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3)화(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3)
쿵.
맞닿아 있던 묵직한 책상 의자가 돌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페이건, 본격적인 수업 시작을 하기 전에 이 아비는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구나.”
그리고 그 위로 울려 퍼지는, 조금 더 우렁우렁한 아버지의 목소리.
“너는 힐러, 그러니 치료술사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가업을 이어나가야 할 후계자로서 받아야 할 수업 첫날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만 5살짜리 꼬마를 데리고 첫날부터 강행군을 이어나갈 수는 없는 일.
아마 아버지께서는 수업 첫 번째 날을 클라디우스의 후계자로서의 마음가짐 수양을 위한 정신교육 시간으로 예정한 듯싶었다.
“치료술사란 생명을 구함으로써 뜻을 실천하는 이들이라 생각합니다.”
무심결에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는 걸 꾹 참고 답을 줬다.
전생에서는 생명을 수확함으로써 존재 의의를 발견했던 이 내가, 생명의 구원을 입에 올리고 있다 하니 그 아득한 괴리감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던 것이다.
“그래, 좋은 대답이다. 모름지기 힐러라면 생명을 구하는 것에서 보람을 찾을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 페이건, 너는 오늘부터 클라디우스의 후계자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오늘 수업의 ‘핵심 교보재’를 주섬주섬 펼치기 시작했다.
흑빛 비단 보자기 안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수백 개의 바늘.
그리고 그 바늘 상단에 위치한 목걸이.
망토 때문에 보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품 안쪽에 저 목걸이와 꼭 닮은 물건이 자리잡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유독 선명한 빛이 인상적인 한 쌍의 목걸이의 이름은 각각 ‘아후라’와 ‘마즈다’.
클라디우스 가문의 ‘가주’와 ‘후계자’라는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말고 마즈다를 목에 걸어 보려무나. 마즈다가 너와 잘 어울릴지 이 아비도 퍽 궁금하구나.”
“아버지,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벌써 마즈다를 목에 걸어도 될까요?”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쉽사리 마즈다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마즈다가 클라디우스의 신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 영롱한 광채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타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클라디우스 또한 비전처럼 전해 내려오는 마나 수련법을 가지고 있다.
클라디우스를 대륙 제일의 의술 명가로 우뚝 서게 만들어 준 그 독문 수련법의 이름은 ‘앙겔루스’.
그리고 ‘아후라’와 ‘마즈다’는 착용자의 앙겔루스 습득 속도를 배가시키는데 탁월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각각 가주와 공인받은 후계자가 나눠 보관하는 것이 클라디우스의 율법이었다.
따라서 클라디우스의 현 가주인 아버지가 아후라를 지참하고 다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클라디우스의 후계자로서 공인 받지 못한 상황이었고, 지금 어머니의 뱃속에서는 두 달 뒤면 세상에 태어날 여동생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훨씬 앞서서 마즈다와 접촉하는 것은 훗날 나와 공정한 후계자 경쟁을 벌여야 할 동생들에게 불공평한 처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망설이게 한 것이다.
“하하! 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네 동생에게 미안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라도 든 것이냐?”
그리고 나의 속내를 짐작한 아버지는 다시 한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철도 들지 않은 다섯 살짜리 꼬마가 공정한 후계자 경쟁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일견 지나치게 조숙해 보일 수도 있었으나 클라디우스쯤 되는 명문가에서는 아주 드문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때가 오거든 네 동생에게도 네가 받은 것과 같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니 말이다. 공정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마즈다는 유능한 힐러를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양성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보물이니 말이다. 그런데 네가 생기지도 않을 불공정을 근거로 마즈다의 은총을 거부한다면 그것 또한 애석한 일 아니겠느냐?”
“하오나 아버지….”
“괜찮다. 그리고 어차피 누가 자신의 주인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닌 마즈다의 몫. 만약 네 동생이 너보다 적합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마즈다가 그 사실을 늦지 않게 알려 줄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망설이는 나를 대신해 마즈다를 직접 집어 들어 내 목에 걸어주셨고.
우웅.
잠시 후, 마즈다는 한층 더 선명한 녹색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아버님은 한층 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나! 첫날에 녹색이라니! 도련님, 정말 축하드려요!”
마즈다의 녹색 빛이 그리도 반가웠던 걸까? 수십 년간 클라디우스를 보필하며 연륜을 쌓아온 유모는 눈물까지 글썽여가며 첫 만남을 축하했고 아버지는 거칠지만 유쾌한 손놀림으로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으셨다.
“허허! 봐라, 마즈다도 네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질 않느냐? 그리고 그곳에 있는 침(針)도 잘 챙겨 두거라. 적어도 10년 이상은 너와 동고동락을 해야 하는 친구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결국 나는 마즈다를 목에 건 채로 아버지가 준비해 준 비단보자기 안의 금속 바늘을 신중히 갈무리했다.
비단 밖으로 만졌음에도 또렷하게 전해지는 싸늘한 느낌, 생명을 구하는 데 더없이 유용한 ‘날카로운 친구’와의 첫 만남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예리하게 다가왔다.
“자, 그럼 마즈다와 첫 만남도 가졌으니 본격적으로 앙겔루스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해야겠지. 페이건, 앙겔루스는 그 습득 정도에 따라 각각의 단계가 나뉜다. 스스로의 경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심장을 감싸는 마나 고리의 수로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문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독문 마나 수련법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수련 정도에 따라 심장을 감싸는 ‘마나 고리’의 수가 늘어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 아직은 네가 너무 어리고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지 못한 탓에 하나의 고리도 완성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네가 배움을 이어 나가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곧 너와 미래를 함께해 나갈 동반자를 얻게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 그래야지. 봐라, 마즈다도 너와의 만남이 즐겁다고 이렇게 기뻐하고 있으니 오래 지나지 않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 목에 걸린 이후로 녹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마즈다의 모습이 그토록 반가웠던 걸까?
아버지는 내 머리카락과 마즈다를 교대로 쓰다듬으며 재차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일단은 앙겔루스를 익히기 위한 기본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숙달하기 위해 암기해야 할 호흡법을 가르쳐 주마.”
그 후로 두 시간여에 걸쳐 아버지는 앙겔루스의 기초사항을 가르쳐 줬고, 난 그 자상한 인도 덕분에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앙겔루스를 체감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이용해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지만 일단 그건 참아두기로 했다.
제아무리 그 상대가 아버지라 해도 이 타이밍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꺼내 놓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뿐더러 내가 익혀야 하는 건 앙겔루스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아르카. 전생에 한 번 익혀봤던 호흡법이라 해도 아르카의 수련 과정을 쉽게 볼 수는 없어. 클라디우스의 앙겔루스 역시 빼어난 호흡법이기는 하다만 그 성능과 효력만을 놓고 따지자면 고대왕국의 유산인 아르카가 더 우월해. 아르카를 익히기 위한 여력을 남겨 두기 위해서라도 벌써부터 무리를 할 필요는 없어.’
나는 내가 가진 여력의 절반 이하를 사용해 앙겔루스를 익혔지만, 아버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듯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도가 빨라. 지금 같은 속도로만 배워나간다면 오래지 않아 큰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바윗덩이 같은 손을 손수 뻗어 땀으로 가득한 이마와 얼굴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후우….”
“도련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여기 시원한 음료를 준비했습니다. 정말, 도련님의 의젓한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쇤네는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로 그렁그렁한 눈동자를 한 유모가 내미는 냉차를 받아 마시고 심호흡을 했더니 온몸이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일단 지금 단계에서 내가 너에게 직접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이니라. 나머지는 각 과목을 담당하는 가문의 인사들이 네게 가르침을 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일단은 앙겔루스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니 너무 많은 과목을 배우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구나. 일단 한 과목 정도만 정해 앙겔루스와 병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느 것을 가장 먼저 배우고 싶으냐? 이 문제에 한해서는 네 뜻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하마.”
애초에 클라디우스의 후계자 강습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가르쳐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주가 후계자 후보생에게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은 ‘클라디우스의 근간’을 이루는 앙겔루스가 전부.
나머지 각종 치유마법이나 치료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 등은 각 과목을 담당하는 가문 내의 인사가 강습을 했다.
이후 가주가 담당하는 책무는 후보생의 앙겔루스를 다듬어 주거나 벽 앞에 선 후보생들에게 발상의 전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그들의 경지를 가늠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깨달음의 기회는 타인이 줄 수 있지만 결국 스스로를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
이라는 것이 클라디우스의 율법이었으니까.
“아버지, 그렇다면 저는 이걸 공부하고자 합니다.”
“인체… 구조학?”
가문의 율법에 따라 아버지가 주신 기회, 난 망설임 없이 가장 처음으로 배울 교과목을 정했고, 그 선택을 확인한 아버지의 눈동자에 이채로운 기운이 맺혔다.
“네 선택을 존중한다 하였으니 딱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구나. 치료술을 처음 접하는 학생에게 가장 먼저 배우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면 보통은 ‘치료주문’이나 ‘회복의 인’을 맺는 법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인데 ‘인체 구조학’이라니….”
인체 구조학.
자연과 교감하고 신비로운 마나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여타의 과목과는 달리 ‘딱딱한 암기’와 ‘지독하리만치 집요한 반복 학습’이 요구되는, 지루하고도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학습과목.
아버님이 내 선택에 깜짝 놀라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인체 구조학 역시 훌륭한 치료술사가 되기 위해서 꼭 익혀야 하는 학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네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인체 구조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마나를 활용하는 강습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인체 구조학으로 하겠느냐?”
“네. 아버지.”
“앙겔루스와 최초 병행 학습을 할 과목으로 인체 구조학을 선택해 버리면 네가 기껏 익힌 앙겔루스를 시험해 볼 기회가 당분간은 없어질 텐데도?”
“괜찮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네 좋을 대로 하거라.”
아버지는 내 선택을 존중해 주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그대로 지키셨고, 결국 내 최초의 학습과목은 ‘인체 구조학’으로 정해졌다.
“내가 돌아가는 데로 인체 구조학을 담당하는 ‘리쳐드’에게 연락을 해 놓을 것이니 내일 중으로 그 친구가 너를 찾을 것이다. 하하!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아직은 어린 네가 인체 구조학을 선택한 이유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구나. 페이건, 하고 많은 과목 중에 인체 구조학을 선택한 이유를 이 아비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느냐?”
물론 내가 인체 구조학을 첫 번째 과목으로 선택한 데에는 확고하고도 분명한 까닭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님께 ‘마나 수련법에 관한 내 여력’을 전부 다 보여 주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이유로.
그 선택의 근거를 지금 당장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질문이 버겁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럴 경우를 상정해 미리 모범 답안을 준비해 뒀으니까.
나는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친 채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인체 구조학을 첫 번째 과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육신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