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5)화(22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5)
“로덴토는 자신들의 문양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자격을 획득하다니. 그간 남작께서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셨나 보군요.”
“나 스스로와 우리 가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네. 어찌 보면 나에게 허락된 로덴토의 문양은 그 어떤 상패보다도 찬란한 훈장인 셈이지. 물론 자네에게… 아닐세, 그만두도록 하지.”
너한테는 훈장, 나한테는 응징의 철퇴.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뭐 좋아.
훈장이 될지, 족쇄가 될지, 네 목을 치는 칼날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하는 문제니까.
“멋모르는 놈들은 내 가문의 본래 문양을 버려 두고 로덴토의 이름하에 활동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냐는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늘어놓지만, 그놈들이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로덴토의 따까리가 되었다는 게 그리도 자랑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무의식적인 열등감의 발로인 걸까?
카포레는 눈에 바짝 힘을 준 채 내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상인 가문의 가치란 결국 가주가 지니고 있는 황금의 총량으로 정해지는 법. 돈이 곧 명예고 수익이 긍지인 셈이지. 내가 내 긍지를 드높여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충성을 바친다는데 이 과정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이야?”
“네, 남작의 말이 맞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지요. 원래 이득을 위해서라면 바닥을 길 수도 있는 것이 상인의 허리인 법이니까요.”
“….”
바닥을 기는 허리라는 말에 카포레의 미간이 잠시간 꿈틀했으나 그것도 잠시.
로덴토의 따까리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을 기다 뿐인가? 거금을 손에 쥐거나 막대한 손해를 막을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수도 있지.”
“그토록 투철한 상인의 혼이라니 아주 대애단 하십니다. 벤쿠르 남작 덕분에 그간 몰랐던 사실을 참 많이 알고 갑니다.”
“저런, 이렇게 중요하고도 요긴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참 안타깝군. 본가에 계시는 클라디우스 가주께서 조금만 더 영리하게 가문을 운영했더라면 지금쯤 우리 클라디우스 공자의 주머니 사정도 훨씬 더 넉넉했을 터인데.”
“제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해 주시고 이거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군요.”
“그리고 주머니가 넉넉했다면 저런 신원도 불분명한 아인족과 동업이니 뭐니 하며 번거로운 일을 벌일 필요도 없었을 테고 굳이 내 앞에 와서 아쉬운 소리를 할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이봐 카포레, 내가 지금껏 너한테 ‘각하’라든가 ‘선생’이라든가 ‘님’이라든가 뭐 그런 류의 호칭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건 알고 있나?
내 나름대로 경멸을 표하는 방법이었는데 그렇게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나 봐?
“그 따스한 충고는 참 감사하게 생각하는 바이다만, 설령 내가 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한들 지금보다 영리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부친께서는 돈으로 사람의 무릎을 사려 하는 건 말종(末種)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
바닥을 기는 허리는 어떻게든 웃어넘기더니 이번에는 인상을 쓰는 걸 보니 당신 같은 사람한테도 ‘말종’은 좀 치명적이었나 보네.
“아직도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조만간 후회할 일이 아주 많이 생기겠군. 부디 그 후회 내 앞에서 해 줬으면 하네. 일그러진 자네의 얼굴을 지켜보는 건 아주아주 즐거울 것 같으니 말이야.”
“기대를 하는 거야 남작의 자유지만 그 바람이 이뤄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무튼, 더 있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가도록 하죠.”
“그러시든가. 멀리 못 나가는 점 양해하시게.”
가시가 바짝 돋아난 작별 인사를 끝으로 난 창고를 빠져나왔고 키에르고는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내 뒤를 따랐다.
“내 일 처리가 미숙한 탓에 공자께서 이런 굴욕을 다 당하게 되다니… 부디 용서하시오.”
“애초에 굴욕을 당했다고 생각지 않으니 어떻게 용서해 드릴 방법이 없군요. 하하.”
이런 돼먹지 못한 삼류 시정잡배에게 이런 꼴을 당하시니 어지간히도 분한 모양이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곳은 타샤드의 궁전도, 귀하의 오두막도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인간 세상에서는 이런 류의 불쾌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는 하니까요.
“어르신, 혹시 내일 새벽에 어떻게 시간 좀 괜찮으실까요?”
“나야 일정이 여유롭다만 굳이 새벽에 무슨 일로… 혹여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함이라면 난 언제라도….”
“뭐 대단한 일이라고 굳이 대책까지 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 이유로 뵈자 한 건 아니고 왜 제가 조금 전에 ‘요령이 좋다는 게 뭔지 확실히 보여 드리겠다.’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 약속을 지키고자 시간을 청한 겁니다.”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키에르고의 황금빛 눈동자에 잔떨림이 퍼져 나갔다.
흐음, 이 노인네의 당황한 표정을 보는 게 이리도 즐거울 줄이야.
혹시 습관이 돼 버리면 어떡하지?
‘북슬아.’
―응, 왜? 나한테 할 말 있어? 너 저 쥐새끼처럼 생긴 놈한테 그대로 갚아 줄 방법을 생각해 낸 거지? 그래서 나 부른 거잖아. 얼른 대답해! 저 재수 없는 놈한테 한 방 먹여 줄 수 있는 거 맞지?
북슬이는 콧김까지 푹푹 뿜어 가며 열의를 불태웠고.
난 잔뜩 익어 버린 롤빵 같은 녀석의 볼때기를 찌르며 말했다.
‘너 오늘 밤에 아카이드랑 같이 어디 좀 다녀와야겠다.’
* * *
“공자님, 조금 전 카포레 남작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사온데 공자님께서 하명하신 바를 완벽하게 이행했다고 하옵니다.”
“…카포레가 누구지?”
“상업지구 보관창고를 총괄하는 책무자입니다. 공자님께서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상업 활동을 막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라는 명을 내리실 때….”
“아아, 맞다… 그 쥐새끼?”
집사의 설명이 있고 나서야 카포레가 누구였는지를 겨우 떠올린 게오르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엿 먹인다는 사실 그 자체일 뿐.
그 과정에서 자신의 수족이 되어 움직일 이가 누구인지는 하등 중요치 않은 문제였던 터라.
‘먼지같이 사소한 하급 귀족’의 이름 따위는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놈의 반응은?”
“일단은 카포레의 주장에 순응한 채 물러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동업자 드라콘의 동향으로 판단컨대 상품의 외부 반출은 포기한 채 상업지구 내부에서 판매처를 찾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놈이 준비한 물건을 상업지구 내부에서 판매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상업지구의 규모가 상당하고 그들이 준비한 물건의 품질이 탁월한 만큼 판매처 자체는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출액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고 순이익으로 따지면 5분의 1 수준을 밑돌 것으로 판단되옵니다.”
“다섯 토막이라…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군.”
게오르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물론 최종 목표인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완전한 나락행’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는 했다.
하지만 고작해야 남작에 불과한 최하급 귀족을 주구(走狗) 삼아 그 재수 없는 놈의 경제활동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 카… 남작의 이름이 뭐라고?”
“카포레, 카포레 벤쿠르 남작이옵니다.”
“아무튼, 그 남작한테 지금 하는 짓에 박차를 가하라고 전해. 그리고 그 재수 없는 놈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 방심하는 일 없이 경계에 만전을 기하라고 말이야.”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공자님.”
로덴토의 집사는 정말이지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올린 후 방을 빠져나갔고.
“흥!”
홀로 남은 게오르그의 콧구멍에서는 난폭한 콧김이 뿜어졌다.
‘어때, 나름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 순식간에 몰락해 버렸으니 피가 말라 오지? 하지만 이것 가지고 죽는소리를 하면 곤란해. 네가 밟아야 할 지옥 길은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으니 말이야.’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무슨 목적으로 사업을 벌였는지는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재수 없는 놈이 감히 넘봐서는 안 될 것을 넘봤고.
대(大)로덴토의 후계자인 자신은 그 건방진 놈을 단죄할 ‘자격과 의무’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니까.
“쓰으으으읍하아아아.”
한껏 달아오른 고양감을 고취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게오르그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손수건을 코에 가져다 댄 후 한껏 들이마셨다.
“하아아아.”
손수건에 배어 있는 달큼한 향기에 심취해 있다 보니 이 손수건을 처음 건네받았을 때의 정경이 생생히 떠올랐다.
[어머, 오라버니 땀 좀 봐! 이거 제가 쓰던 거지만 일단 이걸로라도 닦아 드릴게요.]불쑥 다가온 아일리의 손수건.
훨씬 더 키가 큰 게오르그의 땀을 닦아 주기 위해 아일리는 상체를 기울여야만 했고.
그 바람에 그 가냘픈 실루엣과 어울리지 않는, 풍만하기 그지없는 흉부가 게오르그의 팔뚝에 와닿아야만 했다.
“하아아.”
그 아찔하리만치 짜릿했던 감촉을 다시금 떠올린 게오르그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터져 나왔다.
[오라버니, 이 손수건 가지고 계시다가 제가 땀을 닦아 드릴 수 없을 때 사용하세요. 오라버니를 생각하는 제 마음이 담긴 물건이니까 잃어버리고 그러면 안 돼요. 자, 나랑 약속?]보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정도로 관능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이리도 사랑스러운 표정이라니!
이제는 자신의 보물이 되어 버린 아일리의 손수건에 코를 파묻은 채 게오르그는 그렇게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
한데 자극이 너무 지나쳤던 탓일까?
돌연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통증의 진원지는 좌측 이마.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감싸 쥔 게오르그의 머릿속에 그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시술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당분간은 간헐적인 두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워낙 획기적인 효과를 보장하는 시술이니만큼 통증의 정도도 낮지 않겠지만 공자님께서라면 충분히 잘 견뎌 내시리라 믿습니다. 그 통증 또한 공자께서 가장 고귀한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니 말이에요.]도통 감정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목소리.
자신에게 놀라운 힘을 이미 선사했고.
앞으로 더 큰 힘을 선사할 ‘검은 날개의 여인’이 남긴 당부를 떠올린 게오르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우욱!”
욱신거리는 통증 탓에 표정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게오르그는 억지로 미소를 유지했다.
그리고 자신이 쥐어짜 낼 수 있는 최대한 당당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타샤드의 황제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면 이따위 두통쯤이야 얼마든지 견뎌 주지.”
* * *
―나 왔어!
키에르고의 오두막 근처에서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기를 30분.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북슬이가 통실통실한 모습을 드러냈다.
―헥헥, 아이고 하룻밤 사이에 거기까지 다녀오느라고 숨 차 죽는 줄 알았네. 그리고 네가 가져오라고 한 물건은 여기!
“그래, 수고했어.”
여느 때라면 심부름 값을 챙겨 달라고 촐랑거렸을 텐데.
카포레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건 북슬이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녀석은 군말 없이 물건이 담긴 주머니를 내게 건넸다.
“가지고 오는 동안 별일은 없었고?”
―으으, 당연히 별일 있었지. 아카이드의 몸이 워낙에 따뜻하니까 버텼지 나 혼자 갔더라면 꽁꽁 얼었을 거야.
“뭐, 그것까지 계산해서 아카이드를 보낸 거니까. 아무튼, 고생 많았어. 일 잘했으니까 내일은 케이크 2개 사 줄게.”
―우왕, 진짜? 신난당!
덩실덩실 춤을 추는 북슬이를 머리 위에 얹어놓은 후 오두막을 두드렸고.
잠시 후 어딘지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한 드라콘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시죠, 어르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북슬이가 가져온 주머니를 살랑살랑 흔들자 주머니 주위 공기가 빠르게 얼어붙었고 그 광경을 목격한 키에르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허, 정말로 가지고 계셨구려! 공기가 얼어붙는 속도나 모양새로 보건대 상등품 중의 상등품인 것 같은데. 공자께서 이 귀한 물건을 어떻게….”
“예전에 주웠습니다. 보관하고 있으면 쓸 데가 있지 않을까 싶어 꼭꼭 숨겨 뒀는데 오늘 밤 새벽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군요.”
주웠다는 내 해명을 납득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키에르고는 조용히 내 뒤를 따랐고 우리는 머지않아 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쿵.
저벅.
쿠웅.
저벅저벅.
어제 오후에 걸었던 것과 똑같은 경로를 통해 도착한 우리의 보관창고.
화르륵.
야심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창고는 오후와 똑같은 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럼 다녀올 테니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난 우리의 열매가 ‘녹아내리고’ 있는 창고에 들어갔다.
핑핑핑.
가지고 온 주머니를 창고 귀퉁이에 놓아 두고 입구에 ‘약간의 장치’를 설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0분.
난 오래지 않아 창고를 빠져나올 수 있었고 한 손에 횃불을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던 키에르고에게 말했다.
“끝났습니다. 가시죠.”
터벅터벅.
다시금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길.
드라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말이지… 공자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구려. 감히 그 로덴토를 적으로 삼은 배짱도 배짱이거니와 저리도 귀한 물건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로덴토의 위세가 제법 드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 후계자라는 놈은 머저리임이 분명한데 머저리를 상대할 결심을 한 게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일까요?”
“허허!”
오두막에 도착하고 나서야 키에르고는 겨우 웃음을 보였고 난 그 웃음에 기대어 한가지 청을 건넸다.
“담포루 어르신, 괜찮으시다면 내일 하루 정도 오두막을 떠나 숲속에 머물러 주실 수 있을까요?”
“허허, 또 엉뚱한 요청을 하는 걸 보니 뭔가 위험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 모양이구려.”
“제 예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우리는 내일 그 창고 총괄 책임자인지 뭔지 하는 놈이랑 재협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협상 창구를 하나로 제한하는 편이 협상력 증대에 유리하거든요.”
“알겠소이다. 안 그래도 요 근래 답답한 일이 많았던 터라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던 참이었소. 내일과 모레는 오두막을 떠나 숲에서 머무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툭.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키에르고의 큼지막한 손등이 그곳에 와 닿았고.
난 드라콘의 피부만큼이나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날이 밝으면 아주아주 재미있어질 겁니다.”
* * *
“히랴!”
덜컹덜컹.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마차를 타고 출근하는 길.
카포레의 미간에는 큼지막한 팔자주름이 그어져 있었다.
‘소문을 듣자 하니 여간 놈이 아니라던데… 혹시 무슨 엉뚱한 일을 꾸미는 건 아니겠지?’
카포레의 신경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페이건이었다.
어제는 짐짓 센 척을 하느라 태연한 표정을 했지만 사실 페이건을 마주한 직후부터 카포레의 심장은 두근반세근반 뛰고 있었다.
‘아니야, 신경 쓸 거 없어. 그놈의 독사 같은 눈깔이 걸리기는 했지만 내 뒤에는 로덴토가 있어. 제깟 놈이 제아무리 재주가 제법이라 해도 로덴토의 위세 앞에서 뭘 할 수 있겠어.’
자꾸만 두방망이질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포레는 연신 고개를 내저었고.
쉬지 않고 흔들리던 눈동자 또한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 당당하자. 난 내 재량권을 활용해 물건을 배치했을 뿐 담포루 놈의 물건을 빼돌린 적도 없고 무단으로 놈의 창고 문을 따고 들어간 적도 없다. 내가 켕길 건 아무것도 없으니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어.’
히이힝.
“나리, 도착했습니다요.”
잠시 후 창고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카포레는 허겁지겁 마차에서 내린 뒤 창고 문을 열었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게 조금 전이었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카포레는 창고에 도착하자마자 ‘그 문제의 구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이게 뭐야!”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해당 구역을 찾아간 카포레의 선택이 옳았음이 입증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 도, 도대체 무슨 일이?”
복도 벽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과 자욱하게 내려앉은 성에.
어제까지만 해도 구역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던 열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증발해 버린 열기의 빈자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서늘한 냉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얼음 지옥이 되어 버린 창고의 모습에 넋이 나가 버린 카포레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주둥이를 쩌억 벌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