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4)화(22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4)
‘어쩐지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조용한 게 이상하다 싶었지. 그런데 그새를 못 참고 이런 짓을 벌이셨다 이거지.’
갑자기 비협조적, 아니 적대적으로 변해 버린 상업지구 운영위의 태도.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 창고의 할당.
그리고 로덴토 가문을 상징하는 불까마귀 문양까지.
‘너무 흔적이 명확해서 개수작의 흑막이 누구인지 짐작을 못 하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네. 게오르그 로덴토, 네 짓이었냐?’
솔직히 말하면 불쾌하다거나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大)로덴토의 후계자라는 놈이 이따위로 졸렬한 짓을 벌이다니.
그레이트 웜을 낚아 올렸던 그 날에 1학년들 앞에서 당했던 면박이 그 정도로 모욕적이었던 걸까?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가 되었든 간에 로덴토의 개새끼 도련님 눈에는 내가 순조롭게 돈을 버는 게 어지간히도 못마땅하게 보인 모양이야. 그래서 살쾡이 같은 눈을 한 채 나를 음침하게 지켜봤다 이건가? 그러다 무대가 자기 안방으로 바뀌자 곧바로 더러운 수작을 부리신 거고 말이야.’
로덴토의 위세가 제아무리 막강하다 한들 7인의 국장들이 권력을 균점(均霑)한 채 철통같이 버티고 있는 교정에서는 이런 류의 수작을 부리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업지구는 교내와 달리 상인들의 자치권이 일정 부분 인정되는 일종의 특수 구역.
게오르그는 상업지구 내에서라면 로덴토의 위세를 이용해 쓰레기 짓을 벌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그 개 같은 판단의 결과가 한껏 흐물흐물해진 열매로 나타나 버린 셈이었다.
‘창고를 사용하고 있는 상인들을 몰아내고 위원회를 구워삶는 것쯤. 게오르그에게는 일도 아니었겠지. 협박과 회유를 위해 필요한 돈과 권력이 제 놈에게는 얼마든지 있었을 테니.’
발생한 손해의 정도, 손해를 야기한 원인 그리고 그 원인을 제공한 개새끼까지.
일의 전모가 모조리 밝혀졌으니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
난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키에르고에게 나와 게오르그 사이의 악연을 들려줬고.
“아니… 그러니까 공자의 말은 명색이 타샤드를 대표하는 귀족 가문의 후계자가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이런 저열한 짓을 꾸몄다는 말이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증거를 감안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세상에… 어찌 그럴 수가….”
이토록 저열한 인간이 타샤드 제국(한때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의 대귀족이라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키에르고는 양손을 움켜쥔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수습책을 논의해 볼까요? 담포루 님께서는 이 열매들을 어떻게 하는 편이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하십니까?”
“위원회의 결정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상태로 둔 채 폴리다고스 내부에서 판매처를 알아보는 게 최선이지 않겠소? 열기로 인해 물건이 손상되는 것도 문제지만 정화되지 않은 공기 접촉으로 발생할 산패(酸敗)는 더욱더 치명적이니 말이오.”
지금 상태의 키에르고를 찌르면 아주 재미있는 반응이 나올 것도 같았지만 아량(나와는 어울리지 않는)을 발휘해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고.
드라콘은 여전히 우울한 눈동자를 한 채 대응 방안을 밝혔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대접을 받으며 창고를 이용하느니 일단 물건을 빼야겠다고 생각했소이다. 그런데 물건 중에 일부를 꺼내 시험해 본 결과 그건 현명한 방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소이다.”
열매를 이용한 마도구는 완성 후 하루 이내로 마법 처리가 된 특수 보관함이나 창고에 보관해야만 했다.
열매 표면에 바르는 가공액이 정화되지 않은 일반 대기를 견뎌낼 수 있는 건 24시간이 한계.
한계 시간이 지나 버리면 가공액은 대기 중에 함유된 성분과 결합하게 되고.
이 작업이 진행되는 순간 마도구의 상품 가치는 전무하게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열기로 손상된 마도구는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서 3할 정도의 금액은 회수할 수도 있지만 산패된 마도구는 아예 상품 가치가 없어지게 되오. 지금 당장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혹시 담포루 님께서 오두막에서 말씀하신 바 있는 ‘해결 방안’이라는 게 냉각 및 정화 기능이 설치된 창고를 직접 제작하는 거였습니까?”
“그렇소이다. 공자께서 이 사람을 믿어 준다면 수개월 내로 창고 제작을 완료할 것이고 그리된다면 이리 부당한 처사를 더 이상 감내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맨땅에서 창고를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키에르고의 재주와 학식이라면 그럴듯한 창고를 뚝딱뚝딱 제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이 방법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창고 완공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지금부터 창고 제작에 착공한다면 완성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설비 및 자재만 준비된다면 한 달 이내로 완료할 수 있겠지만 재료를 외부에서 조달해 와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게 잡아도… 3개월 정도는 걸릴 것이오.”
그리고 이 치명적인 문제 때문에 난 키에르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엑셀」을 최대한 빨리 개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마도구를 사들여야만 했다.
그런데 자금 조달에 무려 3개월짜리 난항이 발생한다니?
올해가 가기 전에 모든 봉인을 해제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물건을 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렇게 두자니 위원회의 수작에 놀아나는 꼴이고… 그야말로 외통수로군요.”
“…내 공자께 뭐라 드릴 말이 없구려.”
“…라고 생각하며 이 수작을 부린 놈들은 키득거리고 있겠지요?”
“공자?”
“제가 좋아하는 고서(古書)의 구절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요령이 좋은 사람이란 현명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빠지지 않을 수렁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렁 속을 유유히 헤엄쳐 가는 이를 말한다’. 전 현명한 사람은 못 되지만 요령이라면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편이거든요.”
투웅.
키에르고의 드넓은 가슴팍을 살짝 두드리자 청명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난 그 금속음보다 조금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지켜보세요. 요령이 좋은 사람이라는 게 어떤 건지 제가 지금부터 확실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공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조금만 더 자세한 설명을….”
“쉿!”
키에르고는 황금빛 눈동자를 크게 뜬 채 추가 설명을 요구했지만 난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는 것으로 드라콘의 말문을 막았다.
‘5, 4, 3, 2, 1.’
난 활짝 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수를 헤아렸고 마지막 손가락이 접힌 바로 그 순간.
덜커덩!
“담포루 씨, 또 여기에 와 있는 거요? 당신이 아무리 생떼를 부린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고 내 여러 차례 말했을 텐데?”
저장공간을 구획별로 구분해 주는 중문이 열리고 ‘상업지구 총괄 위원회 간부직’임을 나타내는 식별표를 목에 건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에르고의 우람한 팔뚝 너머로 슬쩍 고개를 내밀자 식별표 정중앙에 써 있는 ‘저장 창고 총괄 관리자 카포레’라는 글자가 보였다.
‘식별표 가장자리에 위치한 테두리 장식은 황동. 그럼 작위는 남작이라는 뜻이로군.’
샐쭉한 표정을 한 채 모습을 드러낸 카포레는 키에르고의 앞에 서자마자 기분 나쁜 숨소리를 토해 내며 목소리를 높였고.
남작(딱 보기에도 등신 머저리 같은)을 마주한 키에르고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리,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창고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말을 듣고 몸이 달아서 직접 행차하셨나 보군. 이런 걸 보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는 거지?’
힐끔힐끔.
무척이나 익숙한 태도를 보건대 카포레와 키에르고 사이에 이런 식의 충돌이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담포루 씨, 당신이 그 거대한 몸뚱이를 자꾸 보이면서 왔다 갔다 하면 직원들의 업무에 지장이 올 수도 있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애초에 상황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내가 귀하를 찾아와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었겠지!”
재미있는 점은 키에르고를 향해 눈알을 부라리는 와중에도 카포레의 눈동자는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를 한껏 신경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 같은 건 무시한다는 티를 의도적으로 내고 싶었던 건지 남작은 나에게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드라콘을 몰아세우기 바빴다.
“듣자 하니 폴리다고스 내부에 거주한 지도 수십 년이 넘었다면서 그 정도 연차가 쌓였으면 투정을 부린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될 리 없다는 것 정도는 파악해야지.”
투정?
언제부터 투정이 합리적인 개선 요구를 칭하는 단어로 통용되었지?
혹시, 당신들이 게오르그 로덴토의 발바닥을 핥기로 결심한 그때부터?
“이 자리에서 내 다시 한 번 말하겠네만 당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개수는 단 두 가지뿐이야.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계속 이 보관창고를 이용하든가 아니면 군말 없이 저 열매 상자를 빼든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우리 직원들을 방해한다면 그때는 당신의 행동을 정식으로 위원회에 회부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가지고 있는 역량과 학식의 깊이로만 비교하자면 카포레는 키에르고의 발바닥 때만도 못할 것이 분명했으나 그 조합이 좋지 못했다.
키에르고와 같은 교양룡(龍)에게 있어 카포레 따위의 시정잡배를 상대하라는 건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고.
그 사실을 방증이라도 하듯 키에르고는 좀처럼 효과적인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보아하니 이곳 상업지구를 관리하는 귀족분이신 것 같은데 저랑 얘기를 좀 하시죠. 여기 계시는 담포루 님과 저는 동업자 관계이니만큼 저 또한 남작님과 대화를 나눌 자격은 충분할 것입니다.”
결국, 키에르고를 뒤로 밀어 넣은 채 내가 앞으로 나섰고 카포레는 여전히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를 한 채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제 이름은 페이건 클라디우스, 현재 폴리다고스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그리고 재학생인 동시에 담포루 님의 사업파트너기도 하죠.”
“…사람들이 하도 페이건 클라디우스, 클라디우스 하고 떠들길래 누군가 했더니 자네가 바로 소문의 당사자였나? 예전부터 한 번쯤은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리 보게 되니 반갑군. 난 상업지구 관리 위원회 소속으로 이곳 창고를 총괄하고 있는 카포레 벤쿠르 남작이라 하네.”
날 처음 만나서 반갑다고?
거짓말.
게오르그의 명을 받아 이런 수작을 부리는 중이라면 나에 대한 사전 조사는 차고 넘치도록 했을 텐데 왜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고 그러시나?
“최근 보름 사이에 적재 공간 할당을 놓고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는 담포루 어르신께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런 황망한 물건 배치가 이뤄진 배경에 대해서 창고 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설명? 풋, 우습군! 이 창고를 이용하는 상단들은 수백여 개가 넘고 난 이 창고를 총괄하는 직위에 있는 사람일세. 그런데 그런 내가 이용객 하나하나의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나?”
“공간 배정 및 할당에 관리 위원회의 재량권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건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공간 임대 관계에서도 최소한의 신의칙(信義則)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갑작스레 발생한 배치 변화 때문에 저와 담포루 어르신은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간 재배치를 요구하는 게 부당한 요청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신의칙? 부당? 보아하니 혓바닥을 놀리는 솜씨는 제법인 것 같군. 하지만 말일세 클라디우스 학생, 지금 이 순간부로 똑똑히 기억해 두게. 창고의 배치가 부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네. 알겠나?”
남작이란 봉토(封土)를 가진 영주들 중 최하위 계급에 위치한 자를 일컫는 작위.
하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작위를 가진 것치고 나(1학년 학생 대표인 데다 무려 테시온의 수호자이기까지 한)를 상대하는 카포레의 표정이며 태도는 필요 이상으로 당당했다.
이 저급한 귀족 나부랭이가 이토록 오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 ‘상업지구 위원회의 간부’라는 알량한 직위 덕분인 걸까?
아니면 이놈 뒤에 버티고 있을 게 분명한 게오르그 로덴토의 위세?
“공식적인 관리 권한을 가진 게 당신이라 한들 불문율(不文律)이라는 게 있지 않소이까!”
“불문율? 그래, 당신이 말한 것처럼 이곳 창고에도 불문율이 있기는 하지. 그 불문율이 뭔지 내가 지금부터 아주 자세히 가르쳐 줄 테니 새겨들으시오.”
나를 지원하기 위해 키에르고가 목소리를 높여 봤으나 드라콘의 항변은 카포레의 차가운 비웃음을 살 뿐이었다.
“첫째, 그 물건이 폴리다고스의 심사를 통과한 합법적인 상품인 이상 본인이 할당받은 공간에 무얼 가져다 놓든 그건 본인의 자유다. 둘째, 옆 창고의 주인이 가져다 놓은 물건으로 인해 자신의 상품이 영향을 받는다 한들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상품의 주인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의기양양한 표정(게오르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할 생각에)을 한 카포레의 얄팍한 입술 사이로 마치 나와 키에르고를 저격하는 듯한 불문율이 흘러나왔다.
“내가 인정하는 불문율은 이 두 가지뿐이오. 이런 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 위원회에게 관리 권한을 일임한 폴리다고스 교무국에 가서 따지든가 하시오.”
“….”
“뭐 물론 그분들께서 고작 방랑하는 드라콘 따위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줄 일은 없겠지만 말이지, 크크.”
크크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판독기에서도 ‘삐빅, 판독 완료. 쓰레기가 분명합니다.’라는 판독음(다소 뒤늦게)이 터져 나왔다.
“우리에게 추가적인 공간을 배정해 줄 수 없다면 자리의 재배치를 통해서라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 부탁을 들어준다면 공간 이동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네. 이미 모든 자리가 꽉 차 있는 터라 어떻게 건드려 볼 여지가 없거든. 3개월 정도 후에는 빈 자리가 날 것도 같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보시든가.”
“그럼 만약 우리가 3개월을 기다려 자리를 바꿨다고 치지요. 그런데 그때도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 학생과 저 드라콘에게 닥친 불운을 원망할 수밖에. 크크 우리로서도 다른 도리가 없지 않겠소?”
판독음을 듣지 못한 얼굴로 가장한 채 추가적인 제안도 해봤지만 카포레가 답도 없는 쓰레기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될 뿐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제안 드리도록 하지요. 그럼 우리 물건을 포위하고 있는 창고의 주인과 연락을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혹시 물건의 소유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소이다. 학생이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옆 창고의 주인들이 그 말을 들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오.”
들쥐를 닮은 카포레의 얼굴이 내 미간 앞으로 불쑥 다가왔고.
악취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게오르그의 따까리’는 말했다.
“왜냐하면 옆 창고의 주인은 나고, 난 물건을 옮길 생각이 조금도 없거든.”
“창고 앞에는 로덴토의 문양이 있는데 물건의 주인이 남작이라구요?”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문양을 사용할 권리를 잠시 위탁받았을 뿐. 물건들은 전부 내 것이 틀림없소이다.”
그 나름의 사정이라는 건 나를 엿 먹이기 위한 배려일 가능성이 컸다.
행여 내 이름값에 겁을 먹은 카포레가 움찔할 것이 염려된 게오르그 놈이 남작을 격려하기 위해 가문의 문양을 빌려준 거겠지.
그리고 그 사실에 한껏 고무된 카포레는 감히 내 앞에서 강짜를 부린다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선택을 한 것이고 말이다.
“흐으음….”
오른손을 들어 입가를 감쌌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카포레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내가 굳이 손을 들어 입을 가린 이유가 웃음을 감추기 위함이라는 걸 이 등신 머저리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겠지?
“….”
주변 창고의 주인이 카포레 본인이라는 말을 들은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기 시작한 웃음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 주변을 꽉 눌렀다.
그리고 카포레가 목격할 수 없는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 주인이 쓰레기라면 물건을 쓰레기로 만드는 데도 더 큰 보람이 있겠지. 참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