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0)화(4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0)
“하아….”
뿌리 깊은 적의가 느껴지는 알크페인의 발언에 요아힘의 주름이 조금 더 깊어졌다.
대귀족들이 클라디우스를 고깝게 보는 중요 이유 중에 작위 거부 관련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그래서 철저한 귀족주의자인 알크페인이 클라디우스를 불쾌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물론 귀족들이 고깝게 여기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하여 그들의 천박한 의견에 부화뇌동할 생각은 없었지만.
“클라디우스가 작위를 받지 않는 이유가 어느 국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구호 활동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 정도는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사실을 그리도 용납하기 힘들던가?”
오르페우스가 클라디우스를 건립한 이래로, 오르페우스의 후예들이 가진 탁월한 능력을 노리는 국가는 한둘이 아니었다.
클라디우스를 탐내는 이들 중에는 대륙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강대국들도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하고 막중한 권세를 내세워 클라디우스를 유혹했다.
하지만 역대 클라디우스를 지켜 왔던 가주들은 한결같이 그 제안을 거절한 바 있었다.
각국이 제시하는 부와 명예에 혹해 특정 국가의 소속이 되는 그 순간, 오르페우스의 뜻이었던 ‘만인을 향한 박애’를 실천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클라디우스는 지금껏 그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채 오롯이 클라디우스로서만 존재했고, 그 덕분에 찌꺼기 같은 귀족 가문들도 한 번쯤은 손에 넣게 되는 후작, 백작 등의 작위를 받아본 역사가 전무했다.
그런데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박애’를 실천하기 위해 클라디우스가 내린 이 숭고한 결정이, 귀족주의자들의 눈에는 몹시도 위험하게 보였던 것이다.
대륙 전역에 걸쳐 확고하게 자리 잡은 지배 체계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클라디우스의 모습은 귀족주의자들 눈에는 더없이 불경스럽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귀족들이 클라디우스를 향해 보내는 경계의 시선 역시 도무지 걷힐 줄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클라디우스의 영지가 바다 한복판에 위치해 있지 않거나, 클라디우스의 땅을 지켜 주는 영수들의 존재가 없었다면 에스페타라의 안전은 한참 전에 위협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껏 클라디우스의 문양 아래 구제받은 사람들의 수가 몇 명인지 아는가? 클라디우스는 그 자체로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어. 그런데 페이건 그 아이의 이름 앞에 공작이니 후작이니 그런 거추장스러운 칭호가 붙지 않는다 하여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이야?”
“그리 간단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자네는 이미 확립된 지배 체계를 거부하는 선택이 가지는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어. 자네 말대로 클라디우스는 유능해. 하지만 그 탁월한 유능함 때문에 그들은 본질적으로 위험할 수밖에 없어. 왜 이걸 모르는 거지?”
“하! 출중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라? 그렇다면 자네 또한 더없이 위험한 존재가 되는 셈이니 폴리다고스의 치안 책임자인 난 자네를 즉시 배제해야겠군. 어디 한번 그래 볼까?”
“말장난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야. 요아힘, 똑똑히 기억해 두게. 클라디우스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영지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가주는 그 어떤 왕국의 통제도 받지 않는 사실상의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어. 클라디우스는 그 존재만으로도 반체제적인 이들이라는 걸 잊지 말게.”
“설령 그들이 자네 말처럼 반체제적인 성향을 보인다 해도 체제를 거부한다는 것 그 자체로는 죄악이 될 수 없어. 더군다나 그들처럼 훌륭한 정신으로 똘똘 뭉친 반체제라면 더더욱. 아무래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자네와 타협을 보기 힘들 것 같군,”
“애초에 이곳에 온 건 내 뜻을 통보하기 위해서지 자네와 타협을 보기 위함이 아니야. 요아힘, 만약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학년 대표로 만들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 즉시 포기하게. 내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테니.”
“재미있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요아힘의 입가에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부터 자네가 내 판단과 행동을 ‘용납’할 수 있게 된 거지?”
“나 혼자만의 뜻이라 생각하나?”
“설마 내가 자네 뒤에 누가 버티고 있는지도 모를까.”
“…내 뜻은 전했으니 이쯤이면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이만 가 보겠네.”
한때는 같은 스승 밑에서 같은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선 두 천재의 눈빛이 매섭게 맞부딪쳤다.
“그러든가. 일이 바빠 따로 배웅하지 못하는 점 부디 양해해 주게.”
“…그 수준 낮은 평민 놀이에 심취한 탓에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자네의 몸속에 흐르는 피는 ‘벤제르센’이야. 부디 이 사실을 명심하기를 바라네.”
빙하와도 같은 차가운 눈빛을 남긴 채 알크페인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사각사각.
옛 친구(이제는 혼자만의 바람일지 모르지만)를 떠나보낸 요아힘은 다시 서류 더미에 매진을 하려 했으나 그것도 잠시,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서고 말았다.
“천천히 오와 열을 맞춰 입장하도록.”
“입장을 완료한 후에도 별도 지시 사항이 있기까지 무단으로 이탈을 해서는 안 돼!”
바람처럼 투명한 창문 너머로 길고 긴 입학 대기를 끝내고 교내로 입성하는 신입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정식 입학식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폴리다고스, 나아가서는 대륙의 미래를 책임질 새싹들의 모습을 두 눈에 새기며 요아힘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아주 조금은 쓸쓸해지려고 합니다. 이럴 때 스승님께서 곁에 계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요.”
* * *
―내일 뭐 입고 갈 거야?
“집에서 가져온 예복.”
―지난번에 그 가족 행사 있을 때 본 그 예복?
“응. 내가 가지고 있는 예복이라야 그거밖에 없잖아? 알면서 뭘 물어보고 그래.”
―으… 그렇기야 하지만 혹시나 기대했어. 아까 밖에 살짝 나가서 보니까 다른 꼬마들은 엄청 삐까번쩍하게 차려입고 내일을 기다리던데 넌 여전하구나.
내일로 다가온 입학식.
잔뜩 달아오른 교내의 열기에 전염되기라도 한 걸까?
북슬이는 통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날아다니며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하여간 재미없는 걸로 따지자면 1등이라니까. 도대체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는 거야?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간행된 바 있는 ‘폴리다고스의 기원과 연혁’. 현재 구할 수 있는 서적 중에 이것보다 폴리다고스의 초기 역사를 잘 정리한 자료는 없거든.”
―그 재미없는 책을 꼭 지금 읽어야 돼? 대망의 입학 전야가 다가왔으면 이렇게 맛있는 것도 좀 잔뜩 차려놓고 나랑 라무테한테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앞으로는 더 정중한 자세로 두 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요 헤헤.’ 이런 말도 하고 그러면 좀 좋아?
“네가 뭘 기대하고 있는지는 잘 알겠는데, 오늘이 입학 전야니까 이걸 꼭 읽어야 하는 거야. 입교 전에 깔끔하게 정리해 놔야 하는 게 있거든.”
―정리해야 할 거? 페이건, 그거 혹시 오르페우스에 관한 일이니?
“네. 맞습니다.”
눈을 감은 채 깃털을 고르는 데 열중하고 있던 라무테 님이 질문을 던져 왔다.
“라무테 님, 폴리다고스 중앙에 있는 거대한 동상 기억나세요?”
―응, 기억나. 그, 네 명의 사람과 한 개의 검으로 이뤄진 조각상 말이지.
―나 처음에 그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무슨 놈의 동상을 저렇게 으리으리하게 만들어 놓았나 하고.
오르페우스에 관한 일이라는 걸 듣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대화에 끼어드는 북슬이.
북슬이가 말한 것처럼 중앙 광장에 있는 동상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면적 곳곳에 스며있는 장인의 손길들.
설령 폴리다고스의 역사를 아예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 놓아도 ‘아! 이 동상의 인물이 이곳의 역사에 무척이나 중요한 사람들이구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다섯 개의 조각상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그렇게 커다란 동상을 만들어 놓은 건 아니야. 그 조각상은 폴리다고스를 건립한 5인의 영웅을 조각해 놓은 거거든. 그러니 폴리다고스로서는 각별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거지.”
―우웅,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어! 그런데 잠깐! 너 방금 5인의 영웅이라 그랬지? 그런데 왜 사람은 네 명밖에 없어? 왜 한 명은 사람이 아니라 검을 만들어 놓은 건데?
“살가레스, 이오나, 셀러룬, 에스메랄다 그리고 오펜하이머. 폴리다고스를 건립한 다섯 명의 이름이야. 그 검이 상징하는 인물은 오펜하이머. 5인의 영웅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검사지.”
―그러니까 왜 그렇게 중요한 사람만 쏙 빼놓고 안 만들어 놓은 거냐구. 물론 그 검도 나름대로 멋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은 다 전신상인데 한 명만 무기로 대신하면 이상하잖아?
“안 만든 게 아니라 못 만든 거야.”
확인하고자 했던 부분의 검토가 끝냈기에 책을 덮고 털 뭉치와 시선을 마주했다.
“오펜하이머는 항상 가면을 쓰고 다녔기에 누구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거든. 거기에 음성 변조 마법까지 사용했던 터라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해.”
―가면? 왜?
“그 이유 또한 아무도 몰라.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얼굴뿐만 아니라 자신의 출신, 행적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밝히지 않은 채 활동했어. 그가 ‘그림자 검’이라는 이명으로 불린 이유도 거기에 있고.”
―으음, 정체를 숨긴 검사라니. 그건 좀 많이 수상하네.
“그래. 네 말도 틀린 건 아니야. 모든 정보가 드러난 다른 네 명에 비해 오펜하이머는 확실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의 능력을 부인하거나 그의 업적을 폄하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어. 왜 그런지 알아?”
―음… 능력이 뛰어나서?
“그래, 사실 오펜하이머가 활동한 시간은 10년에 불과해. 하지만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명예를 얻었지. 수많은 위험과 맞서 싸운 오펜하이머의 검이 없었다면 지금의 폴리다고스도 존재할 수 없었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밝혀진 게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거고.”
―10년 동안 활동한 수수께끼의 영웅이라? 헤헹, 또 그렇게 들으니까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10년?
10년이라는 말을 듣고도 마냥 탄성을 내뱉기 바쁜 롤빵이와는 달리 라무테 님은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라무테 님, 오르페우스 님이 에스페타라를 떠나 있던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실까요?”
―당연하지. 오르페우스가 ‘다녀올게.’라며 훌쩍 떠난 날도, ‘와하하! 다녀왔지롱.’이라고 말하며 돌아온 날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걸.
“그렇다면 그 연도가 이것과 일치합니까?”
―응… 연도는 물론이고 오르페우스가 떠나고 돌아왔던 계절까지 완전히 같아.
―뭐야! 뭔데! 왜 둘만 끄덕끄덕하고 있는 거야! 얼른 나한테도 설명해 줘!
흔들리는 눈빛의 라무테 님과 내 머리 위에 올라탄 채 앙탈을 부리는 롤빵이. 나는 번거로운 설명을 하는 대신 조금 전까지 읽고 있던 책을 녀석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네 눈으로 직접 읽어 봐. 페이지 하단에 있는 날짜 보이지? 그게 오펜하이머가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 날과 모습을 감춘 날을 기록한 거거든.”
―…!
“네가 알고 있는 어떤 날짜와 굉장히 유사하지?”
오르페우스의 일기장을 손에 넣은 그 날부터 조금 전까지 정말이지 열심히 고민을 했고,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둘에게 고민 끝에 도출해 낸 결론을 들려 줬다.
“폴리다고스의 건립자인 ‘그림자 검 오펜하이머’의 정체는 오르페우스 님이다. 이게 제가 도출해 낸 결론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입교 전에 라무테 님과 롤빵이에게 확인 받고 싶었습니다.”
―음… 오르페우스의 10년이….
―오르페우스가 그 오펜하이머라고? 이 자식, 여행을 떠나서 뭘 했나 했더니….
“물론 정말 우연의 일치로 오펜하이머의 활동 기간과 오르페우스 님의 여행 일자가 겹친 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걸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 버리면 오르페우스 님의 일기장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마즈다와 공명하며 다음 목표를 가리키고 있는 일기장을 들어 펼쳐 보였다.
“일기장을 숨겨 놓은 방법, 그리고 이곳에 기록된 단서가 보관된 장소들. 이 모든 걸 준비한 당사자가 폴리다고스를 정말 잘 알고 있고 또 이 장치들을 곳곳에 숨겨 놓을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면 애초에 이런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음… 혹시 그 다섯 명이 아니더라도 아카데미가 만들어진 이후 이곳에 오게 된 핵심 관계자라면 어떻게 가능….
“아니요. 일기장의 단서가 지상에만 한정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 무대가 공중 고성으로 확장된다면 라무테 님의 가정은 불가능해집니다. 저 공중 고성은 폴리다고스의 설립과 동시에 완성되었는데 그 후 50여 년간 5인의 영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발을 붙이는 게 허락되지 않았거든요.”
―그럼 오르페우스가 여행을 떠난 10년 동안 저 성에 올라 단서를 숨기는 게 가능했던 건 그 5인의 영웅뿐이라는 거네.
“응,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야. 이 일기장을 만든 게 오르페우스 님이 맞다면 그림자 검의 정체 또한 오르페우스 님일 수밖에 없어.”
―페이건, 그럼 너는 왜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활동했다고 생각하니?
라무테 님이 의문을 갖는 것도 당연했다.
오펜하이머는 대륙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업적을 달성한 영웅이었고 그림자 검의 정체가 오르페우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는 클라디우스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리는 없었으니까.
오르페우스가 자손들을 끔찍이 사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다는 게 자명한 사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를 가면으로 숨긴 채 활동했고.
“자신의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운 악당이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 사람이 가면을 착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활동이 수면 위로 드러날 경우 그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들이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활동을 하겠죠.”
―어머! 그럼 오르페우스는….
“여기서부터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저의 순수한 추측입니다.”
난 내가 생각해 낸 이유를 털어놓았다.
“어쩌면 오르페우스 님은 사력을 다해 어떤 개인, 혹은 무리와 맞서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들로부터 클라디우스를 보호하기 위해 정체를 감추셔야만 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