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2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7)화(22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27)
“…!”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감동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제가 이 자리에서 움직일 확률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양 무릎을 땅에 댄 채 고개만 들어 올리는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카포레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왜, 막내아들뻘밖에 안 되는 꼬맹이한테 이런 꼴을 당하는 게 굴욕적이라서?
그런데 이미 무릎까지 꿇은 마당에 까짓것 이마 좀 못 댈 것도 없지 않나?
토옥.
사시나무 같은 떨림 사이로 카포레의 이마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아주아주 작게’ 들려왔다.
흐음, 마음에 안 드는데?
“여기서 멀리 떨어진 어느 동방의 나라에서는 쿵쿵 소리가 나지 않는 절은 진심이 아닌 걸로 취급하는 풍습이 있다고 하더군요. 저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남작의 마음은 진심인 게 맞습니까?”
쿵쿵쿵.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포레의 이마가 바닥과 충돌하는 소리가 카페 2층 전체에 울려 퍼졌고.
그제야 나는 조금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어머나! 무릎에 이어서 이마까지….”
“귀족을… 그것도 자기 아버지뻘 되는 어른을 무릎 꿇린 데다 머리까지 찧게 하다니… 저건 너무한 건 아닙니까?”
“너무하지, 너무한 게 분명하다만 당사자가 저렇게 하겠다는데 우리가 뭘 어쩌겠소? 그나저나 클라디우스 공자는 정말 독한 사람이구려. 아니 어떻게 저런 광경을 만들어 놓고서 저리도 태연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말이오?”
이런 광경이 벌어질 거라는 건 어제부터 예측하고 있던 터라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카포레의 무릎과 마빡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고.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질렸다는 표정을 한 채 저마다의 감상평을 털어놓았다.
“독할 수밖에 없지요. 왜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자기한테 시비를 걸었다는 이유 하나로 4학년 간부 전원을 직접 낙제시켜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잖습니까?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그 손속이며 심계의 악랄함이 보통이 아닙니다. 웬만한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에요.”
“허허! 클라디우스 가주께서는 아주 너그러운 성품이셨는데 어쩌다 그분 밑에서 저런 괴물이 탄생한 거지….”
괴물?
좋을 대로 떠들어.
당신들이 나에게서 괴물을 보기를 원한다면 보여 주지 못할 것도 없으니 말이야.
쿵쿵쿵.
커피잔을 비워 내는 내내 카포레의 이마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되었고.
마지막 한 모금을 끝으로 난 이번 공연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좋습니다. 진실한 모습으로 사과를 구하는 남작의 성의를 봐서 어제 일은 이만 사과를 받아들이는 걸로 하지요.”
“고… 고맙….”
“제가 내일 오전 중으로 창고로 가서 냉기를 발하고 있는 물건을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내일 오전이라니!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소? 내일 오전이면 너무 늦는다는 말입니다!”
아주 잠깐 밝아지는 듯했던 카포레의 얼굴이 다시금 창백해졌다.
추측건대 카포레의 물건이 최소한의 상품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앞으로 5시간 정도.
내일 오전은 되어야 냉기를 제거해 주겠다는 말은 냉기를 제거해 줄 생각이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기에 카포레의 낯빛은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냉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저도 이것저것 사야 할 게 있는데 최근에 발생한 불상사로 인해 제가 판매하는 상품의 품질이 급격하게 저하된 터라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없다는 말이죠.”
“…그, 그건….”
“뭐 어떤 인심 좋은 분께서 냉기 제거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 준다면 당장이라도 그 작업을 수행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거짓말.
나도 그리고 카포레도 모두 아는 새빨간 거짓말.
하지만 거짓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은 카포레에게 그대로 전달되었고.
“그 필요하다는 금액이 얼마나 됩니까?”
카포레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대충 이 정도… 참고로 이 작업을 담당하는 저의 인건비는 제한 금액이니 제가 남작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 정도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커피 쟁반 옆에 있는 냅킨을 집어 든 후 금액을 적어 카포레의 이마 위에 놓아 주었다.
“…이, 이리도 많이!”
냅킨에는 카포레의 농간으로 인해 지난 2주간 나와 키에르고가 감수해야만 했던 피해 금액의 10배 정도가 적혀 있었다.
평소대로의 카포레였다면 속이 쓰리기는 해도 큰 어려움 없이 마련할 수 있을 법한 금액.
하지만 오늘 새벽에 발생한 불상사로 인해 크나큰 재정위기에 봉착하고만 카포레로서는 쉽사리 약조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
카포레는 내 얼굴과 냅킨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망설일 때가 아닐 텐데? 냅킨의 금액이 제법이기는 하다만 당신이 나를 엿 먹이기 위해 깔아 놓은 물건의 막대한 양을 생각해 봐.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물건들의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고 시간을 끌수록 당신의 손해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뿐이야.’
난 마른 레몬 껍질을 쥐어짜는 듯한 미소와 함께 최후통첩을 날렸다.
“선택하시지요. 그 금액을 지원하고 지금 바로 냉기를 제거하겠습니까? 아니면 내일 날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선택은 전적으로 남작의 자유입니다.”
* * *
“…그래서 상업지구나 교내의 분위기가 어떻다고?”
“카포레 남작이 무릎을 꿇고 사과한 일로 온통 소란스럽기만 합니다. 그 작위는 보잘것없다 하나 남작은 상업지구의 일부분을 십수 년 넘게 관리해 온 고위 간부였고 그런 인물이 고작 17살짜리 학생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통 사정을 하였으니… 오늘 일의 여파는 제법 오래갈 것으로 보입니다.”
모시는 주인의 불편한 심기를 고려한 집사는 ‘충격의 여파가 오래갈 것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게오르그가 멍청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 빌어먹을 꼬맹이의 몸값이 또 한 번 높아졌다는 뜻이로군.”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하나 그 내막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를 듯싶습니다. 오늘 일로 인해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공포 쪽으로 조금 더 기운 듯하옵니다.”
“공포? 그놈이 개망나니인 건 이미 유명했잖아. 그런데 새삼스럽게 공포를 따지고 말 게 뭐가 있다는 거야?”
“물론 해글러 나이투와의 결투. 그리고 4학년 간부들을 습격한 사건으로 인해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기저에 어느 정도의 공포가 깔려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향한 시선에는 동경의 의미가 조금 더 진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무능하기 짝이 없는 카포레가 무릎을 꿇는 걸 기점으로 멍청한 놈들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는 거야? ‘아, 나도 저놈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저런 꼴이 될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수틀리는 일이 발생하면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암수를 부려 아버지뻘 되는 상업지구의 터줏대감도 무릎 꿇릴 수 있는 자’라는 평이 이미 파다하옵니다. 커다란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입지는 이제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공고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사옵니다.”
게오르그의 기분이 이미 상하기도 했으니 이렇게 된 이상.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보고하기로 마음먹기라도 한 건지 집사는 가감 없이 전달했고.
“좋아, 그 이야기는 거기까지. 내가 지시한 사료 채취는 어떻게 되었지?”
게오르그는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미간을 움켜쥔 채 다른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 감식 인원들이 ‘창고에 남아 있는 얼음 조각’ 성분 분석을 끝냈사온데 공자님께서 짐작하신바 그대로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카포레 놈의 창고에서 발견된 얼음 조각의 성분과 지난번 페스티라카에서 자취를 감춘 영빙석의 성분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거지?”
“그렇사옵니다.”
“…쥐새끼 같은 놈. 역시 그 불상사의 뒤에는 네놈의 수작이 있었던 게 맞구나.”
카포레의 처참한 실패는 참으로 뼈아픈 일이었지만 일련의 사건을 통해 얻은 성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창고가 냉기로 뒤덮였다는 말을 들은 그 순간.
게오르그는 감식 인원을 창고로 파견하라는 명을 내렸고.
그 발 빠른 조치 덕분에 몇 달 전부터 로덴토를 괴롭게 하던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다른 분도 아닌 아버님께서 직접 관리하신 일이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실패하다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실패의 배경에 클라디우스의 쥐새끼가 있었다는 말이지.”
“공자님,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쨌거나 그 영빙석은 가문의 보물 창고에 등록되었던 물건이니만큼 꼬투리를 잡으려면 잡을 수도….”
“됐어. 이제 와서 그래 봤자 그 뻔뻔한 놈이 쉽사리 틈을 내줄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여기서 그 영빙석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 버리면 우리도 추가로 해명해야 할 일이 생겨. 이제 겨우 알크페인 놈의 집착에서 벗어났는데 그 꼴을 또 당할 수는 없잖아?”
애써 양성한 팬텀 하운드 무리를 잿더미로 만들고.
페스티라카 작전을 무위로 돌아가게 만든 클라디우스의 개새끼를 처단해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으나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아버님께 보고를 올릴 터이니 ‘1급 기밀 서신’으로 준비를 갖춰 주게.”
지금까지는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존재를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놈의 건방진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배알이 꼴리다 못해 배배 꼬이는 것 같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폴리다고스 내부의 일이었기에 자신의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놈이 로덴토의 대업을 망가뜨린 전력이 있다는 게 확인된 이상.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 셈.
지금부터 ‘로덴토 가문 차원’에서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제대로 짓이겨 버리기로 마음먹은 게오르그는 증오로 형형한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그래, 네놈이 벌인 짓을 확인했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제대로 상대해 주지. 기대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
* * *
―페이건, 그 영빙석이라는 보물. 정말 이 타이밍에 사용했어도 괜찮은 걸까? 물론 그 나쁜 귀족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준 건 나도 정말 통쾌했지만 조금 걱정이 되네.
‘라무테 님께서 통쾌하셨다니 저도 기쁘군요. 그런데 걱정이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걱정이 된다는 걸까요?’
―영빙석의 원래 주인은 로덴토였잖아. 그자들의 권세가 어마어마한 만큼 이것저것 재주를 가지고 있는 인원도 많을 텐데. 혹시라도 그들이 영빙석의 자취를 이용해 뭔가를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아마 라무테 님이 예상하는 그대로일 겁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 이상 로덴토의 인원들도 현장 조사에 들어갔을 테고. 게오르그 놈이 바보가 아닌 이상 페스티라카에서 발생한 일의 내막 정도는 파악했겠지요.’
―에엑! 그럼 위험한 거 아냐? 페이건 네가 지난번에 그랬잖아. 당분간은 로덴토가 너의 존재를 신경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그 당분간이 다 지나갔으니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야외 학습 때와 지금은 제법 많은 것들이 달라졌잖아요?’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숲의 어둠을 가르는 칠흑의 날개가 어깨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이거는 참 봐도 봐도 멋있고 아름다워!
아르카 4단계로 운용되는 그림자 밧줄을 목격한 라무테 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조금 전까지만 해도 걱정에 잠겨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빛을 뿜었다.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이런 것도 가능해졌을뿐더러 무엇보다 적의 실체도 훨씬 더 명확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정도까지 단서를 얻은 이상 저놈들도 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감을 잡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탐색전은 끝났다는 말을 하는 거니?
‘네, 맞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탐색전이 끝난 이상 굳이 소극적인 수단만을 사용할 필요는 없어요. 이런 계산 끝에 영빙석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거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부 다 제가 안배해 둔 속도로 진행되는 중이니까요.’
―그런데 있짜나, 만약에… 그러니까 만약에, 만약에 네 추측이 틀려서 게오르그 놈은 그냥 나쁜 놈일 뿐이고 ‘오르페우스의 적’들과는 별 상관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쩌기는 뭘 어째? 그냥 게오르그 로덴토만 잔뜩 열받고 마는 거지.’
―응? 게오르그 로덴토만 열받고 만다… 어! 그럼 좋은 거잖아?
‘그래, 북슬이 네가 멋지게 활약해 준 덕분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이번 일로 우리가 손해 볼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라무테 님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응, 알겠어! 나 조금 전까지는 불안했는데 페이건의 말을 듣고 나서 확 안심되는 거 있지. 헤헤
짤랑.
라무테 님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경쾌한 움직임으로 내 어깨 위를 뛰어다녔고.
그 바람에 내가 들고 있던 ‘묵직한 주머니’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터벅터벅.
이제는 완전히 해가 져 버린 숲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한적한 오두막이 보였고 난 성큼성큼 그곳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이제 내 손에 들린 주머니를 원래 주인에게 전달하는 걸로 창고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도 모두 일단락되는 셈이었다.
똑똑.
“어르신, 계십니까? 페이건 클라디우스입니다.”
“아니, 이 늦은 시각에 공자가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시오?”
문이 열리고 우람하기 짝이 없는 육신을 한 노(老)드라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 페이건 이 드라콘 말이야, 숨기고 있는 무장의 개수가 조금 줄었어.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널 처음 봤을 때보다는 절반 정도로 줄었지 뭐야.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네요. 존중받을 만한 누군가 나를 향해 마음을 열어 주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지요.’
짤랑.
숲의 바람이 불어와 가죽 주머니를 다시금 흔들었고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재빠르게 감지한 드라콘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키에르고의 가슴팍까지 들어 올린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르신께 분배해 드릴 것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괜찮다면 잠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