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화(22/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
저택에서 해안가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서둘러 달려온 덕에 목표했던 시간을 넘기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무테 님, 놈이 다가오는 방향은요?”
―북북서… 아그작…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니까… 와작… 지금쯤 해안 인근까지 왔을걸.
질문은 라무테에게 했지만 대답은 북슬이에게서 돌아왔다.
대답 사이에 들려오는 야무지게 씹어먹는 소리.
군것질에 관해서는 준비성이 철저하다고나 할까? 녀석의 목에는 어느새 간식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흐음….’
새카만 어둠이 내린 북북서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르카를 운용하기 시작하자 점차 시야가 환해지기 시작했다.
꿀렁꿀렁.
“크기가 좀 작기는 하지만 정말 크라켄처럼 생겼네.”
에스페타라의 해안을 향해 다가오는 괴생명체의 모습이 한껏 날카로워진 시야에 잡혔다.
검은 수면 위로 드문드문 모습을 보이며 꿀렁거리는 희뿌연 다리.
불청객은 몰려오는 파도의 일원인 것마냥 은밀한 침입을 시도했지만 클라디우스의 바다를 지키는 정찰병의 눈을 속이지는 못한 것이다.
“지아니.”
―도련님 오셨어유!
호명이 있자마자 불쑥 고개를 내미는 매끈매끈 동글동글한 머리.
―이상한 놈들이 자꾸 찾아오는 건 영 싫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매일같이 도련님 얼굴을 뵈니께 그건 참 좋구먼유.
“나도 마찬가지야.”
반가움을 표출하려는 생각이었는지 지아니는 머리 위 숨구멍을 통해 분수와도 같은 물줄기를 내뿜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아니의 목소리가 전부 ‘뀨뀨’하는 울음소리로만 들릴 터.
하지만 라무테 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 날 이후, 난 영수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바다의 귀염둥이와 이런 식의 환담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넌 눈이 점점 더 예뻐지는 것 같다.”
―히히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구먼유.
빈말이 아니라 지아니는 정말로 눈이 예뻤다.
흑진주처럼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범고래 특유의 동글동글 포동포동한 몸매.
생긴 것만 봐서는 마냥 귀엽기만 할 것 같은 지아니였지만 이 녀석이 얼마나 용감하고 또 헤엄을 잘 치는지 알고 있는 나는 그대로 녀석의 등에 올라탔고.
“갈까? 떠밀려 온 쓰레기는 바로바로 치워야지.”
―이 지아니는 언제라도 준비 됐구먼유!
지아니는 특유의 유선형 유영을 통해 밤바다로 녹아 들어갔다.
* * *
―도련님! 조심하셔야 해유! 저놈이 독을 뿜으려 한다니께유!
“알고 있어.”
지아니의 다급한 목소리. 하지만 나 역시 아종 크라켄이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놈의 의도를 파악했기에 어렵지 않게 놈의 독액 세례를 피할 수 있었다.
좌아악.
“키에에엑!”
비장의 한 수였던 독액 분출이 실패로 돌아가자 크라켄은 한층 더 열광적인 발광을 시전했고, 내가 발을 내딛고 있던 놈의 등판 또한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워메! 도련님 지도 가세할까유?
내가 위태롭다고 생각한 걸까? 거리를 둔 채 싸움을 지켜보던 지아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괜찮으니까 그냥 보고만 있어.”
하지만 난 지아니의 제안을 대번에 거절했다.
물론 지아니가 가세해 주면 싸움이 훨씬 쉬워지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종 크라켄 따위는 지아니의 날카로운 이빨과 민첩한 움직임을 당해 낼 수 없었고 하다못해 지아니가 그 동글동글한 몸통으로 몸통박치기만 해도 아종 크라켄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테니까.
“지아니 너까지 나서면 너무 금방 끝나잖아. 그래서야 공부가 안되지.”
격하게 흔들리는 아종 크라켄의 등판을 떠나 놈의 머리를 향해 도약을 했다.
애초에 이 괴물을 퇴치하는 게 목표였다면 처음부터 에페누 영감에게 맡겼을 것이다.
에페누 영감이라면 얼음 입김 한방으로 이 잡종 오징어를 꽁꽁 얼려 버릴 수 있었을 테니.
하지만 오늘 밤 나들이의 목적은 이 녀석을 단순히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이놈을 통해 크라켄의 신체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었기에 난 1대1을 고집했다.
“케에에엑!”
아종 크라켄이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휘둘러지는 수십 개의 다리.
하지만 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 셔츠를 흠뻑 적시는 것이 전부, 놈의 다리는 나를 스치지도 못한 채 연신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냠냠, 내가 저 괴물 오징어였으면 벌써 답답해서 죽었다. 쬐끄만 놈이 올라타서 머리고 몸통이고 안 가리고 쿡쿡 쑤셔 대는 데 그걸 어떻게 버텨? 조금 있으면 저 오징어 혼자 열 받아서 벌겋게 익을 것 같은데.
―저… 벨제키엘님. 쇤네 궁금한 것이 있구먼유.
―응? 왜? 너도 좀 줄까?
―그게 아니여라! 저기 우리 도련님 말이예유. 저렇게 펄쩍펄쩍 날다람쥐처럼 잘도 뛰어다니시는데 혹시 저 움직임 벨제키엘님이나 라무테 님이 도련님께 가르쳐 주신 건가유?
―아니. 그런 적 없는뎅.
―워메! 그럼 우리 도련님은 어디에서 저런 기똥찬 움직임을 배워오신 걸까유? 쇤네가 알기로는 클라디우스의 가주님들 중 저 정도로 민첩하신 분은 아직꺼정 없었는데.
―처음 본다고? 아, 지아니 너는 아직 어려서 그 녀석을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구나. 페이건이 아예 처음은 아니야. 클라디우스 중 저렇게 펄쩍펄쩍 잘 뛰어다니는 놈이 한 명 있기는 있었어. 뭐 그 녀석은 뛰어다니는 것만 잘하는 게 아니라 다 잘하기는 했지만.
귀가 솔깃해지는 벨제키엘과 지아니의 대화에 이목을 집중한 채 난 티아매트의 고리에 검지를 집어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두 영수 간의 대화를 더 듣고 싶었지만 크라켄의 신체 구조에 대한 공부가 완료된 터라 이쯤에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만 했던 것이다.
‘…뭘로 할까? 아, 그래. 최근에 익힌 그걸 한번 써먹어 봐야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법은 그 전승 방법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대륙 모든 사람들에게 구사 방법과 단련 방법이 널리 알려진 ‘공용 마법’과 ‘소수로 제한된 전승 주체’의 특성을 강하게 내포한 ‘비전 마법’.
모두가 배우고 익히는 게 가능한 공용 마법과 달리 비전 마법은 특정 가문이나 마탑의 구성원들에 한해서 전승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전승 주체의 특징이 강하게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비전 마법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곧, 해당 전승 주체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했기에 평민이나 군소 가문 출신들에게는 비전 마법 그 자체가 특권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었다.
클라디우스 역시 여러 비전 마법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클라디우스 비전 마법의 경우 자신의 마나를 타 생명체의 체내에 주입하고 조작하는 데 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치료술사의 마나는 타인의 증상을 검진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더군다나 오염된 기운이 다른 기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타인의 체내에 마나의 벽을 세우는 것 역시 치료술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다 보니 클라디우스의 비전 마법은 자연스레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저저저적.
―헤에, 페이건 저 녀석 마나를 주입하는 솜씨가 많이 늘었네? 라무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과거와 비교하면 정말로 자연스러워졌어. 아마 저 오징어는 지금 자기 몸에 페이건의 마나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할걸.
그리고 은밀하고도 조용한 처리 방식으로 이름 높은 클라디우스의 비전 마법이 아종 크라켄의 거대한 몸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잠깐만! 페이건 이 녀석 또 이상한 짓 하네! 크라켄의 체내에 주입된 마나가 뾰족뾰족한 형태를 하고 있잖아?
―그러게, 마나의 형태를 저런 식으로 짜다니. 페이건은 저런 이상한, 아니 기발한 생각을 어떻게 하는 걸까?
물론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마법은 기존 클라디우스의 것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다.
앙겔루스를 비롯한 클라디우스의 유산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만, 기본적으로 내 전투방식의 근간을 이루는 건 아르카를 포함한 암살기법이었으니까.
‘됐어. 촘촘히 심어놓는 건 끝났고. 이제 벽을 만든 다음….’
체내 마나 주입에 관심이 많은 건 암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밀하고 깔끔하게 목표를 처리하는 데는 타깃의 체내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하게 하는 ‘그림자 살인’이 최고였으니까.
치료술사와 암살자.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과 삶을 마주한 채 오랜 시간 내달려 온 두 흐름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한데 섞여 신묘한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하아!”
머리 위로 날아드는 빨판을 피한 직후 손가락을 까닥였고, 그 즉시 아종 크라켄의 체내 잠입을 완료한 마나가 일제히 몸을 세웠다.
이걸로 준비는 얼추 끝난 셈이었다. 뾰족뾰족한 모서리를 한 채 체내 곳곳을 막아선 마나의 방벽.
그 날카롭기 그지없는 방벽이 한순간에 터져버린다면 아종 크라켄의 몸뚱이는 어떻게 될까?
“버스트.”
“키에에엑!”
시동어가 발동된 그 순간 아종 크라켄의 주둥이에서 처절하기 그지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다리, 갑작스런 폭발이 초래한 열을 이기지 못하고 새빨갛게 익어버린 몸뚱이.
“거기 숨어 있었냐?”
아종 크라켄은 삽시간에 공황에 빠졌고, 그 바람에 놈이 꼭꼭 숨기고자 했던 ‘핵’의 위치가 만천하에 드러나 버렸다.
벌겋게 익은 삼각 대가리 아래쪽에 위치한, 커다란 수박만 한 크기의 새카만 핵. 재빨리 티아매트를 꺼내든 후, 날을 왼손으로 감쌌다.
스르릉.
단검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던 티아매트가 순식간에 중형도 수준의 사이즈로 몸을 키웠다.
한 손 검에서 양손 검으로 파지(把持) 방식을 바꾼 뒤, 나는 그대로 삼각 대가리를 향해 몸을 날렸고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던 핵은 그대로 양분되고 말았다.
서걱.
“끼에에엑.”
순식간에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핵심 기관을 상실한 아종 크라켄은 흐물흐물해진 몸뚱이를 한 채 깊은 바닷속으로 침전을 시작했고.
“께륵.”
놈이 뱉어 낸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도련님, 고생 많으셨구만유! 이 망할 놈의 괴물아! 우리 도련님의 솜씨가 워뗘? 너 같은 건 뼈도 못 추리겠지?
“그래. 너도 기다리느라 수고 많았어.”
정확한 타이밍에 나를 태우러 온 지아니.
지아니의 등에 올라타 바닷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쥐어짜고 있으려니 벨제키엘이 질문을 던져 왔다.
―냠냠, 지아니가 물어봐서 나도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너 방금 한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배워 온 거냐?
“내가 매일 아침마다 하는 체조 있잖아. 그거의 응용편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럼 그 응용편은 또 어디서 본 거야?
“그냥. 여기저기서.”
―하긴, 오르페우스 그 녀석도 배운 적도 없는 주제에 네가 한 거랑 비슷한 걸 잘하기는 했지. 냠, 아무리 봐도 말이지. 너희 클라디우스는 싸움에도 제법 소질이 있는 거 같아.
“뭐가 됐건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긴, 혹시 네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니기라도 하면 내 속이 뒤집힐 것 같기는 해. 그럼 일단 상태 봐줄 때까지 저기 앉아 봐.
먹던 쿠키를 꿀꺽 삼킨 후 벨제키엘은 그대로 내 머리 위에 배를 깔고 누웠다.
―음… 좋아. 이제 세 개째의 고리는 문제없이 돌아가는구나. 이 페이스로 쭉쭉 달린다면 조만간 네 번째의 영역에도 진입할 수 있을 거야. 물론 네가 이처럼 빠른 성과를 보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내 덕분이지만.
“그래, 어련하시겠어.”
전투가 끝날 때마다 벨제키엘은 내 몸 상태를 살펴 주고는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마냥 귀엽기만 한 생김새와는 달리 털 뭉치는 앙겔루스에 관해 최고 수준의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감각은 지금까지의 수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폴리다고스로 출발하기 전 마나 고리 세 개라면 나쁘지는 않아. 앙겔루스의 습득은 나름 순조로워, 문제는 아르카인데. 왜 아직까지도 3단계의 벽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거지?’
앙겔루스를 익힌 지 11년, 아르카를 익힌 지 12년.
단련을 시작한 건 아르카카 더 먼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척속도는 오히려 앙겔루스가 더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전생에서 스승님에게 가르침을 받았을 당시, 난 5년 만에 아르카 3단계를 완성한 후 하산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 생애에서는 아르카를 익힌 지 12년이 경과했음에도 배움의 정도는 3단계 중반에 머물고 있었다.
전생에서 5년 만에 아르카 3단계를 마스터한 것에 비하면 현저히 완성도가 떨어진 것이다.
한데 재미있는 건 피부로 느껴지는 아르카의 진척속도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빨라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정확한 측정수단이 있는 게 아닌 터라 확언을 할 수는 없지만 체감되는 아르카의 진척속도는 분명히 더 빨라진 게 맞았다.
과거와 비교해 한층 빨라진 진척속도, 하지만 전생의 그때와는 달리 좀처럼 그 끝을 보여 주지 않는 3단계의 벽.
과거 스승님은 아르카의 단계를 넘어서는 것은 뚝뚝 흐르는 물방울로 커다란 물병을 채우는 것과 같다고 설명해 주신 바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물이 들어오는 양은 더 늘었는데 채워야 할 물병의 크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탓에 오히려 채우는 속도가 더뎌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지.’
이 세상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평온하게 돌아가 주기만 한다면 애초에 이런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을는지도 몰랐다.
‘아르카? 그거 뭐 시간 지나면 알아서 올라 주겠지. 아님 말고. 오르페우스의 유산? 심심하면 찾아보고. 안 심심하면 그냥 냅둬도 상관없어. 정 필요한 거라면 누군가는 찾아내겠지.’
막말로 이 세상이 평화롭기만 하다면 위와 같은 생각을 품은 채 평생을 산다 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날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광휘가 남긴 그 말.
[머지않아 환란이 닥칠 거야.]라는 말이 머릿속에 박힌 채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