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2)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2)화(222/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2)
“….”
이렇게 대답을 하면 한 번쯤은 더 물어볼 거라 생각했지만, 카밀라를 비롯한 인원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름 위트 있는 답변이랍시고 했는데 여기 모인 분들을 상대로 내 유머 코드는 먹히지 않는 건가?
까드득까드득.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으깨 버릴 듯한 기세로 초콜릿 쿠키를 씹어 먹고 있는 크리스틴 선배가 보였다.
방 안에 들어온 이래로 통 말이 없길래 있는지 없는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는데 취식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시네.
까드드득.
음, 그런데 크리스틴 선배 눈동자가 왜 저렇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잖아.
까드득.
이런, 선배께서 이토록 과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넉넉하게 사 왔을 텐데.
“사, 사랑이라니… 페이건 군 주제에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애, 애초에 사랑이니 뭐니 이런 건 부, 부, 불가능한 사람인 주, 주제에… 감정이 없는… 모, 목석이 어떻게 사랑을 해… 차, 차라리 바윗덩어리가 사랑을 하, 한다면 내가 믿어 줄 수는 있는데에에….”
“뭐, 선배님 편한 대로 생각하세요. 원래 사랑이라는 건 사람마다 정의 내리는 방식이 다른 법이니 말입니다.”
개성적인 화법으로 내 발언에 대한 불신 의지를 피력하는 유리안 선배를 깔끔히 무시한 채 초상화가 담긴 액자를 조정했다.
“좋아.”
칙칙.
소중한 초상화를 가리고 있는 천 위에 향수(사막에서 피는 꽃의 향내가 듬뿍 묻어나는)를 뿌려 주고 있으려니 제라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알겠다! 그림의 주인공은 페이건의 어머님 아니면 여동생이구나!”
“…!”
제라르의 입에서 새로운 의견이 나온 순간 초점을 상실한 채 마냥 흐려져만 있던 크리스틴 선배의 눈동자가 빛을 되찾았다.
“직접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클라디우스 대부인이 어떤 분인지는 전해 들었어. 카밀라가 그랬거든 페이건은 또래 여자애들 앞에서는 마냥 까칠하기만 하면서 엄마 앞에서는 착한 아들이고 여동생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오빠라고.”
“직접 본 사람들도 못 맞히는 걸 잘도 맞혔네. 어떻게 알았어?”
“그냥, 페이건이 가족이 아닌 다른 여자한테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헤헤.”
역시 제라르.
가장 먼저 사귄 친구답게 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니까.
“휴우….”
“하아….”
“퓨우우… 다행이다.”
각기 다른 템포로 한숨을 토해 내는 세 사람.
내 사랑이 이 사람들한테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일지는 또 몰랐네.
“페이건, 그럼 푹 쉬어! 그리고 네가 사다 준 선물은 정말 소중히 쓸게.”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갈게. ‘오늘은’이니까 내일 또 놀러 올지도 몰라.”
“시간 확인한 후 가능한 한 빨리 말해 줘. 보름간이나 자리를 비운 탓에 밀려 있는 설명회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하니까.”
“예쁜 선물도 사다 주고 했으니까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부터는 어디 가기 전에 꼭 이 선배님의 조언을 듣도록 해. 흥! 건방진 후배 같으니라고.”
그렇게 한동안 내 방을 점거한 채 왁자지껄하게 떠들던(짐 정리가 바빴던 터라 제라르를 제외한 3인방이 떠드는 내용을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4인은 기숙사를 떠났고 그제야 난 비로소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여기랑, 여기랑, 여기.’
그리고 홀로 남은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방 한쪽 귀퉁이에 걸려 있는 전도 사이사이에 푸른색 잉크로 표식을 남기는 것이었다.
‘동남부의 백금 저울, 북동부의 다이아 눈동자, 서북부의 황금 사슬. 그리고 남서부의 날개 달린 발.’
푸른 잉크로 표시해 둔 지역에는 ‘상단 본부’를 형상화한 범례가 그려져 있었고.
난 해당 지역에 위치한 상단들의 이름을 조용히 읊어 내렸다.
콕 집어 표시를 남긴 상단들은 두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첫째는 ‘전 대륙에 걸친 유통망을 가진 거대 상단’이라는 점.
그리고 두 번째 공통점은 바로 아타카크 놈들의 은신처에서 인장이 발견된 바 있는 상단이라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도출된 정황증거로만 보면 마라카비탄의 교역권을 탐낸 거대 상단 연합이 개수작을 부렸다는 결론이 가장 합리적이기는 한데. 과연 그렇게 간단하게 결론을 내려도 되는 걸까?’
정황증거가 너무나도 명확하기에 도리어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좀처럼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분명히 말해서 욕심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형 상단이 마라카비탄을 노리고 술수를 부렸다는 가정 그 자체는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다만 이 가정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네 개 상단의 상단주 놈들은 그 욕심만큼이나 의심 또한 많은 놈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언제나 서로를 곁눈질하며 상대방의 목젖에 이빨을 쑤셔 박을 기회만 노리는 놈들이 도대체 무슨 수로 이 정도로 효율적인 공동 작전을 세울 수 있었던 걸까?’
놈들의 마라카비탄 꿀꺽 작전을 잿더미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의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바바루크에서 행해진 이번 수작은 제법 효율적이고도 치밀했다.
‘딸을 이용해 아라반의 발목을 고정시켜 놓은 안배’는 물론이거니와 ‘모래 쥐를 이용한 불바다 만들기’와 ‘시의적절하게 매복해 있던 암살자들의 배치’까지.
쓸데없이 욕심만 많은 돼지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꾸민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번 일 처리는 깔끔했다.
만약 아타카크 놈들의 음모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던 내가 바바루크에 있지 않았다면.
아라반과 그 딸의 신상에는 크나큰 위협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납득할 수 있는 실행 주체’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처리 방식’.
이 두 가지 사실이 자아내는 부조리 덕분에 나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폴리다고스로 복귀하는 내내 생각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만약 네 군데의 상단을 꼬드겨 이런 작전을 꾸며 낸 또 다른 누군가가 있고. 그 누군가의 심계가 제법 탁월하다면… 이런 식의 부조리한 일 처리도 가능은 하겠지.’
아직까지는 추측일 뿐이지만, 네 군데의 상단을 조종해 마라카비탄을 혼란에 빠뜨리려 한 어떤 존재가 꼭 내 눈에는 훤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런 식의 차가운 생각만을 하고 있으려니 돌연 어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여전히 햇살 같은 미소를 짓고 계시는 어머니와 시선을 마주한 채 말했다.
“어머니, 전 이렇게 눈 감으면 살점을 떼어 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세상에 서 있습니다. 부디 어머니와 가족들이 머무는 에스페타라에는 봄볕 같은 웃음만이 가득하기를.”
* * *
딱히 냉기를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서늘한 놈들의 자취를 염두에 둔 채 지내는 것도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가슴에 품은 차가운 기운 덕분에 폴리다고스에서 맞이하는 늦여름을 비교적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고.
바바루크에 다녀온 지도 어느덧 또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계절은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불꽃망초 줄기대 세 자루 사고 돌풍해협에 서식하는 비늘뱀의 송곳니 두 묶음 이것도 사야 하고… 또 그래, 저것도 필요하지.”
살짝 열어 둔 창문 사이로 제법 서늘해진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가을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난 잠이 들지 않은 채 마스카 경매에 올라온 물건 목록을 살피고 있었다.
―치! 평소에는 짠돌이같이 굴기만 하면서 뭘 자꾸 산다는 거야. 너 요즘 들어 이 요상한 수정구에서 물건을 배송시키는 횟수가 엄청 늘었어.
“수확의 계절이 도래했으니 경매에 올라오는 물건의 질과 양도 풍부해질 수밖에. 이래저래 필요한 물건이 많은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말이야.”
시선은 마스카 경매의 수정구에 집중한 채 오른 손가락으로 왼 손등을 두드렸다.
내 양쪽 손등 위에는 중력을 지배하는 ‘마술 장갑’이 언제나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고.
「엑셀」의 봉인을 푸는 일에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는 북슬이는 입술을 비죽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장갑을 이용한 붕붕이 재미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으으…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싸. 저 크지도 않은 주머니 하나에 금화 50개라니… 저 금화면 케이크를 어… 몇 개 살 수 있지?
“…네가 좋아하는 중력 점프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기능일 뿐이야. 내가 「엑셀」의 봉인 해제에 매달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 그런 철없는 소리는 삼가 줬으면 해.”
오늘 구매해야 할 물건 목록을 확인한 나는 서랍 안쪽에 손을 뻗어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입찰에 성공한 물건에 해당하는 금액을 마스카 경매장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송금 편에 담아서 보내면 매입 과정은 끝.
찰그랑찰그랑.
제법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구매한 터라 지불해야 하는 금화의 개수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금화를 옮겨 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라무테 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페이건. 최근 보름 들어 담포루라는 드라콘이 보내오는 금화의 양이 좀 많이 줄어든 것 같지 않니?
“하하! 이런 세속적인 문제에는 북슬이나 관심을 가지지 라무테 님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요.”
―다른 사람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었다면 나도 신경 안 쓰지. 그런데 페이건 네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 더군다나 네가 열매를 가꾸는 노력의 대가로 수령하는 대금인데 당연히 주의 깊게 봐야지.
“확실히 최근 2주 들어 담포루 씨가 보내오는 금화의 양이 줄어들기는 했지요.”
―그러니까 왜 갑자기 금액이 줄어든 걸까? 네가 주기적으로 드라콘의 오두막으로 보내 주는 열매의 양은 처음 그대로잖아. 더군다나 열매의 질은 나날이 좋아지고만 있는데 반대급부로 받는 금액이 줄어들다니, 그게 말이 돼?
“뭐, 상품의 가격이라는 게 물건의 품질로만 정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시장 상황이라는 것도 있고 구매자의 동향이라는 것도 있으니만큼 조금만 더….”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해! 페이건, 이 문제에는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페이건 네가 좋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 얼마나 섬세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적어도 그 노력에 합당한 대가는 받아야지!
라무테 님은 평소와는 다른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고.
우리의 대화 속에서 뭔가 심상찮은 조짐을 감지한 북슬이도 허겁지겁 내 머리 위로 기어오르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 뭐야! 그럼 그 드라콘 아저씨가 페이건이 받을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거야? 나 이거 뭔지 알아! 이게 인간들이 횡령이라고 부르는 그거 맞지?
―어휴! 얘 벨제키엘, 조용히 좀 해! 횡령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게 뭐 좋은 일이라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니!
―그치만 라무테야, 신기하잖아! 그 드라콘 아저씨 엄청 착하고 정직하게 생겼는데 그런 아저씨가 삥땅을 친다니!
―삥땅이라니… 또 그런 저급한 말은 어디서 배워왔대? 아휴, 나 참….
‘페이건 클라디우스와 드라콘 담포루의 열매 가공 상단’ 재무 상태를 놓고 격렬한 토론에 잠긴 마스코트들.
‘이 정도 매출액 감소를 가지고 키에르고를 의심할 생각은 없지만 최근 들어 매출의 흐름이 급격하게 악화된 건 사실이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내가 경매 입찰 대금으로 지불하는 자금의 출처는 키에르고,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키에르고와 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열매 가공 사업이었다.
열매를 자라나게 하는 드루이드 오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효과를 더해만 갔고.
키에르고의 가공 실력 역시 무뎌질 일이 없었기에 본격적인 사업 개시 이래로 우리의 합자(合資) 사업은 나날이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침없던 상승 가도가 보름 전을 기해 급격한 하락세를 겪고 있었다.
한 주에 한 개로 시작해 두 개로 늘어났다가 다섯 개, 일곱 개를 거쳐.
주당 열 자루씩은 꼬박꼬박 송금되어 오던 금화 주머니는 어느덧 주당 여섯 개 수준까지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애초에 이익이 워낙에 큰 사업(사업에 투입되는 자본이라고 해 봤자 드루이드 오러와 키에르고의 노동력이 전부였으니까)이었기에.
당장 경매 대금이 부족해지고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매출액이 이렇게 된 이상 공동 창업주로서 한 번쯤은 상황을 살펴야 할 타이밍이 된 것도 분명한 사실.
난 팔짱을 낀 채 원제품 가공부터 유통망 확보, 판매, 대금 정산, 재무 관리까지 도맡아서 맡아 주고 있는 드라콘의 얼굴을 떠올렸다.
‘갈브레이드 3세의 비상과 몰락을 지척에서 지켜본 그 백전노장 드라콘의 솜씨가 이토록 갑작스럽게 무뎌졌을 리는 없고…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물론 이 정도 매출 감소를 가지고 키에르고의 손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열매 가공으로 얻는 수익이 결코 적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금액을 가지고 키에르고의 진실성을 의심한다는 건 타샤드의 전직 재상에 대한 모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뭐… 우리 타샤드의 명재상 나리를 추궁하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얼굴 본 지도 오래되었고 하니 오랜만에 밀당이나 한번 하러 가 볼까?’
“라무테 님.”
―응?
라무테 님을 향해 손을 뻗자 우리 피닉스께서는 언제나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손등 위에 올라섰다.
난 언제 맡아도 향긋하기만 한 그녀의 날개깃에 코를 파묻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라무테 님의 생각이 그러시다니 내일은 상업지구로 나가 보는 걸로 하지요. 일단 다니엘 영감을 만나 시장의 분위기를 파악한 후 담포루 씨의 오두막을 방문하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