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6)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6)화(226/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6)
“나리! 무슨 일입니까요!”
몸이 굳어 버리기 전의 카포레가 무의식적으로 내지른 비명을 들은 직원이며 하인들이 서둘러 달려왔다.
“에그머니!”
“아니… 어젯밤 자정에 순찰을 돌 때까지만 해도 이 근처는 열기로 가득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창고 앞에 다다른 그들이 보인 반응 또한 카포레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카포레를 모셔온 시간이 긴 만큼 그들 또한 온갖 경험이 쌓인 백전노장들이었지만.
베테랑의 눈으로 보기에도 지금의 광경은 경악스러웠던 것이다.
“…빼, 빼야 해.”
“네? 나리, 지금 무슨 말씀을….”
“…옆 창고에 있는 물건드, 들을 서, 서둘러 빼내야 한단 마, 말이다.”
“저기 나리, 조금만 더 침착하시고….”
“우리 창고에 있는 물건을 빼야 한단 말이다, 이놈들아!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물건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면서 속히 움직이지 않고 왜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야!”
직원들의 재촉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린 카포레가 빽 하니 소리를 내질렀고.
“아! 마, 맞다.”
“아니 이리도 차가운 기운 속에 노출되었다니… 큰일이구만!”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직원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빼! 당장 빼라고 이 망할 놈들아! 여기 창고에 있는 물건들이 얼마짜리인 줄 아느냐! 네놈들의 몸뚱이 몇 번을 팔아도 여기 있는 물건들 100분의 1도 되지 않아! 그러니 속히 움직이란 말이다!”
그 성질이 페이건의 열매와 정반대일 뿐.
카포레의 물건 또한 주변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페이건의 열매가 최적의 상품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차가운 기온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카포레의 물건들은 고온(高溫)에서 보관되지 않는 경우 상품 가치가 급락하는 것들투성이였다.
그런데 본인의 목숨 줄과도 같은 물건들이 벌써 몇 시간 째 이런 냉기에 노출되고 말았으니.
카포레가 저리도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소리를 빽빽 내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 나리… 나리께서 보관하고 계시는 물건을 이곳에서 치울 수는 있겠지만 그 많은 양의 상품들을 어디에 보관한다는 말입니까요?”
하지만 소리를 내지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든, 어디든 좋으니 당장 이 빌어먹을 얼음 지옥에서 내 물건들을 치우란 말이다. 움직여! 그 모가지를 잘라 버리기 전에 당장 움직이라는 말이다, 이놈들아!”
“저희도 나리의 명을 받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만 자리가 없습니다요. 나리께서 혹시라도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 모든 창고를 빈틈없이 꽉꽉 채우라는 명을 내리셨잖습니까요. 나리의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다른 고객분들의 물건들을 바깥으로 빼내는 수밖에 없습니다요.”
“…!”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카포레의 낯빛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그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생떼’를 막기 위해 분명히 자신이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확신했던 그 명령이 자신의 목을 조를 줄이야.
“나리… 일단 아예 창고 밖으로 물건을 빼내는 건 어떨는지요? 그럼 이 냉기로부터는… 어이쿠!”
짜악.
조심스레 다가와 의견을 밝힌 하인의 뺨에서 불꽃이 튀었다.
일반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상품 가치가 급락하는 건 카포레의 물건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나마 24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페이건의 열매와 달리.
카포레가 취급하는 물건들은 일반 공기하에서는 채 세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물건을 창고 밖으로 빼 버리자는 정신 나간 발언을 했으니.
하인의 뺨따귀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을 따! 클라디우스 놈이 사용하고 있는 문을 따라고!”
“나, 나리! 소유주가 있는 창고를 허락 없이 무단으로 개방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것입니다요. 혹시 교무위원회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네놈의 모가지를 먼저 따 버리기 전에 닥치고 문이나 따!”
물건들을 다른 공간으로 옮길 수도.
그렇다고 아예 창고 밖으로 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결국, 카포레는 페이건의 창고를 강제로 개방한다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용인될 리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만큼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겠지만.
뒷일이 어찌 되든 간에 일단은 페이건의 창고를 열고 이 ‘개 같은 냉기’를 발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비극적이게도 이 극단적인 방안 또한 사용할 수 없었다.
“아이쿠야!”
비상용 열쇠를 손에 든 하인이 허겁지겁 잠금장치 앞으로 달라붙은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기운이 불쑥 튀어나와 하인을 그대로 내동댕이쳐 버린 것이다.
슈우욱.
하인을 내동댕이친 검은 기운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고.
그 광경을 지켜본 중간 관리자가 말했다.
“나리… 아무래도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이 창고에 별도의 경비 장치를 설치한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마법의 일종인 것 같은데 소인들의 실력으로 저 마법을 해제하는 건… 불가능할 듯싶사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순간 카포레는 정말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삐익삐익.
“…나리, 저희가 가지고 있는 감지기가 반응하는 정도를 보건대 상당한 고위 마법인 듯하옵니다. 저 정도의 마법을 해제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면 적어도 이틀 이상의 시간은….”
관리자가 뭐라 뭐라 떠드는 것 같기는 한데 말이 도무지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페이건의 열매를 완전히 포위하기 위해 카포레는 평소 취급하는 물량의 10배는 됨직한 물건을 운용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물건들은 하나같이 고순도(高純度)의 열기를 발하는 물건이니만큼 가격 또한 상당했다.
평소와는 비할 수 없으리만치 많은 물건을 한 번에 운용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게오르그의 환심을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장래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극도의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던 자신의 도박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형태로 처박히고 있었다.
전 재산의 대부분을 투입해서 구입한 물건들이 쓰레기가 된다면 자신은 어떤 처지가 될까?
눈앞에 아른거리는 ‘파산’이라는 두 글자.
다리에 힘이 풀린 카포레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게오르그 로덴토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나를 도와줄까? …그럴 리 없잖아!’
게오르그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희망찬 생각이 잠시간 뇌리를 스쳤지만.
그 야무진 기대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게오르그 로덴토가 실패자를 얼마나 냉혹하게 대하는지는 이미 정평이 나 있었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은 명백한 실패를 거둔 셈이었다.
게오르그의 인정(人情)을 기대한다는 가정은 순식간에 기각되었고.
“페이건 클라디우스….”
카포레는 넋이 나간 얼굴을 한 채 멍하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찾아… 그놈에게 창고를 열고 냉기를 제거해 달라고 부탁해야 해….”
* * *
“페이건 클라디우스, 여기 있나!”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차갑게 식힌 커피에 크림을 붓고 있으려니 1층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페이건 클라디우스, 여기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장 튀어나와!”
“손님,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소리.
커피에 크림을 마저 부은 후 은빛 수저를 이용해 부지런히 휘저었다.
그리고 까맣기만 하던 커피가 크림과 섞여 부드러운 갈색빛이 되었을 무렵.
“페이건 클라디우스!”
“응? 벤쿠르 남작 아닙니까?”
산발이 된 머리를 한 카포레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참으로 전위(前衛)적인 복장과 머리를 하고 오셨군요. 혹시 상업지구 관리 위원회에서는 그런 모양이 유행하기라도 하는 겁니까?”
“페이건 클라디우스! 오늘 새벽에 창고에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왜 그런 걸 묻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있을까요?”
웅성웅성.
차 한잔과 함께 망중한을 즐기기 위해 카페로 모여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비록 작위는 낮지만 카포레는 십수 년간 상업지구의 실세로 군림해 온 인물. 그런 놈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몰골을 한 채 이곳에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없지.’
더군다나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와서 차를 마실 정도면 상업지구와는 익숙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으니(카포레의 등장을 예견하고 일부러 이곳에 자리를 잡은 나는 제외)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공간에 뭘 가져다 놓든지 간에 그건 본인의 자유다. 남작께서 바로 어제 한 말 아닙니까?”
“그, 그건….”
“내가 오늘 새벽, 창고를 다녀간 건 사실이지만 난 남작께서 공언한 바 있는 권리를 행사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 보기 싫은 도끼눈을 뜨고 날 노려보는 건 그쯤 해 두는 게 어떨까요?”
“그럼 그 이상한 그림자를 설치해 놓은 것도 네놈이….”
“요새 상업지구에서 도난 사고가 벌어지는 경우가 잦다 하여 저 나름의 방범 장치를 설치했을 뿐입니다. 왜요, 설마 제가 점유하고 있는 창고에 무단으로 들어갈 생각이라도 했던 겁니까?”
“그, 그게….”
말문이 막힌 듯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 카포레를 앞에 둔 채 알맞게 섞인 커피잔을 집어 들었고.
이내 깔끔하게 블렌딩 된 차가 식도 안쪽으로 흘러들어 왔다.
“클라디우스 공자… 내 어제의 무례는 백 번 사과드리리다. 혹여라도 나에게 서운한 게 있다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시고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구려.”
“후회라는 건 왜 항상 늦은 법인지.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공자, 제발 부탁이오! 나에게는 나만 바라보고 있는 식솔들이 있고 내가 거느리고 있는 직원들만 해도 수백에 달한다오. 내 상단이 무너진다면 그들 전부가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모실 주인을 잘못 고른 죄라도 것도 있는 법이니까요.”
“공자,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공자의 창고에서 나오고 있는 냉기를 거둬 주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내 물건들은 전부 쓰레기가 될 것이고 그리된다면 우리 상단은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될 겁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결국, 몸이 달아오른 카포레는 양손을 모은 채 사정을 시작했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수군거림은 커져만 갔다.
“허허! 그 자존심 높고 오만하기로 유명한 카포레 남작이 학생을 상대로 저런 표정을 다 보이다니 정말 놀랄 일이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카포레 남작은 ‘상업지구를 사실상 관리’한다는 자신의 위치에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 지위를 이용해 백작이나 자작을 상대로도 당당하던 사람이 학생에게… 그것도 변변한 작위조차 받지 못한 가문 출신의 학생 앞에서 양손을 모으다니….”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클라디우스 공자가 카포레 남작의 목줄을 틀어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대체 클라디우스 공자는 무슨 수로 저 거만한 귀족의 목덜미를 잡아챌 수 있었던 걸까요?”
“흐음,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실력이 탁월하다는 건 테시온 방어전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만… 이제 보니 수완 또한 보통이 아닌 것 같구려.”
이래저래 집중되는시선과 점점 더 간절해지는 카포레의 목소리.
“남작께서는 내가 뭔가 조치를 취해 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만 분명히 말해서 내가 굳이 몸을 움직여 가며 귀하의 편의를 봐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공자!”
“…하지만 이런 간절한 표정을 한 남작을 보고 있자니 새삼 궁금한 게 하나 생겼습니다.”
이쯤이면 슬슬 절정을 향해 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카페에 오기도 전부터 이미 구상을 끝내 놓은 무대 세팅에 들어갔다.
“어제 오후에 ‘돈을 위해서라면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수도 있다.’라고 말한 바 있죠?”
“…!”
“그 발언이 진심이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 사이에 긴말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카포레와 시선을 마주했고 카포레는 어깨를 한차례 부르르 떤 후 천천히 다리에 힘을 빼기 시작했다.
잠시 후, 카포레의 양 무릎은 카페 바닥에 닿았고 남작은 잔뜩 젖은 목소리로 다시금 간청을 올렸다.
“공자… 이 사람이 이리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꼬박 하루를 기다려 온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내 머리 위에서는 롤빵이 내지르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하하! 이놈, 쌤통이다! 그러니까 평소에 마음을 곱게 썼어야지! 알량한 권력 좀 있다고 행패를 부리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거야!
창고를 얼음 지옥으로 만들어 놓은 주인공의 정체는 페스티라카에서 획득한 ‘영빙석(永氷石)’이었고.
오늘 새벽 아카이드와 함께 유적 인근으로 날아가 숨겨져 있던 영빙석을 가져온 건 북슬이였다.
자신이 발품을(정확하게 말하면 발품을 판 건 아카이드였지만) 팔아 가져온 아이템이 만점짜리 효과를 발휘하는 게 뿌듯했는지 북슬이는 배를 볼록하게 내민 채 웃음을 터뜨렸다.
‘고맙다, 게오르그 로덴토. 네 아비가 팬텀 하운드를 조련하기 위해 준비했던 영빙석은 내가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어.’
카포레가 그득그득 채워 놓은 물건들에서 솟구치는 열기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그 많던 팬텀 하운드를 억누르던 영빙석의 권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카포레가 무릎을 꿇고 있는 지금도 이놈의 물건은 시시각각 망가져 가는 중이었고.
크흐흑.
결국, 양 무릎을 바닥에 댄 카포레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바람직해진 카포레’를 내려다보며 난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더 했다.
“이왕 무릎을 꿇은 김에 이마도 바닥에 한번 대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제가 느끼는 감동의 농도가 조금은 더 짙어질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