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2)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2)화(42/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2)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 기억하시죠? 지난번 아슈터 후작 각하의 고희연 때 인사드렸었는데….”
“아! 기억나. 어떻게 타파드 백작께서는 잘 계시니?”
입학식이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1시간, 대강당은 몰려든 학생들 서로 간에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들로 가득했다.
입학식은 재학생들과 신입생들이 ‘공식’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첫 번째 시간.
재학 기간 중 인맥의 거미줄을 두 줄, 세 줄씩 두텁게 쌓을 생각으로 혈안이 되어있는 도련님, 아가씨들로서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레드, 나랑 같이 저쪽으로 가자. 저기 계시는 분이 페나 공작가의 장남 되시는 분이거든. 내가 소개시켜 줄게.”
“응! 고마워.”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
흩뿌려지는 값싼 미소에는 사람을 질식시키고도 남을 법한 번잡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번잡함으로 채워진 파도 어딘가에 덩그러니 내던져 지고만 나는 그저 한숨을 내 쉴 뿐이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어디 불편해?
‘불편하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좀 어지럽네. 내가 원체 이런 번잡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게 싫으면 조금 천천히 나오지 그랬어?
‘일찍 나오고 싶어서 일찍 나온 게 아니야. 신입생들은 입학식 두 시간 전까지 대강당에 집결하라는 지시가 있었단 말이야.’
오늘도 북슬이는 내 머리 위에 찰싹 붙어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녀석을 떼어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번드르르한 잡설들을 듣고 있자니 차라리 이 녀석의 오동통한 꼬리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음, 그런데 페이건한테 다가오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어? 지난번에는 네가 받기 싫다는 선물도 막 억지로 주고 싶어 난리가 났더만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한 건데?
‘라무테 님, 혹시 제가 여왕의 뿔을 얻은 그 날 선물을 보내온 가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신지요?’
―…미안. 내가 그런 걸 기억하는 건 좀 약해서.
‘중요한 일이 아니니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만 선물을 보내온 자들이 약소국의 귀족이거나 강대국의 중소 귀족이라는 사실만 기억하시면 돼요. 그럼 이 상황을 이해하는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아! 알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 눈치를 보고 있는 거구나. 그때는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까 안심하고 친한 척을 했지만 여기는 너를 싫어하는 대귀족들이 많으니까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거지?
‘맞습니다. 거기에 어떤 되바라진 꼬맹이가 저를 몹시도 싫어한다는 소문까지 짜하게 퍼진 터라 적어도 오늘은 저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되바라진 꼬맹이?
난 턱을 슬쩍 뻗어 특정 방향을 가리켰고, 그 방향에 앉아 미소를 흩뿌리고 있는 여자아이를 본 라무테 님의 눈이 커졌다.
―저 아이는 지난번에 그 성벽 위에서 너한테 이상한 말을 한 걔잖니?
‘맞습니다, 오벨리언 마르커스. 보아하니 저 꼬맹이는 벌써 유명 인사가 된 모양이군요. 왜 제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이제는 이해가 되시죠?’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과 인망을 얻는 것은 별개.
아무래도 아직은 몇 번의 사건을 통해 내가 획득한 명성보다는 ‘마르커스’라는 이름값이 조금 더 높은 듯했다.
‘…뭐 나로서는 머저리들 사이에 둘러싸여 무익한 대화를 나누느니 외톨이가 되는 편이 훨씬 더 반갑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지 알고 준비한 책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까지 흥미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책 내용이 뭐가 되었든 간에 이 따분하기만 한 광경을 지켜보는 것보다 백만 배 더 나을 테니까.
“저기 괜찮다면 옆에 앉아도 될까?”
한데 채 다섯 페이지도 넘기기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녕 페이건. 그때 야영지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이지? 그동안 자, 잘 지냈어?”
“나야 뭐 덕분에 잘 지냈지.”
갸름한 턱선과 커다란 눈. 그리고 그 위에 걸쳐진 안경.
“옆에 일행이 없다면 내가 앉아도 될까?”
“나야 상관은 없는데… 괜찮겠어?”
“뭐가?”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더없이 용감한 건지.
무모한 제안을 불쑥 건네는 제라르를 보며 난 현재 상황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지금 여기서 내 옆에 앉는 순간, 다시는 저쪽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
“아, 난 또 무슨 소리를 한다고 괜찮아.”
“그렇게 쉽게 괜찮다고 말할 일이 아니야. 생각을 신중히 하는 게 좋아.”
‘오벨리언 마르커스’가 앉아있는 방향을 재차 가리키며 분명히 사인을 줬지만 제라르는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
“정말 괜찮아. 나 주변 사람들 시선은 신경 잘 안 쓰거든.”
그리고 그대로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신출내기 연금술사.
“응?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지난번에도 느낀 건데 곱상하게 생긴 것치고는 의외로 강단이 있다 싶어서.”
“에이, 그런 걸로 따지면 나보다 페이건이 몇 배는 더 하지. 페이건은 생긴 건 꼭 왕자님 같으면서 행동은 엄청 터프하잖아. 그 늑대인간 건만 해도 그렇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안경을 치켜올리는 제라르, 곧이어 내 양쪽 어깨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헤헹! 이 꼬마, 제법 용기가 있네. 이래서 사람은 겉보기만으로 모르는 거라니까.
―그래, 저런 바보들 시선이나 신경 쓰고 있으면 큰 사람이 못 되는 거야.
대강당에 도착한 이래 줄곧 혼자였던 내 옆에 사람이 다가왔다는 게 기뻤는지 어깨 위의 둘은 기쁨의 목소리를 높였다.
“왕자님이라… 날 좋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앞으로 그 단어는 조심해서 사용하는 게 좋을 거야. 폴리다고스에서 함부로 ‘왕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가는 진짜 왕자님의 신도들한테 매장당할 수도 있으니까.”
“신도? 아! 유리안 선배님! 맞네, 그러고 보니 진짜 왕자님은 따로 계시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폴리다고스 내의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을 떠올린 제라르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리안 알렉세예브’.
폴리다고스 재학 5년 차인 천재 마검사.
대륙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서 깊은 마탑, ‘천공의 눈’의 마스터를 맡고 있는 ‘지그문트 이그나셰프’가 직접 길러 낸 직전 제자.
그리고 고작 5학년에 불과함에도 7학년, 8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학생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로 손꼽히는 기재 중의 기재.
“유리안 선배님은 입학하신 이래로 매번 입학식에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다는데, 이번 행사에도 나오시겠지?”
“나오시겠지가 아니라 나와야 맞는 게 아닐까? 이곳에 있는 여학생들 중 절반 이상은 오매불망하던 유리안 선배의 실물을 영접할 생각에 들떠 있을 텐데 안 나와버리면 큰일이잖아?”
나와 제라르 모두 그 실물을 본 적이 없음에도 그 존재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을 만큼 유리안의 존재감은 막강했다.
특히 나이를 불문하고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리안 알렉세예브의 인기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5년 차 이상의 여선배들은 유리안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그림 같은 후배님’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4년 차 이하의 동급생 및 여후배들은 유리안을 ‘동화 속 왕자님’으로 여길 정도였으니까.
“2년 전에 유리안 선배님이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을 때 진짜로 기숙사가 뒤집어지는 줄 알았대. 그리고 그 충격으로 등교를 거부한 사람들도 엄청 많았다고 하더라고. 헤에, 어떤 사람일지 진짜 궁금하다.”
“다른 사람이 약혼을 했다고 출석을 안 하다니… 뭐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사고방식이기는 한데. 뭐, 그 여학생들의 마음을 그 정도로 출렁이게 만들 사람이면 되게 잘생기지 않았을까? 성격도 좋을 테고.”
“응. 그럴 거야. 이렇게 얘기하고 있으니까 더 궁금해지네. 그리고 페이건, 나 사실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쭉 궁금했는데 네 어깨 위에 있는 그 새 님, 뭔지 물어봐도 돼?”
“새 님? 아, 이 녀석의 이름은 라무테라고 해. 어릴 때부터 쭉 함께했던 내 오랜 친구랄까?”
라무테 님을 향한 채 반짝이는 제라르의 눈동자.
일전에 제라르가 동물들에게도 관심이 많다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깃털 색 되게 예쁘다. 빨간색인데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지네. 혹시 내가 쓰다듬거나 하면 새 님이 싫어하려나?”
“잠깐만.”
왼쪽 어깨로 시선을 돌리자 고개를 끄덕이는 라무테 님이 보였다.
“우리 라무테가 좀 까다롭기는 한데 반응을 보니까 너한테는 제법 호감이 있는 것 같아. 그러니 괜찮을 것 같아.”
“어! 진짜? 새 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사실은 처음 봤을 때부터 새 님이랑 친해지고 싶었어요.”
라무테 님의 자태에서 위엄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제라르는 새 ‘님’이라는 존칭을 붙여 가며 팔을 뻗었고 라무테 님은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와! 비단 같아. 무슨 털이 이렇게 고와!”
“머리에서 등으로 걸쳐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하니까 그렇게 한 번 해봐.”
라무테 님과 제라르가 노는 걸 보고 있자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갔고, 그렇게 입학식 시작까지 30분 정도를 남겨 둔 그때.
“얘들아! 오셨어!”
“어디? 어디에 계시는데?”
“지금 복도 창에 모습이 비쳤으니까 이제 곧 저기 문을 열고 들어오실 거야. 내가 똑똑히 봤어.”
“정말? 어떡해! 어떡해! 나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대강당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양손을 모은 채 발을 동동 구르는 여학생들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을 살피는 남학생들.
그 구체적인 대응 방식은 달랐지만 한껏 치켜뜬 눈동자에 기대감이 잔뜩 서려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는 사람들.
덜컥.
잠시 후 앞쪽의 문이 열렸고.
“유리안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방학 동안 잘 지내셨나요?”
“선배님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문의 왕자님이 강림하신 순간 환호성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유려하게 찰랑이는 푸른 머리카락과 그려 낸 듯이 수려한 이목구비.
남자치고는 다소 작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워낙에 균형이 좋은 덕에 왜소하다는 생각보다는 탄탄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게 하는 조각 같은 실루엣.
“안녕 에렌, 너도 방학 잘 보냈니?”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햇살처럼 화사한 미소와 중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까지.
‘음… 뭐 확실히 잘생기기는 잘생겼네. 잘 웃는 거 보니까 성격도 좋아 보이고. 여기에 폴리다고스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든든한 배경까지. 만인의 사랑을 받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건가?’
유리안 알렉세예브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생겼네. 사람들이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유리안 선배님은 그냥 보기만 해도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드는 그런 분이셨구나.”
비교적 담담한 태도로 소감을 밝히는 제라르.
하지만 제라르와는 달리 여자 신입생들은 당장에라도 꿀이 뚝뚝 떨어질 듯한 눈동자를 한 채 유리안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유리안 선배니임….”
심지어는 그 오벨리언 마르커스마저도 입을 헤 벌린 채 몽롱한 표정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래서야 입학식이 시작될 때까지는 쭉 시끄럽겠네.’
유리안에 대한 관찰을 마친 나는 조금 전에 읽다 만 책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분위기 탓에 집중이 썩 잘 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어! 페이건, 저 왕자님 네 쪽을 보면서 걸어오는데.
‘네가 잘못 본 거겠지. 저 사람은 내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나한테 올 리가 없잖아?’
하지만 이번에도 책장은 채 다섯 번을 넘어가지 못했다. 조금 집중이 되려는 찰나 북슬이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요란을 떨었던 것이다.
―아니야. 진짜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럼 내가 아니라 이 근처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한테 볼 일이 있나 보지. 그리고 머리카락 잡아당기지 마.’
고개를 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머! 유리안 선배님께서 왜 이쪽에!’, ‘꺄! 어떡해 눈 마주쳤어!’ 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로 봐서 유리안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건 사실인 듯했다.
“아, 아, 안녕하세요 유리안 선배님. 저는 마르커스 가문의 오벨리언이라고 해요. 이렇게 선배님을 뵙게 되어 정말이지… 응?”
잔뜩 새된 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오벨리언.
그런데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걸 보면 유리안의 목표가 오벨리언은 아닌 듯했다.
사락.
그렇게 두 장의 책장을 추가로 넘겼을 무렵.
“페이건, 페이건. 고개 좀 들어 봐! 빨리!”
제라르가 다급한 목소리로 옆구리를 쿡 찔러 왔고.
“뭐야… 유리안 선배님이 왜 저 회색분자 가문의 밉상한테….”
“유리안 선배님이 클라디우스랑 인연이 있으셨어?”
그제야 난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향해 한껏 집중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 네가 페이건 클라디우스 맞지?”
조금 전 ‘듣기 좋은 중저음’이라고 표현했던 건 조금 수정을 해야 할 듯싶었다.
가까이에서 들은 유리안의 목소리에는 ‘듣기 좋다’라는 수식어로 표현하기 부족한 울림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 울림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천재 마검사는 말했다.
“난 5학년에 재학 중인 유리안 알렉세예브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