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26)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6)화(26/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26)
만약 누군가 나에게 암살자와 비 암살자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보법(步法)과 호흡’이라고 답해줄 것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기사와 격투가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능력자들 또한 고유의 스텝을 가지고 있으니 보법만으로 암살자 여부를 가리는 건 부정확한 판단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겠지.
하지만 전직 ‘암살의 신’으로서 단언컨대, 암살자의 걸음걸이는 여타의 마나 능력자들과는 그 궤가 달랐다.
기사나 격투가의 보법이 수련으로 얻은 성과라면 암살자의 보법은 그의 삶 자체라고나 할까?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암살자의 실력은 얼마나 완숙하게 걸음을 옮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평소 지론이 이러다 보니 전생의 나는 스스로의 보법을 갈고 닦는 것만큼이나 다른 암살자들의 몸놀림을 살피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고,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그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조금 전 인파 속으로 사라진 하굴 백작가의 기사들은 정체를 숨긴 암살자들임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스컬리, 대륙 서부의 페툴 사막을 근거지로 하는 암살단. 본래는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들을 습격하는 마적떼였으나 약 400여 년 전부터 암살업으로 그 영역을 확장한 개망나니들.’
그들의 정체가 암살자임을 간파한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그 소속까지 대번에 알아맞힐 수 있었냐고?
사실 이것 또한 나 정도 경력이 되는 베테랑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암살법이라는 건 특정 유파의 전통을 통해 계승되는 법.
그러다 보니 암살단의 보법에는 각 유파별 특성이 미세하게나마 배어 있기 마련이었고, 이 특성을 따라 역추적을 하면 소속을 유추해 내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현존하는 거의 모든 암살자들은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역추적을 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온 대륙을 전화(戰火)로 물들이려 했던 폭군’ 갈브레이드 3세의 목을 단신으로 따낸 바 있는 전직 암살의 신.
평범한 암살자들은 절대 볼 수 없는 일일지라도 나에게는 투명하리만치 분명하게 보일 따름이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는 놈들이니 본거지를 떠나 중부까지 온 건 그렇다 쳐도 문제는 왜 저놈들이 어울리지 않는 옷까지 입어 가며 어설픈 가장무도회를 하고 있느냐인데….’
물론 나도 새롭게 태어나기까지 한 마당에 굳이 전생의 동종업계 종사자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놈들의 밥벌이를 방해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스컬리 놈들이 백작가의 갑주, 그것도 폴리다고스 입학이 예정된 신입생 가문의 갑주를 입은 채 설치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 이대로 놈들을 방치하고 있다가는 나의 순조로운 폴리다고스 입학에 큰 장해가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델타의 시장을 찾아가 신입생 일행 중에 정체를 숨긴 흉악범들이 있으니 놈들을 체포하라고 알려주는 것. 그런데 과연 시장이 내 말을 믿어줄까?’
실제로 고발을 한다면 시장은 본격적인 행동에 옮기기 전 고발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요구하겠지.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서 ‘증거요? 수많은 살행으로 단련된 내 눈과 감각이 증거입니다’라고 한다면 시장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곧바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적당히 시간을 끈 후 몰래 폴리다고스에 연락을 해.
‘저기,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귀 아카데미에 입학이 예정된 신입생 중에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정해 보이는 학생이 있으니 입학을 재검토 해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라는 조언을 건넬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이 방안은 보류. 설령 시장이 클라디우스라는 이름값에 넘어가 모종의 조치를 취한다 해도 그 이후의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
스컬리는 변장에 능한 놈들.
저들이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놈들의 가면을 벗길 필요가 있었는데 이 항구도시의 시장에게 그 정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추후 상급 기관을 동원해 놈들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다 해도 그때쯤에는 사건 자체가 흐지부지해질 가능성이 커. 무엇보다 이걸 꼬투리 삼아 클라디우스가 정치적인 공작에 휘말릴 수도 있고.’
정석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 포기.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자력 구제뿐.
줄곧 치료술사 모드를 유지한 채 작동하던 뇌가 정말이지 오랜만에 암살자의 것으로 바뀌어 작동을 시작했다.
‘…일단 하굴 백작가가 이 문제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되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해. 백작이 스컬리 놈들을 고용한 후 변장을 시킨 건지, 아니면 백작가의 일원들 또한 장기말로 놀아나고 있는 것인지 여부에 따라 대응 또한 달라져야 할 테니까.’
―저기, 너 표정이 왜 그래?
최우선 행동 방침을 정한 바로 그때, 과자 봉투 속 털 뭉치가 가슴팍을 쿡쿡 찔러 왔다.
‘…응?’
―방금 되게 나쁜 놈 같았어.
역시 털 뭉치는 눈치가 빨랐고 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두 개째의 마늘 과자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내 표정이 어디가 어때서?’
* * *
“클라디우스 공자님, 소인은 하굴 백작님을 모시는 머피라고 하옵니다. 백작님의 명을 받아 본 가의 도련님을 수행하던 중 명을 받아 이리 방문을 하였사옵니다.”
“하굴 백작가의 인원이 여기는 웬일이지? 따로 선약을 한 기억은 없는데.”
“몬디 도련님께서 공자님께 이걸 전달하고 오라는 명을 내리셨사옵니다.”
숙소로 복귀를 했더니 처음 보는 손님이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봤던 놈들만큼이나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놈들과 같은 문양이 새겨진 갑주.
“몬디 공자가 나에게? 재미있군. 따로 인사를 나누거나 한 적은 없는데 무려 선물씩이나 준비해 주시다니.”
“도련님께서 다른 신입생 분들과 친목을 도모하고자 위해 준비하신 선물입니다.”
‘몬디 하굴’, 그러니까 여러모로 수상한 수행기사들을 데리고 이곳에 온 하굴가의 도련님이 준비한 선물은 다름 아닌 와인이었다.
“하굴 가의 농장에서 질 좋은 와인이 생산된다는 말은 들은 바 있지. 그런데 어떡하지? 난 경황이 없어서 마땅한 답례품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답례품이라니요. 황망한 말씀이시옵니다. 그저 몬디 도련님께서는 성의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고 계실 뿐, 애초에 대가를 바라고 준비한 선물이 아니옵니다.”
“…그럼 다른 신입생들도 이것과 같은 선물을 받았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다른 분들께서도 이미 수령을 하신 물건이니만큼 공자께서 부담을 느끼실 필요는 없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하굴 백작가의 도련님이 한곳에 집결한 동기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
이 구도 자체는 이상할 게 없었다.
하굴 백작가는 비록 폴리다고스의 산하 교육 기관에 자제를 밀어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반루트를 통해 입교를 해야 만하는 가문들 사이에서는 꽤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으니까.
스스로의 위세를 자랑하고자 하는 귀족 가문이 선물을 준비하는 일 역시 어색한 일은 아니었고, 하굴 가가 좋은 포도 농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와인 선물은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알겠네. 몬디 공자님께 내가 잘 마시겠다고 전해 주게.”
“알겠사옵니다. 공자님,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실은 매일 밤 옥상에 위치한 야외 연회장에서 몬디 도련님이 주최하는 연회가 열리고 있사옵니다. 도련님께서 클라디우스 공자님 또한 그 자리에 참석하셔 자리를 빛내 주셨으면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사옵니다.”
“…연회.”
“그렇사옵니다. 공자님. 오늘도 19시를 기해 연회가 시작될 예정이니 다른 일정이 없으시다면 공자님께서도 참석해 주실 것을 청해 올리는 바입니다.”
“알았어. 고려해 보도록 하지.”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 보겠사옵니다.”
달칵.
하굴 가의 수행기사 머피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복도 너머로 사라졌고, 놈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자마자 난 방문을 열고 들어와 곧바로 와인 병을 개봉했다.
뽀옹.
조르륵.
경쾌한 소리를 내며 사라진 코르크 마개와 우아한 출렁임으로 잔을 채우는 적빛의 와인.
―어머! 대낮부터 마시게? 난 우리 페이건이 이토록 술을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 오늘은 조금 취하고 싶군요.”
주륵.
“흐으음….”
꿀꺽.
달콤쌉쌀한 향을 머금은 채 입안을 맴도는 용액.
그중 절반은 삼키고 나머지 절반은 입에 머금은 채 가방을 열었다.
―얼레? 페이건, 술을 먹었으면 안주를 먹어야지. 왜 의약품이 들어 있는 가방을 열고 그래? 안주로 약 먹게?
북슬이의 질문을 무시한 채 난 재빨리 손을 놀렸다.
그리 크지 않은 가방에는 가문에서 제조한 여러 약품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것만 있으면 웬만한 검출지를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완성된 검출지는 모두 두 장.
그중 한 장에는 아직 병에 남아 있는 와인을 부어 보았다.
쪼르륵.
와인 본래의 색으로 물든 검출지.
나머지 한 장의 검출지는 입술로 가져가 내 입안에 남아 있던 와인을 적셨다.
―어머! 색이 변했네.
와인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보라색이 되어 버린 검출지.
―어! 뭐야! 분명히 같은 병에서 나온 술인데, 한 장은 변하고 한 장은 그대로네?
“침에 반응한 거야. 피해자가 머금기 전까지는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침을 만나 본색을 드러내는 거지.”
머금고 있던 와인을 마저 뱉은 후 입가를 꼼꼼히 닦아 냈다.
‘스컬리 놈들은 침에 반응하는 약물을 잘 사용했지. 이런 걸 마지막으로 목격한 이래로 100년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이놈들은 도무지 변하지 않는군.’
상황이 이래서야 추후에 일이 터진 후 피해자들이 남긴 와인 병을 조사한다 해도 유의미한 증거를 발견하기는 힘들 것이다.
자줏빛 용액 안에 몸을 숨긴 악마는 희생자의 입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결코 본모습을 보이지 않을 테니까.
‘여분의 선물은 몬디의 방에 보관되어 있을 테고 와인의 봉인 상태는 완벽했어. 그렇다면 하굴 백작은 몰라도 적어도 몬디 본인은 이 사건에 본인의 의지로 개입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
참으로 고마운 선물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몬디 놈이 손수 단서를 가져다 준 덕분에 스컬리 놈들을 목격한 순간부터 가장 궁금했던 의문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걸 이곳에 온 신입생 전원이 마셨다는 건데.’
아무래도 몬디라는 놈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범한 듯했다.
이곳에 집결한 신입생 전원을 한꺼번에 노리는 광역 타겟팅이라니, 도대체 뭘 노리고 이런 발칙한 짓을 벌이는 걸까?
―페이건! 이상한 걸 느꼈으면 바로 뱉어야지! 그걸 꿀꺽 삼켜 버리면 어떡하니! 그 와인 이상한 거 맞지? 해독약은 만들 수 있는 거야?
―우왕 너 방금 되게 멋있었어. 한 번에 척하면 척이라니, 지금까지랑은 다른 느낌으로 똑똑해 보이넹. 어떻게 안 거야? 그것도 티베리한테 배운 거야?
대조적인 반응을 보이는 둘.
라무테 님과 북슬이를 덥석 집어 나란히 어깨 위에 올려놓은 후 물었다.
“털 뭉치야, 지금부터 가정을 한번 해 보자고. 만약에 네가 연회를 주관하는 입장이야. 그렇다면 손님들이 먹고 마실 음식 또한 당연히 준비해야겠지?”
―당연하지! 음식이 없는 연회가 말이 돼!
“좋아. 그럼 두 번째 질문. 음식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주가 되는 손님을 수행하고 온 사용인들에게도 음식을, 그것도 되도록 푸짐하게 준비하는 게 좋겠지?”
―응! 사람을 불러 놓고 먹는 거 가지고 쪼잔하게 굴면 난 그것만큼 보기 싫은 게 없더라! 음식은 넉넉하게 준비해야 돼. 연회에 참석해 준 모든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마실 수 있도록.
“그리고 조금 전에 만난 머피라는 놈이 분명히 말했어. 몬디가 주최하는 연회가 매일같이 열리고 있다고.”
―응. 그러고 보니 이 숙소에 있는 사람들 중에 네가 제일 마지막 도착자인 것 같은데. 그럼 여기 있는 다른 신입생들은 그 연회에 벌써 며칠째 참석해서 먹고 마시고 했겠네?
“그렇다면 이곳에 온 신입생들을 수행하는 인원들 역시 각자의 주인들이 먹은 것과 비슷한 음식을 계속해서 먹고 마셨다고 생각하는 게 옳겠지?”
―응, 응. 며칠씩이나 이어지는 연회라니, 우왕 걔네들은 좋겠당!
그 연회라는 걸 한 번도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진 셈이었다.
‘그러니까 와인은 최소한의 보험이고, 본편은 매일같이 벌어진 연회라 이건가?’
더이상 와인 병에 숨어 있는 악마가 문제가 아니게 된 상황.
이번에는 반대쪽의 라무테 님에게 고개를 돌린 후 질문을 던졌다.
“라무테 님, 이번에도 가정입니다. 라무테 님은 현재 공용 숙소에 숙박을 하고 있고 같은 건물에는 꼭 처치해야만 하는 인원들 수십 명 또한 머무르고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정도. 목표 전원을 처치하기 위해 라무테 님이라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에엥? 으… 너무 끔찍한 가정이라 깊게 생각하기는 싫은데… 음,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역시 목표들이 잠든 시간을 이용하는 거? 아무래도 깨어 있을 때보다는 잘 때가 여러모로 편리할 테니까.
“저랑은 생각하는 바가 조금 다르군요.”
―음… 그럼 페이건이라면 어떤 방법을 동원할 건데?
“저라면 무조건 식품과 음료를 이용하는 방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왜?
“자고 있는 상대를 습격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수면 시에는 누구나 최소한의 대비를 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처리를 해야 하는 대상이 다수라면 필요한 과정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최악의 경우 목표를 완수해 내기 전 소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고려를 해야 할 테구요.”
―으음…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
“목표 대상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준비한 식품을 먹일 수 있고, 원하는 타이밍에 체내에 잠복 중인 약품의 효과를 확실히 발동시킬 기폭장치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 이상으로 효율적인 방법은 없지요.”
질문의 형식을 취했다만 사실은 스스로의 생각을 가다듬기 위한 과정이었기에 모든 것이 정리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페이건, 아무래도 일이 심상치가 않은 모양이네?
―와! 대륙에 나오자마자 이런 일이, 너도 참… 대단하다. 어쩌면 이것도 오르페우스가 노린 건가?
조금씩 표정이 무거워지는 둘을 한 차례씩 조물조물해 준 후 도출해 낸 결론을 들려 줬다.
“아무래도 오늘 밤, 그 몬디라는 놈을 한번 만나 봐야 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