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4)화(2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4)
“음마! 흉아한테 가지 말라고 해! 우아아앙! 난 흉아 없으면 싫어!”
“에밀. 너 그러면 안 돼. 네가 자꾸 그렇게 떼를 쓰면 오라버니가, 오라버니가 마음 편히 가실 수 없잖아. 오라버니는 폴리다고스에 가셔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셔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두 귀염둥이가 쏟아 내는 울음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져 왔다.
에밀이 울음을 터뜨릴 것이라는 건 예상했던 바이지만 라나까지 이렇게 대성통곡을 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소녀는, 소녀는… 히끅, 웃는 얼굴로 오라버님을 보내 드리겠사와요.’라며 울음을 꾹 참고 있었는데 결국 에밀의 반복되는 자극에 라나의 울음보 역시 터져 버린 것이다.
“우아아앙! 누나! 나 흉아 없는 거 시러어!”
“이 바보야! 그만 울라니까! 네가 자꾸 울면 나도, 나도 울고 싶어지잖아. 우아앙!”
오르페우스의 유산을 찾아 폴리다고스에 가기로 결정한 이래로, 이 결심이 흔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귀엽기 짝이 없는 동생들의 울음을 듣고 있으려니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들. 영영 가는 게 아니고 방학 때마다 오겠다고 했는데 저렇게 구슬프게 울고 그래.’
끝내 지켜 주지 못한 전생의 동생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이번 생애에 새로 얻은 동생들은 유독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시간이 나는 대로 아직 어린 오누이와 놀아주며 좋은 오빠, 형이 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 덕분에 동생들은 나를 부모님보다 더 따르고 있었다.
동생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동생들과 있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떠올랐다.
에밀은 한가할 때마다 쪼르르 내 방으로 달려와 문을 두드리고는 했다.
똑똑.
[흉아야, 많이 바쁘신가요?] [아니요. 하나도 안 바쁜데요?]내 방문을 두드리는 귀여운 노크 소리에 문을 활짝 열어 주면.
[형아야! 그럼 나랑 놀자! 내가 용사님이고 흉아는 용사님을 괴롭히는 악당 사천왕이야!]문 너머로는 장난감 칼을 뽑아 든 에밀이 서 있고.
[에밀 안 돼! 오라버니는 나랑 차 마셔야 하니까 에밀은 저리 가 있어!]그 뒤로 라나가 발을 동동 구르는 광경은 지난 몇 년간 클라디우스 저택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런 광경과도 잠시 안녕.
난 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고,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똥강아지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어머! 라나야! 에밀이 울고 있는데 너까지 그렇게 울고 있으면 어떡하니! 웃는 얼굴로 오빠를 보내 준다고 엄마랑 약속했지?”
“그치만, 그치만… 오라버니가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는 걸요. 우우욱….”
“우아아앙! 흉아 가는 거 시러어어!”
“어머! 어머! 얘들이 정말 왜 이럴까?”
라나의 방 앞에 서자 철부지 오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저 페이건입니다.”
“어머! 페이건, 내일 먼 길을 가려면 잠을 자야지 왜 이 시간까지 깨어 있니?”
“흉아!”
“오라버니!”
달칵.
문이 열리자마자 동생들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내 품을 파고들었다.
“오라버니, 미안해요. 라나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 내일부터 오라버니가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흉아! 가지마아!”
“라나, 에밀. 울기는 왜 울어? 오빠는 아주 가는 게 아니라니까. 여름에 다시 돌아올 거야. 그리고 멋진 선물도 많이 사 가지고 올게. 그러니까 울지 마. 응?”
이제 막 소녀가 된 라나와 아직은 철부지인 에밀을 힘껏 끌어안았고, 남매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 동안이나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훌쩍, 오라버니 죄송해요. 하지만 오라버니… 꼭 연락 자주 하셔야 해요? 혹시라도 편지 안 써주시면 너무 서운해요.”
“흉아, 다시 올 거지? 에밀 보러 올 거지?”
“그럼. 다시 올 거지. 그리고 라나야, 오빠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편지 쓸게. 그러니까 울지 마. 응?”
그렇게 꼬박 한 시간을 달랜 끝에야 동생들은 겨우 울음을 그치고 겨우 잠이 들었다.
“우웅… 오라버니 편지… 편지….”
“흉아… 선물 사 와야 돼.”
잠꼬대에서도 나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는 녀석들의 뺨에 한차례 씩 입맞춤을 해주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겨 있었다.
“어휴, 정말. 보통 다른 집 애기들은 엄마랑 아빠한테 어리광을 부린다는 데 우리 집 강아지들은 왜 오빠한테 그러나 몰라. 그나저나 페이건, 일찍 자야 되는데 이 시간까지 시달려서 어떡하니?”
“괜찮아요. 어차피 잠도 오지 않은 참이라서요.”
“준비는 다 끝났고?”
“네. 유모가 워낙에 꼼꼼한 성격이잖아요.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그래. 마틸다가 손 꼼꼼한 건 알아줘야지. 그런데… 어머나!”
잠든 동생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던 어머니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어머! 내가 왜 이러지!”
이 타이밍에 울음이 터져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어머니는 당황한 얼굴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미안, 페이건, 미안. 엄마가 참 바보 같지? 어린 라나랑 에밀한테는 울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을 한 주제에 엄마가 돼서… 먼 길을 가는 아들 마음을 무겁게 하고. 엄마는 참 왜 이럴까?”
“어머니.”
난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조금씩 떨리고 있는 손을 감싸 쥐었다.
어머니, 어린 나를 길러 주고 사랑해 주신 이번 생애에는 단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 나의 어머니.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쾌활하고 당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난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이 여리신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줘 어머니의 손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어머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몸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또록.
내 장담이 미덥지 못했던 걸까? 결국 어머니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눈물을 닦아 내신 후 한껏 미소를 지으며 내 목을 끌어안고 본인이 낼 수 있는 가장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 그래야지. 엄마는 우리 장남을 믿어. 부디 엄마 걱정, 집안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고 잘 다녀오렴. 내 아들.”
* * *
다음날 새벽.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안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자님! 저희들은 이곳에서 가주님을 보필하며 공자님의 건승을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도련님, 대륙에 가시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한테 클라디우스의 힘을 똑똑히 보여 주고 오세요!”
가신과 영주민 등 에스페타라 본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내 출발을 배웅해 주기 위해 해안가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도련님, 출발할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명을 내리신다면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습니다!”
날 대륙까지 데려다 줄 선장과 선원들이 잔뜩 그을린 팔뚝을 들어 올리며 우렁찬 소리를 외쳤고.
―도련님, 쇤네와 아가들도 준비 끝났구먼유. 아무 때나 좋으니 말만 하셔유.
선박의 호위를 맡은 지아니와 범고래 편대 역시 물줄기를 뿜어 올리며 기세를 올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3분 뒤에 출발하도록 하죠.”
난 마중 나온 사람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준 후 출발 전 마지막 인사를 위해 가족들에게 다가섰다.
“페이건! 잘 다녀오너라!”
“엄마는 우리 아들 잘 다녀오리라 믿어! 그리고 피닉스 님, 부디 페이건을 잘 부탁드려요.”
어머니는 라무테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은 뒤 그녀의 날개에 입을 맞췄고 라무테 또한 ‘내가 있으니까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어!’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오라버니! 후, 훌쩍. 잘 다녀오세요!”
“흉아야! 빨리 와야 돼!”
“도, 도련님, 부디 몸 건강하시길….”
“하하. 그래. 잘 다녀올게요. 그런데 빨리 출발해야겠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세 사람 다 왈칵 터져 버리겠네.”
유모, 유모의 품에 안긴 에밀, 그리고 유모의 스커트 자락을 꽉 움켜쥔 라나까지.
웃는 얼굴로 보내 주겠다는 필사의 각오를 한 건지 울보 3인방은 어떻게든 웃는 얼굴을 한 채 손을 흔들어 줬고.
“그럼 정말 갑니다. 다들 다시 볼 때까지 꼭 건강하게 지내기! 선장님, 출발하시죠!”
“알겠습니다. 이놈들아 뭣들 하고 있어! 공자님께서 속히 출발을 하라고 명하셨는데 벼락같이 움직여야지!”
부우우우.
출발을 알리는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크르르릉!”
“호로롱!”
“삐이이익!”
각자의 영역에서 섬을 지키던 영수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나의 출발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 * *
촤아아악.
경쾌하기 그지없는 물살 가르는 소리.
나를 태운 배가 작은 점이 되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
“하하! 공자님! 소인이 비밀로 해 드릴 터이니 울고 싶으시면 우셔도 됩니다.”
“울어요? 천만에요. 부모님과 나와 준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새로운 여행을 떠날 생각에 설레기까지 하는걸요?”
“이야! 역시! 이렇게 나오셔야 소신이 아는 페이건 도련님이시지요! 하하! 도련님, 꽉 잡으십시오! 도련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상 저도 신나게 바다를 갈라 볼 생각이니 말입니다.”
선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창 사이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텁수룩한 수염을 거세게 흔들었고, 난 파도 사이로 부서져 들어오는 새벽빛을 시야에 똑똑히 새겨 넣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속도를 내 보시죠. 오늘은 좋은 날이니 바람보다 더 빨리 달려 봐야지요.”
* * *
“위원장 님, 이번 학기에 입교할 신입생들의 인적 사항을 추가 보충한 서류입니다.”
“수고했네.”
서류철을 받아든 장년 사내가 페이지를 넘기는 손놀림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산하 기관을 그대로 타고 올라온 요주의 인물들 신원 확인은 진즉에 끝난 상태.
외부 입학시험을 통해 들어오는 신입생들 중 장년 사내의 이목을 끌만한 인물이라고 해봤자 극소수에 불과했기에 장년 사내의 손가락은 기민하게 움직이며 목표를 향해 갔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흐음….”
마침내 타깃을 찾아낸 장년 남자 입에서 묵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티베리 이 친구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걸까? 요아힘, 자네 생각은 어떤가?”
“위원장 님이 모르시는 일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상사로부터 불쑥 들어온 질문, 하지만 깔끔한 정장이 인상적인 중년 남성은 대수롭지 않게 질문을 넘겨 버렸다.
눈앞에 있는 자신의 상사는 이 드넓은 폴리다고스 내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영향력을 가진 초고위 간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상사의 오래된 습관의 발현일 뿐, 이미 장년 사내가 나름의 답을 내렸다는 사실을 요아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티베리 이 친구와 자네의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지? 흠… 연수를 따져 보면 자네가 입교했을 무렵에는 티베리가 일으킨 입학 거부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었을 것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위원장 님. 여진이 남아 있다 뿐이었겠습니까? 아주아주 말들이 많았지요.”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던가?”
“그 당시에는 저도 어렸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선배들도 철이 없을 때이니 떠드는 이야기야 뻔한 수준 아니겠습니까? 건방진 섬 구석 출신의 하찮은 재주를 어여삐 여겨 하늘 같은 폴리다고스에서 가르침의 기회를 주려 했더니, 변방의 촌놈이 알량한 재주를 믿고 방자하게 군다며 입방아를 찧어 댔지요.”
“…흐음.”
“원래 자신의 손으로 이뤄 낸 게 없는 아무것도 없는 얼간이일수록 속한 기관에 필요 이상의 소속감을 보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자네는 말이지, 똑같은 내용의 말을 해도 참 불경스럽게 들리게 하는 재주가 있어.”
“흐흐. 죄송합니다. 위원장 님.”
당돌하다 못해 불경하기까지 한 부하 직원의 말에 위원장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어떤 놈인가? 이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꼬마는?”
위원장은 페이건이라는 이름보다는 클라디우스라는 성에 방점을 둔 채 질문을 던졌고 요아힘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준비된 답을 꺼내 들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소년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버지보다 나은 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티베리 보다 낫다고? 이 꼬마가?”
위원장의 수염이 좌우로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위원장은 세간의 평가가 티베리 클라디우스라는 남자의 진면목을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만약 이런 황망한 내용의 보고를 올린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는 ‘알았으니 나가 보게’라며 이야기를 끝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잠재력이 티베리 클라디우스의 것을 상회한다’는 보고를 올린 것이 다름 아닌 요아힘이었기에 위원장은 대화를 끝내는 대신 되묻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클라디우스 가문 내에 복역하는, 그것도 꽤나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여러 인사들로부터 교차 검증을 통해 확인한 정보입니다. 적어도 에스페타라 사람들은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잠재력이 현 가주의 그것을 상회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그것까지는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위원장 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클라디우스의 가신들은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사람들 아닙니까? 자세한 사유까지는 말을 해 주려고 하지 않더군요.”
“그렇겠지. 자신들의 어린 주인이 얼마나 뛰어난 지 자랑은 하고 싶지만 그렇다 하여 빌미를 주고 싶지는 않을 테니.”
“핵심 가신들이 아닌 단순 복역을 하는 인력이나 일반 섬 주민들을 통해서는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나… 그것이….”
“그것이 뭐 어쨌다는 건가? 왜 자네답지 않게 말을 하다 말지?”
“어… 뭐랄까요? 이 사람들이 전설이랑 목격담을 헷갈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법한 이야기들 뿐이라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쪽 루트를 통해 입수한 정보는 그 신빙성을 조금 더 검증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흐음….”
“하지만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을 제외하고 클라디우스 내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점유한 인사들의 증언만을 취합한다 해도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유독 깊은 빛을 머금은 위원장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뜨이기를 반복했다.
물론 소문이라는 게 과장되기 마련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티베리를 하늘 같이 떠받드는 가신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결과라면 마냥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위원장의 뇌리를 콕콕 찔러 오고 있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동향에 관한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몇 명이나 될까?”
“그 수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에스페타라는 외부인의 접근이 워낙에 힘든 장소고 클라디우스의 가신들 역시 사교계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위원장 님만큼이나 높은 자리를 꿰차고 앉은 분들 중에는 알고 계시는 분들 또한 있지 않을까요?”
“허허.”
“만약 그분들이 평소에 클라디우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말입니다.”
“차라리 그 친구들이 모르는 게 더 나을 뻔했어. 그러니까 자네 말은 그 뜻이 아닌가? 애초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거물들은 티베리의 아들이 가진 재능을 잘 알기 때문에 쉽사리 그 속을 떠보려 들지 않을 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은….”
위원장이 말을 흐리는 걸 목격한 요아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위원장이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해야 할 ‘소위 말하는 판을 뒤집는 힘’을 가진 거물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노리고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는 건 어정쩡한 힘을 가진, 그리고 오랫동안 클라디우스를 질투해 온 잔챙이들.
“아마 지금쯤 잔뜩 벼르고 있지 않을까요? 그들은 수십 년 전 티베리 님이 내린 판단을 폴리다고스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하고 있고 클라디우스의 고결함을 자신들에 대한 조롱이라고 믿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륙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명가이면서도 같은 귀족들의 미움을 사고 있는 클라디우스.
그리고 자신이 질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은 에스페타라의 기린아.
위원장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눈빛만큼이나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만간… 신입생 구획이 시끄러워지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