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4)화(4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4)
폴리다고스에 재학 중인 귀족들 사이에서 ‘팩셰르 에우리디케’는 ‘요아힘 벤제르센’과 더불어 가장 반 귀족적인 인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팩셰르는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날파리들을 때려잡을 때 상대방의 신분 따위는 가리는 법이 없었고, 일상이 되어버린 특혜에 젖어 살던 귀족 가문의 자제들로서는 외팔이 노괴물이 휘두르는 철퇴가 더없이 폭력적, 반체제적으로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팩셰르가 평민에게 친근한 인사냐고 한다면 그것 또한 결단코 사실이 아니었다.
팩셰르가 버릇없는 귀족 자제들을 호되게 대한다는 사실에 기반한 호감을 품은 채 섣불리 노괴물에게 다가선 평민 자제들은 자기네들의 섣부른 착각에 대한 대가를 무겁게 치러야만 했으니까.
팩셰르가 학생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신의 기대를 얼마나 훌륭히 충족시키느냐’와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게 만드느냐’, 이 두 가지가 전부.
그렇다 보니 그는 귀족과 평민 양측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괴상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귀족들은 팩셰르의 무자비함이 평민의 천박함을 닮아 있다며 치를 떨었고 평민들은 팩셰르를 향해 지독히도 귀족적인 사람이라며 분노를 토해 냈다.
그동안 이뤄낸 수많은 업적들과 그간 폴리다고스를 지탱해 온 연륜이 없었더라면 팩셰르는 진즉에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즉, 정리하자면 팩셰르는 괴팍하고 예측 불허이며 제멋대로이지만 그 탁월한 업적 때문에 그 누구도 무시 못 할 위치에 다다른 마도공학계의 괴짜 거인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번 있었던 정례 회의에서 실험국장님은 공무가 바쁘시다는 이유로 불참을 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이 사람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하시다니 실험국장님 답지 않은 처신이십니다.”
“내가 입학식과 연관된 업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 한 이유는 자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네. 규율국장이라면 나 같은 늙은이의 도움 없이도 모든 업무를 공평무사하게 처리해 나가리라고 믿었어.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오늘 이 자리가 순리에 따라 진행된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손을 들어 자네를 번거롭게 만드는 일은 없었겠지.”
그런데 지금 거인, 아니 괴물이 정례 회의의 결론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고, 그 사실이 알크페인을 당황케 만들었다.
혹시 자신의 선택에 대한 반론이 들어온다면 그건 틀림없이 요아힘일 것이라 생각했고 준비 또한 그쪽에 집중한 바 있었다.
팩셰르가 페이건을 학년 대표 후보생으로 추천한 바는 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요아힘의 얄팍한 수작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안 그래도 반귀족적인 일 처리로 유명한 요아힘이 직접 나서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비호한다면 귀족들에게 반감을 사기만 할 뿐.
그래서 요아힘이 모종의 거래를 통해 저 괴팍스러운 영감을 움직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 알크페인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지. 여간해서는 움직이는 법이 없는 저 미치광이 늙은이가 직접 움직이다니….’
폴리다고스의 직원들에게 일곱 명의 국장들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직원들은 요아힘, 알크페인, 팩셰르 중에 한 명을 고르기 마련이었다.
요아힘과 알크페인이 부딪히는 경우가 워낙에 많다 보니 사람들은 이 둘을 맞수로 기억하기 마련이었지만 사실 팩셰르에게는 이 두 사람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연륜과 권위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이곳에 오기 전, 그리고 이곳에 오고 난 후 무슨 일을 했는지는 규율국장께서도 알고 계시겠지?”
“…알고 있습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이델타에서 본교의 크나큰 불명예로 남을 뻔한 불상사를 막아 줬고, 이곳에 와서는 기지를 발휘해 동급생들을 위기에서 구해 준 바 있네. 그런데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이런 일을 하는 동안 저기 단상 앞에 있는 꼬맹이 둘은 대체 무얼 했지?”
‘꼬맹이’, 공식 석상에서 어울리지 않는 팩셰르의 대담한 발언에 대강당은 연신 술렁이기 시작했다.
“….”
“…!”
그리고 팩셰르가 겨냥한 두 명의 반응 또한 확연히 갈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스트라와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는 오벨리언.
“‘죄에는 단죄를 명예에는 영광을’, 우리가 그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 왔던 폴리다고스의 율법이 아니던가? 자네 앞의 꼬맹이 둘이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밀어낼 정도의 명예를 쌓은 바가 있다면 부디 이 늙은이에게도 설명을 좀 해 줬으면 하네만.”
“….”
똑바로 그어진 지평선처럼 반듯하던 알크페인의 입술이 미세하게 삐뚤어졌다.
팩셰르의 주장에 정당한 명분이 실려 있지 않았다면, 이미 정해진 사항을 이 자리에서 재논의하는 건 온당치 않은 일이라며 일축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무시하기에는 팩셰르의 지위가 만만치 않았고,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자니 실험국장이 내세우는 명분이 확고했다.
“…그러고 보니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왜 저 자리에 서 있지 못한 거야? 실험국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뤄 낸 공적으로 따지면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제일 아니야?”
“입교 전에 쌓아 놓은 그간의 명성이야 저 두 사람이 우위지만 역시 최근 상황만 놓고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저 자리에 서는 게 맞기는 하지. 두 사람을 제외하기 곤란했다면 한 사람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역시 규율국장님께서는 클라디우스라는 점이 그리도 못마땅하셨던 걸까?”
교직원들과 학생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는 동요.
“풉!”
그리고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웃음을 터뜨리는 요아힘까지.
결국 냉철함으로 유명한 알크페인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새겨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불편한 건 알크페인뿐만은 아니었다.
―어! 저 괴물 같은 영감이 네 생각도 다 해 주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 건가?
‘저게 나를 생각해 주는 걸로 보여?’
―응, 널 좋은 자리에 앉혀 주는 거잖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또 한 사람, 페이건은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북슬이에게 돌아가는 판을 설명해 줬다.
―저 영감이 저러는 진짜 이유는 나를 높은 자리에 앉히기 위함이 아니야. 그저 날 곤경에 빠뜨린 후 내가 그 난관을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를 보고 싶은 거라고. 그리고 내가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면 저 영감이 제일 큰 목소리로 낄낄거리겠지.
불꽃을 튀기고 있는 건 단상 위의 두 사람이었건만 내가 착석한 주변의 온도가 후끈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상 위의 열기가 높아지는 만큼 나를 향한 관객들의 시선 역시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나와 단상 위를 번갈아 보기에 바빴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단편적인 사건에 경도되어 누군가가 오랜 시간 기울여 온 노력을 경시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실험국장께서도 이 사람의 뜻을 감안하시어 이쯤에서 그 주장을 철회해 주시는 게 어떨는지요?”
“내가 언제 저들의 노력을 경시하라고 하던가? 난 저 꼬맹이 둘을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그저 페이건 클라디우스에게도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는 게 마땅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일세.”
“그래서 그럼 어쩌자는 말씀이십니까? 설마 이 자리에서 예정된 절차를 모두 무효화하고 다시 논의를 하자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번거롭게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나? 하지만 아주 간단한 여흥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일세. 여흥을 통해 자격 여부가 명확히 가려진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 아니겠는가?”
“…여흥?”
“어차피 저 셋을 포함한 여덟 명의 학생들은 지금과 같은 약식 대표가 아닌 ‘정식 학년 대표’를 뽑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가 아니던가? 그 첫 번째 경쟁을 이곳에서 펼친다 한들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이는데?”
팩셰르의 얄팍한 입술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그가 이런 짓을 벌인 의도가 명백히 드러났다.
‘조만간 또 볼일이 있을 것이라는 게 이걸 말하는 거였나?’
팩셰르의 말은 제안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그 제안이 곧 확정되리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알크페인은 ‘귀족의 자긍심’에 목숨을 거는 자, 그런 그가 ‘실력’을 검증하자는 팩셰르의 제안을 거절할 리 없었던 것이다.
“…우선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지요.”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규율국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팩셰르 에우리디케가 쏘아 올린 첫 번째 화살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네 놈의 생각은 어떻지?”
“국장님께서 증명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상 물러서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확답을 드리기 전 여쭙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말하거라.”
“조금 전 ‘죄에는 단죄를 명예에는 영광을’이라는 말씀을 하신 바 있사온데, 그렇다면 이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 제가 얻게 될 영광은 어떤 게 있을는지요?”
“호오! 공짜로는 일을 하기 싫으시다? 크크 재미있구나, 그러니까 이토록 많은 관객들 앞에서 실력을 자랑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말이지? 정말 재미있어, 좋아 들어주지. 혹시 승리의 대가로 원하는 것이라도 있느냐?”
“13구역에 위치한 유적, 그리고 야영지 북쪽 극단에 있는 지하 미궁. 이 두 곳의 입구를 실험국에서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그곳의 출입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이런 식의 당돌한 제안을 해 올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는지, 좌중은 크게 술렁였다.
하지만 말 많은 이들이 수군거린다 하여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었다.
저 미친 영감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순간,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그렇다면 나도 마냥 공짜로 재주를 넘을 수는 없는 일.
이번 기회를 통해 추후 오르페우스 유산 탐사를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을 몇 개 정도는 치워 놓을 심산이었다.
“13구역의 유적과 야영지의 지하 미궁, 그곳에는 아직 쓸만한 물건들이 이것저것 남아있을 테니 탐이 날만도 하지. 아무래도 네놈은 마냥 청빈하기만 한 부친과는 달리 그래도 세상 물정을 조금은 아는 모양이구나.”
폴리다고스 곳곳에는 아직 완벽히 돌파되지 않은 유적과 미궁이 있었고,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마도물품들이 잠들어 있는 터라 학생들 중 상당수는 공략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본부는 해당 지역 출입을 엄금하고 있었기에 유적과 미궁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그림의 떡으로 남아 있는 실정이었다.
“좋아. 네놈이 이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내가 담당하고 있는 유적과 미궁의 출입을 허락하도록 하지.”
팩셰르가 시원하게 요청을 받아들인 그 순간, 난 남몰래 주먹을 움켜쥐었다.
‘됐어. 오르페우스의 유산이 숨겨진 장소 중에는 유적과 미궁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걸로 해당 지역을 마음 편하게 탐사할 수 있게 되었어.’
광대놀음은 사양이었지만 이 정도 부상이 걸려 있는 놀음이라면 얼마든지 뛰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리고 내 고개가 끄덕여지는 걸 확인한 팩셰르는 곧바로 나머지 참가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스트라, 네 뜻은 어떻지?”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벨리언 마르커스, 너는 어쩔 테냐?”
“물론 참가예요. 두 사람이 받아들였는데 제가 거부할 이유는 없죠.”
“나머지 놈들은?”
“무, 물론 참가합니다.”
대강당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길버트 맥도닐을 비롯한 다른 후보생들의 대답을 끝으로 전원의 참가 의사가 확인되었다.
“나머지 놈들도 혹 승리의 대가로 원하는 게 있다면 ‘승리’ 후에 언제라도 나를 찾아오도록. 나는 정당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학생들에게는 아주아주 관대한 사람이니까.”
대강당을 주욱 훑은 팩셰르의 매부리코는 마지막으로 알크페인을 향했다.
“학생들의 뜻은 이렇다는데 규율국장의 뜻은 어떠신가?”
“이의는 없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의 우수함을 증명하기 원한다면 그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이니까요.”
“좋아, 그럼 이제 종목만 정하면 되는 셈인가….”
명예로운 귀족을 대표한다는 자가 이런 자리에서 형세의 유불리를 따져 물러서거나 할 수는 없는 일.
알크페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팩셰르의 도박을 받아들였고, 원하는 대로 판을 짜는데 성공한 노괴물은 다시 한 번 좌중을 살폈다.
“아직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 약식으로 무대를 만들어야 할 텐데.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누구 한 명에게 유리하지 않은 공정한 경쟁’을 하려면 어떤 종목을 선택하는 게 좋을꼬?”
맹금류의 그것을 닮은 팩셰르의 눈동자가 닿을 때마다 사람들은 움찔거리며 그 시선을 피했다.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쳤다가는 노괴물의 변덕에 휘말려 골치 아픈 일에 휩쓸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
히죽.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 심지어는 정식 교수들마저 시선을 회피하기 바쁜 와중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는 인물이 보였고, 그 사실이 기뻤던 팩셰르는 평소답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리안 알렉세예브.”
“찾으셨습니까. 실험국장님.”
이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조차도 여유와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목소리.
계획해 둔 모든 절차가 허물어지는 와중에도 스스로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천재 마법검사’를 주시한 채 팩셰르는 물었다.
“검 가져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