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3)화(22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3)
“계십니까?”
“아, 클라디우스 공자 아니시오! 이거 참 오랜만이구려, 허허!”
근 두 달 만의 방문이었건만 도구상 ‘청동 바구니’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담한 가게 터 안을 그득 채운 진열장들과 그 진열장을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 넣은 각종 마도구들.
여타의 대형 상점들이 가지고 있는 으리으리함이나 혼을 쏙 빼놓을 듯한 화려함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청동 바구니 곳곳에는 다니엘 영감이 쌓아 놓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거 미리 연락이라도 해 줬으면 내가 근처의 유명한 제과점에 가서 과자라도 좀 포장해 왔을 텐데… 귀한 손님께서 오셨는데 대접할 만한 거라고는 늙은이가 먹는 씹을 거리가 전부라서 어쩌나?”
“괜찮습니다. 옥수수 과자 좋아해요.”
“이럴 게 아니라 요기서 잠깐 기다리고 계시면 내 얼른 가서….”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 최대 고객이신데 너무 섭섭하게 대접해 드리는 것 같아서 그렇지.”
청동 바구니가 머금고 있는 아늑한 분위기.
그리고 그 분위기와 곧잘 어울리는 소박한 다과 쟁반 덕분에 무척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평온함을 품은 채 평상 위에 걸터앉을 수 있었고.
꿀꺽.
이내 나는 석류 향이 감도는 붉은색 냉차로 목을 축인 후 물었다.
“사실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먼저 어르신을 찾아뵌 겁니다. 혹시 말입니다, 최근 들어 담포루 님의 신상에 무슨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닌지요?”
“으음… 분명히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린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담포루 그 친구의 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라 공자께서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소.”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안 좋은 일이 있기는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허허… 그 친구가 공자께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
“어르신, 어르신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전 이곳 청동 바구니 최대 고객 중 한 명이고 담포루 님의 동업자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 자격이라면 담포루 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볼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후우… 사실은 말이지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다니엘 영감을 반복해서 채근한 끝에 사건의 내막을 들을 수 있었고.
“…이렇게 된 일이라오. 참으로 치사한 작당질에 아주 제대로 휘말린 끝에 물건이 망가져 버리고 만 거지. 그리고 물건이 그 꼴이 나다 보니 매출액도 감소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오.”
“열매를 보관하던 중에 그 꼴이 되었으니 어르신의 매출도 제법 타격을 입었겠군요.”
“뭐 그렇기는 하다만 나야 어디까지나 중간 다리만 하는 역할이었으니… 역시 이번 협잡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공자와 담포루 그 친구가 아니겠소? 치사한 놈들 같으니….”
그간의 일을 모조리 털어놓은 노인은 수염까지 부르르 떨어 가며 쌓인 분노를 표출했다.
“치사보다는 졸렬하고 비열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군요. 뭐, 아무튼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명쾌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허허, 이야기하는 나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공자께서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표정이구려?”
“화가 날 만한 일인 건 맞지요. 그런데 제가 속한 가문이 가문이다 보니 이런 류의 협잡이나 깡패 짓에는 제법 익숙해져 있거든요.”
“깡패 짓이라니… 허허!”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해 영감님께서 매출 타격을 입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구축해 놓은 판매망을 줄이거나 하는 건 조금 참아 주셨으면 합니다.”
바싹하게 튀긴 옥수수 반죽 위에 설탕 버터 가루를 뿌린 과자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채 날 바라보는 도구점 노인에게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모든 일은 곧 원상 복귀 될 겁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계세요.”
* * *
“매출액을 기록한 장부 좀 볼 수 있을까요?”
“흐음… 클라디우스 공자, 최근 매출액이 급감한 문제에 대해서라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오. 나도 나름의 방법을 알아보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담포루 님을 탓하기 위해 장부를 보자고 하는 게 아니니 그런 말씀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청동 바구니를 떠나 키에르고의 오두막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매출 장부 확인을 요청했고.
드라콘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다니엘 어르신을 만나 뵙고 오늘 길입니다. 매출이 줄어든 이유를 여쭙기 위함이 아니니 일단 장부를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허허… 입 싼 친구 같으니라고… 내가 분명히 입조심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그렇게 했는데….”
“어르신,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실태를 확인하고 그 문제가 불러온 여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그리고 저는 담포루 님의 동업자입니다. 장부, 보여 주시죠.”
“허허… 내가 재주가 부족하여 괜히 공자까지 속을 썩이게 만드는구려.”
반복되는 채근에 결국 담포루는 매출 장부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장부를 확인한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보름 들어 매출이 30% 수준까지 급락했군요. 매출의 70%가 날아갔다면 제가 수령한 금액 역시 그만큼 감소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감소한 총 매출은 70%.
하지만 내가 수령한 분배금은 매출 감소 전의 60~70%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30~40%의 차액은 어디서 만들어진 걸까?
“담포루 님께서는 수익을 일절 분배받지 않은 채 발생한 ‘총매출’을 모두 저한테 보내신 모양이군요. 제 기억이 맞다면 전 이런 식의 일방적이고 비정상적인 수익 분배를 동의한 바가 없는데 말입니다.”
“허허…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이 모든 일은 나의 상재(商才)가 부족하여 생긴 일이오. 그리고 애초에 사업을 시작하기 전 일정 수익을 보장한 것도 나였으니 공자께는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합당한….”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장부는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제가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그동안 어르신께서 홀로 감내하신 손실액의 보충이 끝난 후에 돌려 드리는 걸로 하지요.”
“공자께서 그렇게 하실 필요는….”
키에르고와 내가 약정한 수익 배분 비율은 모든 제반 비용을 공제한 상태에서 5:5.
한데 지난 보름간 발생한 수익도 아닌 총매출을 모두 내가 가져가는 기형적인 수익 분배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배포가 넉넉한 타샤드의 전직 재상께서는 이 정도로 불공평한 거래를 납득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따위 불공평한 분배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고 곧바로 지난 보름간 벌어졌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
“공자께서 다니엘 그 친구를 통해 일의 내막을 들었다 하니 솔직히 말씀드리리다. 지금 당장은 우리 사업이 곤경에 처해 있는 게 맞소이다. 하지만 내가 봉착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으니 조만간 길이 보일 것이외다. 그러니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물론 나 역시 키에르고가 조만간 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사실 그 자체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타샤드의 재상이라는 자리는 농담 따먹기로 차지할 수 있는 지위가 절대로 아니었고.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바 있는 키에르고의 역량이라면 야비한 놈들의 협잡질 정도는 결국 극복해 내고 말 테니까.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르신께서 노력하셨으니 이제는 제가 좀 적극적으로 나서 볼까 합니다. 제가 명색이 동업자인데 난항을 겪고 있는 사업체 운영을 그냥 바라만 볼 수는 없죠.”
하지만 이번에는 키에르고에게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걸리는 시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충돌을 싫어하는 키에르고이니만큼 ‘유화적이고 신사적인 방식’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럼 설령 해답을 찾아낸다 해도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사태의 완전한 해결까지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은 필요할 터.
‘고집을 부려서 미안합니다, 영감님. 하지만 그런 식의 맹숭맹숭한 방식은 내 정의와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서 말이지요.’
‘우리의 손실액’이 낱낱이 기록된 장부를 가방에 집어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는 키에르고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손해 규모 파악이 끝났으니 이제 상황 파악을 해야죠. 전 지금 우리의 열매가 ‘썩어 가고’ 있는 보관창고에 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같이 가시겠습니까?”
* * *
쿠웅.
대형 창고의 외문(外門)을 열고 걸어오기를 십여 분.
우리의 물건이 보관되어 있는 구역의 문을 열자 피부를 녹일 듯이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잠깐, 열기?
열기라니… 가공 마도 열매를 보관하고 있는 창고가 이 정도로 뜨거운 게 말이 돼?
“…처음부터 보관 상태가 이런 건 아니었소. 분명히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우리 열매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그러니까 저온을 유지해야 하는 물건들로 가득했고 주변의 온도 또한 적절히 유지되었다오.”
“그런데 마도 열매를 보관하기 위해 적정 온도를 유지하던 창고가 보름 전을 기해 이런 불지옥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겁니까?”
“…그렇소이다. 유통부터 판매까지 전부 다 책임지겠다고 장담해 놓고 공자께서 이런 꼴을 겪게 만들다니 정말 면목이 없구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일련의 사태로 담포루 님을 탓할 생각은 없으니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물건부터 보죠.”
폴리다고스를 거쳐 외부로 반출되는 모든 상품들은 이 특수 창고에서 일정 기간 대기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동안엔 보안이라든가 품질 관리 등등의 검사를 받게 되고.
그 검사를 통과한 상품만 공식적인 ‘폴리다고스 상업지구의 인장’을 받을 수 있었기에 창고에서의 대기는 사실상 필수나 마찬가지.
우리가 판매하는 마도 열매 또한 사업을 시작한 그 날 이후로 위와 같은 절차를 거치고 있었지만.
이 대기 기간에 대해 딱히 불만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폴리다고스 상업지구의 이름을 달고 판매되는 물건이니만큼 품질 규제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상업지구 총괄 위원회’의 주장이 타당하기도 했거니와.
대기 기간이며 대기하는 동안 물품을 보존하는 방식이 상당히 합리적이었기에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마도 열매 가공품은 저온 보관해야 한다는 건 기초 중의 기초야. 그런데 이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굳이 이런 불지옥에다 우리 물건을 쑤셔 박아 넣으셨다?’
주변 공기는 한여름의 땡볕처럼 뜨거웠지만 내 입가에는 절로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쿵.
후끈거리는 복도를 지나 우리가 할당받은 창고 입구에 도착했고.
문 옆에 위치한 수정구에 키에르고가 손을 올리자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휘이잉.
열린 철문 사이로 미적지근하다 못해 뜨뜻미지근해진 바람이 불어왔다.
창고 곳곳에는 키에르고가 기울인 노력의 흔적들(냉방 효과를 가지고 있는 부적들을 비롯한 마도구)이 가득했지만.
사방을 포위한 열기 지옥이 내뿜는 온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죄 없는 마도 열매들은 시름시름 앓아 가며 그 생명력을 상실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담포루 님께서 처음에 이곳을 할당받았을 때만 해도 이 구역은 온통 저온 보관해야 하는 물건들로 가득했다는 거죠?”
“그렇소이다. 화기를 머금은 물건들끼리 모아 보관하거나 냉기를 요하는 물건들은 냉기를 머금은 물건들끼리 모아 보관하는 것이 상식이니까.”
“…그런데 보름 전을 기해 주위에 있던 냉장 도구들이 싹 다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후끈거리는 놈들이 가득 채웠다, 이 말이지요? 그리고 그 후끈이들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우리 귀여운 열매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는 중이고 말입니다.”
“…그렇소.”
“그리고 담포루 님께서는 매일 같이 상업지구 운영 위원회를 찾아가 창고를 재배치해 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으나 위원회 측은 자리가 없으니 당분간은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 말입니까?”
“….”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는 드라콘을 뒤로 한 채 상자(키에르고와 다니엘 영감님이 정성을 다해 포장했음이 분명한)를 열어 안쪽에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물커덩.
표면에 살얼음이 맺힌 채 탱탱함을 유지하고 있어야 할 열매들은 흐드러지게 익어 버린 채 과즙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물건 상태가 이래서야 상품 가치는 10% 이하로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런 물건을 가지고 평시의 30%에 해당하는 매출을 올리시다니 아주 재주가 좋으시군요.”
“…상업지구 밖으로의 반출은 불가능하지만, 상업지구 내에서는 판매가 가능하니까… 그리고 익어 버린 열매도 최소한의 효능은 발휘할 수 있으니만큼 판매처를 잘만 찾으면 30% 정도는 회수가… 아니,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까? 내 실수로 공자께 이런 손해를 입히고 말았는데….”
“제가 또 거짓말은 못 하는 타입이라 손해가 없느니 뭐니 이런 말은 차마 못 하겠군요.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은 담포루 님에게 있지 않으니 그 점에 관해서는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상자를 다시 덮어 놓은 후 침울한 표정의 키에르고 옆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키에르고의 주먹(내 주먹의 세 배는 됨직한)을 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담포루 님보다는 저한테서 찾는 편이 더 빠를 겁니다. 이 치졸한 개수작이 발생한 원인은 제가 너무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데 있으니까요.”
“공자…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요?”
난 대답 대신 키에르고의 손가락을 우리 구획을 포위하고 있는 다른 창고들에게로 가리켰는데.
우리 열매들을 질식사시키고 있는 창고의 문 앞에는 ‘불을 토하는 까마귀’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