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0)화(22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0)
우울한 눈동자를 한 채 그림을 가려 둔 이유를 밝히는 노인의 얼굴에는 그가 20여 년간 품어 왔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제가 보기에는 아주 훌륭한 그림인데. 사람들이 이 그림을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요? 혹여 복잡한 사정이 숨어 있기라도 한 겁니까?”
“사람들이 그 초상화를 싫어하는 이유라면 간단하지. 그 그림이 사람들이 ‘제멋대로’ 품고 있는 환상을 깨 버린다나? 무명 여검사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주체할 수 없는 투지와 독기. 그리고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거든.”
독기와 투지.
벽면을 가득 메운 어머니의 모습들과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지만, 마지막 초상화의 어머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덕이었다.
“지금도 자기들 맘대로 여검사를 존경합네, 흠모합네 하며 떠드는 이들은 그분을 그냥 ‘독기의 화신’ 정도로 취급하며 자신들 마음대로 추앙하고 있다오. 그리고 그 비뚤어진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언제까지고 ‘활화산 같은 투지의 상징’으로 군림해야 할 여검사께서 저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거지.”
“어르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제멋대로인 믿음이기는 하군요.”
“허허… ‘사실이라면’이 아니라 ‘사실’이 맞다네. 난 지난 40년간 이곳을 지켜 왔고 덕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는 아주 훤히 꿰고 있거든.”
“사람들이 이 초상화를 싫어하는 정도가 그리 심한가요?”
“심하다 뿐인가? 행여 저 초상화를 잠깐이라도 전시했다가는 항의가 아주 쉬지 않고 들어온다오. 나의 ‘불패 여검사’께서는 이런 칠렐레팔렐레 같은 얼굴은 하지 않으니 당장 저 그림을 끌어 내리라는 항의에 숫제 장사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야.”
“재미있는 말씀이로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굳이 그런 항의가 들어올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르신께서 굳이 이런 그림을 그리시는 이유는 뭘까요? 이 초상화가 특별히 고가(高價)인 것 같지는 않고 잘 팔리는 건 더더욱 아닌 것 같은데요.”
“잘 팔리지도 않는 데다 분란을 일으키기만 하는 이 초상화를 굳이 가져다 놓는 이유가 뭐냐고? 대답은 간단하외다. 내가 이 그림을 아주아주 좋아하거든.”
후우우.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폐활량을 자랑하며 자욱한 담배 연기를 내뿜는 노인.
수십 년간 이곳을 지켜 온 노인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에는 그간의 세월이 진득하니 엉겨 붙어 있었다.
“보아하니 젊은 양반께서는 이 그림에 관심도 제법 있는 데다 여타의 뜨내기들처럼 제멋대로인 것 같지도 않은데. 괜찮다면 이 초상화에 관련된 사연 한번 들어 보시겠소?”
“어르신께서 수고를 감내해 주신다면 기꺼이.”
“수고라 할 게 뭐 있겠소. 원래 이 나이가 되면 옛날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워지는 법이거든, 흐흐. 내가 지금은 이렇게 뒷방 늙은이 신세가 돼서 기념품 가게나 지키고 있지만 젊을 때는 나도 제법 잘나갔다오.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정기 결투에 참가할 인원을 심사하는 자리를 역임했으니 상당히 잘나갔다고 봐야지.”
“역시, 어쩐지 연륜이 보통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꼬박 15년을 심사 위원으로 일했으니 웬만큼 뛰어난 용병이며 유랑 기사들은 거진 만나 봤다 해야지. 이보오 젊은 양반, 뛰어난 사람을 10년쯤 지켜보다 보면 ‘진짜를 판별하는 눈’이라는 걸 가지게 되는 법이거든. 그리고 그렇게 내 눈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무렵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눈을 한 무인(武人)이 내 앞에 나타난 거지.”
“여검사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야 당연하지. 내가 노망이 들지 않고서야 지금 타이밍에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낼 리 없잖소? 흐흐.”
잔뜩 신이 나서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을 마주하고 있자니 오늘의 콜로세움이 한산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여느 때처럼 기념품을 사기 위한 방문객들로 바글거렸다면 이토록 느긋한 분위기에서 수다스러운 노인의 회상을 듣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난 여검사님과의 만남을 똑똑히 기억한다오. 얼굴의 3분의 2를 가리는 투구를 덮어쓴 탓에 이목구비 대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눈동자, 정말이지 살벌했던 그 눈동자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거든.”
“벽면 여기저기에 그려져 있는 그림 속 눈동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뭐, 그것도 비슷하기는 한데 사실 여검사님의 진짜 눈동자에 비하면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라오. 아무튼, 결투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는 여검사님을 마주한 당시의 나는 깜짝 놀라 버렸지. 내로라하는 용병이며 방랑 기사들을 숱하게 만난 나도 그토록 사나운 눈동자를 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투구 너머로 보이는 사나운 눈동자라… 흥미롭군요.”
“암! 흥미롭다마다. 그 왜 여기서 떨어진 곳에 있는 저기 대륙 동쪽 끝에서는 고스트며 스펙터를 가리켜 ‘귀신’이라고 부른다던데. 여검사님의 눈동자를 마주한 난 절로 ‘귀신’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말았다오.”
이 노인과 에스페타라의 저택에 머물다 떠난 하녀를 대면시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귀신의 눈’으로 어머니을 기억하는 노인과 ‘오호호’ 하는 웃음소리로 어머니를 기억하는 전직 사용인들.
우연이 맞닿아 서로 마주한다 한들 자신들이 서로 같은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겠지.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바로 다음 날부터 여검사님은 투기장에 출석했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지. 여검사님께서는 그 거칠고 사나운 눈동자에 걸맞은… 그야말로 귀신과도 같은 솜씨를 보여 주셨거든.”
“혹시 17연승을 쌓아 가는 도중에 위기가 있지는 않았나요?”
“위기? 쯧쯧, 내가 조금 전에 말했잖소. 여검사님의 솜씨는 귀신같았다고. 다른 참가자들과는 아예 별개의 차원에 있는 여검사님께 위기라고 할 게 뭐가 있었겠소?”
“그럼 파죽의 기세로 17연승을 했다, 이 말씀인가요?”
“그렇지, 파죽의 기세였고 말고. 여검사님의 기세가 어찌나 놀라웠는지 그분이 17연승을 거두던 그 날. 콜로세움 운영 본부는 다급히 긴급 공지를 발령했다오. 지금 참여하고 있는 투사들 가지고는 도무지 여검사님께 어울리는 상대를 찾을 길이 없으니 잠시 18연승 도전을 멈추고 연승자에 걸맞은 상대를 초빙해 오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말이지.”
“연승 도전자를 상대하기 위해 외부 도전자를 초빙해 오는 게 흔한 일이었나요?”
“아니, 여검사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오. 흐흐.”
어머니의 찬란했던 과거를 떠벌리는 게 그리도 흥겨웠는지 노인은 연신 담배 연기를 뻐금거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콜로세움 운영 본부가 직접 나서서 호적수를 초빙하겠다고 한 만큼 사람들의 기대감은 커져만 갔지. ‘어느 왕국의 수석 기사단장이 초대를 받아서 온다더라’, ‘지금은 은거한 전대 용병왕이 여검사님을 상대하기 위해 놓았던 검을 다시 잡았다더라’ 등의 소문이 무성했고. 나 또한 그 세기의 대결을 기다리며 가슴 벅찬 시간을 보냈더랬지.”
“그런데 그토록 역사적인 시합을 앞두고 여검사님이 돌연 자취를 감춰 버렸으니 사람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군요.”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소? 그 시합을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을 느껴야만 했고 여검사님이 연승 도전을 중단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도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다오. 흐흐.”
“그런데 그런 가슴 아픈 과거를 말씀하시는 분치고는 어르신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 보이는군요.”
“허허, 젊은 양반이 아주 눈썰미가 제법이시구만. 물론 나도 그 당시에는 가슴이 아팠지. 하지만 콜로세움이라는 것이 원체 다 그런 것이거늘 어쩌겠소? 도전자가 도전을 멈출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상 자유로이 보내 드리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지. 나는 콜로세움 심사 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여검사님의 도전 철회를 공식적으로 수용했소이다. 그리고 여검사님께서 그동안 쌓인 상금을 수령하기 위해 본부를 방문해 주신 그날. 난 보고 말았다오!”
뻐끔뻐끔뻐끔.
회상의 종반에 다다를수록 노인의 표정은 더욱더 밝아졌고.
눈동자에 깃든 광채에 비례하여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가는 속도 또한 훨씬 빨라졌다.
“처음 그날과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17연승을 성공하던 그 날과는 완전히 달라진 여검사님의 눈동자를. 17연승 이후, 보름간의 휴식기를 거쳐 내 앞에 모습을 보이신 여검사님의 눈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오.”
“…혹시 그럼 그 달라진 여검사님의 표정이 담긴 그림이 이 초상화인 겁니까?”
“맞소이다. 바로 그 표정이지. 햇살 같고 꽃잎 같은 그 웃음. 운영 본부를 찾아 주신 여검사님의 눈동자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독기를 도무지 찾아볼 길이 없었다오. 고작 보름의 기간 동안 사람의 표정이 이리도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니! 깜짝 놀란 나는 휘둥그레한 눈동자를 한 채 여검사님을 다시금 살폈지.”
이야기가 가장 극적인 부분에 다다른 순간 노인은 마침내 눈을 감아 버렸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 얼굴 대부분을 가린 투구도, 어깨에 두른 낡은 망토도, 상흔(傷痕)으로 가득한 보호구도 전부 그대로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단 하나. 처음에 이곳에 올 때는 혼자였던 여검사님의 곁을 아주 우람한 체구의 청년이 지키고 있었다는 점.”
“지금 우람한 체구라 말씀하셨습니까?”
우람한 체구의 청년이라니… 굳이 묻지 않아도 정체는 짐작이 갔지만 굳이 한 번 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래, 아주 우람한 청년이었어. 그리고 그 덩치만큼이나 넉넉한 웃음을 가진 청년이었지. 어찌나 풍채가 좋은지 난 꼭 불곰이 걸어오는 줄 알았다니까. 하하.”
아버지… 풍채가 유별나신 건 그때도 마찬가지였나 보군요.
“그 청년이 누구고 또 여검사님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오. 하지만 상금 지급 절차가 진행되는 내내 두 사람의 손은 맞닿아 있었고 여검사님의 얼굴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 그리고 난 상금을 계산하는 내내 사막의 신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오. ‘신이시여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검사를 보여 주시더니 이제는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까지 보여 주시는군요.’라고 하면서 말일세.”
“그럼 이 팔리지도 않는 초상화를 매년. 그리고 또 천까지 덮어 둔 채 전시해 두는 것도 그날의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함인 겁니까?”
“바로 그거지. 비록 그리는 족족 재고품이 되어 가고는 있지만 난 앞으로 이 표정을 계속 그려 나갈 것이라오. 지금까지 조금도 옅어지지 않는 기억들을 박박 긁어모아 가면서 말이오. 허허허!”
제법 오랜 시간을 둘이서 떠들었음에도 여전히 기념품 가게는 한산했다.
그러나 기념품 가게를 지키는 노인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이 수다쟁이 노인의 마음속에서는 오늘 하루 매출을 공쳤다는 슬픔보다는 수십 년간 자신이 간직해 왔던 미담을 들려주는 데 성공했다는 기쁨이 더 커져 있던 것이다.
“어르신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갑자기 이 그림에 흥미가 생기는군요.”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냥 입을 닦고 나올 수는 없는 일.
나는 한쪽 손으로는 금화 주머니를 열고 반대쪽 손으로는 어머니의 미소가 담긴 초상화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그림, 제가 사겠습니다. 대금은 지금 바로 지불할 테니 내일 오전 중으로 제가 묵고 있는 숙소로 배송해 주시죠.”
* * *
“흐흠♪♫.”
대금 지불이며 배송 절차까지 마무리하고 콜로세움을 빠져나오는 길.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사막의 석양을 보고 있자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흥! 평소에는 통 부르는 일도 없던 콧노래를 다 부르고. 너 저 그림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내가 까맣게 모르고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그림이야. 그런 보물을 손에 넣었으니 두 분의 아들로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잖아?’
―그럼 저 그림, 티베리와 멜리사한테 선물로 줄 거니?
‘아니요. 당분간 두 분께는 비밀로 한 채 제 기숙사 방에 걸어 놓을 생각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두 분의 과거에 조금 더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허허 웃고 넘기시겠지만, 어머니께서는 부끄러워하실 거예요. 본인의 일에 관해서는 쑥스러움이 많으신 분이니까요.’
아타카크 놈들의 음모를 개박살 내고 아라반과의 인연을 맺어 놓은 것도 나름 쏠쏠한 수확이었지만.
이번 바바루크 행의 가장 큰 소득을 꼽으라면 역시 부모님의 과거였다.
물론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또 아버지께서 무슨 수로 어머니의 태도를 돌변시켰는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였지만.
두 분의 인연이 시작된 지점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
학과 수업 일정상 내일모레 오후에는 바바루크를 떠나야겠지만 이 정도 성과를 얻어 낸 것만으로 이번 외유(外遊)는 차고 넘칠 만큼 만족스러웠다.
짤랑짤랑.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곳 바바루크에서 두 분은 생애에서 가장 눈부신 날들을 보내고 계셨겠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직도 두둑하게 남은 여비 주머니가 기분 좋은 짤랑거림을 토해 냈고.
난 그 경쾌한 울림에 지지 않을 만큼 달콤한 독백을 내뱉었다.
‘사막의 모래 속에 묻혀 있는 두 분 만의 눈부신 파편이라니. 자식 된 도리로서 이런 건 무조건 모아 둬야지’
* * *
“국장님, 월례 회의에 들어가 계시는 동안 감사 인사를 담은 선물이 도착했사옵니다.”
“감사 인사라니? 감사를 들을 일을 한 기억이 없는데 대체 어디서 선물이 왔다는 말이야?”
“그게…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조교는 도착한 선물함과 서신을 팩셰르의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아니, 상급자가 묻는 말에 즉답하지 않고 ‘궁금하면 네가 직접 확인해 보던가.’라는 태도를 취하다니?
다른 국장과 조교수 사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당장이라도 경을 쳤을 법한 일이지만 연구실 분위기는 평온하기만 했다.
까다로운 상사를 오랫동안 보좌해 온 인재답게 조교수는 실험국장이 거추장스러운 설명을 듣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최소한의 설명만을 한 채 나머지는 팩셰르에게 직접 맡기는 걸 선택한 것이다.
“흐음….”
부하의 무례를 탓하는 대신 곧바로 선물함으로 시선을 돌리는 팩셰르의 모습을 보건대 조교수의 짐작은 이번에도 적중한 듯했고.
잠시 후 실험국장의 입에서는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라카비탄?”
팩셰르는 이재(理財)에 밝거나 교역 무역에 관심이 지대한 타입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런 그도 마라카비탄의 이름과 그들을 상징하는 문양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라카비탄의 부족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영토가 워낙에 알짜배기들인 데다.
사막을 중심으로 발휘하는 교역 역량이 워낙에 발군인 터라 황금 코브라의 후손들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던 것이다.
“….”
선물함의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그 안쪽에는 팩셰르조차도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진귀한 물품들이 가득 차 있었고.
선물함의 액면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실험국장의 눈매 또한 날카로워졌다.
‘세상에 공짜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철칙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팩셰르였기에.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고가의 선물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선물함을 개봉 전으로 원상 복구시킨 후 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들을 다시 돌려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팩셰르의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를 무렵.
선물함의 바닥에 깔려 있던 서신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고.
“뭐야… 이건?”
단숨에 서신의 내용을 읽어 내린 팩셰르의 입에서 평소의 그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 새어 나왔다.
서신 서두에 들어가 있는 ‘아라반’이라는 이름.
그리고 서신 말미에 찍혀 있는 황금 코브라의 인장(대족장과 총관, 공인된 후계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까지.
선물을 보낸 이의 정체는 밝혀졌지만, 자신이 ‘마라카비탄의 2인자’로부터 이런 고가의 선물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점점 더 오리무중 속으로 빠져들 뿐.
팩셰르는 눈을 부른 뜬 채 서신의 내용을 살폈다.
친애하고 존경하는 폴리다고스의 실험국장님께.
마라카비탄의 부족장을 역임하고 있는 ‘아라반 마르바드’라 하옵니다.
드려야 할 말씀은 많다만 일단 훌륭하고도 출중한 애제자를 둔 국장님의 홍복(洪福)에 대한 경하(慶賀)부터 올리고자 합니다….
…
첫 문장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자라니?
평생에 걸쳐 굉장히 많은 학생들을 접하기는 했지만, 애제자라 칭할 만큼 각별한 사이를 맺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출중한 애제자를 둔 걸 축하한다고?
‘황금으로 만든 빵을 먹고 사는 이 젊은 사막 코브라’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