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화(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
“…그릇?”
대답을 들은 아버지의 동공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빛을 내며 반짝였다.
마치 ‘나는 그 정답을 알고 있지만 과연 네가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듯한 눈동자.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답을 이어 나갔다.
“영혼은 생명을 생명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근원, 그리고 육신은 그 근원을 담는 가장 숭고한 그릇.”
“…우리 가문의 시조이신 오르페우스 님이 남기신 말씀 아니냐?”
“맞습니다. 이 말씀은 일견 육신에 비해 영혼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영혼과 육신의 바람직한 균형을 꿈꾸셨던 분. 즉 이 말씀은 삶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신 모두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래 네 말대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치기들은 그 말을 근거로 오르페우스 님께서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육신을 홀대했다 주장하지만 그야말로 허튼소리지. 그런데 용케도 그 사실을 깨달았구나.”
이제 막 아버지의 무릎을 넘길락 말락 하는 어린 아들이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선조의 유지를 이해했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한 사람의 치료술사로서 그리고 선조들의 영광 아래 부끄럽지 않은 클라디우스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라도 클라디우스의 위명에 어울리는 단단한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네가 인체 구조학을 가장 먼저 선택한 이유 또한….”
“저의 육체를 단련하고 앙겔루스의 은혜를 백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인체 구조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허허!”
아버지의 입가가 한층 더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 장하다. 내 아들, 그래야지 내 아들이지!’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표정을 통해 난 이제 결정타를 날릴 시간이 되었음을 확신했다.
“저 페이건, 인체 구조학을 통해 앞으로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장차 그 안에 앙겔루스의 축복과 선조들이 남기신 가르침을 차곡차곡 담아낼 것입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내 아들이지! 이 정도 각오는 보여줘야 티베리와 멜리사의 맏아들이라 할 만하지!”
아버님의 표정에서 넘실넘실 넘쳐 흐르던 그 말이 드디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쩜! 우리 도련님 장하기도 하시지.”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유모는 결국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그 물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아버님은 나를 와락 끌어안은 채 번쩍 들어 올렸다.
“네가 이토록 당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네 어머니도 무척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어때요? 과연 내가 낳은 아이답죠?’라며 어깨를 쫙 펴겠지. 안 그런가? 유모!”
“맞습니다요. 마님께서도 도련님의 늠름한 모습을 보시게 되면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나를 붙잡은 채 그 자리를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돈 후에야 나를 내려놓았다.
“근본을 제대로 닦지 못한 얼치기 치료술사들은 치유마법과 마나에 취해 육신을 경시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고는 한다. 어차피 상처를 치료하는 건 마법과 주문이니 모든 상처는 결국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게지.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라고.”
아버지께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때마다 텁수룩한 턱수염이 태풍을 만난 갈대들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치료술사가 제아무리 뛰어난 마법을 사용한다 해도 결국 그 치유마법을 받아들이고 견뎌 내야 하는 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인데 말이다. 그런데 아직 어리고 본격적인 교육도 받지 않은 네가 벌써부터 그 함정을 간파해 냈다고 하니 이 아비는 기쁘기 한량없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칭찬을 듣는 내내 난 고개를 납작 숙이고 있었다.
흔치 않은 아버지의 칭찬이 부담스럽기도 했거니와 아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거리는 그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사실은 그 이유가 전부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제가 인체 구조학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어요.’
아직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난 내 인체 구조학 관련 성적이 무척이나 뛰어날 것임을 벌써부터 확신할 수 있었다.
전생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악당을 죽여왔고, 최단 시간 내에, 가장 확실하게 쓰레기들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부지런히 해 온 바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인체 구조에 관한 지식이 자연스레 깊어졌던 것은 당연한 수순.
‘결국 암살이란 상대방에게 제일 위험한 타이밍에 가장 치명적인 부위로 칼을 쑤셔 박아 넣는 것. 수업 초기에 스승님께서 몇 번이나 말씀하셨지. 사람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모르는 자가 어떻게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겠냐고.’
스승님의 가르침, 그리고 나만의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난 인체 구조에 대한 나름대로의 깊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일부로 그 깊이 있는 이해 위에 대륙 제일 의술 명가가 보유한 지식이 추가되는 것이다.
‘죽음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와 살림에 뜻을 두는 배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확신할 수 있어. 클라디우스가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치료술은 내 암살기술을 늘리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된다. 어쩌면 그 빛이 나를 굳이 이곳에 보낸 이유 또한 이곳에 있을지도 몰라.’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난 나를 클라디우스로 보내 준 광휘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숲과 나무,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낸 내가, 이제 와서 굳이 전생의 유물로 남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기술을 다듬어야 하는 이유가 무에 있냐고?
[머지않아 환란이 닥칠 거야. 그 환란 속에서 네가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갈지를 기대하고 있지.]만약 그렇게 묻는 이가 있다면 난 나를 이곳에 보낸 광휘가 들려준 한마디로 답변을 갈음할 것이다.
‘환란, 그리고 증명.’
평화롭고 안락하기 그지없는 섬, ‘에스페타라’에서 5년을 보내는 내내 내 머릿속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은 두 개의 키워드.
걱정이 지나치다고 비웃어도 좋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본성을 버리지 못했다고 날 경멸해도 좋다.
하지만 어떤 말을 듣더라도 전생의 내 장기를 갈고닦아 두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하하!”
아버지는 다시 한번 나를 번쩍 들어 올렸고 난 섬의 최정상에서 주변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버지, 유모, 내 곁에 있어 준 사람들과 나를 길러 준 섬. 그리고….
‘섬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
아버지와 유모의 눈을 피해 파도 너머에 넘실거리는 섬 밖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 환란이 뭐가 되었든 간에 결코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릴 수 있는 ‘견고함’을 손에 넣을 것이라는 각오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 * *
그날 밤.
어둠이 내린 페이건의 방안.
최고급 소재로 만든 푹신한 침대 위에서 평온하고도 고른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꼿꼿하게 펴진 허리와 목, 그리고 가슴과 배꼽 사이에서 모아진 두 손.
모두가 잠들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페이건은 오늘 배운 앙겔루스를 단련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헤에, 오늘 처음으로 앙겔루스를 배우느라고 고단했을 텐데. 잠자는 것도 잊은 채 수련에 몰두하다니. 그것도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꼬맹이가. 제법 기특한걸?
내키는 편한 자세로 수행이 가능한 ‘아르카’와는 달리 그 단련에 엄정한 과정을 요구하는 ‘앙겔루스’.
아직 어린아이가 취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자세임은 분명했고, 수련을 시작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페이건의 자세는 도무지 흐트러질 줄을 몰랐다.
지난 1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아침 행한 바 있는 운동의 효과가 여실히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적인 전투 능력에 더 도움이 될 ‘아르카’수련에 조금 더 중점을 두기는 해야겠으나 그렇다 하여 ‘앙겔루스’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르카가 훗날을 위해 ‘베일 속에 감춰둔 칼’이라면 앙겔루스는 페이건 자신의 현재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
조만간 자신에게 쏟아질 시선들을 위해서라도 앙겔루스 역시 일정 한도 이상은 익혀 둘 필요가 있었다.
―흐음… 마나의 흐름을 보아하니 자질이 아주 나쁘지는 않네. 티베리는 곰처럼 아둔한 생김새와는 달리 제법 영민한 녀석이니까 이대로 잘 크면 티베리 정도로 쓸 만한 가주는 되겠는걸. 물론 그렇기 위해서는 이 몸의 물밑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흐흐.
캄캄한 어둠. 일렁이는 공기.
그리고 미약한 파동 사이를 부유하는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
보이되 보이지 않고, 볼 수 있으되 볼 수 없는 푸른 불꽃.
‘페이건 클라디우스’라 이름 붙여진 클라디우스의 축복이 세상에 내려올 때 얼핏 모습을 보인 바 있는 ‘푸른 불꽃’은 땀이 송골송골 맺힌 페이건 이마 주위를 날아다니며 재잘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꼬마야, 근데 널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넌 아빠가 아닌 엄마 닮기를 정말 다행인 것 같아. 멜리사가 미인이니까 그나마 이렇게 봐 줄 만한 모양이 되었지, 만약 네가 아빠를 닮았다고 생각하면, 아우! 끔찍해! 티베리라는 흑곰만으로도 충분히 갑갑한데 아빠곰, 애기곰 이 나란히 서 있을 거 생각하면 우웩,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열받네. 이 몸이나 되는 분께서 꼬맹이가 무리를 하다 혹시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고 친히 상태를 살펴 주러 오셨는데 이 망할 놈의 꼬맹이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있잖아! 야! 꼬맹아! 네가 생각해도 이건 문제가 있지?
때로는 웃고, 때로는 화를 내며 푸른 불꽃은 바지런하게도 페이건의 미간을 맴돌았고,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온기는 피로에 지친 페이건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정체가 불분명한 탓에 의도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푸른 불꽃의 반복비행이 페이건의 성취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옳지! 옳지! 잘한다! 그러지! 이 타이밍에는 다소 버겁더라도 확 당겨줘야지!
클라디우스의 비전인 앙겔루스를 잘 알고 있기라도 한 걸까?
불꽃은 페이건의 몸을 감싼 채 일렁이는 앙겔루스의 아우라를 보며 참견을 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야! 야! 그게 아니야! 지금은 아래로 뻗어야지! 거기서 대책 없이 당겨 버리면 어떡해! 그럼 가지런히 흐르던 마나가 자리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순조롭게 진행되던 순환도 맥이 딱 끊기잖아!
또옥.
유달리 굵직한 땀방울이 뺨을 타고 침대 위로 떨어진 그때, 불꽃이 한 층 더 호들갑스럽게 몸을 떨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땀줄기가 굵어질수록 불꽃의 목소리 톤 또한 높아졌고.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불꽃은 놀림이 섞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층 더 빠른 속도로 페이건의 얼굴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니래요♪ 아니래요♫ 그렇게 하는 거 아니래요♬ 그렇게 하면은 전부 다 헛수… 응?
그런데 한창 기세를 높이던 불꽃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잦아들었다. 수련을 시작한 이후 줄곧 눈을 감고 있던 페이건이 눈초리를 가늘게 뜬 채 정확히 자신이 있는 방향을 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야! 네가 그렇게 째려보면 어쩔 건데! 아, 아니지. 애초에 이 꼬마가 나를 감지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도무지 만 다섯 살이 된 아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
그 시선에 밀린 탓에 무심코 목소리를 높인 불꽃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과 최초로 연을 맺은 친구, ‘오르페우스’를 제외하고도 자신의 존재를 감지해 낸 녀석들은 몇 명 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들 또한 어렴풋이 자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어렴풋하고 미약한 감지 또한 전부 다 그 감이 좋은 녀석들이 나이를 한껏 먹은 후 꼬부랑 할아비가 되고 난 이후에야 가능해진 일.
노인이 되기 전, 푸른 불꽃을 똑바로 인지한 상태에서 ‘안녕’이라는 인사말을 건네준 상대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오르페우스 그 녀석만이 가능했던 일을 이 꼬맹이가 해낼 수 있을 리 없지. 암, 그럴 수 없고….
“야, 조용히 해.”
―어!
경험칙에 의거한 확고한 부정.
그리고 곧바로 찾아온, 자신의 추측이 빗나갔음을 입증해 주는 완벽한 증거.
―너… 지금 나보고 말한 거야?
무심결에 꼬맹이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불꽃은 숨이 멎는 듯한 긴장을 느끼며 조심스레 되물었고.
―아니… 너 진짜로 내가 보여?
초대 가주 오르페우스 이래 처음으로 ‘클라디우스의 수호신’을 감지해 낸 꼬마,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부터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