곳에 보내신 분이 워낙에 철두철미하셔서 말입니다. 만약 예기치 못한 변수로 인해 그분께서 하명하신 일에 차질이 생긴다면… 제가 좀 많이 피곤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고로 지부장님,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소이다. 공자의 사정이 그렇다면 사례를 표하는 건 잠시 뒤로 미뤄두도록 하리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팩셰르가 쌓아 올린 악명은 이번에도 효과적이었고 아라반은 어딘지 모르게 애틋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내 그분의 성품에 관련된 소문은 익히 들은 바 있다만 ‘폴리다고스의 실험국장님’께서도 아주 여간하신 모양이구려.”
“뭐, 때로는 소문이 진실을 담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럼 전 오늘은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가 진료는… 내일모레 정도가 적당할 것 같군요.”
“마음 같아서는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다만 바쁜 공자께서 공사다망한 듯하니 어쩔 수 없구려. 자, 그럼 내가 배웅이라도….”
“지부장님, 지금껏 이곳을 방문했던 치료술사들 중에 지부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정문을 나선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그야… 단 한 명도….”
“그럼 저도 혼자서 나가는 게 좋을 듯하군요. 그럼 내일모레 다시 뵙겠습니다.”
나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의 아라반을 뒤로 한 채 가넷의 병실을 나섰고.
그림자처럼 주군의 곁을 지키던 하산이 내 옆으로 나란히 섰다.
“수고가 많으셨소이다, 공… 아, 어흠! 아니… 치료술사 양반,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야 제가 드릴 말씀이지요.”
하산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을 빠져나오는 길.
정문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야자수 나무와 그 근처의 그늘막이 보였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야자수에서는 ‘유독 향긋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고 난 걸음을 멈춘 채 하산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야자수를 잠깐 구경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소? 자, 내가 안내해 드릴 테니 따라오시구려. 아! 그럴 게 아니라 당장 다과를 준비할 테니 그늘막에서 차라도 한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다과도 안내도 전부 괜찮습니다. 그냥 저 혼자 가서 가지에 열린 꽃을 잠시 살피고 싶을 따름입니다.”
“아! 그럼 난 여기 있을 테니 천천히 다녀오시오.”
흐드러지게 익은 야자수를 향해 다가설수록 달큼하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한 내음이 흘러나왔다.
툭.
나무의 밑동을 살짝 두드리자 가지에 가득 열려 있던 꽃잎이 흩날렸고.
난 그중에서 가장 선명한 빛을 머금은 꽃잎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랑살랑.
하늘하늘 춤을 추며 오른 손바닥 위로 내려앉은 꽃잎.
야자수를 향해 접근하는 동안 미리 왼손바닥 위로 꺼내 놓았던 병을 살짝 기울이자 푸른 빛의 액체가 꽃잎 위로 떨어졌고.
액체가 꽃잎 표면 위에 닿은 순간 ‘샛노란 빛’을 띠고 있던 야자수 꽃잎이 순식간에 새빨간 색으로 물들었다.
‘라무테 님, 사막의 모래 쥐들이 어떤 식으로 놈들의 도구로 활용되는지 궁금하다 하셨죠?’
―라무테만 궁금한 게 아니라 나도 궁금해! 그러니까 나한테도 빨리 말해 줘!
‘며칠 후면 사막을 온통 푸른 빛으로 물들일 광기의 달이 뜰 거야. 광기의 달이 뜨면 안 그래도 밤잠이 없는 모래 쥐들은 밤새도록 도시 지하를 누비고 다닐 테고. 그러다 어느 시점을 기해 나쁜 놈들이 신호를 보내면 일제히 이 저택을 향해 몰려드는 거지.’
―…!
‘그리고 이 야자수는 폭약을 짊어진 모래 쥐들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이정표가 되어 줄 테고 말이야.’
―야, 야자수가 어떻게 이정표 역할을 한다는 거니? 비록 이 야자수가 유달리 울창하기는 하지만 이것과 비슷한 생김새의 야자수라면 도시에 널리고 널렸잖아?
‘비슷한 생김새를 한 나무야 쌔고 쌨지만 이런 독특한 향의 수액이 흐르는 야자수는 이 녀석뿐이니까요.’
푸른 용액의 검증을 끝마치자마자 붉게 변해 버린 야자수 잎을 마스코트들에게 다시 한 번 보여 줬고.
그제야 감을 잡은 두 마리는 눈동자를 크게 뜨며 놀라움을 표했다.
‘모래 쥐는 안 그래도 무척이나 예민한 후각을 가진 놈들입니다. 아마 녀석들은 이 저택 어딘가에 먹음직한 수액을 가진 야자수가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다만 눈치가 보여 차마 저택으로 돌격할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뿐이죠.’
―모래 쥐가 야자수의 수액도 먹니?
‘네, 그것도 그냥 먹는 정도가 아니라 모래 쥐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가 무르익은 야자수 수액입니다. 지금은 어찌어찌 그 식욕을 참고 있지만, 녀석들을 잔뜩 흥분시킬 미친 달이 뜨고 또 개수작을 꾸민 놈들이 타이밍을 맞춰 모래 쥐의 흥분을 고양시킬 자극제까지 흩뿌린다면… 뭐 그다음은 뻔한 이야기가 되겠네요.’
푸른 달이 뜨기까지 앞으로 나흘.
아마 내일, 모레, 글피 자정 정도를 기해 아타카크 놈들은 대량의 모래 쥐를 납치한 후 녀석들의 등 뒤에 인화 물질을 붙이는 작업을 시작하지 않을까?
―이 야자수가 처음부터 강한 향을 내뿜은 게 아니라면 그 나쁜 놈들이 사전에 수작을 부렸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설마?
‘네, 이번 일은 즉흥적인 개수작이 아니라 꽤나 오래전부터 준비된 음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추측이지만 아라반의 바바루크행이 결정된 시점부터 놈들은 음모를 착수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사건의 배후에는 마라카비탄의 후계자 구도를 뒤흔들어 보고자 하는 누군가가 버티고 있겠지요.’
―세상에!
―야… 야! 그런데 넌 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다 한 거야? 너랑 같이 다니면서 페이건 네가 본 단서들은 나도 전부 다 봤단 말이야. 그런데 나랑 라무테는 이거랑 비슷한 생각도 못 했는데 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거냐구!
사막 이곳저곳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을 한데 긁어모아 완성한 나의 큰 그림.
도출해 낸 정답을 들은 라무테 님은 탄성을 내질렀고 북슬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추론의 경위를 캐물었다.
‘그야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마스카 경매를 통해 뭔가 심상찮은 개수작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눈속임과 음모를 파헤치는 방법은 내가 또 아주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페이건, 넌 그 방법을 왜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냐고! 누가 가르쳐 줬어! 당장 말해!
자신이 가르쳐 준 적도 없고, 가르쳐 줄 수도 없는 지식을 내 머릿속에 심어 놓은 누군가에게 질투가 난 걸까?
북슬이는 내 머리 위에서 방방 뛰어 가며 목소리를 높였고 난 녀석의 꼬리를 돌돌 감으며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있어. 평생에 걸쳐 나쁜 놈들을 지켜봐 온 터라 이런 류의 더러운 수작을 꿰뚫어 보는 것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런 사람이.’
* * *
“살펴 가시오. 어흠! 별 차도는 없는 듯하나 어찌 되었건 최선은 다해야 하니 다음번에 올 때는 더 많은 준비 해 오시고. 그럼 이틀 뒤에 봅시다.”
“네, 이틀 뒤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큰 기대를 받고 저택에 불려 갔으나 결국 지부장의 딸을 치료하는 데 실패한 얼치기 치료술사’를 연기하며 정문을 나서자마자 따끔한 시선이 뒤통수에 날아와 꽂히는 게 느껴졌다.
‘그래 역시 따라붙을 줄 알았지.’
계획 실행이 며칠 뒤로 다가온 만큼 저택을 감시하는 아타카크 놈들의 시선이 촘촘해진 것도 당연한 일.
‘변수가 발생했다는 걸 이놈들이 알게 된다면 다른 방향으로 잔대가리를 굴리려 들 거야.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돼. 내가 여기까지 뛰어든 이상 너희들은 확실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정신 나간 경주마처럼 달려 줘야만 하거든.’
가넷의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사실을 숨겨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금 실감하며.
난 태연한 걸음걸이로 숙소를 향했다.
달칵.
놈들의 끈적한 시선은 숙소로 복귀할 때까지 이어졌고.
내가 머무르는 방 커튼이 드리워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아타카크 놈들의 미행도 끝이 났다.
‘이제 절반 정도 남았나?’
별생각 없이 엽서 다발을 집어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푸른 달빛으로 물든 오아시스의 전경’이 그려져 있는 엽서가 가장 위로 올라왔다.
사막의 도시가 온통 푸른 빛으로 물들기까지 앞으로 나흘.
나의 바바루크 여정도 중반부를 넘어 종반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