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8)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8)화(48/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8)
“어머나, 저게 뭐야! 지금 유리안은 페이건 클라디우스와 승부중인데… 저렇게 한꺼번에”
“아… 물론 애초에 1대 다의 전투이니만큼 저것도 규칙에 어긋난 건 아니지만….”
“규칙 위반은 아니라고 해도 저런 건 좀 그렇잖아? 더군다나 아스트라는 유리한 점을 포기한 채 정면승부를 했어. 그리고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치료술사임에도 저렇게 당당히 1대1을 선택한 마당에 온통 전투 전공인 놈들이 저렇게 도적떼처럼 우르르….”
예상치 못한(하지만 나는 예상한 바 있는) 오벨리언 패거리의 습격에 깜짝 놀란 건 관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규칙 위반은 아니다만 미관상에는 좋지 않은 계략.
콰콰콰.
―우와 저 비겁한 놈들! 우와와 온다!
‘알고 있어.’
오벨리언 패거리들이 유리안을 향해 달려드는 꼴사나운 광경들 사이로 나를 향해 덮쳐 오는 네 번째 파도가 보였다.
관객들처럼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북슬이.
하지만 내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여섯 개의 바늘에서 떨림이나 당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피잉피잉피잉.
오러의 파도와 바늘 사이에서는 지금까지의 것보다 훨씬 더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미세하게 방향이 틀어진 파도는 내 뺨과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갔다.
‘됐어!’
엉망진창으로 흩어진 듯한 스물네 개의 바늘.
그리고 내가 지금껏 유리안을 상대하기 위해 흩뿌려야만 했던 수십 개에 달하는 바늘.
구석구석 위치한 바늘 위치의 확인을 마친 그 순간.
“그래 이런 것도 규칙 위반이 아니기는 하지. 하지만… 조금 실망스럽네.”
나나 아스트라를 상대할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유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앙.
“우, 우와아!”
우람한 몸집을 한 길버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른 주먹이, 그 절반이나 될까 싶은 체구의 유리안이 가볍게 내저은 연습용 검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오벨리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길버트는 떨거진 4인조 중 가장 앞서 돌격을 해 왔고 그 결과 가장 먼저 바닥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꺄, 꺄아악!”
두 번째로 험한 꼴을 본 건 머리를 짧게 자른 계집아이였다.
그러니까 저 애 이름이 초버 후작가의 앤도닐이라고 했던가?
제법 값비싸 보이는 레인저용 장구로 몸을 치렁치렁 감싼 계집아이, 하지만 그 고가의 장신구는 유리안의 날카로운 칼등치기 앞에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어… 어어억….”
“꾸르륵….”
쩍쩍 금이 간 건틀릿을 낀 채 바닥에 처박힌 길버트와 이마에 커다란 혹을 단 채 그대로 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린 앤도닐.
‘뭐, 뭐야? 저 정도로 막대한 오러를 쏟아부어 놓고서 아무런 지체도 없이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길버트와 앤도닐의 뒤를 이어 달려들던 떨거지들의 얼굴에 떠오른 경악.
“크엑!”
“꾸륵….”
“어억!”
그리고 그게 녀석들이 쓰러지기 전에 표출한 마지막 감정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지쳤을 텐데….”
기습 6인방 중에 남은 최후의 1인.
오벨리언 마르커스의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렸는데 녀석의 손 사이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사슬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저 사슬을 이용해 연습용 검의 오러를 차단한 후 수정을 낚아챌 속셈이었겠지.
―우와앙, 순식간에 다섯 명이 기절해 버렸네. 저 유리안이라는 꼬마 진짜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그러니까 마법도 안 쓰고 비전 검술도 안 쓴 상태에서 저 정도라는 거지? 사실은 너도 봐주고 있었던 거 아냐?
‘봐줬다기보다는 진심이냐 아니냐의 차이랄까? 내가 상대한 게 ‘진심으로 놀이에 집중한 유리안’이라면 저 녀석들을 혼내 준 건 ‘화난 유리안’인 거지.’
서걱.
원거리에서 유리안이 휘두른 일검에 오벨리언의 마법 사슬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이제 마르커스 가문의 금지옥엽은 완전히 무장 해제되어 버린 셈.
“선배… 님….”
서걱.
“꺄악!”
후드득.
곱게 묶여 있던 오벨리언의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어 흩날렸고, 그녀가 자랑처럼 두르고 다니던 깃털 숄이 잘려 하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
‘중간에 끼어드는 일 없이 처음부터 떼거리로 달려들었다면 유리안도 저리 모질게 대하지는 않았을 텐데. 바보들, 화를 자초해 버렸어.’
이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봉두난발에 쇄골까지 훤히 드러나는 수모를 겪게 된 오벨리언은 울상이 되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오벨리언 마르커스, 전투 불능상태로 간주 퇴장.”
진행 요원의 매몰찬 목소리가 그녀의 발개진 얼굴 위로 쏟아졌다.
“꼴 좋다. 어린 것들이 되도 않는 잔머리를 굴리다가 아주 호되게 당하는구나.”
“쯧쯧, 저게 뭐야. 망신이랑 망신은 다 당하고 아무것도 얻지는 못하고.”
“저기, 알크페인 국장님 뒤에 있는 규율국 직원들 표정 좀 봐. 아주 그냥 살벌한데.”
“그럴 수밖에. 규율국의 주목을 받는 명문가 자제들이 처음부터 이런 개망신을 당했는데 규율국 사람들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어?”
그 위로 관객들의 차디찬 조롱이 묵직하게 덧씌워졌다.
“후… 조금은 개운해 졌네. 그런데 페이건 군은 왜 가만히 있었어?”
유리안이 여섯 명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2분 남짓.
폴리다고스의 왕자님은 오벨리언의 퇴장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내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흐음… 그렇게 지친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저 아이들이 한 것처럼 페이건 군도 기회를 노렸다면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그러지 않기를 잘한 것 같네요.”
“하하… 조금 흥분해 버렸네. 보기 흉했지.”
“아니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니기는, 보기 흉했지 뭐. 스승님께서도 넌 흥분하는 게 나쁜 습관이니 항상 신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또 저질러 버렸네. 페이건 군 같은 후배는 이렇게 의젓하고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선배가 되어가지고, 나도 참 큰일이네.”
“정정당당이라….”
내가 정말로 정정당당한 사람이라면 이런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꾹 삼킨 채 양손을 교차했다.
우우웅.
나와 바늘을 이어 주는 오러의 끈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순간 늦가을 낙엽처럼 볼품없는 모습으로 뒹굴거리던 바늘이 일제히 몸을 세웠다.
“…!”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유리안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지만, 어느새 수십 개의 바늘과 이어져 있던 내 오러 다발이 움직이는 게 조금 더 빨랐다.
전 방위를 점한 채 유리안을 향해 쏘아져 가는 황금빛 바늘들.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조금씩 부지런하게 바닥에 흩뿌려진 저 바늘들이 내가 파 놓은 함정이라는 건 제아무리 유리안 알렉세예브라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팅팅팅팅팅.
유리안은 황급히 오러를 전개해 검막을 펼쳤지만 황금빛으로 물든 바늘들은 각각 날카로운 창이 되어 검막을 난타했다.
“뭐야? 저건!”
“치료술사가 침을 비검처럼 사용하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저런 게… 가능하다고?”
“어… 어? 유리안의 검막에 금이 가는데?”
“그럴 수밖에, 저 바늘인지 뭔지의 움직임이며 기세를 봐. 유리안의 오러가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지금 쓸 수 있는 건 기본 검술상의 검막이 전부야. 그런 평범한 검막으로 저런 기상천외한 걸 상대하려니 버거울 수밖에.”
“뭐야… 저 클라디우스의 꼬마가 진짜로 유리안을… 잡는 거야?”
바늘이 소낙비와도 같은 기세로 검벽을 두드리는 소리 위로 관객들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우하하! 맛이 어떠냐! 이 꼬마야! 그 뺀질뺀질하게 생긴 입을 열어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
―어머! 누가 들으면 벨제키엘 네가 뭐라도 한 줄 알겠네. 그리고 여기서 얼굴이 왜 나오니?
―저 유리안이라는 놈 사내놈인 주제에 여자애처럼 예쁘게 생겼잖아.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웃겨! 계획을 짠 건 페이건인데 네가 왜 그렇게 흥분하니. 페이건, 처음부터 이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구나. 유리한 진형을 만들기 위해 일방적으로 밀리는 척을 한 거지?
라무테 님에 대한 답변은 잠시 미룬 채 난 티아매트를 고쳐 잡은 뒤 도약 준비를 했다.
멋모르는 관객들은 검막에 금이 가니 어쩌니 떠들어 댔지만, 이걸로 결정타를 먹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아!”
기합과 함께 주먹을 움켜쥐자 지금껏 검막을 두드리다, 멀어지다를 반복하던 바늘이 한층 더 가열하게 쏘아져 나갔다.
이걸로 라스트 댄스, 승부를 봐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한 나는 자세를 한껏 낮춘 채 최대한의 속도로 도약을 시작했다.
“와! 이 타이밍에?”
쇄도를 목격한 유리안은 짐짓 다급한 목소리를 토해 냈지만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검의 움직임에서는 아직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째앵.
맞부딪친 연습용 검과 티아매트 사이에서 최고조의 소음이 터져 나왔다.
가가가각.
연습용 검과 맞부딪치자마자 곧바로 방향을 트는 티아매트.
‘여기서도 틈을 안 보여주시겠다? 정말 대단하시네.’
실망은 잠시, 오른손을 다시 한 번 움직였고, 검막을 두드리던 바늘들이 한데 합쳐 허공으로 솟구쳤다.
목표는 검과 수정이 연결된 그 지점.
이게 준비한 마지막 한 수, 이것마저 안 통한다면 깨끗하게 판을 포기할 마음을 먹은 채 난 혼신의 힘을 다했고.
지지지직.
“으아! 안 되는데!”
바늘 창에 난타당한, 검과 수정이 연결된 자리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됐어!’
균열의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더없이 분명했고, 팔을 쭉 뻗은 그 순간 마침내 검 끝에서 튕겨 나온 수정이 손바닥으로 쏙 들어왔다.
“하!”
유리안의 입에서는 패배의 분노라기보다는 감탄의 의미를 담은 탄성이.
“큭!”
손을 움켜쥔 채 그대로 바닥에 나뒹군 내 입에서는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 마지막 일격에 너무 힘을 쏟아부은 탓에 허공에서 다리가 풀려 버린 터라 제대로 된 착지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워낙에 반짝거리는게 많아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는데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손을 뻗어 뭔가를 움켜쥐지 않았어?”
고통과 나른함이 공존하는 낯선 감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무대를 살피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어! 없어. 유리안의 검 끝에 수정이 없다고….”
“진짜네? 진짜 없어. 그럼… 저 꼬마가, 그러니까 저 신입생이….”
“유리안 알렉세예브를… 그 희대의 천재를 첫 승부에서 잡아 버렸다고?”
“진짜? 이게… 가능… 해?”
빠가각.
수정을 잡았‘던’ 손에 정말 약간의, 그러니까 힘을 줬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약한 힘을 줬을 뿐인데 ‘뽀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솔직히 말하면 페이건 군의 선전을 반쯤은 기특한 마음으로 봤거든.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뽀각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유리안은 검을 들지 않은 반대편 손을 내밀었다.
“졌어, 마지막에 그런 수를 남겨 두고 있다니.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완벽한 패배야. 페이건 군, 승리를 축하해.”
미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표정과 목소리.
“자, 얼른 일어나. 사람들에게 승자를 향해 축하를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지.”
“그러니까… 약속된 승리 조건이 선배님의 검 끝에서 수정을 떼어 내 제 손에 ‘쥐는’ 거였지요?”
“응, 응!”
“그렇다면 저도 승리하지 못한 셈이군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대답 대신 오른손을 들어 보여 줬다.
“아앗! 그거 왜 그래? 언제 그렇게 된 거야?”
내 도전이 성공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비통했던 걸까?
유리안은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감싸 쥐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힘 조절을 실패한 것 같습니다. 안간힘을 다하다 보니 피격점을 설정하는 데 실수가 있었나 보네요. ”
“힘 조절? 아니 잠깐만. 어, 그러니까 수정을 손에 쥔 상태로 인정을 받는 게 승리 조건이기는 했다만 이 경우에는 그렇게 문자 그대로 판단할 게 아니라 해석에 융통성을 둬서….”
내가 성공을 인정받을 수 있는 논리를 전개하는 유리안.
유리안의 다급한 목소리 사이로.
“어쨌거나 수정을 손에 쥐는 데 실패했으니 저도 승리한 건 아니게 됐네요.”
바늘에 직격당하는 바람에 산산조각 난 수정이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