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1)화(22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1)
…국장님께서 클라디우스 공자를 시의적절하게 바바루크에 보내 주신 덕분에 저와 딸아이가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공자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고자 저 또한 나름의 도움을 주려 했으나 국장님의 명패를 꺼내 든 채 보안을 엄수해야 할 것을 밝히는 클라디우스 공자의 의지가 워낙 엄중한 탓에….
…
보안이라니.
자신은 그저 그냥 올해와 내년에 걸쳐 사용할 마도구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대체 무슨 보안이 필요하며.
심부름꾼이 엄중한 의지를 드러내야만 할 일은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딸아이의 병을 치료했다니?
그동안 보여 준 ‘어마어마하고도 무시무시한 싸움박질 솜씨’와 그 ‘교활하기 짝이 없는 심계’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끌기에는 충분했기에 그동안 치료술사로서의 능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바 있었다.
그런데 폴리다고스가 아닌 곳에서 ‘귀하신 분’을 상대로 치료술을 발휘했다고?
“….”
격물치지(格物致知)에 통달한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 정도는 눈 감고도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건방진 꼬맹이만 관련되었다 하면 도통 요지경 세상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 언젠가 직접 만나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릴 일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리고 복귀한 클라디우스 공자에게 제가 참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말을 다시금 전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입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공적을 기리는 것으로 시작한 서신은 마찬가지의 의미를 품은 채 끝이 났다.
참으로 완벽한 수미상관 구조를 그리며 끝난 이 서신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후우….”
고가의 물품들로 가득 찬 선물함을 돌려보낼지 말지도 정하지 못한 채 팩셰르는 담배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공적 덕분에 타인이 이득을 얻는 광경은(팩셰르 에우리디케라는 사람 자체가 워낙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기에) 숱하게 목격한 바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행한 공적(더군다나 그 영문도 모르는)으로 이득을 보는 건 난생처음이었기에 실험실의 괴물도 좀처럼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바바루크를 중심으로 심상찮은 기류가 흐른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래 봤자 색다른 분위기 속에서 견문을 넓히는 정도로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낯선 조류(潮流) 속에 천둥벌거숭이를 내던져 놓으면 나름의 성장을 해 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 지시한 바바루크 행차.
하지만 시야를 확대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 예상했던 사막행은 팩셰르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방향(물론 이런 식의 결과로 귀결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으로 뻗어 나간 듯했다.
‘그놈의 예정된 복귀 일자가 내일이었지?’
줄곧 무관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천둥벌거숭이가 제출한 외출계(外出屆)는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던 터라 페이건의 복귀가 내일이라는 건 훤하게 알고 있었다.
“후우….”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그 연기만큼이나 모호하기만 한 천둥벌거숭이의 속내.
좀처럼 놀라는 일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폴리다고스의 노괴물은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이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 * *
또각.
창을 곧추세워 든 흑색 기사가 흑백이 아로새겨진 전장을 뛰어넘어 적군의 왕을 향해 도약했다.
병사, 성벽, 주교, 심지어는 여왕까지.
백색 기물들은 ‘백군 그 자체이자 그들의 모든 것’인 왕을 지키기 위한 악전고투를 벌였지만.
흑색 기사가 보여 주는 신묘한 움직임 앞에서 모든 저항은 헛되이 스러질 뿐이었고.
“체크.”
―…졌어.
결국, 백의 왕이 몸을 가로누이는 것으로 가로세로 여덟 칸의 전장에서 벌어진 전투는 막을 내렸다.
“최근 들어 나는 계속 지기만 하다가 이제 겨우 한 판 만회한 것 같은데. 고작 한 게임 내줬다고 그런 표정까지 지을 건 없잖아?”
―….
“웃어. 애초에 모든 게임은 즐기자고 하는 건데 왜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래? 고작 이런 기물 놀음 한 번 졌다고 울상을 짓는 건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연구자답지 않은 태도잖아?”
―내가 너한테 체스 한 번 졌다고 이런 표정인 걸로 보여?
수정구 너머의 상대가 발끈하자 등 뒤로 돋아난 검은 날개가 하늘로 솟구쳤고.
새카만 깃털이 날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루드비히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그럼 체스가 아니면 뭘까? 우리 성실하고 냉철하며 총명하기까지 한 연구자 양반을 열 받게 만든 그 이유는?”
―…실패했어.
“뭘 실패했는데? 네 실험실에서 행해지는 각종 개조 실험?”
―내 실험실은 나의 완벽한 통제하에 돌아가고 있어. 그러니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내 실험과 연구에는 일말의 차질도 없어. 실패한 건 이 빌어먹을 지상 위에서 벌어지는 계획들이지.
“호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봐 주기를 바란 것처럼 답변을 쏟아 내는 친구를 보며 루드비히는 감탄을 터뜨렸다.
다소 수다스러운 구석이 있는 자신과 달리 수정구 너머의 친구는 무척이나 과묵한 성품이었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저리도 발끈한 얼굴을 한 채 불평을 늘어놓다니.
‘모켈레의 수석 연구원’이 저질렀다는 그 실패가 무엇인지 호기심이 불끈 솟아올랐다.
―지지난달부터 이번 주까지. 총 석 달에 걸쳐 세 군데를 습격하는 작전을 실행했어. 그런데 그중 두 건만 성공하고 한 건은 실패를 했단 말이지.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말이야.
“뭐, 세 건 모두를 성공시키지 못한 게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6할 6푼을 넘는 성공률이면 아주 나쁜 건 아니잖아?”
와인으로 듬뿍 적신 입술을 핥아 내리며 루드비히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물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친구의 성품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도살자 요아힘 벤제르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성공률 66%는 그리 나쁜 결과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평소 같았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 이번에 수립된 세 건의 계획은 실행 직전까지 요아힘의 감시망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진행된 정말이지 완벽하게 성공적인 작전이었어. 그런데 그중에서 한 건이 실패했다는 말이야! 어때? 이 정도면 내 표정이 왜 이리 엉망인지 알겠어?
원(圓)의 계획을 방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장애물이 ‘요아힘 벤제르센을 위시한 폴리다고스의 감찰 세력’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어떻게든 요아힘의 감시망을 벗어나는 데만 성공할 수만 있다면 그 후의 작전 전개는 성공이 거의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그런데 요아힘의 감시망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 작전(더군다나 꼼꼼하고 치밀한 것으로 정평이 난 모켈레가 주도한) 중 하나가 좌초되어 버렸다니.
이는 결코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줄곧 매끈하기만 하던 루드비히의 미간 역시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네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확실히 예삿일은 아니네.”
―그래. 그리고 더 열 받는 건 세 군데에서 동시에 진행되던 작전 중 가장 중요한 게 실패해 버렸다는 거야.
“실패한 장소가 어디였는데?”
―바바루크.
“너… 사막 코브라를 삼키겠다는 다짐을 예전부터 쭉 해 오더니 결국은 실행에 옮겼구나?”
―우리 연구자들은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고 그 사막 뱀 놈들은 그 분수에 맞지 않는 거대한 부(富)를 가지고 있어. 그래서 그 건방진 코브라의 가죽을 벗겨 버리고 속살을 홀라당 하겠다는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 코브라 놈들 가죽을 벗기는 일이야 전적으로 네가 취사 선택할 문제이니만큼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그 ‘사막 뱀 가죽 탈피’ 작전에 투입한 자원은 어느 정도인데?”
―아타카크에 의뢰를 넣었고 최고급 암살자 50명을 동원하기로 했지.
최고급 암살자 50명이라는 말을 들은 루드비히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고.
그 모습을 지켜본 연구원은 샐쭉한 입매를 한 채 말했다.
―코브라 놈들이 말랑말랑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 질긴 가죽 놈들의 사실상 후계자를 처리하는 일이야. 이 정도 인원은 투입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그래, 네 말도 맞지. 그런데 문제는 아타카크의 최고급 암살자 50명을 투입해 놓고 완전히 실패했다는 거잖아. 그래서 밝혀진 실패 원인은 뭔데?”
―몰라.
“뭐? 모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 크지도 않은 사막 도시에 최고급 암살자 50명을 쑤셔 박아 놓고 실패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실패가 원인 규명조차 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
―나도 몰라, 몰라! 모른다고!
결국, 짜증이 한계치까지 솟아오른 연구원은 빽빽거리며 소리를 한차례 내지른 후.
전후 사정을 설명해 줬는데 친구의 입을 통해 듣는 사건의 전개는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실행에 옮기기 두 시간 전, 최종 점검을 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중이며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 말이지? 그런데 그토록 완벽했던 계획이 불과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놈들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긴 후 은신처에 불길이 치솟기까지 채 두 시간이 안 걸렸으니 엄밀히 말하면 하룻밤 사이 일도 아닌 셈이지.
“어쨌거나 50명에 달하는 최고급 암살자들이 도사리고 있던 은신처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렸다는 거잖아. 그래서 화재의 원인은 뭔데?”
―나도 화재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나름 노력 중이야. 그런데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라반은?”
―화재가 발생한 그 날 새벽을 기해 바바루크를 떠났어. 혹시 아라반이 먼저 눈치를 채고 선수를 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는데 화재를 수습하지도 않고 부리나케 내뺀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
“하아!”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은 루드비히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 속에 전소(全燒)되어 버린 계획과 잿더미로 화한 암살자들이라니.
‘바바루크에서 발생한 작전 실패’와 ‘자신이 얼마 전에 겪었던 불상사’가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불운하기만 한 근황 토로(吐露)는 이쯤에서 끝내는 걸로 하고 너는 어떤데? 지난번에 그랬잖아, 구니파스를 엉망으로 만든 그 월베니라는 놈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해?
때마침 친구의 입에서 ‘숲에서 발생한 불상사’와 관련된 인물의 이름이 툭 하니 터져 나왔고.
루드비히는 바짝 마른 입안으로 와인을 흘려 넣은 후 씹어 내뱉는 듯한 한마디를 토해 냈다.
“안 그래도 기회를 보는 중이야. 약간이라도 깝죽거리는 기색을 보이면 꼬투리를 잡으려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놈이 겁먹은 꿩처럼 대가리를 풀숲에 처박은 채 도무지 꿈틀거릴 생각을 안 해.”
―웬일이야? 대가리를 쑤셔 박은 놈을 들쑤시는 건 우리 루드비히 공작 각하의 특기 아니었어?
“…그날 밤 있었던 그 일. 내 충직한 동족들을 잿더미로 만든 그 불행의 뿌리가 월베니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러니 한번 숨죽이고 지켜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능글거리던 루드비히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번득였다.
와드득.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체스 말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며 루드비히는 피맺힌 한마디를 내뱉었다.
“얼마가 걸리든 간에 내가 그 간악한 뿌리를 몽땅 긁어내어 그대로 갈아 마셔 버릴 거니까.”
* * *
“먼 길 다녀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공자님.”
“별말씀을… 그럼 인계해 드린 물건들은 국장님께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보름 만에 복귀한 폴리다고스.
아카이드의 널찍한 등짝에 바리바리 매달려 있던 마도구들을 실험국 직원들에게 전해 주는 걸로 이번 바바루크 행의 공식 절차는 마무리.
“아카이드, 너도 그동안 고생 많았어. 내가 조만간 맛있는 고기 잔뜩 싸 가지고 숲으로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넹, 페이건 님! 헤헹, 저도 즐거웠어용! 그럼 라무테 님이랑 스승님도 안녕!
요 몇 달 사이에 한층 더 웅장해진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아카이드는 숲으로 날아가 버렸고.
나 역시 이제는 나의 또 다른 보금자리가 되어 버린 기숙사 방을 향했다.
모래 반, 바람 반인 사막에서 꼬박 보름을 뒹굴다 보니 청정 바람으로 가득한 내 방 침대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페이건!”
“왔구나, 내 선물 가져왔지!”
“페이건 군, 보고 싶었어!”
그런데 온수 샤워를 한 후 푹신한 침대에 드러눕겠다는 내 계획은 초장부터 암초를 맞이하고 말았다.
나보다 방문 앞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어떻게 알기는! 아카이드가 그리폰이다 보니까 교내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행정실 소속 직원분들이 움직이는 걸 본 이 유리안 선배님께서 아, 이쯤이면 페이건 군이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셨다는 거지. 그래서 내가 사람들한테 연락했어. 오늘 오후에 페이건이 돌아올 테니까 우리가 문 앞에서 마중하고 있자고.”
“…저 같은 사람을 위해 이렇게 마중까지 나와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건 일종의 직권남용 아닌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사이에 직권남용은 무슨, 하하하!”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유리안 선배의 뒤로 크리스틴 선배와 카밀라 그리고 제라르가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고작 보름간의 공백을 아쉬워하며 이렇게 모여 준 사람들을 내칠 수도 없는 일.
“일단 다들 안으로 들어오시죠. 마침 전해 드릴 물건도 있고 하니 제가 차 한잔 정도는 대접하겠습니다.”
그리 좁지 않은 방이라고 생각했는데 네 명이나 되는 손님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다 보니 조용했던 나의 방은 순식간에 시끌시끌해졌다.
선인장의 향이 묻어나는 찻잎을 끓여 물을 우려내고.
바바루크에서 제일가는 제과점에서 사 온 선물용 과자 세트를 꺼내는 것으로 제법 그럴듯한 다과상이 완성되었다.
“어머! 이 찻물 색깔 좀 봐. 너무 예쁘다! 꼭 빨간 꽃이 핀 선인장 같아. 향도 엄청 좋아!”
“그치? 나도 바바루크에 있는 내내 즐겨 마셨는데 도무지 질리지 않더라고. 좀 싸 줄 테니까 이따가 가져가.”
“페이건 군, 나도!”
“아, 네. 선배님 것도 가져왔으니까 일단 이거 드시면서 기다리고 계세요. 선배님이 듣고 싶으시다던 사막 이야기는 대강 짐 정리를 끝내고 말씀드릴게요.”
손님들에게 나눠 줄 기념품을 종류별로 정리한 후.
내가 두고 쓸 용도로 구비해 온 물건들을 수납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콜로세움에서 사 온 무명 여검사의 초상화를 ‘천이 씌워진 그대로’ 한쪽 벽면에 걸어 두는 것으로 대강의 짐 정리는 끝.
“페이건, 그 캔버스는 뭐야? 그림을 사 왔으면 잘 보이게 만들어 놔야지 왜 기껏 좋은 장소에 걸어 놓고 천을 뒤집어씌워 놨어?”
“이게 나름 사연이 있는 그림이거든.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보고 싶지 않은 그림이라서 평소에는 가려 뒀다가 마음에 힘이 드는 일이 생기거든 그때 보려고.”
“흐음… 말라비틀어진 장작 같은 페이건의 입에서 그런 낭만적인 말이 다 나오고. 저 캔버스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궁금해지네. 좋아! 보여 달라는 말은 안 할 테니까 캔버스의 내용이라도 말해 줘. 캔버스 비율을 보건대 초상화 같은데… 누구야, 그 그림의 주인공?”
베일에 싸인 캔버스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했는지 카밀라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림의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냈고.
난 조금의 거짓말도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답변을 들려줬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