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3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34)화(3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34)
“후우….”
눈을 감고,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몸 안을 돌아다니는 청명한 기운에 집중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단 한 곳도 빼놓지 않고 육신 전체를 타고 흐르는 시원한 기운.
꿈틀.
청명한 기운이 복부 부근을 지날 무렵 돌연 그 흐름이 빨라졌고 내 미간 역시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갑작스러운 흐름의 변화는 기운이 통과하는 통로 어딘가에 결함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고, 통로의 결함은 자칫하면 흐름의 폭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괜찮아. 당황하지 마.
일단 순환을 멈추고 잠시 상황을 살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바로 그때, 동글동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덕분에 그 아이들도 조금 흥분한 것뿐이야. 너와 함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생각에 신이 나서 그런 거니까 괜히 억누르려 하지 말고 내키는 대로 달리게 놔줘.
체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한 정확한 상황 파악.
―달리고 싶은 만큼 마음껏 달리고 놀 수 있게 모든 통로를 개방한 후 아이들이 갈 길을 열어 주면 돼. 그럼 실컷 달릴 만큼 달린 후 곧 안정을 찾게 될 거야.
최초의 순간을 제외하고 이 녀석의 판단이 빗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나는 조언대로 몸에 힘을 뺀 채 흐름의 통로를 열어 줬다.
―거봐, 금방 괜찮아졌지?
상황 판단부터 그에 대한 대처까지. 이번에도 그야말로 완벽했다.
십여 분 간 내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뛰놀던 앙겔루스는 이내 본연의 침착함을 되찾은 뒤,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인 내 심장으로 돌아와 견고한 고리를 만드는 것으로 아침 산책을 마쳤다.
―음, 좋아! 새로운 곳에 온 게 좋은 자극이 된 것 같아. 이대로만 된다면 조만간 하나의 고리를 추가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털 뭉치의 의기양양한 목소리.
‘헤헹, 이번에도 내 판단이 정확했지! 자, 얼른 그 입을 열어서 날 존경한다고 말해!’
라는 기운이 가득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조언부터 자극을 받은 앙겔루스가 조금 더 강해졌다는 진단까지 북슬이의 판단은 완벽했던 터라 반박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매일 큰 도움을 주는 게 고맙기는 한데, 이 위치는 좀 바꿔도 되지 않을까?”
―싫어.
어떻게든 녀석의 득의양양한 얼굴에 흠집을 주고 싶었던 나는 머리 위로 팔을 뻗어 봤지만 북슬이는 그 동글동글한 몸통을 민첩하게 굴려 가며 손을 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침마다 굳이 널 내 머리 위에 올릴 필요는 없어. 저기 침대 위, 아니 하다못해 저기 건넛방에 가 있어도 너는 내 상태가 잘 보이잖아?”
―싫어.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가 제일 안정이 된단 말이야.
구태여 머리 위에 올라가 내 상태를 봐주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털 뭉치.
아침 수련을 할 때마다 이 녀석이 클라디우스의 수호신 중 하나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다가도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앙탈을 부리는 걸 볼 때면 그 생각이 깨어지고는 한다.
―가만 그러고 보니까 요 녀석! 하늘 같은 스승님에게 자꾸 말이 많아.
결국 깜찍한 이빨을 드러내 내 두피를 앙 하고 깨물어 버린 북슬이.
“스승님은 개뿔. 차라리 비상식량이라고 하면 납득이라도 되지.”
―저기, 두 사람 아침 수련 끝났어?
깨물깨물에 대한 대가로 나도 녀석의 콧등에 딱밤을 먹여 주기 위해 검지를 치켜든 바로 그때 기대감에 들뜬 라무테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끝났습니다. 곧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무테 님의 두근두근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1인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넓고 화려한 숙소 정경이 보였다.
이 숙소는 폴리다고스의 영접관 3층에 마련된 곳으로 정식 기숙사가 배정될 때까지 나에게 할당된 임시 숙소였다.
지금쯤 숲속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새우고 있을 숲속의 동기들에게 절로 죄책감이 느껴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숙소.
기다림 없이 성벽을 통과했던 것처럼 이것 또한 학년 대표 후보들에게 주어진 특권의 일종이겠지.
‘그나저나 아버님께서 특권에 익숙해지는 삶을 경계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하루 만에 그 당부를 어기게 되는군, 이게 다 팩셰르 때문이야.’
침실을 빠져나와 으리으리한 나무 문 두 개를 지나서야 탕비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캐모마일과 앙구타 산 생두, 어느 쪽으로 준비 할까요?”
―음. 둘 다. 아니 괜찮으면 거기 준비되어 있는 거 다 만들어 줘도 괜찮아.
달그락달그닥.
―흐흐흥♪.
물을 데우고 가루차를 덜어 놓는 일련의 행위를 지켜보며 라무테 님은 연신 콧노래를 불렀다.
벨제키엘이 과자에 환장한다면 라무테 님은 차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어젯밤 숙소 탕비실에 배정된 여러 종류의 차를 보고는 화색을 한 바 있었다.
―어머나! 이거 꼭 마셔 보고 싶었던 건데.
에스페타라에 있을 때, 내 나름대로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근검한 삶을 모토로 하는 섬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이곳의 편의 물품이 훨씬 더 풍족했으니까.
“이건 라무테 님이 드실 차, 그리고 이건 우리 롤빵이 아침밥.”
큼지막한 쟁반 두 개를 준비해 한쪽에는 찻잔을 가득, 나머지 쟁반에는 과자를 가득 부어 놓은 후 두 번째 훈련에 들어갔다.
“후우….”
조금 전에는 몸 안의 흐름에 집중을 했다면 이번에는 근육 줄기, 세포 하나하나에 신경을 집중해 몸을 움직였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불가능할 것만 각도와 모양을 그리며 움직이는 팔다리.
입에 과자를 가득 문 채 이 모습을 지켜보던 북슬이가 입을 열었다.
―그 체조라는 참 꾸준하게도 하네.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하루도 안 빼먹었잖아. 저기 그거 안 지겨워?
“꾸준히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이델타에서 늑대인간을 그렇게 쉽게 해치우지도 못했을걸. 단련이라는 건 할 수 있을 때 충분히 해 둬야 하는 법이야.”
롤빵이는 내 움직임을 체조라 명명했지만 사실 이건 체술을 연마하는 동시에 아르카를 단련하는 일이기도 했다.
심장에 고리 형식으로 형성된 일반 마나 호흡법과는 달리 뼈와 근육에 몸을 숨긴 아르카는 이런 식으로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단련하는 편이 더 효과가 컸다.
‘…그런데 어째 점점 더 아르카가 요구하는 수련양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3단계의 끝에는 언제쯤에 다다를 수 있을까?’
아직도 3단계는 그 끝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지만 딱히 초조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르카는, 나라는 그릇의 크기 자체가 늘어난 이상 추후 그 그릇을 가득 채웠을 때의 보상 역시 더 풍족해질 테니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언젠가 찾아올 4단계의 시작을 기다리며 3단계라는 그릇을 채우는 물줄기의 세기를 더하는 것뿐.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이마를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카펫을 적실 무렵에야 아침 단련은 오롯이 끝이 났다.
“아, 시원해. 역시 땀은 아침에 흘려야 한다는 말이지.”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난 뒤 폴리다고스에서 지급된 훈련복을 최대한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성 밖에서 고군분투 중인 동기들에게 첫인사를 할 수도 있는 날, 깔끔하게 보여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렇게 기를 쓰고 들어오려 했던 성벽을 하루 만에 나서야 하다니. 이래서 세상일이란.
“어쩔 수 없지. 이게 오르페우스 님의 뜻이라면 따르는 수밖에.”
또다시 머리 위로 날아든 털 뭉치의 위치를 어깨로 바꿔 놓은 후 마즈다의 수정을 가볍게 두드렸다.
‘여왕의 뿔.’
수정의 표면에는 다음 페이지를 읽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과 해당 물품을 구할 수 있는 장소가 떠올랐고.
‘외곽 야영지.’
목표장소를 다시 한 번 되새긴 후, 가뿐한 발걸음으로 그곳을 향했다.
* * *
“저거… 페이건 클라디우스 맞지?”
“응. 입고 있는 훈련복에 학년을 상징하는 견장이 없는 걸 보면 신입생인데, 아카데미에 먼저 들어간 신입생들 중에 저렇게 까만 머리는 한 명밖에 없잖아?”
“뭐야. 누구 빽인지 모를 특혜를 받아서 안에 들어갔으면 시간이 될 때까지 웅크리고 있을 것이지 밖에는 왜 나온 거야?”
야영지에 나타난 내 모습을 목격한 동기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호기심과 질시를 주재료로 여기에 약간의 적개심을 더해 한껏 버무려 낸 시선.
벌써 한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났음에도 마치 교대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동기들은 은근슬쩍 내 주위로 몰려와 시선을 뿌려 댔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교무위원회의 허가를 얻었다 하니 견학인지 조사인지 뭔지 하는 걸 막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곳의 네 동기들은 벌써 일주일이 넘게 이곳에 머물며 생존 활동을 벌이고 있어. 그러니 혹시라도 그들을 자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구나.”
나를 경계하는 건 동기들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신입생들을 인솔하는 교관들 또한 나를 예의주시하는 건 마찬가지.
―뭐야? 저 꼬맹이들은 네가 질투 나니까 저렇게 째린다고 해도 저 아저씨들은 왜 너한테 떽떽거리는 건데?
‘저 사람들은 늑대인간을 때려잡은 것으로 분에 넘치는 명성을 얻은 내가 한껏 비대해진 자의식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곳까지 내려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나를 보는 눈이 뾰족한 것도 당연하지.’
동기들과 교관의 시선을 사뿐히 흘려 넘긴 채 난 나무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오르페우스의 일기장이 원하는 건 ‘여왕의 뿔’.
뿔을 따기 위해서는 여왕을 찾아야만 했고 여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가장 달콤한 수액을 간직한 나무를 찾아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오르페우스가 말한 그 여왕이라는 건 도대체 뭐야?
‘풍뎅이.’
―에엑! 풍뎅이! 그 왜앵 하고 날아다니는 그 풍뎅이?
‘응. 그런데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 풍뎅이를 몇천 배 확대한 크기의 풍뎅이라고 생각하면 돼.’
―헤에, 이 숲에 그렇게 커다란 풍뎅이가 있어?
‘그래. 그것도 수천 마리 이상이 무리를 지으며 살고 있지. 여왕은 그 풍뎅이를 다스리는 지도자 같은 존재고.’
―흐흐 풍뎅이가 여왕이래. 풍뎅이 여왕님 흐흐, 라무테 너도 웃기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배꼽을 잡고(앞발이 짧은 탓에 정확히 배꼽까지 닿지는 않는다) 깔깔대는 북슬이를 뒤로 한 채 다시 한 번 주변 나무를 살폈다.
‘역시… 여왕을 품을 만한 나무는 초입부에 없어. 숲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 하나?’
통칭 ‘시작의 숲’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고, 신입생들이 올망졸망 뭉쳐 있는 해당 지역은 출발점에 불과했다.
자고로 초입과 여왕이 머무르는 궁전은 어울리지 않는 법.
나는 교관들의 눈을 피해 조금씩 조금씩 숲 안쪽으로 녹아 들어갔다.
조금만 더 걸음을 이동하면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가득 찬 또 하나의 무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안 돼! 그만둬! 교관님들께서 나무에 손상을 내면 안 된다고 그랬잖아!”
“되게 시끄럽네. 교관님들이 이곳까지 들어와서 이런 나무때기 하나하나 살필 정도로 한가한 줄 알아. 너만 주둥이 닫고 있으면 아무도 눈치 못 채!”
그런데 십여 분 정도 걸음을 옮겼을 무렵, 고요한 생명의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기척을 숨긴 채 도착한 소리의 진원지.
그곳에는 건장한 체구를 가진 한 무리의 왈패들, 그리고 그에 맞서고 있는 아담한 체구의 안경 소년이 있었다.
“여기 있는 나무가 그냥 평범한 나무인지 알아! 이 나무는 파토플라시 나무란 말이야. 이 나무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야생동물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마구잡이로 껍질을 벗기면 이 나무가 죽어 버린다고! 그렇게 되면 야생동물들도 살아갈 방도를 잃게 돼!”
“이 새끼가 진짜! 야 너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장작 태웠잖아!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착한 척이야! 역겹게!”
“틀려! 내가, 아니 우리들이 사용한 나무는 야영지 초입 부분에 위치한 나무들. 그것도 말라 죽은 나무의 잔가지만을 사용했어! 너네가 껍질을 벗기고 있는 파토플라시 나무와는 완전히 달라. 그리고 교관님들께서 몇 번이나 말씀하셨잖아. 입구를 벗어난 곳에 있는 생목은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연구 자산이니까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절대 없게 하라고!”
“아, 이 새끼 진짜 말 많네!”
“너네는 지금 생목을 훼손하지 말라는 교관님의 지시 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폴리다고스의 소중한 연구 자산을 무단으로 훼손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당장 그만둬!”
왈패들의 손에 들린 단도와 껍질이 벗겨진 채 앙상한 속살을 드러낸 파토플라시 나무.
그리고 나무와 왈패들 사이에 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안경 소년.
―어머! 쟤네들 좀 봐. 하나, 둘, 셋, 넷. 자그마치 네 명이서 자그마한 아이 하나를 둘러싸서 뭘 하는 거야? 저 깡패 같은 애들은 손에 칼은 왜 또 들고 있는 건데?
‘껍질을 벗기고 있는 겁니다. 저기 있는 나무의 이름은 파토플라시. 보아하니 저 덩어리들이 나무를 훼손하고 수액을 채취하려는 광경을 목격한 안경 꼬마가 그걸 막아서고 있나 보네요.’
―나무의 수액은 왜?
‘파토플라시의 수액은 야생동물을 유인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거든요. 아마 매번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는 것에 지친 저 덩어리들이 수액을 이용해 손쉽게 식량 조달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흐응, 생긴 거는 멍청한 멧돼지 같은 놈들이 저 나무에 그런 효능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대?
‘저 덩어리들 복장을 봐. 용병 길드 소속의 유학생들이잖아. 용병들은 야외생활을 자주 하다 보니 저런 지식에 해박한 경우가 많아. 저 꼬마들도 아마 자신들의 스승에게 배웠겠지.’
라무테 님과 롤빵이에게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상황은 한 층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말하는 거야. 이 이상 추가적인 훼손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나도 교관님께 이 사실을 고지할 수밖에 없어.”
결국 힘으로는 용병 왈패들을 당해 낼 수 없었던 안경 소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고.
“이 새끼가 진짜!”
껍질을 벗기려던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안경 소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안경 소년의 얼굴만 한 주먹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아까부터 귀찮게 구는데 그 주둥이가 확 뭉개진 다음에도 지금처럼 나불댈 수 있을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