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1)화(4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1)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오르페우스는 지금의 나는 물론, 전생의 나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초인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이토록 초월적인 능력을 소유한 초인이었던 오르페우스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에스페타라로 돌아왔다니.
그가 가면을 쓰고 활동해야만 했던 것도 그렇고, 이 문제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오르페우스에게는 본인 만큼이나 강력했던 적이 있었고 그 적이 꿈을 가로막았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리고 끝내 그 적을 완전히 극복하는 데 실패한 오르페우스는 에스페타라로 돌아와 후손들에게 뜻을 남긴 것이다.
―…그치만 돌아온 이후에도 오르페우스는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했는데.
“후손들이 수상한 무리의 존재를 감지하는 게 적들이 자신과 클라디우스와의 관계를 알아차리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판단을 해서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닐까? 만약 후손들이 적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오르페우스 님 본인의 뜻과는 별개로 섣부른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그 행동이 빌미가 되어 오르페우스 님과 클라디우스 간의 관계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
―오르페우스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페이건, 너의 추측이 사실이고 오르페우스가 맞서 싸웠다는 그 무리가 아직도 암약하고 있다면 오르페우스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클라디우스는 위험에 빠질 수 있으니까. 응, 오르페우스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칫, 그 녀석 겉으로는 허허실실인 주제에 후손들과 관련해서는 조심성이 넘쳤으니까. 그런데… 뭐야 페이건 네 말대로라면 오르페우스는 결국 그 허깨비 같은 놈들에게 진 거야?
아직은 모든 것이 추측에 불과함에도, 오르페우스가 패배를 했다는 상상만으로도 화가 났는지 북슬이는 잔뜩 치켜 올라간 눈으로 날 바라봤다.
“말했던 것처럼 이 모든 가정은 추측에 불과한 터라 확답은 할 수 없어. 하지만 난 오르페우스 님이 일방적인 패배를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왜?
“일단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무사히 에스페타라로 돌아오셨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셨잖아? 만약 오르페우스 님이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완패한 패장이었다면 그렇게 평온한 모습으로 여생을 보내실 수 있었을까?”
―음, 맞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 녀석 기분을 잘 아는데, 확실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도 오르페우스는 참 즐거워 했던 것 같아. 그치 라무테?
―응. 나는 오르페우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말년의 오르페우스가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는 거 하나만큼은 장담할 수 있어.
조금은 편안한 표정이 된 북슬이.
난 녀석의 기분을 마저 풀어 주기 위해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살살 긁어 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오르페우스 님이 완패를 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유 그 두 번째, 그때 이후로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이 쭉 번성해 오고 있는 폴리다고스. 만약 그림자 검 오펜하이머가 완패를 했고 적이 완승을 했다면 이곳 폴리다고스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야만 했을 거야. 적들이 오펜하이머의 주요 유산인 폴리다고스를 내버려 둘리 없으니까. 하지만 폴리다고스는 오펜하이머가 모습을 감춘 이후에도 단 한 번의 위기 없이 세력을 확장해 왔어.”
―맞아, 맞아. 만약 여기 사람들이 위기를 겪었다면 그렇게 커다란 동상을 다섯 개씩이나 만들지는 못했을 거야. 페이건 너는 이럴 때 보면 참 똑똑해.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오르페우스 님이 해 놓으신 빈틈없는 안배. 난 아직 오르페우스 님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그 꿈의 계승자로서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준비를 하셨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어. 그런데 오르페우스 님이 남겨 놓은 안배 그 어느 곳에서도 조급함은 느껴지지 않아. 외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여유가 보일 지경이지.”
―음… 만약 오르페우스가 패배를 한 상황에서 이런 준비를 해야만 했다면 그렇게 여유를 부리지는 못했을 거라는 말이지?
“맞습니다. 그래서 전 오르페우스 님이 받아든 결과가 완전한 패배도, 완전한 승리도 아니었다고 봅니다.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적들과 ‘잠정적인 결착 상태’에 다다랐고 그 후 충분한 시간을 들여 폴리다고스 곳곳에 단서를 남겨 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무리한 후에 에스페타라로 돌아오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잠정적인 결착 상태?
“응. 오르페우스 님과 적, 그 어느 쪽도 자신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는 데는 실패한 교착상태. 어느 한쪽이 완전히 궤멸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이 종결된 이상 양측은 모두 훗날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을 테고 그 후로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린 것 아닐까?”
북슬이도 라무테 님도 서로 눈을 마주하고만 있을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오르페우스가 한 준비라는 게?
“둘에게 한 부탁, 폴리다고스에 남겨놓은 안배, 그리고 천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태어난 나. 지금으로서는 이 모든 게 오르페우스 님의 준비라고 봐야겠지.”
―그럼 오르페우스가 한꺼번에 모든 단서를 다 주지 않고 조금씩 단계를 밟아 가는 것도….
“저에게 언제라도 물러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여기까지 오는데 수고가 참 많았다만 이다음을 보려거든 각오를 한층 더 단단히 해야 할 거야. 그래도 들어올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게 아닐까요?”
어느새 바짝 몸을 붙인 채 시선을 바삐 교환하고 있는 라무테 님과 롤빵이.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오르페우스와 내 추측 속의 오르페우스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검토하는 거겠지.
―그래서 페이건, 넌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인데?
북슬이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목소리. 난 마즈다의 수정을 반가시 화분에 맞추며 답했다.
“계속 가 봐야지.”
삐주주죽.
얄팍한 줄기 사이로 솟아 나오는 씩씩한 가시.
지난 며칠간 열심히 훈련을 한 덕분에 이 정도 수준이라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드루이드의 힘을 다루는 게 가능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 앞에 뭐가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
―하아앙.
빛의 방향을 심각한 표정의 롤빵이쪽으로 전환하자마자 녀석은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고, 난 기분 좋은 모양새로 축 늘어진 북슬이의 양 뺨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게 자랑스러운 나의 선조께서도 바라시는 바일 테니까.”
* * *
따르르릉.
평소보다 훨씬 더 이른 시간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
“으냐냐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처럼 눈을 비비거나, 재빠르게 도출해 낸 계산을 통해 ‘어! 5분 정도는 더 이러고 있어도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는 일도 없었다.
“흐흐흥♪.”
천사의 깃털처럼 보드라운 이불을 개어놓고 얼음처럼 차가운 냉수를 마신 후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오늘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삐약삐약 병아리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
자신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을 귀염둥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활력이 솟아났던 것이다.
“오늘 아침은♪ 뭘 먹을까?”
목덜미를 살짝 덮는 청발을 쓰다듬으며, 마력으로 유지되는 냉장 보관고에 남아 있는 항목을 살폈다.
그녀가 폴리다고스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감안하면, 식사 준비며 밥 시중을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것 같지만 그녀는 이런 생활에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다.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는 그녀로서는 자신만의 공간에 타인을 들이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그 덕분에 자신의 일은 손수 챙기는 자립심마저 뛰어난 참으로 훌륭한 ‘도련님’이라는 평은 자자해졌지만.
“그래! 오늘 아침은 벌꿀 시리얼이랑 계란프라이, 그리고 훈제 칠면조 햄으로 결정.”
탁.
지글지글.
아침 메뉴 선정부터 조리, 그리고 플레이팅이 완료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 방의 주인은 그 머리카락 색깔만큼이나 시원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기에 식사 준비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정해졌던 것이다.
“그럼 식사를 해 보실까?”
완성된 메뉴를 식탁 겸 탁자로 옮기고 하얀 우유를 유리컵에 넘치도록 따르는 것으로 식사 준비는 끝.
“아아앙!”
띠리릭.
“어머!”
잘게 자른 햄을 막 입으로 옮기려는 찰나 탁자 한편에 있던 수정구가 반짝였고 그녀는 화색을 하며 수정구를 터치했다.
반가운 님으로부터 온 소식, 새침하기만 한 자기가 어쩐 일로 이렇게 아침부터 연락을 준 걸까?
“자기! 이른 아침부터 웬일이야!”
―자기?
“응, 사랑하는 내 자기!”
―내가 주위에 사람들 없을 때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사르르 녹는 벌꿀처럼 달콤하기만 한 방 주인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인 차가운 목소리.
“꺄하하! 왜? 자기 맞잖아! 자기는 누가 뭐래도 내 사랑스러운 약혼녀인데, 내가 자기를 보고 자기라고 하는 게 뭐 어때서? 왜 설마 나 말고 다른 놈팽이가 좋아지기라도 한 거야?”
―까불지 말고 몸조심하기나 해. 방에 혼자 있을 때도 ‘변화 마법’을 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만에 하나라도 그 모습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각별한 주의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걸어 준 마법이잖아.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법의 효과가 나타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자기, 나는 못 믿어도 할아버지의 마법은 믿을 수 있잖아?”
―물론 할아버님의 마법은 믿을 수 있지만 그래도….
대조적인 목소리와 말투.
하지만 그럼에도 수정구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두 여인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친밀해 보였다.
“알았어, 알았어. 자기가 정 불안하면 이렇게 하면 되지? 엇흠! 내 귀여운 자기 이제는 조금 안심이 되나요?”
청발 여인이 헛기침을 하자 순식간에 그녀의 목울대 부근이 불룩하게 솟아오르고 소녀처럼 발랄하던 목소리가 무거워 졌다.
꿈많고 말 많은 아가씨에서 순식간에 폴리다고스의 왕자님으로 모습을 바꾼 그녀, 아니 그는.
수정구를 향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그렇고 거기는 좀 어때? 오늘 신입생들 입학식이라 그랬잖아?
“여기는 지금 한창 정신없지 뭐. 그래도 나는 예전보다 좀 나아졌어. 처음에는 많이 어지러웠는데 이것도 이제 몇 년째 꾸준히 하다 보니 익숙해졌지 뭐야. 이제는 올해 또 어떤 귀염둥이들이 들어왔을지 기대가 되다 못해 설렐 지경이라니까. 하하!”
―신입생들은… 올해는 좀 어때? 뭐 사고 쳐서 너를 귀찮게 하거나 할 것 같은 애들은 없어?
줄곧 폴리다고스에 머무르던 터라 학사업무에 빠삭한 자신과는 달리 폴리다고스를 떠나 ‘기원’에 열중한 지 꼬박 1년이 다 되어 가는 자기는 아카데미 소식에 어두운 게 당연지사.
“자기야, 그런데 자기는 언제쯤에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야? 나, 자기가 없으니까 너무 외로워.”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 멀쩡한 것 같은데 뭐. 장로님들께서는 ‘기원’이 마무리되는 대로 폴리다고스에 복귀하라고 하시는데 아직 정확한 건 잘 모르겠어. 진행 상황을 더 봐야 할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신입생들은 어떠냐니까?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 다행히도 재작년의 ‘올가’나 작년의 ‘페시즈’처럼 이상한 놈들은 없는 것 같으니까. 음 역시 가장 주목을 받는 건 페르디난드의 아스트라 군이겠지? 나는 아직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검사로서의 기도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콕콕.
계란프라이의 노른자를 터뜨린 후 그 위에 훈제 햄을 굴리면서 요 며칠간 접한 바 있는 소문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아스트라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역시 ‘오벨리언 마르커스’겠지. 그리고 그 뒤로 ‘길버트 맥도닐’, ‘에나 미어스’, 그리고… 아! 맞다! 자기야, 자기야! 그러고 보니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 병아리는 따로 있어!”
보름 전부터 폴리다고스 내에 태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신입생을 깜빡하고 빼먹었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란 그녀, 아니 청발의 왕자님은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페이건 클라디우스라고, 저기 멀리 있는 에스페타라라는 섬에서 온 괴짜인데 얘가 원래는 치료술사거든.”
―….
“자기도 클라디우스는 잘 알잖아. 그런데 이 꼬마가 하는 행동이 어찌나 대단한지 글쎄… 음, 자기 혹시 내 얘기 듣고 있어?”
수정구 너머에서 뭔가 이상한 기색을 느낀 왕자님은 자기의 반응을 살폈고.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내 말 잘 듣고 있냐고 했는뎅.”
―그것 말고! 그 전에 뭐라고 했냐고!
수정구 너머의 자기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다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페이건 클라디우스.
마치 한 자 한 자를 씹어먹기라도 하듯 정성을 다해 그 이름을 읊어 내리는 자기.
뭔가 사연이라도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수정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이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고.
“…최대한 자세히 말해.”
초조함, 긴장, 그리움, 행복, 안도, 갈증,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물기가 잔뜩 배어있는, 왕자님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목소리로 자기는 말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최대한 자세히 말하라고,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