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7)화(4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7)
가가각.
“이번 건 조금 많이 놀랐어. 페이건 군이 특이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설마 이렇게 날카롭게 날아올 줄이야….”
“…과찬이십니다.”
제법 날카로운 공격이라 자부했던 네 번의 연격.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유리안 알렉세예브에게 유효타를 가하지는 못했다.
나는 도약력까지 이용한 온 힘을 다해 검을 내리누르고 있었지만, 그 필사의 습격을 버텨 내는 유리안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쳐 흐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에게 들은 적 있어. 뛰어난 치료술사들은 치료술뿐만 아니라 신체를 단련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재료 채집 같은 활동을 하다 보면 험지에 발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흔들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기세.
티아매트를 막아선 유리안의 표정에서 아스트라를 처박아 버린 피곤의 흔적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페이건 군도 그런 경우구나? 비전투 전공자이면서 이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라니… 단련을 굉장히 열심히 했나 봐.”
백발의 소년 천재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아스트라의 호기로운 항전은 유리안 알렉세예브라는 희대의 괴물에게 약간의 과부하를 주는 데조차 실패한 것이다.
가가가각.
유리안의 오러가 선명히 맺혀 있는 검을 한차례 내리누른 후 곧장 후방으로 몸을 이동했다.
―에게? 한번 부딪치고 도망치는 거야. 우우 겁쟁이.
‘멍청한 소리 하지 마. 검을 맞대고 있는 건 저 아스트라도 단번에 메다꽂아 버린 괴물 중의 괴물이야. 그런데 저런 괴물이랑 기세 싸움을 하라고?’
털 뭉치는 한 번의 충돌 이후 몸을 빼는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르카’나 ‘드루이드의 힘’을 숨긴 상태에서 내 검술은 아스트라의 것보다도 명백한 아래.
이런 상황에서 저 괴물 같은 유리안과 정면 승부만을 고집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저 아이 정말 힘이 대단하네. 페이건 네가 그렇게 파고들었는데 그걸 저렇게 가볍게 받아 내다니. 어휴, 저렇게 늘씬한 몸 어디에 저런 괴력이 숨어 있는 걸까?
유리안의 소매 아래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팔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라무테 님이 혀를 내둘렀다.
라무테 님과 벨제키엘, 이 둘은 내가 광폭화된 마수들을 처리하는 광경을 지겹도록 봐온 터라 조금 전 도약에 어느 정도의 힘이 실려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리안이 제자리에서 한쪽 팔로만 공격을 막아 내는 광경을 목격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으앗! 페이건! 저놈 쫓아온다.
유리안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한 롤빵이의 북실북실한 털이 곤두섰다.
그대로 선 채 모든 공격을 받아넘길 것만 같았던 유리안이 제자리를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음… 원래는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싶었는데. 아스트라도 그렇고 페이건 군도 그렇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는 덕분에 조금 몸이 달아올라 버렸어.”
예의 그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따라온 이유를 밝히는 유리안.
카앙.
그 미소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지만 순식간에 내 머리 위를 점한 채 내리긋는 참격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지이잉.
워낙 다급하게 막아낸 터라 티아매트를 든 왼쪽 팔목이 시큰거렸다.
“하아!”
가벼운 기합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본 검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묵직한 연격.
“하아! 하아!”
유리안은 그대로 내 머리 위를 점한 채 공격을 가해왔다.
어찌저찌 공격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충격의 여파로 스텝이 꼬인 탓에 나는 당초 계획했던 방향이 아닌 좌측을 향해 크게 선회 이동을 했다.
챙챙챙.
유리안은 그 선회 이동을 곧바로 따라 방향을 틀었고 난 거리를 벌리기 위해 세 개의 침을 흩뿌려야만 했다.
“이거… 침 맞지? 역시 조금 전에는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나 봐.”
물론 이번에도 유리안에게 피해를 주는 데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이델타에서 괴물을 사냥할 때 페이건 군이 범상치 않은 무기를 사용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게 이거구나, 침을 비검처럼 쓰다니 특이하네. 혹시 클라디우스의 가주께서도 이런 걸 할 줄 아셔?”
“아니요. 아마도 이런 식으로 경망되게 침을 사용하는 건 클라디우스 전체를 통틀어서도 제가 유일할 겁니다.”
“으음… 역시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델타에서 그 털 짐승의 배를 가른 건 바늘이 아니라 지금 제 손에 들려있는 검입니다.”
세 개의 침을 뿌린 대가로 겨우 얻어 낸 거리.
“그럼 이런 신통한 재주는 누구한테 배운 거야? 설마 혼자?”
“네, 독학입니다.”
“우와! 진짜?”
“아버지는 종종 말씀하시고는 했습니다. 너는 잡기에 굉장히 능하니 어디를 가더라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거라구요.”
“하하! 클라디우스 가주께서 재밌는 말씀을 하셨네. 재주 많은 아들을 뒀으니 가주께서도 아주 뿌듯하시겠어.”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군요. 아버지께서는 제가 사도에 빠져 본업을 소홀히 할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에이, 설마.”
정면 승부를 피하고 원거리에서 기회를 노리고자 하는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거리임에 분명했지만, 유리안의 표정 어디에서도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조바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 거리쯤이야 얼마든지 좁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저런 표정도 가능한 거겠지.
‘온다!’
여유로운 한담은 잠시.
유리안의 쭉 뻗은 다리 위치가 바뀌었고, 도약을 예측한 나는 재빨리 측후방으로 몸을 뺐다.
가가가각.
“음,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렇게 주도적으로 공세를 취하는 게 혹시 규칙 위반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글쎄… 요. 하지만… 이게… 규칙 위반이었다면… 실험국장… 님께서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요?”
“그치? 페이건 군 생각도 그렇지. 흐흐, 이렇게 인내심 없는 못난 선배라서 미안. 그렇지만 페이건 군이 너무 잘 받아치니까 나도 자꾸 흥미가 생기네.”
당초에는 공격을 흘릴 생각이었으나 유리안의 도약이 예상했던 것보다 민첩한지라 또다시 검을 맞대고야 말았고, 조금 전보다 더욱더 묵직해진 일격에 왼팔은 다시금 비명을 내질렀다.
쾅쾅쾅.
난 기회를 봐서 몸을 내뺐고 유리안은 곧바로 뒤를 쫓아왔다.
챙강챙강.
반복적으로 허공을 가르는 침과 기계적인 모습으로 그 모든 공격을 튕겨내는 유리안의 검.
파공성을 배경 삼아 술래잡기가 이어졌고, 이번에는 무려 여섯 개의 침을 한꺼번에 뿌리고 나서야 다시금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내가 조금 전에 그랬잖아. 치료술사가 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좋은 참격이라고, 그런데 그 말 취소할게. 아! 그렇다고 해서 그 참격이 나빴다는 건 절대로 아니고, 아무래도 페이건 군의 진짜 특기는 참격 보다 그 움직임인 것 같아서.”
“하아… 하아… 그렇게 과분한 말씀을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과분한 말이라니, 천만에! 정말로 훌륭한 움직임이야. 혹시 페이건 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면 페이건 군이 ‘레인저’일 거라 착각할 만큼 민첩한 움직임이었어.”
잠깐의 소강상태에 펼쳐진 2차 한담.
유리안의 낭랑한 목소리 사이로 관객들의 술렁거림이 들려왔다.
“뭐야… 왜 저렇게 잘 버텨? 아스트라는 한 방이었는데 저 클라디우스의 꼬마는 공세를 취하는 유리안을 상대로 무려 십 분을 버티고 있잖아?”
“여기서 아스트라와의 비교가 왜 나와? 아스트라가 버티려고 마음먹었으면 저 정도를 못 버텼을까 봐?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처음부터 저런 식의 싸움을 마음먹고 나온 거라 아스트라랑은 이야기가 다르지.”
“누가 아스트라가 못났대? 그게 아니라 아스트라와는 별개로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굉장히 잘 버티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 유리안에게 제약이 가해진 건 마법과 비전 검법이지 보법이 아니야. 즉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자신의 보법을 구사하고 있는 유리안을 상대로 10분을 버티고 있는 거라고.”
“끄응… 뭐 물론 그 점은 그렇기는 한데, 아무튼 잘 버티는 것도 여기까지야. 조만간 끝이 날 테니까 지켜보라고.”
관객들의 목소리에서는 영 마뜩잖은 놈이 유리안의 공세를 버텨 낸다는 것에 대한 불만, 그리고 내가 보여 주는 의외의 끈질김에 대한 경외가 동시에 묻어나왔다.
여전히 곱지 않은 눈을 한 놈들이 태반이었지만 어쨌거나 내가 선보인 이 지구전이 관객들에게 아스트라가 선보인 화끈한 즉결 승부와는 다른 종류의 감흥을 불러일으킨 것만 같았다.
“숨은 다 가다듬었니?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역시 공세를 멈춘 건 제 사정을 봐주시기 위함이었군요.”
“사정을 봐줬다기보다는 내가 공세를 취할 거라는 건 사전에 약속된 게 아니었잖아. 갑작스러운 태세 변환으로 페이건 군을 당황하게 만든 것에 대한 벌충이랄까?”
정말이지 왕자님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미소와 마음 씀씀이.
마음 같아서는 나 역시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우웅.
예의 구 수정을 대롱대롱 매단 연습용 검에 지금까지와는 유를 달리하는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 오러 양을 무식하게 늘리는 건 제한사항이 아니기는 하지. 댁이 그렇게 나오신다면 나 역시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드리는 수밖에.’
양손의 손가락 사이마다 세 개씩, 도합 스물네 개의 침이 손가락 사이에 끼워졌고 그 모습을 본 유리안이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할 거라는 걸 눈치챘구나.”
“오러의 양을 그렇게 늘리는 건 대놓고 보여 주시는데 눈치채기 싫어도 눈치챌 수밖에 없더군요.”
“지금까지 최대한 많이 날린 게 여섯 개였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스물네 개네. 네 배의 위력 기대해도 될까?”
“…어떻게 기대를 충족시켜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해 보죠.”
“하하! 아주 좋은 대답이야. 후배님이 그런 멋진 모습을 보여 주면 이 철없는 선배는….”
정말로 수려한 곡선을 그리는 유리안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고, 순백을 머금고 있는 치아가 오러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순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네 개의 층으로 나뉜 오러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으아아아!
―어머나! 페이건 견딜 수 있겠니?
‘첫 번째는 위에서 아래로 온다. 뒤이어질 충격을 생각하면 완전 파쇄는 불가능해. 여기서는 비껴 나게 만드는 수밖에.’
콰라라락.
피잉피잉피잉피잉피잉피잉.
엄지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바늘 여섯 개가 허공을 날아 덮쳐 오는 오러 파도의 중단에 부딪쳤다.
와르르르륵.
정확히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오러의 물길,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우측 후방에 세 개, 좌측면에 세 개. 다행히도 이건 눈치채지 못한 것 같군.’
첫 번째 오러의 파도가 완전히 소멸되기도 전에 두 번째 오러 파도가 나를 덮쳐 왔지만 나는 그 와중에서 첫 번째 파도를 막아 내고 튕겨 나간 바늘의 위치를 파악하는 걸 잊지 않았다.
‘좋아, 유리안도 저 바늘의 위치까지는 주목하지 않고 있어.’
피잉피잉피잉.
다시 한 번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간 여섯 개의 바늘.
콰라라라.
두 번째 파도 역시 간발의 차이였고, 이번 바늘 또한 유리안 주위 어딘가로 굴러떨어졌다.
‘기본 검법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유리안의 약점을 찌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검술을 가지고 있는 아스트라라면 모를까 나는 장기전으로 가 봤자 승산이 없어. 여기서 승부를 건다.’
피잉피잉.
치이익.
약간 타점이 빗나가는 바람에 세 번째 오러 파도는 내 소맷자락을 스쳤지만 이번에도 내 시야는 바늘의 위치를 향해 있을 뿐이었다.
‘역시 아직까지도 눈치 못 채고 있어. 네 번째 파도가 지나가는 즉시 전개한다.’
이제 남은 파도는 하나.
“와아! 이것도 흘린다고? 거참, 이거는 막아 내는 것보다 정확한 지점을 노려서 흘려보내는 게 훨씬 더 어려운 건데.”
전혀 고맙지 않은 왕자님의 감탄.
나를 향해 쏟아질 준비를 마친 네 번째 파도는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맹한 기세를 자랑했고 마지막 시련을 앞둔 내가 입술을 깨문 그 순간.
“지금이야! 덮쳐!”
유리안과 나, 그리고 관객들마저 그 존재를 잊고 있던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내지른 건 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오벨리언 마르커스.
그리고 목줄이 걸린 개처럼 충실한 움직임을 보인 건 오벨리언의 주위를 맴도는 다섯 명의 남녀였다.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6인의 눈동자에 서린 뜻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어! 유리안 선배는 대규모 오러를 방출하느라 지치셨고 꼴 보기 싫은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이제 저 파도에 쓸려 나갈 거야. 지금 기회를 노려 유리안 선배를 덮친다면 수정을 뺏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영악하다면 영악하다 할 수 있고, 또 비열하다면 비열하다 할 수 있는 계책.
녀석들은 아스트라가 선두로 치고 나갔을 때부터 이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런 전략 또한 어디까지나 규칙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에 나는 녀석들의 영악함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 교활한 계략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건 녀석들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나와 이놈들이 탓하지 않는다 하여 모든 주연 배우가 이 사실에 분개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쳇! 뭐야, 한참 재미있었는데.”
바보들은 저마다 공격 태세를 취하느라, 관객들은 오러 파도가 자아내는 굉음 때문에 듣지 못했지만 난 똑똑히 들었다.
나를 상대할 때는 단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왕자님께서 그 상큼한 눈초리를 한껏 치켜올리며 토해 내는 볼멘소리를 말이다.
“하여간… 눈치라고는 없는 못된 꼬맹이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