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3)화(2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3)
―도련님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으신가유?
“아니 별 건 아니고 요즘 들어 바다 괴물의 습격이 잦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각한 내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지아니가 질문을 던졌고 난 본심을 숨긴 채 시치미를 뗐다.
―그러기는 하네유. 예전에는 많아 봐야 한 달에 두어 번 오는 게 고작이었는데 요새는 이틀이 멀다 하고 잡것들이 난동을 부려 대니.
“내가 이곳에 없더라도 아버지와 섬사람들을 잘 부탁해.”
―아무렴유. 저도 있고 또 에페누 영감님도 아직 정정하시니 도련님이 안 계시더라도 아무런 걱정하실 필요 없구먼유.
“그래. 지아니 너만 믿을게. 그런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네.”
―히히.
시치미를 뗀다고 했지만 광휘가 예고한 환란과 부쩍 잦아진 바다 괴수들의 습격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괴물은 대륙 전체에 흐르는 사기(死氣)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고, 어쩌면 놈들의 잦은 광폭화는 예고된 환란의 전조일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물론 설령 대륙에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한다 해도 그 화가 에스페타라까지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저택을 굳건히 지키고 계시는 데다 에스페타라 전역에는 섬을 지켜 주는 신령스러운 영수들이 바글바글했으니까.
하지만 에스페타라와는 달리 충분한 방어력을 보유하지 못한 수많은 마을들은?
대귀족들의 지배하에 보호를 받는 대도시라면 몰라도 이름 없는 시골의 마을들 역시 무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조급해지고는 했다.
―도련님, 그럼 오늘도 수고 많으셨구먼유. 조심히 들어가셔유. 라무테 님이랑 벨제키엘 님도 고생 많으셨어유.
―응. 지아니도 잘 자.
―범고래야! 다음에 올 때는 저기 멀리서부터 머리 위 구멍으로 물 푸푸 하면서 오는 거 잊지 마! 나 그거 보는 거 되게 좋아한단 말이야.
―그것도 너무 오래 하면 힘들어유. 하지만 벨제키엘 님이 보고 싶다고 하니까 노력은 해 볼게유.
우리를 해안가로 데려다준 뒤, 언제나처럼 푸근한 인사를 남긴 채 지아니는 바다로 돌아갔고 난 곧바로 모닥불을 피웠다.
타다닥.
저택으로 복귀하기 전 흠뻑 젖어 버린 겉옷을 말려야만 했던 것이다.
―꺄악! 페이건 나도 있는데 그렇게 상의를 훌렁훌렁 벗어 버리면 어떡하니! 뭐… 보기에 썩 좋기는 하다만. 어릴 때부터 운동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 호호.
“저택으로 가기 전에 대충이라도 말려야 합니다. 이 꼴을 하고 들어가 침대를 다 적셔 놓으면 내일 아침 유모가 놀라서 자빠질걸요. 그리고 저에게 라무테 님은 엄마 같은 존재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내가 페이건의 또 다른 엄마… 음 확실히 그건 나쁘지 않네.
―어! 라무테가 엄마면 그럼 내가 아빤가? 에헴! 페이건 네 이놈! 내일부터 더 넉넉한 간식을 대령하여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날개 달린 롤빵 주제에 아빠는 무슨. 웃기고 있네. 자꾸 까불면 너도 꼬챙이에 꿰어서 모닥불에 노릇노릇 구워 버리는 수가 있어.”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북슬이는 전속력으로 날아와 몸통 박치기를 했지만 겨우 고정도 실력으로는 체술로 단련된 내 복부에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야! 이거 놔! 이게 감히 누구를 수건 취급하는 거야!
뽀송뽀송한 털 뭉치를 집어 들어 머리카락과 뺨을 대충 닦아낸 후 허공으로 던졌다.
이것저것 재주가 많은 녀석이니 자기 몸 정도야 금방 말릴 수 있겠지.
―그나저나 페이건, 폴리다고스로 출발할 준비는 잘하고 있는 거야? 이제 출발할 날이 열흘도 남지 않았잖아.
“어머니와 유모가 막바지 준비를 위해 분주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숙식이 완벽하게 제공되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터라 딱히 준비할 건 없을 것 같은데 어머니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더라구요.”
폴리다고스 입학이 정해진 이후 어머니는 부쩍 바빠지셨다.
3년 전, 내 입으로 폴리다고스에 입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부모님은 부쩍 놀라신 듯했다.
그간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두 분은 내심 나와 폴리다고스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엄마는 물론 항상 네 뜻을 응원할 거야. 하지만 이번 발언은 조금 의외네. 우리 장남은 그런 식의 귀족 중심의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너라면 충분한 고민을 한 후에 말한 거겠지? 알겠다. 적당한 시기가 오면 입교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도록 하마.]하지만 두 분은 곧바로 내 의지를 존중해 주셨고 난 폴리다고스에 입교할 수 있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나갈 수 있었다.
폴리다고스는 대륙 최고의 엘리트 교육 기관인 만큼 그 입학 문턱이 더없이 높은 것은 당연지사였지만, 클라디우스라는 이름값에는 그 허들 정도는 가뿐히 넘을 만한 무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폴리다고스 발 입학허가서가 에스페타라로 날아왔고, 입교를 위해 에스페타라를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처음으로 섬을 떠나 먼 길을 가는 건데 긴장되거나 걱정되는 거는 없니?
“걱정된다기보다는 뭐랄까요, 마음에 걸리는 건 조금 있습니다.”
―어머! 우리 대담한 페이건의 마음을 걸리게 하는 게 과연 뭘까?
“폴리다고스는 나름 대륙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이 빠짐없이 모여드는, 엘리트 강습소 같은 느낌이잖아요?”
―음,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그럼 틀림없이 지 신분 잘난 맛에 취해 앞뒤 못 가리고 주접떠는 놈들도 많을 텐데… 그 꼬라지를 보고 있다가 속이 배배 꼬이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음… 확실히 네가 할 만한 걱정이네. 우리 페이건은 허세라든가, 잘난 척이라든가 이런 건 못 봐주는 성격이잖아?
에스페타라 역시 신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신분의 차이가 적용되는 강도나 모양새는 여타 대륙과는 확연히 달랐다.
클라디우스의 땅에는 오르페우스의 박애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었기에, 사용인들을 대하는 태도나 평민들에게 가해지는 제한 등이 상당히 느슨하게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땅에서 17년을 살다가 제 잘난 맛에 사는 얼간이 꼬맹이들이 가득한 곳으로 가려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얌냠냠, 그냥 맘에 안 드는 놈들은 으슥한 데로 끌고 가서 몇 대 때려 주면 안 돼? 너 그런 거 되게 잘하잖아.
“음… 별다른 고민 없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 아주 가끔씩 네가 부러워져. 세상 모든 일을 네 생각처럼 단순하게 처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도 없다.
어쨌거나 난 오르페우스가 남겨 놓은 꿈이라는 걸 좆아 보기로 마음먹었고, 가문의 시조님이 남기신 단서의 대부분은 폴리다고스에 있으니까.
“마음에 걸리는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야죠.”
해안가의 어둠을 몽땅 살라 먹을 듯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불쏘시개를 추가하며 혼잣말처럼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아무리 먼 길이라도 답이 있다면 그곳을 향하는 것이 클라디우스니까.”
* * *
“드디어 내일이면 폴리다고스로 떠나는 날이구나. 어떻게 준비는 잘 마무리되었느냐?”
“네. 어머니께서 신경을 써주신 덕분에 모든 준비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폴리다고스 출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저녁, 아버지는 나를 서재로 호출하셨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폴리다고스에 다닌 적이 없다. 하지만 입교할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야. 입학을 마음먹었다면 그곳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
“…음, 폴리다고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배움의 길을 찾고자 하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 잘 봤다. 하하! 이 아비는 원체 천성이 책상물림과는 거리가 있는 편 아니더냐? 그 외진 곳에 틀어박혀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는 편이 치료술사로서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난 폴리다고스 진학을 포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느니라.”
역대 클라디우스 가주들의 폴리다고스 입학률은 채 3할이 되지 않는데 이는 강의보다는 현장 교육을 중시하는 클라디우스의 가풍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추후에 라나나 에밀이 폴리다고스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면 이 아비는 아마도 그 아이들을 말리지 않을까 싶다. 이 나이대는 아카데미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 편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니까.”
“…아버지.”
“하지만 3년 전, 네가 폴리다고스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선택을 만류하지 않았다. 하하! 라나나 에밀이 이 말을 들으면 서운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느냐? 너를 향한 신뢰와 그 아이들에 대한 신뢰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걸. 페이건,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를 믿는다. 너라면 어느 곳에서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에 합당한 성과를 거둬 내겠지.”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솥뚜껑처럼 묵직한 손이 어깨 위에 얹어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너를 믿는다. 다만 그래도 네가 그곳에 가서 마주해야 할 현실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페이건, 지금쯤이면 너도 눈치를 챘겠지만 대부분의 대귀족들은 클라디우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거야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선조 분들께서 자처하신 일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대귀족들의 대부분은 평민들에게 감추고 빼앗는데 관심이 많은 자들 아닙니까? 한데 아버님과 선조들께서는 대귀족들의 뜻에 반대되는 결정을 여러 번 내리신 바 있으니 그들 눈에는 클라디우스가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밖에요.”
“하하! 그래 그런 것도 없잖아 있지. 하지만 말이다 이 아비는 그간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건 너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 믿는다.”
“물론입니다.”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고는 있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마냥 밝지는 못했다.
‘내가 폴리다고스에 가서 마주해야 할 ‘순혈 카르텔’이 걱정되시는 거겠지.’
폴리다고스의 신입생은 입학 경로에 따라 두 분류로 나뉜다.
폴리다고스 산하 기관에서 운영되는 하급 교육 기관을 차례로 거친 후 일정한 연령이 되면 입학을 하게 되는 속칭 ‘엘리트 코스’.
산하 기관 외부 입학 희망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고 그 당락에 따라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속칭 ‘비 엘리트 코스’.
선발 인원의 비율로만 따지면 비 엘리트 코스가 총 정원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학사 운영이나 진학 평가는 소수의 엘리트 코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폴리다고스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대륙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가문 출신들은 대부분 엘리트 코스를 통해 폴리다고스에 입학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쪽으로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트 코스에 포함되는 가문들 중 상당수는 클라디우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제아무리 대범한 아버지라 한들 나의 아카데미 생활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쓸데없는 걱정으로 보일 뿐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내가 그깟 얼치기 귀족들이 벌이는 알력다툼에 위축된다고? 말도 안 되지.’
하지만 걱정하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어 보일 수 있는 가장 자신만만한 표정을 띄운 채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는 것뿐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곳에 있는 애송이들이 어떤 짓을 벌이든 간에 제가 자랑스러운 클라우디스라는 건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일 테니 말입니다.”
“그래. 이래야지 내 아들이지. 너를 믿는다. 그리고 부탁이다. 페이건, 네가 이 티베리와 멜리사의 아들임을 단 한순간도 잊지 말아다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한들 깊게 뿌리를 내린 참나무가 위태로워질 일은 없습니다. 아버지, 만약 그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거든 그들의 얼굴에다 대고 똑똑히 말해 주겠습니다.”
감정이 북받친 아버지는 나를 와락 끌어안으셨고, 난 벌판처럼 넓은 아버님의 등에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나는 티베리 클라디우스의 제일가는 자랑이니 너희들의 저열한 수작으로는 결코 나를 흔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 * *
아버지를 안심시켜 드린 후 방에 돌아와 마지막 짐 정리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필수품은 어머니와 유모가 챙겨 주셨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다시 한 번 정리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대륙으로 나가면 맛있는 과자랑 초콜릿은 진탕 먹을 수 있겠네. 흐흐 여기 과자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똑같은 것만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거든. 아무튼 기대가 커 흐흐흐.
“땡전 한 푼 없는 게 욕심만 부리기는.”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돈은 당연히 네가 내야지. 이거는 한참 전부터 그렇게 정해진 거잖아?
“그래. 어차피 내가 낼 생각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로 뻔뻔하게 나오니까 조금 기분이 그렇네. 야! 롤빵이, 너 말이야….”
짐 정리를 마치고 뻔뻔한 소리를 하는 롤빵이의 뺨따귀를 한 차례 당겨 준 후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우아아앙!”
하지만 멀리서 들려온 울음소리에 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이 똥강아지들 또.”
나도 모르게 입가에는 헛웃음이 지어졌다. 어쩐지 제법 잘 참고 있다 싶었는데 결국 울음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래도 한 번쯤 가 봐야 할 것 같아 복도로 나선 그 순간, 우리 집 막내가 토해 내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우아아아왕! 나 흉아 가는 거 시러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