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39)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39)화(39/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39)
물론 봉오리를 오므린 꽃을 개화시키는 게 가능한 마법사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인위적인 빛과 열을 이용해 꽃의 감각을 속이는 것이 전부.
내재된 생명력을 충만하게 채워 꽃송이가 스스로 피어나도록 만드는 게 가능한 마법사는,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없었다.
이건 이미 마법이 아닌 다른 영역의 문제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게 연마된 내 감각은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마즈다에 자리를 잡은 녹색의 빛이, 내가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그 기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드루이드? 오르페우스가 드루이드였다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 조금 전,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 단어를 다시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소나무 가지 끝에 맺힌 이슬과 호흡하고, 풀잎 하나하나에 서린 위대한 법칙을 노래하며, 어머니의 대지 위에서 영위하는 모든 삶을 축복함으로써 생명의 기운을 북돋는 대자연의 시인.
‘드루이드, 잊힌 고대왕국의 현인(賢人).’
사실 일전에 모데나스에서 목격한 봉인을 통해 오르페우스가 고대왕국과 어느 정도 인연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대왕국에서 기원한 봉인술을 사용할 줄 아는 것과 고대왕국의 정수 그 자체인 드루이드의 비전 마법을 다루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 아무래도 오르페우스에 관한 예상은 크게 수정해야 할 듯싶었다.
오르페우스의 경지는 단순히 고대왕국의 마법에 조예가 있다라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드루이드는 고대왕국의 수호신과도 같던 존재. 그들이 사용하던 비전을 구사하고 더군다나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봉인해 놓을 정도라면 이곳에 있을 당시의 오르페우스는 이미 한 사람의 드루이드였다고 보는 게 옳아.’
제일 처음에는 그저 유서 깊은 의술 명가의 시조쯤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오르페우스는 위대한 모험가였고, 탁월한 검사였으며, 지금은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고대왕국의 신비를 꿰고 있는 현인이었다.
클라디우스의 가주라는 건 그를 부분적으로 드러내는 극히 작은 파편에 불과할 뿐.
나는, 아니 이 세상은 오르페우스 클라디우스라는 인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오르페우스는 뭘 하고 싶었던 거지?’
오르페우스에 대한 경외감이 커져만 갈수록 의문 또한 깊어져만 갈 뿐이었다.
‘오르페우스가 말한 그 못다 한 꿈이라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이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치료술사였으며, 본 실력을 숨긴 탁월한 투사였고, 생명력을 다루는 드루이드였던 데다, 이곳 폴리다고스에도 갖가지 장치를 마련해 뒀을 정도로 뛰어났던 오르페우스.
그런 오르페우스조차 자신의 손으로 끝맺지 못하고 후손들에게 넘겨야만 했던 꿈.
불현듯 그 꿈에 관한 갈증이 느껴졌고, 무섭게 몰아치는 갈증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최대한 천천히 마즈다를 목에 걸어야 했다.
―저기, 페이건. 그 목걸이 안에 있는 반짝이는 빛이 저 꽃 피운 거 맞지? 다른 거에도 한번 해 봐. 응? 나 다른 데에도 되는지 궁금하단 말이야.
“이렇게?”
―하아아앙.
이 안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속 편한 소리를 하는 롤빵이에게 빛을 비춰 줬더니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삽시간에 축 늘어져 버렸다.
―흐으으응 대체 뭐야앙? 이 늘어지는 기분은.
좌우로 뻗은 팔다리, 깔개처럼 책상 위에 바짝 붙은 오동통한 몸통.
그야말로 노릇노릇 구워진 롤빵 같은 모양을 한 채 바닥에 엎드린 북슬이의 입에서는 연신 노곤노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페이건! 벨제키엘이 왜 저러고 있는 건지….
“라무테 님도 좀 해드릴까요?”
―아앙!
곧바로 마즈다의 방향을 바꿨고 두 번째 희생자의 반응 역시 롤빵이와 다르지 않았다.
―나른해져어… 버렸어엉.
북슬이와는 달리 성실하기 그지없는 라무테 님마저 한방에 녹다운시키는 강력한 위력.
―나 이대로 잠들면 정말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앙.
―어쩌지, 10년 묵은 피로까지 싹 풀리는 느낌이야. 너무 기분이 좋아서 꼼짝도 하기 싫어.
희생자들의 입을 통해서 연신 튀어나오는 증언과 급격하게 좋아진 둘의 혈색을 보아하니 효과를 의심할 필요는 없는 듯했다.
‘식물한테만 효과가 있는 건 아닌 모양이군. 이 둘한테도 효과가 있을 정도면 거의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부작용은… 후우, 마나 손실이 꽤 심하군.’
급격하게 마나를 사용한 탓일까? 미미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얼추 계산해 보니 고리에 축적해 둔 마나의 3분의 1 정도가 소모되었다.
‘내가 사용한 횟수는 두 번. 세 개의 마나 고리에 저장된 마나 3할을 사용해서 두 번이라… 아주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는 없겠는걸.’
물론 마나의 사용량이 크다 해서 드루이드 비전 마법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포션이나 치유주문과는 궤를 달리하는 ‘근원적이고 즉각적인 회복수단’을 확보했다는 점만으로도 오르페우스의 선물은 무척이나 유용했다.
‘실전에 돌입한다면 틀림없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거야. 결국 문제의 주된 원인은 드루이드 비전을 마음 편히 사용하기에는 내 마나가 부족하다는 점에 있어.’
마나통을 크게 늘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
더욱더 수련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즈다를 살피고 있으려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능성이 있었다.
‘어쩌면… 이런 것도 가능할지도.’
우우웅.
마즈다에 마나를 주입하자 오르페우스의 비전 마법이 다시금 빛을 발했고, 난 다시 한 번 조금 전 그 화분을 비췄다.
드루이드 비전 마법의 힘으로 활짝 피어난 꽃의 이름은 ‘반가시’.
이름 그대로 1년에 절반은 줄기에 가시가 있고 나머지 절반은 가시가 없는 다년생 모종이었다.
현재 계절은 초봄, 반가시의 생리대로라면 지금은 가시가 없는 게 맞았다. 하지만.
삐주죽.
‘역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녹색 빛으로 흠뻑 적셔진 반가시의 줄기에서는 유독 건강하고 굳센 가시가 돋아나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드루이드 비전 마법은 단순히 생명력을 촉진 시키는 것만 가능한 게 아니라 식물의 성장 및 움직임을 내 뜻대로 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대왕국 전설 중에 도시를 침략해온 마룡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대한 드루이드가 가시덩굴을 불러 내 마룡을 휘어 감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마냥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정말로 있었던 일일지도 모르겠어.’
물론 나는 정식 수련을 받은 드루이드가 아니고 오르페우스의 힘을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한 만큼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거대한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전직 암살의 신’ 관점에서 보건, 아니면 치료술사 관점에서 보건, 이 능력은 아주 훌륭한 히든카드가 될 가능성이 컸다.
제아무리 주의 깊은 성품의 적이라 해도 설마 풀과 나무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무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테니.
‘생각해 보면 얄궂은 일이군. 전생에서는 생명의 불꽃을 꺼뜨리는 일을 업으로 했던 내가 이번 생애에서는 생명력의 근원을 다루는 힘을 얻게 되다니.’
운명이 인도한 불가사의한 섭리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지어졌고, 그 모습을 본 구워진 롤빵이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웃엉? 흐흥, 난 지금 기분 좋은데 너도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엉?
“그냥 별 이유 없어. 나는 원래 잘 웃는 편이잖아?”
―헤엥, 거짓마아알.
* * *
뚜벅뚜벅.
쭉 뻗은 복도를 따라 묵직한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그 길이만 해도 물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복도.
이 복도의 끝에는 폴리다고스의 치안을 책임지는 치안국장 ‘요아힘 벤제르센’의 집무실이 있었다.
치안국장이라는 자리가 워낙에 고위직이다 보니 보통의 방문객들은 이 복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움츠러들기 마련, 하지만 남자의 당당한 걸음걸이에서는 도통 망설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무라노어 공작 각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남자와 마주칠 때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기 바쁜 치안국 직원들.
개중에는 치안국 소속의 고위간부 또한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고개만 까닥여 보일 뿐, 입을 열어 인사에 응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치안국 직원들 중 그 누구도 남자의 이런 행동에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 남자에게는 이런 태도를 취하고도 남을 정도의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규율 국장님을 뵙습니다.”
까닥.
마침내 도달한 복도의 끝.
폴리다고스 지상 영역의 규율을 책임지는 규율 국장 ‘알크페인 무라노어’는 요아힘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고개만 까닥여 보일 뿐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척이나 불손해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음에도, 알크페인의 행동이 무례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갈색 머리카락과 멋스럽게 기른 콧수염, 그리고 기품이 절절 묻어나는 망토까지.
알크페인의 온몸에서는 그야말로 귀족의 표상이라 할 만한 위엄이 흘러넘쳤고, 그 넘치는 위엄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외려 당연하게 보이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국장님, 규율 국장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게.”
요아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알크페인은 직원의 안내를 기다리는 일도 없이 곧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덜커덕.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 듯 격한 몸놀림으로 돌아가는 손잡이.
룬 문자가 아로새겨진 문을 열자 서류에 파묻혀 있는 치안국장이 보였고, 오랜 친구이자 숙명적인 맞수의 모습을 확인한 알크페인의 회색 눈동자가 좌우로 가늘어졌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거지?”
“자네가 외부 출장을 마치는 대로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네. 보아하니 짐도 풀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온 것 같은데… 역시 학년 대표 후보 선발 때문인 건가?”
“다시 한 번 묻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황망한 짓을 저지른 건가?”
“신입생 학년 대표 후보 선발 결과가 자네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 하지만 이번에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잘못? 내가?”
“그래. 보고가 들어갔을 텐데? 자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그 친구’를 학년 대표 후보로 집어넣는 것을 강력하게 주창한 건 내가 아니라 실험 국장님이야. 그러니 불만이 있거든 그분을 찾아가 언성을 높이는 게 합당한 처사가 아닐까?”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요아힘.
하지만 치안 국장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예측한 알크페인 또한 곧바로 다그침을 이어 나갔다.
“…그 괴팍한 다혈질 영감이 무슨 별다른 생각이 있어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겠나. 영감의 생떼 배후에는 자네가 있었겠지.”
“하하! 천하의 팩셰르 어르신의 배후가 이 요아힘 벤제르센이라니! 나에게는 참 과분한 말이지만 자네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실험 국장님이 아시게 되거든 무척이나 노여워하실 것 같은데.”
“그 사람의 생각 따위는 내 알 바 아니야. 그리고 자네가 무슨 수를 써서 그 영감을 설득시켰는지도 궁금하지 않아. 내가 이 자리에 온 건 자네에게 경고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지 다른 건 어찌 되든 상관없어.”
“경고? 자네가 나에게? 한번 말씀해 보시게. 내 귀를 열고 경청하도록 하지.”
바짝 날이 선 알크페인과 여전히 능글맞은 요아힘.
이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알크페인은 한층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안 돼.”
“역시… 그 친구가 후보생 명단에 포함된 것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게 맞았군.”
“내가 이 자리에 버티고 있는 한 클라디우스의 핏줄이 교내의 공식적인 직위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결단코 없을 걸세.”
“이런 문제에 관해서 자네는 왜 내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자네가 오벨리언이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 조금은 양보를 하도록 하지. ‘아스트라 페르디난드’로 하겠다면 나도 동의를 하겠어. 하지만 이게 끝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양보는 여기까지가 한계이니 더이상 나를 자극하지 말게.”
“하!”
규율 국장이 꺼내든 한 수에 요아힘은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알크페인 입장에서는 출생의 비애를 가지고 있는 아스트라 역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스트라가 학년 대표가 되는 걸 감수해서라도, 알크페인은 페이건이 학년 대표가 되는 것만큼은 막고 싶은 것이다.
“…하아.”
요아힘은 의자에 몸을 한껏 기댄 채 도무지 이 문제에 관해서는 타협을 모르는 ‘옛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에 이 논쟁은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개인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알크페인의 적의가 겨냥하는 건 클라디우스 자체라는 걸 요아힘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적의를 숨길 생각 따위는 없는 서늘한 눈빛으로 알크페인은 말했다.
“클라디우스는 모든 작위를 버렸어. 그런 자들이 감히 신성한 폴리다고스의 영광을 공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