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3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37)화(23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37)
“그래서 귀하께서 이 늦은 시각에, 더군다나 얼굴까지 숨겨 가면서 나를 찾아온 그 진짜 이유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좀처럼 극존칭을 사용하는 법이 없는(그의 신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월베니였지만.
침입자가 보여 준 모습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터라 자신도 모르게 존칭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이 나라에 왔습니다. 그런데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온통 우스꽝스러운 일투성이더군요.”
“…!”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방인의 입에서 우습다는 말이 나오자 월베니의 눈썹이 거친 곡선을 그리며 꿈틀거렸다.
침입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슬린다고 하여 성질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일국의 대공으로서 아국(我國)에 대한 비방을 듣고 있자니 분노가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이 우스운 광경을 그냥 두고 간다고 하여도 제 개인에게는 손해날 게 없지만, 가끔씩은 이익과 무관하게 약간의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듯하여 각하를 찾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전에 숲에서 발생한 그 사건도 아소토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뜻이오?”
“아, 그것과 이건 별개입니다. 숲에서 각하를 찾아뵌 일은 제 개인적인 사업과 연관이 있는 일이었거든요. 그와 관련된 일도 언젠가는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지금은 과거의 일은 잠시 접어 두고 아소토 왕국의 현 상황에 집중하는 걸로 하죠.”
제멋대로 상황을 맺고 끊는 방식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월베니는 입을 다문 채 침입자의 다음 발언을 기다렸다.
자력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기도 했거니와.
침입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마냥 해롭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 귀하께서 이런 변칙적인 방문 방식을 채택해 가면서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지. 조금 전 이 나라가 우스꽝스럽니 어쩌니 하신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그리도 엉망이라 느껴지셨소?”
“백성들의 삶은 안정적이고 나라의 곳간은 풍요로우며 법체계는 엄정하고 국가를 지킬 병사들의 기세는 날카롭습니다. 아소토라는 나라, 겉보기에는 제법 그럴싸해 보이더군요.”
“…겉보기에는?”
“그런데 얼핏 보기에는 도무지 빈틈이 없어 보이는 나라에 큰 문제가 하나 있지 뭡니까? 안타까운 점은 그 문제가 달랑 하나라고 넘겨 버리기에는 지나치게 치명적이라는 건데…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각하.”
“마, 말씀하시오.”
“이 나라의 주인이 과연 에드손 기바르손 전하인 게 맞습니까?”
발칙하기 짝이 없는 침입자의 입에서 친형의 이름이 나온 순간.
월베니는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무, 무엄한! 옥좌에 앉아 계시는 전하께서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면 대체 그 누가 주인일 수 있다는 말이오!”
“흠… 그런가요.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백성들 중의 상당수는 각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각하께서는 전하의 친동생이니만큼 다소 치우친 생각을 품고 계실 수도 있겠지요. 뭐, 이해는 합니다.”
침입자의 화법은 그 등장 방식만큼이나 직설적이었고 치밀어오르는 황망함을 감당하지 못한 월베니는 결국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닥치시오! 비록 이 나라가 지금의 성세(盛世)를 이루는 데 안피노 공작이 기여한 바가 크고 백성들의 마음 또한 그를 향해 기울어져 있는 건 사실이다만 이 나라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어라? 저는 루드비히 안피노 공작의 이름은 꺼낸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큭! 그, 그건…”
“현 국왕 전하께서 확고히 군림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각하의 입에서 이 타이밍에 안피노 공작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을 텐데. 역시 각하께서도 수상한 조짐을 파악하고 계셨군요.”
두꺼운 복면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입자가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의심이라 불리는 감정이 있고 이 감정은 어찌 쓰이냐에 따라서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심.
지난 몇 년간 월베니의 가슴을 스멀스멀 물들여 왔으나 그 이름을 입에 담기 두려워 스스로 억눌러 왔던 감정.
“한데 이 나라의 국왕을 비롯한 수많은 문무백관들은 도무지 의심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것 같아 영 걱정이 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실 식구분들 중 정당한 의심을 할 줄 아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신 듯하니 그나마 다행인 일이군요.”
왕의 친동생이자 대공의 위(位)를 점하고 있는 자신도 차마 인정하지 못했던 그 감정을 너무나도 수월하게 입에 올린 침입자는 감정의 수렁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의심을 꽁꽁 엮어 자신에게 내던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말이온데 각하, 어떻게 에크르노 공작과는 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십니까?”
“여, 여기서 왜 갑자기 공작을 들먹이는 것이오?”
“각하께서 품고 계시는 의심이 지극히 정당함을 입증시켜 드리기 위해 여쭙는 것이오니 솔직히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으, 으흠!”
“질문의 의도 파악이 정 어려우시다면 표현 방식을 조금 바꿔보도록 하지요. 각하,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축제 준비에 어느 정도나 영향력을 발휘하실 수 있습니까?”
“대국적인 방향의 수정을 요구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어떻게든….”
“잘됐군요. 각하, 휘하에 솜씨 좋은 정령사나 성령마법사 한두 명 정도는 데리고 있으시겠지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그들을 이곳으로 파견하십시오.”
휘익.
월베니의 대답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침입자는 망설임 없이 종이카드를 꺼내 들었고.
간략한 내용이 적힌 카드는 허공을 날아 월베니의 손등 옆에 꽂혔다.
“여, 여기는 특별 공연을 위해 준비된 마수들이 숨어 있는 지하 감옥 아니오. 왜 내 사람들이 이런 흉악한 장소에….”
“역시, 각하께서도 그 꼴사나운 연극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다면 그 사나운 마수 놈들을 이곳까지 조달한 장본인이 숲의 성자 일당이라는 것 또한 인지하고 계시겠죠?”
“일당?”
평생에 걸쳐 수양의 길을 걸어온 숲의 성자와 그 제자를 지칭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불경한 호칭.
하지만 침입자는 거리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거룩한 성자님께서 그간 쌓아 온 수양의 공력을 이용해 마수들을 통제하는 거라면 마수들의 몸에 남은 통제의 흔적 또한 성스러워야 하는 게 합당한 처사겠지요?”
“서, 성자님께서 부당한 힘을 이용해 마수들을 통제하기라도 한다는 말이오?”
“그거야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될 일이지요. 아! 그리고 조언을 하나 더 해 드리자면 정령사나 성령마법사의 파견은 가급적 은밀하게 처리하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이보시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해 드릴 설명이야 많다만 각하께서 아직은 준비가 덜 된 탓에 더 이상은 말씀드리기 힘들 것 같군요. 일단은 제가 드린 이야기의 진위 여부부터 확인하셨으면 합니다. 각하의 준비 상태가 조금 더 나아진다면 저 또한 전부는 아니지만 나름의 설명을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전 이만.”
여기까지 설명을 끝낸 암살자는 탁자에서 몸을 일으켜 서재를 빠져나갈 채비를 했고 월베니는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붙잡았다.
“잠깐, 이대로 가면 나더러 어떡하라는….”
암습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붙들고 늘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월베니는 침입자를 붙잡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의 방문으로 인해 경비를 맡은 기사들의 근무 태도를 지적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애초에 타샤드의 황실 근위대 정도가 아니고서야 제 잠입을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감당 불가능한 사태를 막지 못했다 하여 질책을 받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니 말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유유자적한 침입자의 모습에 질려 버린 월베니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빡이고 말았고.
“…!”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침입자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 *
‘흐아아암… 어머! 이러면 안 되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은 후 카밀라는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이래 봬도 내가 폴리다고스를 대표하는 얼굴인데 이렇게 얼빠진 얼굴을 보일 수야 없지. 흠흠, 정신 차리자! 눈도 바짝 뜨고.’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풀려 있던 눈동자에 힘을 주자 보석을 닮은 녹색 눈동자가 영롱한 빛을 내며 반짝였고 그녀는 가마 바깥쪽 행렬을 향해 다시금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와아!”
“환영해요! 폴리다고스 여러분들!”
이틀 전 오후를 기해 폴리다고스를 출발한 축하 사절단은 오늘 정오를 조금 지난 시점에 아슬라니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고 왕도(王都)의 거리는 귀빈 구경을 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관객들로 가득했다.
‘네네, 저도 반가워요. 솔직히 말하면 이번 일정이 예상했던 것보다 훠얼씬 지루한 터라 도무지 기운이 안 나지만 그래도 이토록 많은 분들이 구경을 나와 주셨는데 의욕 없는 모습을 보일 수야 없죠. 일단 열심히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 테니 부디 기쁜 마음으로 즐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호호호! 아이참, 지루하기도 해라! 이놈의 입장은 도대체 언제쯤에나 끝이 나는 거야.’
관객들에게는 절대로 말해 줄 수 없는 앙큼한 생각을 되뇌며 카밀라는 곳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땡글땡글하니 보기 좋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봐도 지루함을 가시게 해 줄 만한 징조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자신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서 말을 타고 있는 백발 소년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스트라, 쟤는 지루하지도 않은가? 아까부터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선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채 이리저리 몸을 배배 꼬는 자신과 달리 아스트라는 의연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여느 때였다면 아스트라의 의연한 모습을 칭찬하며 손뼉이라도 쳐 줬겠지만.
지금의 카밀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루함으로 인해 속내가 배배 꼬인 상태.
‘치! 자기 옆에는 소피아 씨가 있다 이거지. 나도 내 옆에 걔만 있어 줬어도 이렇게까지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뭐!’
심통이 잔뜩 난 카밀라에게 아스트라의 의연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을 리 만무했고
그녀는 입술을 비죽 내민 채 심통을 내고야 말았다.
속내가 뒤틀리다 보니 이동 틈틈이 소피아와 알콩달콩한 아스트라의 정겨운 모습까지 미워 보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달구어져만 가는 그녀의 분노는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향하게 되었다.
‘치! 뭐가 그리 잘났다고 맨날 바쁜 척이야. 뭐, 난 일정이 있어서 다른 데를 가 봐야 하니까 재미있는 거 많이 보고 오라고? 맨날 말로는 지독한 영감이니 뭐니 떠들면서 이럴 때는 또 쿵짝이 맞아 가지고 휙 날아가 버리고! 뭐냐구 이게!’
원래대로라면 자신과 같이 아슬라니에 왔어야 할 친구를 남쪽 끝으로 날려 버린 ‘실험국의 노괴물’도.
또 그 명령을 좋다고 받아들인 ‘1학년 학년 대표’도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 가마 위의 대표님, 이쪽 좀 봐 주세요!”
“언니, 너무 예뻐요! 여기 보고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가슴 한편은 부글부글하고 있었지만, 카밀라의 우수한 두뇌는 이 순간에도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고.
덕분에 그녀는 영업용 미소를 유지한 채 환호성이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 수 있었다.
“꺄악! 저기 가마 위에 있는 마법사 언니가 나보고 손 흔들어 줬어!”
“언니! 아슬라니에 온 걸 환영해요. 여기 머무는 동안 우리 축제도 많이 많이 축하해 주세요!”
천공의 눈 시절에 경험한 여러 행사로 단련된 영업용 스마일을 흩뿌리며 카밀라는 가마 아래쪽에 있는 왼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도톰한 입술을 달싹거리며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호호호! 선물 안 사 오기만 해 봐. 그때는 정말 가만 안 둘 거니까.’
* * *
또각또각.
폴리다고스 사절단이 아슬라니에 도착한 당일 저녁.
소피아는 왕궁 내부에 위치한 귀빈실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아소토 왕국은 사절단에게 융숭하기 짝이 없는 대접을 해 줬고 그들의 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 배려 또한 준비한 상태였다.
사절단의 시중을 드는 사용인들은 영접관 곳곳에 위치한 각종 비품실 및 탕비실을 방문해 그들의 주인을 위한 기호 식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취향이 까다로운 주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인들은 영접관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
소피아 또한 한 사람의 사용인으로서(그리고 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커다란 바구니를 든 채 종종걸음을 치는 중이었다.
“잠시만요! 거기 앞에 가시는 페르디난드의 하녀분, 잠깐 드릴 말씀이 있으니 잠시 멈춰 보시겠어요.”
그런데 다음번 보급 창고를 향하는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에 탕비실에서 신청하신 홍차 가루 받아 가셨죠? 저희 쪽에서 약간의 실수가 생겨 배급해 드린 다과에 착오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즉시 교환해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 네. 그렇게 해 주시겠어요.”
그녀를 붙잡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소토 왕국 행정부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었고.
소피아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매만지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페이건 클라디우스입니다. 놀라셨겠지만 당황하지 마시고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해 주세요.
그런데 직원이 그녀 앞에 마주 선 순간.
소피아에게는 익숙한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로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바구니 열고 자연스럽게 서 계세요.
다행스럽게도 소피아는 무척이나 차분한 성정의 소유자였고 덕분에 별다른 동요 없이 직원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홍차 가루가 담긴 병을 든 채 다가오는 직원.
그의 얼굴에서 그녀가 알고 있던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음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고막을 두드리는 소리는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것이 분명했고.
그녀의 화상을 다스려 주고 있는 천재 소년은 냉정하리만치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트라는 왕국에서 배정한 숙소에 머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