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5)화(4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5)
“검… 말씀이십니까?”
“아니지, 네 실력이라면 검이 없다 한들 저 꼬맹이들과 놀아주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테니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나?”
뜬금없이 자신의 무장 여부를 확인하는 팩셰르, 그 질문에 담긴 의도를 파악한 유리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네 전용 무기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으니 지금 바로 준비하거라. 상급생 대표로 초대받아 이 자리에 온 이상 너도 네 밥값은 해야지.”
“실험국장님!”
“네 녀석도 하나 마나 한 축사 따위를 늘어놓는 것보다 차라리 이편이 더 적성에 맞을 것 아니냐? 선배로서 후배들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함이니 굳이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
대화를 통해 팩셰르의 의도를 얼추 파악한 알크페인 무라노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미치광이 영감이 말하는 여흥이라는 게 유리안을 통해 신입생들의 실력을 시험하자는 거였나?’
그 고귀한 출신과 평소 행실 덕분에 종종 오해를 사고는 했지만 사실 알크페인은 ‘귀족 중심주의자’인 동시에 철저한 ‘실력 지상주의자’이기도 했다.
“유리안 알렉세예브가 신입생들의 실력을 판가름할 거름막이 되어 준다면 규율국장께서도 별 불만은 없으시겠지?”
팩셰르의 도발적인 말투에도 불구하고 알크페인은 고개를 끄덕여 보일 수밖에 없었다.
유리안은 ‘무릇 귀족이란 그 혈통에 걸맞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라는 알크페인의 평소 신념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학생이었으니까.
“실험국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팩셰르의 ‘장난’에 제동을 건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이 자리에서 학년 대표 후보생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자는 실험국장님의 말씀에 저 또한 찬성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유리안 군에게 그 임무를 맡기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는군요.”
“이거 참 의외로군. 치안국장께서는 그간 유리안 알렉세예브라 하면 그야말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셨지 않았는가?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지?”
“유리안 군의 실력을 전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자라나는 새싹들 앞에 벽을 가져다 놓는 이유는 그 싹들이 언젠가는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하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그 벽의 높이가 너무 높고 또 갑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 그러니 치안국장께서는 유리안을 거름막으로 사용하기에는 저 꼬맹이들과의 실력 격차가 너무 크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아주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거구의 중년 남성, 요아힘 벤제르센은 알크페인과는 다른 종류의 무게감을 선보이며 팩셰르의 공세를 받아넘겼다.
“실험국장님. 저는 지난 학기에 유리안 군과 같이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아마 폴리다고수의 교직원들 중 유리안 군의 실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저일 것입니다.”
“흐음… 그렇다는 말이지.”
요아힘의 말투며 표정은 온화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어! 페이건, 저 커다란 남자가 너를 완전히 무시하는데? 화 안 나?
‘저 사람 입장에서 당연한 말을 하는 것뿐인데 내가 화가 왜 나?’
유리안과 신입생들 사이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실력 격차가 존재한다고 단언하는 요아힘.
페이건은 그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지만 다른 신입생들은 그렇지 못했다.
“…!”
“으윽….”
오벨리언 마르커스를 비롯한 신입생들의 얼굴은 저마다 상기되어 있었고.
“….”
어지간해서는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던 아스트라 또한 눈을 가늘게 뜬 채 유리안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기세의 변화가 없는 건 페이건 클라디우스뿐인가. 승부욕이 낮은 건지, 아니면 내가 하는 말 따위는 신경도 안 쓸 정도로 대범한 것인지 참 궁금하군.’
물론 이 와중에도 요아힘은 대표 후보생들의 기세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걸로 공을 팩셰르에게 넘긴 요아힘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한 채 팩셰르의 대응을 살폈고.
“치안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약간의 제한을 주는 편이 더 재미있겠군. 거기 누구 연습용 검 한 자루 주겠나?”
“여기 있습니다. 국장님.”
말이 끝나자마자 검이 준비되었고 팩셰르는 품 안에서 꺼낸 수정을 손에 쥔 채 유리안을 불렀다.
“유리안! 여기로 와서 이 검에 너의 마나를 주입하도록.”
한차례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지만 유리안은 순순히 팩셰르의 명을 따랐고, 그 작업이 끝나자마자 팩셰르는 연습용 검의 손잡이 또한 건넸다.
“잡아라. 그리고 이 검에도 오러를 주입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연습용 검의 검신이 푸르스름하게 변했고.
“어! 실험국장님?”
“지금부터 너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네가 그동안 배우고 익힌 비전 검법도 사용해서는 안 돼. 오직 이곳에서 배운 공통 검법으로만 저 꼬맹이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조금 전의 수정이 연습용 검 끝에 착하니 달라붙었다.
“그리고 거기 있는 꼬맹이들은 이걸 잘 보도록. 이 수정을 검 끝에서 떼어내 자신의 손에 쥐는 놈이 승자다. 물론 유리안이 쥐고 있는 검에서 수정을 떼어 내기 위해 이 녀석의 정신을 사납게 해서 집중을 흐트러뜨리거나 검과 수정 사이의 오러를 끊어 내는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야.”
드디어 밝혀진 난제 앞에 학생들의 표정이 엇갈렸다.
“그럼 저기 있는 대표 후보생들이 유리안 선배님을 상대로 저 수정을 뺏어 와야 하는 거야?”
“아니, 그런데 제아무리 유리안 선배님이라도 마법과 비전 검법이 봉인된 상태에서 동기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까?”
“버텨? 너 지금 유리안 선배님이 버틴다고 한 거야? 이 바보야, 그 반대지. 동기들이 유리안 선배님을 상대로 버티는 거야. 마법 좀 못 쓴다고 유리안 선배님이 당할 것 같아?”
관람객 위치를 점한 일반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기대감을 불태웠고.
‘그러니까 저 수정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유리안 선배의 오러를 차단해야 한다는 거잖아?’
‘정신 나간 노인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고강하기로 이름 높은 유리안 선배의 오러를 차단시키라고?’
무대에 올라야 하는 당사자들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정도 핸디캡을 준 이상 치안국장께서는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
“네. 조금 부족한 감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이 정도면 그래도 최소한의 균형은 갖춘 것 같군요.”
“아직도 부족한 감이 있다고? 크크 아무래도 유리안 알렉세예브에 대한 치안국장의 신뢰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인 모양이야.”
유리안은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마법검사였고, 마법검사에게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을 거는 건 단순히 가진 힘의 절반을 봉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법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검과 마법의 조화로운 균형인데 마법이 봉인된 이상 유리안은 생명과도 같은 조화가 그야말로 심대하게 훼손된 상황에서 신입생들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전 검법까지 사용해서는 안 된다니.
이건 마치 오른손잡이 검사에게 외발자전거에 올라탄 채 오른손으로는 저글링을 하며 왼손 하나로만 싸움을 하라는 것과도 같았다.
“유리안 알렉세예브, 추가적인 질문이 있나?”
“하하… 실험국장님께서 저에게 너무 과한 과제를 내리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만, 어찌 되었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흥! 속으로는 여유가 흘러넘치는 주제에 되도 않는 겸손한 척을 하는구나.”
그럼에도 연습용 검을 받아 든 유리안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고.
“…!”
그 표정이 페이건을 제외한 신입생 대표 후보생들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자, 자! 잠시들 물러나 봐!”
준비가 끝난 걸 확인한 팩셰르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을 들어 손짓하자 행정 요원들이 학생들 사이로 파고들어 준비를 시작했고, 순식간에 간이 대련장이 형성되었다.
입학식이 진행되던 대강당 자체가 워낙에 넓었던 터라 신입생들을 좌우에 위치한 계단형 좌석에 착석시키는 것만으로 중앙에 상당한 공간이 생겼다.
“실험국장님,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확인하고 싶은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제아무리 실험국장님이라 해도 사전에 합의된 사항을 독단으로 뒤엎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만약 실력대로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실험국장님의 발언에 설득력이 없었다면 저는 결단코 이런 자리를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알겠네. 내 규율국장의 고견은 새겨듣도록 하지.”
“그리고 둘째, 결과가 나온다면 추가적인 말씀 없이 이 결과에 승복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또한 물론 받아들이겠네. 하지만 누가 승복을 하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
“시작해.”
알크페인은 팩셰르의 마지막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돌렸고 이내 페이건과 유리안을 포함한 주연 배우들은 준비된 무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페이건, 페이건 어떻게 할 거야? 응? 응?
잔뜩 흥분한 관객들의 분위기에 전염이 되기라도 한 걸까? 북슬이는 한껏 상기된 표정을 한 채 머리 근처를 날아다녔다.
‘글세…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재미있는 건 저 괴팍한 영감이 승리하는 방법만 말하고 세부적인 규칙은 하나도 정해 주지 않았다는 거거든.’
―응? 그렇고 보니까 정말 그러네.
‘그렇다는 건 상세한 규칙은 당사자들의 재량에 맡기겠다는 건데, 저기 좀 봐. 유리안 알렉세예브는 아까부터 아무런 말이 없어. 그 말인즉슨 이 내기에 인원 제한을 둘 마음이 없다는 뜻이거든.’
―어머! 진짜? 너희들은 여덟 명이고 저 사람은 달랑 혼자인데?
‘네. 유리안 선배는 똑똑한 사람이니 8대1을 피하고 싶었다면 진즉에 몇 명 이상이 한 번에 덤비는 건 안 된다는 규칙을 추가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런 말이 없지요. 여덟 명을 동시에 상대할 생각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으으… 뭐야! 아까 보니까 제법 예의 바른 것 같아서 좋게 봐주려고 했더니 건방지네!
‘이런 건 건방이라고 하는 게 아니야. 자신감이라고 하는 거지. 천하의 유리안 알렉세예브가 신입생들을 상대로 긴장할 일이 뭐가 있겠어.’
―그래도 8대1인데….
‘과연 8대1이 될까? 우리 쪽 꼬라지를 봐. 그게 가능한 일일지.’
―우웅. 정말 그렇네.
주변을 살핀 라무테 님과 북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 8인으로 구성된 도전자 무리는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우측의 아스트라, 좌측의 나, 그리고 가운데에 한데 모인 오벨리언 마르커스 외 떨거지들.
지금쯤이면 유리안과 관객들 모두 알아차렸을 것이다.
신입생 대표 후보생들 간의 사이가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심동체가 되어 달려들 만큼 살갑지 않다는 것을.
“음… 내 마음 같아서는 너희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싶다만, 아무래도 해야 할 기념식이 남아 있잖아. 그러니 슬슬 시작하는 게 어떨까?”
외려 여유가 넘치는 건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감내해야만 하는 유리안 쪽이었다.
유리안은 화사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전원을 도발했지만 가장 다수를 이루고 있는 오벨리언과 그 떨거지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할 일이 남아 있기는 하지.’
―페이건 네가 먼저 나서게?
‘어쩌겠어. 저기 있는 겁쟁이들이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 나라도 움직이는 수밖에. 방금 유리안이 그랬잖아. 시간이 많지 않다고.’
물론 여기서 먼저 움직이면 손해를 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돼먹지 못한 꼬맹이들을 상대로 기 싸움을 벌여 가며 고작 약간의 이득을 노릴 생각은 없었기에 내가 막 한 걸음을 내디디려는 그 순간.
“선배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스트라 페르디난드라 합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이 기회를 빌어 선배님께 가르침을 청해보고자 합니다.”
나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인 인물이 있었다.
“그래. 나도 만나서 반가워. 그리고 아스트라 군에 대한 소식은 나도 많이 들었어. 검성 어르신의 진전을 아주 제대로 이어받았다고.”
“아직은 부족할 따름입니다.”
비록 유리안의 그것에는 다소 부족하지만, 그 역시 상당한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백발의 소년기사가 보여준 용기에 관객석은 후끈 달아올랐다.
“역시 페르디난드의 아스트라구나. 눈치 같은 거 안 보고 바로 나왔어!”
“힘내라, 백룡기사!”
간발의 차로 한 발 늦어 버리고 말았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선배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저 또한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스트라는 고개를 돌려 아직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오벨리언 무리를 한차례 쳐다봤다.
그리고.
‘미안, 그렇지만 가슴 졸이며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1등은 놓치고 싶지 않거든.’
나를 향해 오벨리언 무리를 향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미소를 지어 보인 후 한 걸음을 더 내디딘 후 말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의 검으로 저와 선배님 간의 거리를 가늠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